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75화 (75/240)

굳이 기다릴 이유가 있겠는가.

자리에 앉는 것과 동시에 입을 열었다.

“오면서 대충 들었습니다. 이미 라이오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나 보군요.”

“부정은 안 하죠. 라이오스는 그룹에서 운영하는 회사가 맞으며,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 중에 비난받을 내용이 있다고는 생각 할 수 없군요.”

“타 회사의 개척자를 억지로 빼내 갔으면서도 비난이 억울하다?”

“억지로 빼내갔다는 말은 어폐가 있군요. 위약금을 지불하고 모셔왔습니다. 개척자 분들도 더 나은 환경과 조건에서 일 할 권리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담담하게 대꾸하는 모양새가 미리 준비라도 한 듯 망설임이 없다.

금수저 물고 태어나 생긴 것도 뛰어난 인간이 말까지 잘하니까 솔직히 좀 밸이 꼴린다. 입술을 틀어 올리며 말을 받았다.

“허면 앞으로도 계속 그리 하시겠다는 말씀인가요? 골목시장 잡아먹는 대형 유통업체처럼?”

“하하.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니 저를. 그리고 라이오스는 무슨 악의 축처럼 생각하시는 거 같군요.”

“굳이 부정은 안 하겠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십시오. 게이트와 개척자. 그리고 정부의 관계가 언제까지 지금의 형태로 이어 질 거 같습니까?”

떠 보는 모양새다.

마치 너 따위가 이런 걸 알고 있겠느냐라는 얼굴. 그 동안 쌓인 이미지가 안 좋아서인지 굉장히 고깝게 보인다.

“고견이 있다면 한 번 들어 보도록 하죠.”

“이미 미국에서는 국가를 상대로 게이트를 사들이는 기업이 등장했습니다. 즉, 게이트 관련 문제도 철저하게 시장경제에 맡기겠다는 의미죠. 기업이 게이트를 사고, 개척자를 모집하여 일대를 상권으로 삼는 겁니다. 비교하자면 자원에 대한……일종의 채굴권 같은 걸 구매했다고 보면 되겠군요.”

“땅 파서 철만 나오는 게 아닐 텐데요? 그 너머의 존재를 확인 했음에도 시장경제에만 맡기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게다가 미국의 사정을 국내로 들여와 비교하는 건 너무 어리석은 짓 같군요.”

“게이트 너머의 존재를 과연 최근에 알게 됐을까요? 설마, 영상공개를 한 것이 양심선언이라 순진하게 믿고 있는 건 아니겠죠?”

비웃는 얼굴을 한 대 치고 싶다.

하지만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과연 게이트 너머에 대해서 인류는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는가. 우리가 아는 선이 정말로 진실인가?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결국 게이트도 사업에 불과합니다. 과거 식민지 전쟁을 치렀던 시대처럼 깃발을 꼽고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 나를 불리는 일이 된 거죠. 물론, 현대에서는 국가가 할 일을 개별적인 기업이 나서서 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지만요.”

“게이트 너머의 존재를 이미 대중이 알았는데, 기업에 맡기는 걸 찬성할까요?”

“의외로 순진한 마인드를 지니고 있군요. 안정성에 대한 것은 결국 광고와 포장의 문제입니다. 우매한 대중들은 적당한 선전만으로도 충분히 요리 할 수 있죠. 게이트를 기업이 소유하고 개척자를 늘려 사업을 진행하여도, 국가와의 연결은 끊이지 않습니다. 필요한 지역을 군을 주둔시키고 그것을 돈으로 매우는 일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죠.”

결국 돌고 돌아서 돈이다.

국가적 차원에서야 당연히 나라가 주도하여 처리하는 것이 옳고 모양새도 좋다. 하지만 그 안에 연결된 수많은 이권들을 생각해 보면, 차남혁이 말 한 대로 흘러 갈 가능성도 충분하다.

국익사업을 받아 착복하는 기업의 이야기. 그리 희귀한 것도 아니다.

“……결국 당신이 그 일을 주도하겠다 이 말이군요.”

“발 빠른 자가 이득을 취하는 거죠. 이미 다른 곳에서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소규모 회사나 가족 회사. 취지는 좋죠. 하지만 거대한 흐름을 벗어 날 수는 없습니다. 쓸데없는 일은 삼갔으면 하는군요.”

“아무리 그래도 본질은 개척자에 있습니다. 소수의 사람들끼리 연합을 하여 버틴다면 일이 잘 풀릴 거 같지는 않은데요?”

“연합? 하……하하하하!”

차남혁이 잇몸이 보이도록 크게 웃었다.

