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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메이커-68화 (68/240)

사둠타 부족의 안내인으로 온 이는 움-타라는 이름의 남자였다.

키가 굉장히 커서 쿤도 한참이나 올려다봐야 했다. 얼굴과 몸이 문신으로 가득 차 있어, 얼핏 보기에는 굉장히 흉악했다. 하지만 안내자로 소개받고 몇 마디 나눠보자 굉장히 순박하고 해맑은 성품임을 알 수 있었다.

“요 아래로 가면 동굴이 나온다. 귀가 밝으니까 소리를 조심해라.”

부족에서 식량과 가죽. 약초 등을 보급 받은 뒤 바로 출발했다.

하루고 이틀이고 푹 쉰 뒤 움직이고 싶었지만 추적자를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다. 움-타의 안내를 받으며 숲길을 관통했다.

옆은 구릉 아래쪽으로 얕은 개울이 흐르고, 그 끝에 시커먼 아가리를 내민 동굴이 보였다. 넝쿨이 윗선에서 잘려 있었다. 자연적인 것은 아니고 누군가 날붙이로 자른 듯 보였다. 적어도 동굴에 누가 사는 건 분명한 것 같았다.

“너희 셋은 싸움이 시작하면 무조건 뒤로 도망쳐 있어. 움-타 네가 곁을 지켜라.”

“나는 싸우려고 왔다.”

“지켜. 어차피 리자드맨을 몰아냈는지 확인하려고 보낸 거잖아.”

“열심히 날을 갈아왔는데……”

아쉬운지 움-타가 입술을 비죽였다.

황소 같은 놈이 그러고 있으니 징그럽다. 어깨를 툭툭 치며 잘 하라고 다시 덧붙였다. 란이 축 늘어진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곁으로 다가가 잘 부탁한다고 속삭였다. 그러자 금세 얼굴을 시뻘겋게 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족에는 여자가 적었다.

“그럼 일단 안쪽을 살피도록 하지. 쿤, 은신에 대해 배운 것이 있나?”

“따로 배운 건 없지만 숨기는 요령은 조금 안다.”

“적을 느끼는 것과, 내 기척을 숨기는 것은 결국 같은 요령이다. 와라, 실전에서 확인하는 것이 가장 빠르겠지.”

상황이 다급함에도 세이혼은 서두르지 않았다.

이 와중에 감각법 수련을 이어가려는 것이다. 쿤도 딱히 만류하지는 않았다. 수련은 날을 잡아서 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 작은 일 하나하나에서 배워가는 것이 진짜로 남는 공부였다.

움-타에게 란 등을 맡겨 둔 채 둘은 동굴로 향했다.

서늘한 바람이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습기가 상당했다. 찰팍거리는 물소리와 동굴 안을 휘도는 바람 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세이혼이 조금 앞으로 나선 채 돌 사이로 몸을 숨겼다.

호흡이 안정되고 기척이 단숨에 흐려졌다. 그의 숨결과 냄새.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감각 정보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으로 보고 있지 않는다면 그가 그 장소에 있다고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까닥 까닥.

세이혼이 손짓했다. 별 다른 설명은 없었다. 며칠 만에 감각수련법을 익힌 몸이라 재능을 높이 산 모양이다. 사실은 신의 은총이거늘. 이제 와서 그렇다고 털어놓기도 뭐해서 쿤이 그대로 몸을 움직였다.

찬 돌의 기운이 등 언저리에 닿았다.

즉시 숨을 고르고 최대한 몸을 숨기고자 했다. 요령은 대충 머리로 이해하고 있다. 주변의 정보를 감각적으로 읽어내는 건 결국 두드러진 특이점을 확인하는 것과 같다. 이를 역으로 사용해서 자신의 몸을 배경과 동화시키면 그것이 은신의 요령이 되는 것이다.

‘하급 은신이 있으니……’

어쩌면 쉽게 되지 않을까.

쿤이 꼼지락거리며 세이혼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젓고 있다. 직접 배워서 특기로 등록 된 것과, 공물로 받은 특기는 요령의 습득이 달랐다. 효과는 발휘하지만 원리는 모르는 완성품을 보는 느낌?

“처음부터 모든 걸 감추는 건 무리다. 숨 쉬고 체온이 새어나가는 일 등. 자연스럽게 녹아나기 위해서는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 일단은 자신에게 익숙한 감각을 잡으려고 노력을 해 봐라.”

보다 못 한 세이혼이 다가와서 조언을 해 주었다.

익숙한 호흡. 확실히 사람이 돌이나 흙이 될 수는 없다. 흔들림이 없어 점차 배경에 녹아내리는 것이 은신의 방법이다.

생각을 바꾸고 다시 시도해 봤다.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호흡을 편하게 했다. 일정한 모습. 거슬림이 없어 조금씩 그 존재감이 흐려지는 것.

[하급 은신의 등급이 개방되었습니다.]

익숙한 알림 음이 들려왔다.

