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60화 (60/240)

짐을 챙겨 유타 평원을 가로질러 예정된 야만인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그 사이 쿤은 세이혼에게 전수받은 독특한 수련을 반복해서 실행했다. 감각을 제한하는 수련이었는데, 눈을 가리고 걷고, 코를 막은 채 밥을 먹으며, 귀를 막은 채 잠에 들었다. 별 거 아닐 거 싶지만, 3일 동안 모든 일에 이 수련을 병행했다. 평상시 사용하던 감각이 일그러지자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식사가 끝나고 잠시 쉬어가야 할 때는 어김없이 대련을 하며 검을 통해 상대를 읽는 법을 읽혀나갔다. 세이혼은 기초적이라 설명 하였지만, 하푼에서도 이를 통과하지 못해서 탈락하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감각의 영역은 노력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공하고 말고의 차이는 사실 개인적인 것이었다.

‘익히지 못한다 해도 배워두면 좋은 요령.’

세이혼은 분명하게 말을 해 두었다.

신의 사도인 것과 무의 재능을 가진 것은 별개의 일. 그가 익히지 못한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 말했다. 반복해서 단련하여 조금 더 나은 반응을 보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 쿤도 동의하여 수련에 임하였다.

타닥—!

하지만 그렇게 3일째가 되는 날.

목검과 목검이 부딪혔다.

떨어지지 않은 채 붙어있는 검은 마치 한몸 인 듯싶었다.

“조금 빨리 당겼나?”

중얼거리는 쿤을 보며 세이혼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표정을 보니 이렇게 단기간에 요령을 읽혀 낸 쿤에게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익히지 못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못 박아 둔 채 시작하였으니, 조금은 민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안하군.’

쿤이 속으로 생각했다.

그에게는 말 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신의 은총으로 받은 기묘한 능력들.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 고민을 한 적도 있지만 설명하기 곤란한 부분이 조금 있었다. 어차피 사도의 권능처럼 몇 가지를 선보인 적이 있었으니, 그 정도만을 공개 한 채로 나머지는 비밀로 남겨 두었다.

그리고 이 능력은 평생을 다 바쳐서 익혀야 할 요령을 단기간에 습득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이 사실을 세이혼이 안다면 화를 냈을 정도로 간단하게.

[하푼식 감각 수련법(1단계)을 습득하시겠습니까?]

이 알람은 수련을 시작한지 이틀째 되는 날 들려왔다.

긍정을 표하고 창을 바꾸니 [500의 신성점수가 소모됩니다.]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500. 상당한 점수이지만 특수부대가 사용하는 전투 요령을 배우는 것에 비하자면 매우 싸다. 망설임 없이 눌렀다.

***

하푼식 감각 수련법(1단계)

특수부대 하푼에서 사용하는 감각 수련법. 전신의 감각을 번갈아 제한하여 다른 부분을 향상시킨다. 오감이 민감해지고, 위기 감지가 쉬워진다. 단계가 상승 할 때 마다 감각의 활용도가 증가한다.

단계별로 능력치 보정치가 존재한다.

1단계 : 민첩성 +1

***

그리고 얻게 된 특기가 바로 이것이다.

신에게 공물을 바쳐서 얻지 않은 첫 번째 특기. 하지만 이 또한 은총임을 잊지는 않았다. 그와 만나고 단련을 받을 수 있도록 안배 한 것이 바로 서 준경 신이었으니까.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되겠군.”

세이혼의 힘 빠진 목소리를 들으며 쿤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치사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정도만이 왕도인 것은 아니니까.

#

수련을 반복하며 내려가던 일행은 평지의 끝자락, 숲이 시작한 경계에 도달 할 수 있었다. 세이혼의 말을 빌리자면 이 숲 안쪽에 사둠타 부족이 살고 있다고 한다. 눈으로 봐서는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숲. 쉽사리 들어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곳을 넘어가면 돌아가기 어려우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묻겠다. 정말, 사둠타 부족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거겠지?”

“내가 지나온 것이 2년 전이니, 그 사이에 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분명하네. 게다가 이쪽 부족장과는 나름대로 안면도 있으니 불편하다고 내치지는 않을 거야.”

“저도……! 기억해요. 수염이 이렇게 막 난 할아버지. 맞죠?”

란이 루루 옆에서 발을 조물거리고 있다, 손을 들고 말을 했다.

아는 내용이 나오자 신이 난 모양이다. 쿤이 세이혼을 돌아보자 그가 맞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딸과 함께 지나온 지역. 란이 거짓이나 허풍을 늘어놓지는 않을 테니 믿을 만 한 내용이었다.

“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지. 안으로……”

“쉿! 잠시만.”

쿤이 결정을 내리고 이동을 권하려는 순간.

세이혼이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그리고는 재빨리 바닥에 누워 귀를 지면에 댔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일행의 얼굴위로 긴장감이 서렸다.

“……기마다.”

