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리자드맨임을 확인했고, 셋씩 몰려다님도 눈으로 봤다.
큰 덩치에 흉측한 외모가 두려움을 불러올지 모르나 그리 위협적인 상대는 아니다. 제안 받은 대로 동굴을 돌파해서 통과 하면 될 거 같았다.
“스무 걸음 이상으로 떨어지지 마라.”
일행은 세이혼과 쿤을 앞에 세우고, 란 등을 뒤로 돌렸다.
움-타가 후위를 보호하는 역할. 전투에 쓸려 갈 상황을 염려하여 거리를 두었다. 동굴이 어둡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 거리면 서로가 확인 될 수준이었다.
“움-타. 근데 리자드맨이랑은 꼭 싸워야 하는 거예요?”
“리자드맨은 나쁘다. 사냥 나간 형제들이 다쳤다.”
“움. 말로 해결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후위에서 걷던 루루가 낮게 중얼거렸다.
시무룩한 얼굴. 싸우고 죽이는 일이 마음에 불편한 표정이었다. 다만, 그것을 밖으로 표출해 쿤 등에게 말 할 만큼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옛 문헌에 보면 리자드맨과 인간이 교류하던 시대도 있다고 하던데.”
“아니다. 리자드맨은 보며 달려든다. 나쁜 놈들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바뀐 걸까? 아니면 이쪽 리자드맨이 흉포한 걸까?”
“루루야, 쉿.”
슬슬 분위기가 무거워지고 있다.
라라가 입가에 손가락을 올렸다. 루루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다물었다. 어느새 동굴 안은 스쳐가는 바람소리만을 남긴 채 조용해졌다.
“앞쪽……”
선두에 있던 세이혼이 손짓을 하며 말했다.
기척이 멀리서 잡힌 것이다. 쿤이 미간을 좁히며 잠시 앞을 살피다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늦게 희미한 기척이 느껴진 것이다. 동굴 사이로 늘어진 돌 하나를 벽 삼아 몸을 숨겼다.
쿵. 쿵.
조금 지나자 여섯 마리의 리자드맨이 통로로 걸어 나왔다.
정찰의 결과를 보고받은 뒤 무리를 뭉친 듯 보였다. 그렇게 보자면 아예 생각 없는 종은 아니었다. 무리 중 말을 하는 놈도 있었으니, 딱히 이상하지는 않았다.
‘한 번에 셋은 무리고. 일단은……’
눈으로 상대를 점했다.
인고의 시간이나 분노를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 할 수 있는 건 동시에 두 마리 정도. 세이혼이 넷을 상대로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생각이 들지만 싸움에는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른다. 최대한 빠르게 숫자를 줄이는 것이 좋다.
눈짓으로 세이혼과 의견을 주고받은 뒤 쿤이 돌을 돌아 배후로 접근했다.
발소리가 옅게 들렸지만 바람에 가려진 건지 리자드맨들은 반응이 없었다. 배운 대로 호흡을 정돈하여 최대한 존재감을 지웠다.
“캬라라……”
“캬라? 쿠타라. 카라코롬?”
여섯 중 하나가 고개를 기울였다.
무언가를 눈치 챈 반응. 옆에 선 동료가 이에 반문 식으로 입을 열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지만 제스쳐로 판단 가능한 부분이었다. 쿤이 바닥을 기다시피 미끄러져서는 후미의 리자드맨을 노렸다.
“캬라락!!!”
발목을 쌍 단검으로 베어내고, 무너지는 몸을 타 올라가 뒷목을 찔렀다.
약간의 저항감과 함께 단검이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핏물이 튀고 고함소리가 동굴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생각보다 두껍다.’
단검을 뽑아 목표로 삼았던 다른 적으로 이동하는데, 손끝이 조금 무거웠다.
생각보다 피부의 경도가 높았던 것이다. 그 탓에 이동이 살짝 늦었다. 두 번째 타깃의 목이 아닌 어깨에 단검이 박혔다. 요동치는 힘에 몸이 그대로 쓸려갔다.
‘이런 걸 잘도 푸딩처럼 베었군.’
재빨리 잡았던 단검을 놓고, 후위로 돌아서 목 안쪽으로 베었다.
완전히 끊어놓지는 못했으나 깊은 상처까지는 성공했다. 핏물이 왈칵 베어 나왔다. 황급히 목을 틀어막아 보지만 그렇게 진정 될 상황이 아니었다.
“캬라라라!! 인간이다!!”
“캬락! 죽여!!”
남은 적들의 신경이 단번에 쏠렸다.
더 들어 갈 수 있으나 쿤은 그 정도에서 만족했다. 머리위로 떨어지는 쇠몽둥이를 백스탭으로 피한 뒤 숨을 골랐다.
서걱—!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소리.
쿤의 등장으로 시선이 쏠린 사이 리자드맨 두 마리가 동시에 절명했다. 세이혼의 검격이었다. 그는 소리도 없이 무리 사이로 등장해서 적을 베어냈다. 마치 죽음에서 튀어나오는 검 같았다. 보고 있던 쿤은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란만 아니었다면 정말로 추격대를 혼자 상대했을지 모르겠군.’