동시에 세이혼이 ‘그 정도면 나쁘지 않네.’ 라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습득한 특기의 경우, 그 본질을 제대로 깨우치면 높은 경험치를 받는 것 같았다. 단순한 일의 반복보다는 핵심을 익히는 것이 더 높은 보정을 받는 것이다.

‘결국 나 자신이 익혀야 된다는 거네.’

특기라 적혀있으니 사실 그편이 맞는 말이다.

아는 것과 배우는 일. 그리고 특기. 상관관계를 조금 이해 할 것도 같았다.

툭. 그때, 세이혼이 옆구리를 쳤다.

고개를 들어 앞을 살폈다. 어둑한 동굴의 배경 사이로 커다란 그림자 몇이 다가오고 있었다. 키, 무게, 피부 위를 스쳐가는 바람의 느낌. 몇 가지 정보가 먼저 느껴졌다.

리자드맨.

녹색 안광이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

먼저 움직인 것은 세이혼이었다.

그는 손으로 신호를 보낸 뒤 몸을 숙인 채 다가오는 리자드맨을 노려봤다. 족히 2미터는 돼 보이는 키. 동작이 둔하다 들었음에도 상당히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런 느낌이 전혀 없는 모양이다.

기합도 없이 바닥을 차고 뛰었다.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군.’

쿤이 몸을 숨긴 채 눈을 빛냈다.

세이혼이 싸우는 것은 실제로 처음 본다. 특수부대의 단장. 과연 어느 정도의 실력이 있는지 궁금했다.

“캬라라락!! 캬락!!”

“캬라! 인간!!”

셋 중 둘이 반응했다.

하나는 놀랍게도 말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하나는? 쿤이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어디서 구한지 모를 쇠망치를 든 채 한 마리가 앞으로 고꾸라지고 있었다. 목 위에 있어야 할 머리가 안 보였다.

‘벌써?’

눈으로도, 감각으로도 확인 한 것이 없다.

놀람에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벽을 차고 몸을 돌린 세이혼이 위에서 아래로 검을 그었다. 본래 경비대장이 쓰던 물건이다. 날이 잘 든다며 그가 사용하고 있었다.

서걱—!

반사적으로 들어 올린 리자드맨의 팔이 통째로 베어졌다.

그 아래로 보호하려던 머리도 무사하지 못했다. 정수리가 단박에 쪼개져 핏물과 함께 지면으로 추락했다. 이번에도 일수에 적을 제거한 것이다.

‘대단하군!’

쿤의 입이 벌어졌다.

단순한 검격이지만 두꺼운 리자드맨의 팔과 머리통을 동시에 베어내는 건 엄청난 수준의 일이다. 실수로 검격이 중간에 멈춰 버리면 무기를 상대에게 빼앗길 위험이 있다. 한 번에 펼쳐낸 세이혼의 공격은 자신감의 발로였다.

“캬아아아아!!”

마지막 남은 리자드맨이 광분을 하며 달려들었다.

오른 손에 들린 투박한 날의 철제 검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동시에 허리 아래로 내려와 있던 꼬리가 채찍처럼 움직였다.

‘저것이 꼬리를 사용한 공격이군.’

하나 둘의 타이밍이 아니라 동시에 사용했다.

쿤이 눈매를 좁혔다. 세이혼이 아닌 자신이 저 자리에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공격의 속도가 느리다고는 하지만 불시의 공격은 만만한 게 아니었다. 들어오는 타이밍을 눈으로 확인해 두었다.

타앙. 탕.

세이혼은 리자드맨의 검을 면으로 쳐 내며 꼬리를 유연하게 피했다.

얼핏 보면 수세에 밀리는 느낌이었다. 단순한 리자드맨 역시 그리 생각하는지 더욱 열을 올렸다. 하지만 조금 떨어져 객관적으로 살피던 쿤은 그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한 걸음도 이동하지 않았어.’

세이혼은 한 자리에 서서 리자드맨의 공격을 상대하고 있었다.

필요 이상의 힘은 쓰지도 않은 채 대고 흘리는 단순한 동작 몇 개로 상황을 유지했다. 막기 급급해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그의 얼굴은 평안했다.

‘보라는 거군.’

앞의 둘을 단번에 죽여 놓고 이번에만 시간을 끌 이유는 없다.

능숙하게 싸움을 이끌어가며 그것으로 쿤에게 가르침을 내리려는 것이다. 일전에 몇 수 배우라 말 할 뒤로 지금까지. 특수부대를 이끌었던 당시에도 부하들을 이렇게 가르친 것이 아닐까? 꽤나 훈육하는 것을 즐겨하는 느낌이었다.

“참고가 되었나?”

그 생각을 확인하는 말.

세이혼이 리자드맨의 검을 아래로 눌러 중심을 뺏고는 곧바로 횡으로 그어 목을 잘랐다. 핏물도 얼마 튀지 않았다. 목 없는 시체가 잠시 휘청 이다 아래로 고꾸라졌다.

