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77화 (77/240)

죠엘과의 대면 이후로 푸석해진 얼굴을 가지고 회사로 출근했다.

촬영본 점검하고, 서율이 스케줄을 담당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오늘은 세주도 같이 움직인다. 이래저래 할 일이 많은 날이다.

“준경 씨. 무슨 일 있었어요? 얼굴이 말이 아니네요.”

“잠을 좀 설쳐서요.”

“어제 급히 나가던 그 일 때문에?”

“아, 뭐……”

소향의 물음에 어설프게 대꾸했다.

아직 죠엘의 제안 건에 대해서 어떻게 둘러대야 할 지 갈피를 못 잡았다. 쿤이나 엘란 등에 대한 것은 말 할 수 없다. 솔직히 신이니 뭐니 하면서 떠들어 누군가를 설득시킬 자신도 없고. 제안이 표면으로 부상하기 전에 그럴듯한 변명이나 하나 만들어 두는 게 좋을 거 같다.

“왁! 삼촌 얼굴 왜 이래요!?”

“시체다! 시체가 나타났다!”

서율이에 이어서 세주까지 나타나서 난장이다.

시끄럽다고 휘휘 저어 쫓아 낸 뒤 소파에 엉덩이를 걸쳤다. 반지의 마법은 안 쓰냐고? 이미 쓰고 왔다. 게임도 그렇듯, 반지의 마법은 쿨타임이 존재한다. 24시간 내에 다시 사용 할 수는 없다.

그러고 보니 라라가 만들어준 약초물이 꽤 괜찮았는데……

“흠?”

갑자기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약초. 그래, 쿤의 세계에서 채취했던 약초는 라라의 설명대로 피로회복에 매우 좋은 효능을 가지고 있었다. 쿤의 감각으로 느낀 바로 비교하자면 영양제라고 먹었던 것들 보다 훨씬 효과가 좋았던 거 같다.

만약, 이 약초를 가지고 올 수 있다면?

쿤을 통하든 제단에 위치한 리자드맨들을 통해서든 수급을 할 수 있다면 처리 할 수단이 이제는 있다. 바로 죠엘. 그녀는 내가 가지지 못한 수단과 방법. 그리고 루트를 가지고 있다.

약초를 정제하여 사용 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든다면 나름대로 돈벌이가 될 수 있다.

그것뿐이겠는가? 현대에서 구할 수 없는 독특한 성질의 것들이 많이 존재한다. 쿤이 가지고 있는 상식에서도 불임을 치료하거나 썩은 살을 정화하는 것들도 존재한다. 과연 그것이 현대에서도 동일하게 먹힐지는 미지수이나, 죠엘이라는 창구가 생긴 마당에 시도 해 볼 만한 기회가 만들어진 건 사실이다.

현대에서는 무엇보다 돈이 가장 큰 무기다.

챙길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가리지 않고 챙기는 것이 좋다. 더군다나 지금의 쿤은 일단의 위기를 벗어 난 상황. 쌓여 둔 포인트를 목적을 위해 조금 할애해도 좋을 거 같다.

“삼촌이 이상해. 어제 일찍 가지 않았어?”

“무슨 약속 있다고 먼저 간걸로 아는데요?”

“약속? 미소는 스터디 있어서 집에 늦게 들어간다고 하지 않았나?”

“아……그러네요. 그럼 누구를 만났지?”

수근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상큼하게 무시했다.

“소향 씨. 오늘 게이트 쪽으로 가는 스케줄이 있던가요?”

“있다 저녁에 세주 정기 점검이 있잖아요. 갑자기 게이트는 왜요?”

“하하. 미리미리 준비를 하려는 거죠. 그럼, 그렇게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 하고는 벙찐 얼굴의 사람들을 내버려 둔 채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생각이 떠올랐으면 바로 움직여야지.

바쁘다, 바빠.

#

“호오. 신기하군요. 공물이 곧바로 사라지다니.”

“신께서 항상 내려다보고 계시다는 증거죠.”

쿤이 무릎을 펴며 일어났다.

이단을 처리한 결과로 얻은 물건들을 공물로 바쳤다. 이번에도 신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제단을 세우거든 우리도 잊지 않고 공물을 바치도록 하겠다.”

“그리 하면 축복이 내릴 것입니다.”

“후후. 그렇게 된다면 좋겠군.”

짧게 답을 한 뒤 이오와 다른 엘본의 무리들이 물러갔다.

쿤의 몸 상태는 아직 정상이 아니었다. 쉴 수 있게 배려를 해 준 것이다. 이내, 세이혼 등도 다른 방으로 이동하고 그 혼자만 남게 되었다.