내 말이 그렇게 우습다 이거군.

“하하. 이거 실례했군요. 그래도 그 나이까지 산전수전 다 겪으신 분이 그리 순진한 말씀을 하시다니.”

“큰 것에 대항하여 작은 것이 모이는 건 이치입니다. 어째서 순진하다 말 하는 거죠?”

“처음에야 분하다 생각하니 버틸 수 있겠죠. 하지만 개척자 스스로에게도, 그걸 지탱하는 회사에게도 결국은 병합이 최선의 일임을 알게 될 겁니다. 게이트 관련 커미션으로 먹고 살아봐야 외적 수입 경로가 없는 이들이 얼마나 버티겠습니까? 귀측 회사야 서율 양이라는 좋은 수익 모델이 있으니 상관없다지만 다른 곳은 사정이 다릅니다. 하나씩 포기를 하고 넘어오기 시작할 테고, 결국에는 의미 없는 저항이 되고 말 겁니다.”

“……”

차남혁이 예를 든 미국의 일처럼 국내 사정도 변한다면 결국 게이트 내부에서 구해오는 물건이 풀린다는 말과 같다. 금과 은. 온갖 광물과 천연 재료들이 시장경제에 따라서 풀리게 되면 기본적으로 이것을 사유재산으로 인정하는 것이 배경에 깔리게 된다. 즉, 게이트 사용에 따른 국가의 지급 계약이 사라지고, 획득 물품에 따른 비용 산출이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게이트 너머의 활동에서 파이를 크게 가진 사람이 수익을 많이 낼 수밖에 없는 형태가 된다. 편을 가르고 대놓고 차별을 가해도 소수의 입장에서는 대항이 어려운 것이 사실.

땅을 가진 지주와 소작농의 싸움이 된다.

“……그렇다면 한 가지 묻고 싶군요. 만약 게이트의 소유권을 기업이 가진다면 형태는 어떻게 되리라 생각됩니까?”

“양도는 어렵겠죠. 기간 단위 임대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적어도 문서상으로 국가가 관리하는 증거는 남겨야 할 테니까요.”

“거래는 결국 돈으로?”

“천문학적인 액수가 될 겁니다. 하지만 그만큼 비전이 있는 자리죠. 돈이 돈을 버는 것은 이미 아이들도 아는 진리입니다.”

공개적으로 나가는 형태가 어떻든 결과적으로 기업이 게이트를 사서 개척자를 노동자로 사용하게 될 거라는 차남혁의 말은 상당히 신빙성 있게 다가온다. 국가가 말단까지 전부 다스리는 공산주의 국가가 아닌 상황에서야 결국 대부분의 것이 돈 문제로 귀결된다. 지금까지 현 상태로 유지돼 온 것이 신기한 노릇.

결국, 판을 놓고 수 싸움을 벌인다면 이미 나는 지분의 90%이상을 빼앗긴 것과 마찬가지다. 자본력을 바탕으로 싸울 수 있는 통로를 선점한 이들에게 어찌 대항해야 한단 말인가.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촬영준비가 다 끝난 것 같으니.”

말을 하며 차남혁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무언가 할 말이 더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부족했다. 입을 꾹 다문 채 멀어지는 차남혁을 바라봤다.

예상했던 부분도 있고,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다.

조금은 부담스러운 상황이지만 낙담하지는 않는다. 생각을 깊이 삼키고 머리를 굴렸다. 싸움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

촬영은 그럭저럭 무난히 끝났다.

나야 어차피 보조적인 입장. 표정 관리를 하며 촬영 분량을 채웠다.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상황을 정리하고, 다음 촬영 날짜까지 정하고 나서야 장소를 벗어 날 수 있었다.

이미 날은 저물어 주변이 어두웠다.

게이트 인근의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동식이와 남규도 정리하느라 바쁘다. 본래라면 나도 도와야 하겠지만 지금은 생각 할 것이 많아 그리하기 힘들었다.

“여기 있었군요.”

“소향 씨.”

“찾았어요. 역시 차 남혁 씨와 이야기 한 게 마음에 걸렸군요.”

“그의 말을 들어보니 생각보다 일이 단순하지 않더군요.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그렇게 게이트 먼발치에서 멍하니 있는데, 소향이 다가왔다.

그녀의 말에 반사적으로 답을 했다.

쿤이 제단을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현실에서 무언가를 구축 할 필요가 있다. 그 기반은 하늘 사랑이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서율이라는 간판스타가 있고, 세주까지 가입을 하여 적어도 페어는 짤 수 있게 됐으니까.