“가르칠 생각이라면 좀 미리 말 하면 안 되나?”

“배우고자 하는 이라면 한시도 눈을 떼어서는 안 된다. 자세를 좀 시험해 봤을 뿐이다.”

“이끌었다고 하던 특수부대 말이야. 그쪽 친구들이 고생 꽤나 했겠어.”

“……돌아가자. 더 몰려 올 거 같으니까.”

세이혼이 부정은 못 하고 검만 슥슥 닦아 낸 채 몸을 돌렸다.

악독한 교관이었을 거야. 쿤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일단 그의 뒤를 쫓았다. 쿵쿵 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

“으응. 그건 레퓌르 잎이고요. 이게 테요르 잎이에요.”

“둘이 너무 비슷하다.”

“에이 잘 보면 차이가 있잖아요. 끝이 다른걸요?”

“으으. 난 봐도 모르겠다.”

구릉으로 돌아가던 쿤은 바람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에 픽 웃고 말았다.

하나는 라라였고 다른 하나는 움-타였다. 어찌 어울리나 싶었는데, 풀잎 사이로 쪼그려 앉아 도란도란 말 하는 품새가 그런 걱정은 필요 없어 보였다. 조금 더 올라와서 보니, 란과 루루도 비슷한 잎사귀 찾는다고 주변을 헤집고 있었다.

쫓기는 마당에 긴장감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축 늘어지는 것보다는 이것이 낫다.

란은 둘째 치고라도 라라와 루루는 마을에서 있었던 일로 갈등이 생긴 게 아닐까 걱정하고 있었다. 밝은 모습을 되찾고 있으니 마음이 놓였다.

“아, 쿤 오빠!”

루루가 가장 먼저 발견하고 다가왔다.

손이 흙으로 더럽다. 그녀도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슬쩍 볼을 붉히고는 손을 뒤로 뺐다. 그런다고 본 게 사라지지는 않을 텐데.

“오셨군요. 다친 곳은 없죠?”

“세이혼이 다 해서 말이야. 나는 구경밖에 안 했다.”

“재진입 할 때는 직접 싸워야 할 테니 미리 복기를 해 둬라.”

“조만간 스승님이라 불러야겠는데?”

농담 섞어 쿤이 대꾸하자, 세이혼이 흐리게 웃었다.

조금은 그리움이 담긴 얼굴이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사실에서 옛일을 기억하는 모양이다. 쿤이 잠시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그보다 뭐하고 있었던 거냐?”

“아! 근처에서 레퓌르 잎이 보이더라고요. 혹시나 해서 모아두고 있었어요.”

“레퓌르? 뭐하는 건데?”

“피로를 회복시켜주고, 상한 장기를 보호해 주는 효과가 있어요. 물을 끓여서 차로 우리면 좋지만, 그냥 즙을 내어 먹어도 효과는 볼 수 있을 거예요.”

“오오! 움-타도 하나 찾았다!”

뒤에서 산 같은 얼굴의 움-타가 잘린 잎사귀 하나를 들고는 웃고 있다.

“땡. 그것도 아니네요.”

하지만 틀렸나 보다.

라라가 아쉽다는 듯 손을 흔들자, 금세 시무룩해졌다. 표정 오가는 모습이 꽤 희극적이다. 쿤도 상황을 잊고 입을 벌리며 웃고 말았다.

“아, 쿤 오빠도 웃었다.”

“……내가 웃는 게 그리 이상한가?”

“배 떠나고 나서는 제대로 웃은 적 없잖아요.”

하긴 도망치기도 바쁜 일정에 웃을 힘이 어디 있겠는가. 곁에 있는 거라고는 짐 덩이 둘. 그나마 세이혼이 동료로 들어와 한 시름 덜어 지금은 여유가 조금 생긴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웃음이 그리 없었다는 건 살짝 충격이다. 나름대로 용병 일 할 때는 입을 잘 털어 바드로 전직하라는 말도 듣곤 했는데.

‘불만이 있었나 보네.’

신의 뜻이라 여기지만, 라라와 루루를 떼 놓고 도망치지 못하는 건 자의적인 상황이 아니다. 불만이 생기지 않을 도리가 없다. 둘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런 모습이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르나, 한참이나 같이 가야 할 사이. 앙금을 묵혀두는 건 좋지 않다.

“그 약초나 찾아와 봐. 일이 끝나고 불을 피울 수 있으면 차로 우려내 보게.”

“아, 진짜요?”

“맛없으면 코 잡고 다 먹을 줄 알아.”

“와~잔인해라.”

엄살 부리는 말투와는 다르게 라라의 입은 웃고 있다.

그래, 힘들어도 여유는 있어야겠지.

쿤도 마주 웃어 주었다.

※작가의 말

세이혼 싸부.

사실 세이혼은 성기사의 직위를 가지고 있지만 탱커로 보기는 힘듭니다.

암살특화 딜러라는...쿨럭.

어쨌든, 다들 재미있게 보고 가세용.

좋은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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