그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아무리 아군이라 인식되는 이오라 해도, 다른 종 앞에서 마음을 놓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이번 싸움에서는 방심하다가 크게 당하지 않았던가. 마음을 바짝 조인 것이 꽤나 부담스러웠다.

짚으로 쌓은 침대 위에 몸을 뉘었다.

‘어디 이번에는 무엇이 변했나 보자.’

신은 공물에 대한 대가로 나아길 길을 미리 보여주신다.

이번에도 강화신체와 발굴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그때 결과를 확인하는 것은 중요했다.

‘딱히 변한 것은 없나? 아? 약초꾼의 후각?’

***

약초꾼의 후각

한 번 확인한 약초의 냄새는 잊지 않는다. 먼 거리에서도 기억한 약초의 냄새를 뛰어난 수준으로 찾아낸다. 혼합된 경우에는 발동되지 않는다.

***

포인트가 소량 줄어있고, 이런 이름의 특기가 추가되어 있었다.

약초꾼의 후각. 단순하게 보자면 약초를 잘 찾으라는 의미. 하지만 갑자기 지금? 무언가 조금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아니면 특정한 약초를 찾아야 하는 건가? 이단과 관련된 약초?’

머리를 굴려봤지만 특기 하나만 덜렁 있어서야 추론하기가 어렵다.

신의 뜻은 항상 두루뭉술하고, 그 일이 닥친 후에야 진의를 이해한다고 하던가. 다른 신들과 달리 직접 소통하며 직관적인 증거를 내리는 존재이지만, 역시 이런 면에서는 신인가 싶다.

“쿤 오빠 자요?”

“음? 아직 안 잔다.”

그때, 넝쿨로 짠 움막 입구가 열리고 라라가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 그릇 하나가 들려 있었는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였다. 쿤이 허리를 세운 채 바라봤다.

“헤헤. 자기 전에 이거 마시라고요.”

“아……레퓌르 잎인가?”

“네. 불을 빌려서 우려내 봤어요. 마시고 자면 피로가 풀릴 거예요.”

쿤이 건네는 그릇을 받아 들었다.

상쾌한 향이 코끝을 스쳐갔다. 확실히 그냥 물에 탄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가만히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고맙다고 고개를 끄덕여 준 뒤, 가볍게 한 입 넘겼다.

“으음. 좋네.”

“다행이다.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까 필요하면 말 하세요.”

“그래 필요하면……”

말 하겠다. 말을 마무리 지으려던 쿤이 순간 멈칫했다.

약초꾼의 후각. 그리고 손에 들린 약초로 만든 차. 아주 딱 맞아 떨어진다. 그렇다면 말 하고자 하는 게 무엇이겠는가.

“라라. 잠시 여기 앉아 봐라.”

“……네? 왜요?”

“한 가지 실험 해 볼 게 있어서.”

“시, 실험이요?”

어떻게 이해를 했을까.

라라가 손을 모은 채 얼굴을 붉혔다. 발을 콩콩. 안절부절 못하더니 조심스레 쿤의 옆으로 앉았다. 살짝 내리는 고개는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듯, 기대하는 듯 분간하기 어려웠다.

“……무슨 생각하는 거냐?”

“네, 네? 아뇨, 뭐 그냥……”

허둥지둥 고개를 부산스레 흔드는 모양새가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그렇다. 쿤이 픽 웃은 뒤 양 볼을 손으로 잡았다. 그제야 흔들리던 머리가 멈췄다. ‘가만히 있어.’ 낮게 말을 하자, 라라가 고개는 못 끄덕이고 그냥 눈만 깜빡였다. 새빨개진 얼굴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다.

“승급.”

열린 창에서 라라의 (+)표시를 눌렀다.

빛이 손등에서 새어나와 천천히 그녀의 몸 위로 스며들었다. 빨갛게 상기 된 채 다음을 기대하던 그녀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빛을 응시했다.

빛은 잠시 동안 머리위에서 머물다 작은 파편을 남긴 채 전부 스며들어갔다.

***

라라(중급 신관)

개인 스킬 : 치유의 손길

개인 특기 : ( )

개방 스킬 : 하급 축복 개방 - 50

***

창에 표시된 그녀의 상태가 즉시 바뀌었다.

하급 신관이 중급 신관으로 바뀌고, 개인 스킬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뒤의 것은 딱 봐도 치유 개열 능력. 즉, 그녀도 무언가 사용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와, 와! 이게 뭐에요?”

“어떻게 변했지?”

“머, 머릿속에 뭔가 들어왔어요. 그러니까 막 지식 같기도 하고, 느낌 같기도 하고.”