무시무시했다.
화려한 기술이나 빛나는 섬광은 없었지만 그 부분이 더욱 대단하게 다가왔다. 소리 없이 다가와 목을 베어내는 검술이라니.
“캬라라라!!!”
셋이 죽고 하나는 중태.
불리함을 느낀 건지 리자드맨들의 행동이 조금 다급해졌다. 파충류를 닮은 외모에서 무언가를 읽기는 어렵지만 평온한 표정은 분명 아니다. 잠시 방황을 하더니 그 중 하나가 뒤로 몸을 돌렸다.
도주.
“그래, 꼭 이런 놈이 있지.”
쿤이 곧바로 따라붙었다.
그리고는 옆구리를 빠르게 찔렀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피륙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대한 동체가 잠시 휘청거리더니 앞으로 고꾸라졌다.
‘마무리를……’
옆구리 좀 뚫렸다고 안 죽는다.
확인사살을 위해서 쿤이 단검을 돌려 역수로 잡았다. 피부가 생각보다 강해서 뒷목을 끊기에는 이렇게 잡는 것이 더 편했다.
어깨를 발로 밟은 채 손을 들어 올렸다.
“피해!”
그 순간 들려오는 세이혼의 목소리.
동시에 섬뜩한 감각이 몸을 잠식했다. 작지 않은 투사체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황급히 몸을 뒤로 날렸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동굴 전체가 울렸다.
후끈한 열기가 몸을 스치고 연기와 흙먼지가 얼굴을 마구 때렸다.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대체 뭐였을까. 확인도 안 한 채 피한 터라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라쿰!!”
비산하는 파편과 뿌옇게 흐려지는 연기 속으로 커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뚜렷한 위기감이 경고를 보내왔다. 같은 것이다. 지금의 목소리가 앞선 폭발을 불러왔다는 확신이 들었다.
‘막……는건 무리!’
막고자 하는 순간 아찔할 정도의 위기감이 몸을 저미고 지나갔다.
전력으로 경고하는 것이다. 곧바로 생각을 고쳐먹고는 다가오는 투사 체의 반대쪽으로 몸을 날렸다. 이내 폭음이 다시 들려오고 바닥에서 튄 흙먼지 등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캬라라!!!”
성난 음성이 먼지 사이로 들려왔다.
맞추지 못함에 분노한 모양이다. 하지만 상황에 화가 나는 건 쿤이 더하다. 머리에 쌓인 흙먼지를 손으로 털어내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주술사다.”
남아있던 리자드맨을 처리하고 세이혼이 다가왔다.
그의 시선도 전면에 닿아 있었다. 먼지가 동굴을 관통하는 바람에 쓸려나가고, 검은 색 로브를 뒤집어 쓴 리자드맨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 앞으로는 예의 리자드맨보다 좋은 장비를 착용한 놈들이 호위를 자청하고 있었다.
“주술사?”
“드물게 나온다고 들었네. 자세히는 모르지만 방금과 같이 파괴적인 능력을 사용한다고 하지. 만만치 않은 거 같으니 조심해라.”
“리자드맨 마법사인가……?”
확실히 다른 리자드맨과는 복색이 달랐다.
품 넓은 로브에 손에는 나무를 깎아 만든 몽둥이까지 들고 있다. 솔직히 다른 능력을 사용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패 죽이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캬락! 인간! 우리의 영토를 침범했다! 너희는 적이다! 우리는 죽인다! 너희를!”
“……제대로 말까지 하잖아?”
“인간! 멍청하다! 우리가 특별히 알려준다! 너희는 죽는다! 이곳에서!”
뭔가 기묘한 어순이기는 하지만 분명 공용어를 사용하고는 있다.
들짐승 수준으로 구별 돼 있던 리자드맨이 사실은 지성체였던 걸까. 쿤이 잠시 망설이며 답을 했다.
“우리는 사둠타 부족의 청을 받아 이곳에 왔다. 이 동굴이 너희 것이라 우기기는 힘들 텐데?”
“캬락!! 시끄럽다, 인간! 이곳은 우리의 터전! 신의 부름으로 왔다! 방해하는 자들은 모두 죽는다!!”
이번에는 조금 더 또렷하게 말을 했다.
그리고 동시에 호위를 자청하던 리자드맨들이 두꺼운 사각 방패를 앞으로 내밀었다. 몸의 절반가량이 가려지는 형태. 동굴의 폭이 그리 넓지 않음을 생각해 보면 파고들기가 쉬워 보이지는 않았다.
“라—쿰. 코라움……”
로브를 쓴 리자드맨의 중얼거림.
경험해 본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앞선 공격의 시발점임은 눈치로 때려 맞출 수 있었다. 쿤과 세이혼이 망설임 없이 앞으로 뛰어나갔다.
화르륵……!!
거대한 불덩이가 동굴 안을 밝히며 날아들었다.
쿤이 입술을 씹었다. 저것이구나! 저것이 나를 괴롭혔구나. 검으로 베거나 손으로 튕길 엄두는 안 나지만 적어도 한 번 째려봐 줄 수는 있었다. 한껏 노려본 뒤 세이혼과 약속이라도 한 듯 좌우측으로 나뉘어 뛰었다.