하지만 차남혁의 말대로라면 현실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

서율이와 세주가 다른 회사로 넘어가지 않는다 해도, 사업적인 확장에 제동이 걸리는 것은 사실이다. 장기를 두는데 차와 포가 떼인 것과 같다. 이것으로 손 놓고 좌절할 생각은 없지만, 생각이 복잡해지는 건 사실이었다.

“아직 정해진 일은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차 남혁 혼자서 한 말이죠. 게다가 일이 그렇게 흘러간다고 해도 회사는 버틸 수 있어요. 아니, 버텨 보이겠어요.”

“힘들 때 기대라 했는데, 저보다 더 강하시네요.”

“혼자서 끙끙 앓을 일이 아니니까요. 다들 같은 마음으로 회사를 지지하고 있어요. 그러니 준경 씨도 혼자서 고민하지 말아 주세요.”

“하하. 위로해 주시는 건가요?”

그냥 생각을 정리할까 했는데, 소향의 말투가 굉장히 진지하다.

어색함을 돌리려고 살짝 웃음기를 섞었다.

“항상 신경 쓰고 있으니까요……”

뭘까 이 대사는.

정면에 시선을 둔 채 슬쩍 옆을 훔쳐봤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얼굴로 소향이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는 이미 지고 없는데 그녀 얼굴에는 옅은 낙조가 서려 있었다.

그러니까 이 분위기는……

우우웅!!

“아, 잠시 만요.”

무언가 말을 하려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미묘한 표정의 소향에게 양해를 구하고 폰을 꺼내 들었다. 미소나 서율이가 연락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핸드폰 액정에 들어온 이름은 꽤 의외의 것.

[죠엘]

그녀의 이름이었다.

#

소향과의 어색한 분위기를 탈피하여, 죠엘에게 연락받은 위치로 이동했다.

잔업이 남아 있었지만 그녀가 워낙 급한 일이라 하여 사정을 설명하고 나올 수 있었다. 일전에 한 번 보고 꽤 오랜만이다.

약속했던 장소는 고풍스러운 느낌의 한정식 집이었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안으로 들어가니, 한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여성이 안내를 했다. 죠엘은 분명 외국인. 이런 고풍스러운 장소에서 만나는 게 어쩐지 조금은 어색했다.

어쨌든 그렇게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니 본채와 떨어진 곳에 따로 마련된 별채가 나왔다. 딱 봐도 특별한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간이었다. 부드러운 웃음을 남긴 채 멀어지는 종업원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 준경 씨.”

“Hello~"

안에 있는 건 죠엘 혼자만이 아니었다.

일전에 게이트 너머의 물건을 팔았던 여성. 크리스티나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둘 다 미인이라 그런지 방 안이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눈요기는 좋다.

하지만 둘이서 나를 부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도 다급하게. 짐작하기 어려웠다.

“두 분 다 오랜만이에요.”

가볍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어떻게 지냈느냐, 별 일 없느냐. 가볍게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급히 묻는 것도 없고, 평온한 대화였다. 다급히 부른 것 치고는 분위기가 너무 여유로웠다.

“그래서 죠엘. 급하게 부른 이유가 뭐죠?”

결국 내가 먼저 본론을 꺼냈다.

지금은 생각 할 것이 많다. 정말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시간 낭비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이에 죠엘이 가볍게 웃더니 말문을 열었다.

“준경 씨한테 아주 중요한 제안 하나를 하려고 불렀어요.”

“제안? 사업적인 얘기인가요?”

“음~어쩌면 그럴 수도 있죠. 생각하는 방향에 따라서 달라 질 수 있을 거 같아요.”

이게 뭔 두루뭉술한 이야기란 말인가.

미간을 찡그리고는 죠엘의 얼굴을 봤다. 솔직히 화내기 힘들 정도로 예쁜 얼굴. 하지만 말장난에 시간낭비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살짝 굳은 말투로 받았다.

“아쉽지만 지금은 사정이 넉넉하지가 않네요. 하실 말씀이 있다면 빠르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라이오스 건으로 조급하신 모양이네요.”

“……그건 또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이래저래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할 이야기도 그 일과 크게 동떨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들을 준비는 되셨나요?”

장난인가, 아니면 진심인가.

그린 듯 반듯한 죠엘의 눈을 살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 보죠. 준경 씨. 아니……”

뒷말을 삼킨 채 죠엘이 나를 보며 웃었다.

매혹적이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느낌을 풍긴다.

“쿤의 신 님.”

덜컹. 엉덩이에 밀린 의자가 거칠게 넘어갔다.

※작가의 말

데굴데굴.

죠엘을 잊은 건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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