“사용 할 수 있겠어?”

“자, 잠시 만요……”

라라가 머뭇거리며 손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모양새는 웃기지만 표정은 진지했다. 처음이라 어색한지 한참이나 걸렸다. 하지만 결국 특정한 형태를 성공했는지 손끝이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이름이……아. 치유의 손길?”

자신감 없는 말투.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손끝에 모인 빛이 환하게 터지더니 천천히 쿤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호오……”

쿤은 자신의 상세가 조금씩 회복됨을 느낄 수 있었다.

앞선 전투로 입은 외상과 누적된 피로가 동시에 회복되는 것이다. 효과는 대단하다 말 할 수 없었지만 상처와 피로를 같이 회복시키는 힘은 꽤 괜찮았다.

“후아!!”

“힘든가? 연속해서 사용 할 수 있겠어?”

“두, 세 번 정도는 될 거 같아요. 하지만 그 이상은……”

“흐음. 아쉽지만 나쁘지는 않군.”

“어떻게 된 거예요?”

“네 등급을 중급 신관으로 올렸다. 그 결과 생겨난 능력이야.”

중급신관이라는 말에 라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무엇을 느꼈는지 환하게 웃었다. 이래저래 짐 덩어리 같은 처지였으니, 탈피했다는 사실에 기쁜가 보다. 쿤은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보다……”

승급하고 스킬이 추가 된 것은 기쁘지만 단순한 일.

지금 봐야 할 건 스킬의 아래로 남아있는 공란이었다. 직감이지만 이 공란이 신의 의지와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쿤이 라라의 창에 뜬 공란을 손으로 두드렸다.

[추가 특기를 입력해 주세요.]

알람 음과 함께 지금껏 배운 특기들이 앞으로 쭉 펼쳐졌다.

추가 특기라는 말과 지금의 현상에서 바로 느낌이 왔다. 일종의 보너스. 승급에 따라 달려오는 추가 능력인 것이다.

‘이래서 약초꾼의 후각 같은 특기가 추가 된 거로구나.’

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신의 의도를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는 앞으로 행보에 관한 조언이었다. 세이혼과 쿤 자신. 훌륭한 능력으로 위기를 헤쳐 나가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일행이 다섯이면 다섯 모두가 제 역할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것은 균형에 관한 이야기로군.’

언제까지 라라와 루루를 단순한 짐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

둘을 공화국의 수도로 데려다주면 일단의 일은 끝난다. 하지만 정말로 그것으로 끝일까? 이 특기가 가지는 더욱 깊은 뜻은, 훗날을 보라는 것이다. 공화국 수도에 돌아간 뒤 두 소녀에게 닥칠 운명. 이모의 보살핌을 받아 무사히 제국으로 돌아갈까? 어쩌면. 하지만 그 이상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혼자서 모든 걸 짊어 질 수는 없다.

균형을 갖추고, 신관의 힘을 빌려야 한다. 하나 된 교단의 힘. 진정으로 신성을 떠받드는 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라라의 지식이 약초에 집중되어 있으니 이를 개화시킨다.’

쿤이 망설임 없이 늘어선 항목 중 약초꾼의 후각을 선택했다.

빈 칸으로 남아있던 개인 특기창에 약초꾼의 후각이 추가되었다. 멍하니 있던 라라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입을 붕어처럼 뻐끔거렸다.

“뭔가 또 머리 속에 들어왔다고?”

“네, 네!! 그러니까……냄새 맡는 법?”

“제대로 들어갔네. 이름은 약초꾼의 후각이라고 한다. 한 번 맡은 약초의 냄새를 잊지 않고, 찾아 낼 수 있게 하는 능력이지. 단, 혼합된 경우에는 사용하기 어려우니까 그렇게 알아라.”

“헤……”

따라가기 어려운 모양이다.

입을 떡하니 벌린 채 멍하니 있다.

하긴, 사람에게 어떤 특기를 전수하는 것이 이리도 순식간에 된다는 것이 신기할 것이다. 쿤이 작게 웃은 뒤 턱을 툭 쳐서 벌어져 있는 입을 닫아 주었다.

“이제는 네가 신관중에서는 최고참이다. 책임감 가지고 행동해.”

“아……최고참.”

최고참. 최고참.

꽤나 한참동안 그 단어를 반복했다. 기쁜 건지, 당황한 건지 얼굴로는 판단하기 어렵다. 그리도 받아들이기 어렵나? 쿤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그냥 그녀를 두었다.

멍하니 있는 라라의 얼굴이 꽤 볼 만 했다.

※작가의 말

라라몬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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