콰콰쾅!!!
폭발이 일어났다.
폭음과 먼지가 다시 동굴 내부를 채워갔다. 처음이야 당황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세 번이나 같은 일을 겪으며 어버버 거리는 것은 첫 사냥에 나선 초보나 하는 짓이다. 바닥을 차 먼지를 헤치고 들어가 호위병의 얼굴위로 단검을 쑤셨다.
팅. 방패와 검격 사이의 거리가 짧다.
애초에 키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무리하게 팔을 뻗었던 상황. 튕겨 나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힘대로 몸을 돌린 뒤, 사각방패 옆으로 몸을 비집어 넣었다.
“캬라라라라!!!”
듣다보니 이 울음 소리도 정겨운 거 같다.
곡예와 가깝게 몸을 돌리며 호위병의 허리춤을 손으로 잡았다. 원심력은 축이 있어야 가능한 법. 적과 굳이 내외할 이유는 없었다.
‘위, 아래? 옆!’
둔하지 않은 호위병의 반응.
근육이 수축하고 허리의 일부와 팔이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방패를 지면에 찍어 옆으로 돌리려는 생각. 폭이 넓고 힘이 좋은 리자드맨이 할 만 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미리 알고 있다면 동작이 큰 반응은 약점의 노출과도 같다.
카라라락!!
호위병이 크게 돌며 방패로 지면을 훑었다.
쿤은 이미 반걸음 빠져 예상 된 공격반경에서 벗어난 상황. 텅 빈 옆구리가 눈에 들어왔다. 잘 먹겠습니다. 아니, 잘 찌르겠습니다.
망설임 없이 단검을 쑤셔 박았다.
“캬르르르!!”
고통스러운 반응과 함께 몸이 꺾였다.
물론, 이것으로 죽지는 않는다. 옆구리를 발로 차며 단검을 뽑아, 목 언저리를 그었다. 장검이 아니라 단번에 벨 수는 없지만 출혈로 이탈시킬 수는 있다.
위잉—!
하지만 적은 하나가 아니고, 싸움의 룰도 일대일이 아니다.
바닥에 검은 색 실금이 그어지더니 주먹 만 하게 모여서는 갑자기 튀어 올랐다. 석순과 같은 형태.
쿤이 추가타를 포기하고는 몸을 뒤로 젖혔다.
치익. 스쳐가는 검은 기둥. 가슴팍이 길게 찢어졌다.
피가 나고 상처가 아리지만 깊지는 않았다. 허리에 힘을 주어 탄력으로 일어나서는 재차 공격을 위해 힘을 주었다.
“……뭐?”
하지만 그 순간 떨어지는 주술사의 머리.
쿤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옆을 살폈다. 주술사의 그림자 사이로 세이혼의 모습이 보였다. 기척도 느껴지지 않은 채.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검.
앞서 그의 방향으로 있던 호위병 역시 목이 잘린 채 죽어 있었다. 언제 어떻게? 아무리 전투에 몰입되어 있었다지만 감각법은 확실히 사용하고 있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버린 게 바로 이러할까. 어쩐지 으스스했다.
“괜찮은가?”
“……그럭저럭.”
“생각보다 주술사의 능력이 뛰어나 빠르게 제거했다. 수련은 다른 것으로 해도 되겠지.”
“음.”
이 상황에서도 수련인가.
란과 함께 단둘이 사는 동안에는 그 본성을 어찌 참았나 싶다. 설마, 흑열병을 고치는 게 아니라, 다시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은 마음에 따라오는 건 아닐까. 쿤이 미심쩍은 눈으로 그를 살폈다.
“괜찮아요!? 다친 곳은 없죠!?”
“쿤 오빠! 세이혼 삼촌!”
떨어져서 지켜보던 란 등이 달려왔다.
어찌되었든 싸움은 승리. 쿤이 일단의 생각은 접어 둔 채 무기를 정리했다. 아직 동굴의 초입이다. 벌써부터 힘 뺄 필요는 없었다.
“……음?”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려는 찰나.
쿤의 눈에 조금은 이상한 점이 들어왔다. 주술사의 시체. 로브의 안쪽에서부터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것이다.
‘빛이라.’
호기심을 머금은 채 쿤이 허리를 숙였다.
※작가의 말
이번 편을 마지막으로 유료 연재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5월 18일 오후 6시부터 유료로 전환됩니다.
28편까지 무료로 공개되며 주 7회, 이번 주는 연참으로 달릴 생각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공지로 올리겠습니다.
후아. 솔직히 굉장히 떨립니다. 분에 넘치는 관심을 받아 멍하기도 하고, 과연 유료로 갔을 때 얼마나 많은 분들이 따라올지 걱정이 됩니다. 아무래도 유료가 처음이다보니 걱정이 설렘을 앞서는군요...
결과가 어찌 나오든 제가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집필해서 좋은 글로 보답하는 것밖에 없을 거 같아요. 더 고민하고, 더 노력해서 좋은 글로 답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 동안 고마웠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m(_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