“기마!? 추격대인가?”

“숫자는 많지 않지만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어.”

세이혼이 다시 일어나서는 근처 나무를 박차고 올라갔다.

날다람쥐와 같은 그의 동작에 쿤이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렸다.

“일직선으로 향하고 있다. 우리가 있는 위치를 알고 있는 거 같아.”

“위치를? 어떻게?”

“……음! 선두에 있는 건 그냥 말이 아니군! 하라포네다.”

말을 마친 세이혼이 다시 지면으로 내려왔다.

하라포네. 라라와 루루는 물론이거니와 쿤조차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사냥개보다 후각이 몇 배나 뛰어난 짐승이다. 이종교배를 통해서 태어나는 희귀한 종이지. 공화국 내에도 몇 없는 것을 공수해 왔다는 건가……”

“우리 흔적은 한참 전에 끊겼을 텐데?”

“비가오고 보름 뒤에도 냄새를 쫒는 게 하라포네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추적을 피할 수 없어.”

“으음. 그럼 어찌해야 하지? 이대로 숲으로 도망가면 사둠타 부족이 우리의 편을 들어 줄까?”

“자치령이니 일단 보호를 받는다면……하지만 이대로 도망쳐서 제 시간에 도달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

어느 쪽이든 답이 안 나온다.

마차도 없이 도보로 이동 중인 상황에서 기마를 상대를 도망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게다가 그 중 하나가 냄새를 귀신같이 쫓는 하라포네라면 숨는 것도 무리다.

그렇게 곤란한 침묵이 이어지고 있을 때, 세이혼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저들이 쫓는 건 아무래도 이 둘이겠지?”

“아마도. 방법이 있는 건가?”

“한 명이 유인을 해서 끌어내야겠지.”

그리 말 하고는 라라와 루루 쪽을 돌아봤다.

“둘 다 속옷을 벗어라.”

“네?”

“냄새를 쫓는다면 가장 체취가 깊이 묻은 걸 따라 올 테니, 내가 일단 유인을 하겠다.”

세이혼의 말에 라라와 루루가 일단 굳었다.

속옷을 벗으라는 말. 아무리 그래도 곧바로 ‘네’라고 답하기는 곤란했다. 세이혼은 그런 둘에게 바로 신경을 끊고 다시 쿤을 돌아봤다.

“숲속이라면 시야가 제한되어 일단은 추격이 붙을 터. 그 사이에 자네가 일행을 이끌고 숲 속에 있는 호수로 향하게. 이 쪽. 해가 떨어지는 방향으로 반시간을 달리면 나올 거야. 입던 옷은 모두 태우고, 유리파나 카락투수의 잎을 태워 몸에 쏘여. 하라포네의 후각에서 피할 수 있게 해 줄 거네.”

“유리파라면 잎이 세 방향으로 갈라진 풀을 말 하는 거죠?”

멍하니 있던 라라가 고개를 들고 반응했다.

루루도 당황하는 기색을 지우고 본래의 신색을 되찾았다. 속옷. 여자라면 함부로 입에 담기도 힘들 만큼 은밀한 물건이지만, 상황이 얼마나 다급한지는 이해하고 있다. 고난이 사람을 키운다고 해야 할까. 이제는 둘도 해야 할 우선순위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라라가 먼저 속옷을 벗고, 뒤를 따라 루루도 벗었다. 입은 행색에 비해서 고급스러운 형태. 다른 것들은 모두 바꿨지만 속옷만큼은 예전에 쓰던 것을 빨아서 입어 왔던 것이다. 아쉽고 부끄러운지 잠시 시선이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이내 입술을 꾹 다물고는 세이혼에게 속옷을 넘겼다.

그가 담담하게 받아 들고는 주머니에 쑤셔 박았다.

“두 시간. 그 사이에 내가 호수에 나타나지 않으면 온 방향을 따라 더욱 깊이 들어가게. 그리고 이런 문양이 새겨진 나무를 발견하면, 자리에 서서 바닥을 손으로 세 번 두드려. 사둠타 부족의 도움을 청하는 전통 방식이야. 만약, 근처에 부족민이 있다면 도움을 줄 거네.”

“두 시간. 기억했다.”

“란, 조금만 참고 있으렴. 아빠가 금방 다녀올게.”

“……네. 란은 안 울어요. 꾹 참고 있을 게요.”

울먹이는 란의 머리를 크게 쓸어내고는 세이혼이 그대로 몸을 돌렸다.

“아, 잠시.”

그때, 쿤이 그의 손을 붙잡더니 [신성한 힘 개방]을 사용했다. 50점의 신성점수가 소모되었지만 이것으로 세이혼의 생존 확률이 더 높아질 것이다. 그가 주먹을 꾹꾹 쥐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눈인사를 끝으로 쿤과 일행도 지체 없이 그와 갈라져 숲으로 달렸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는 작별의 시간조차 아까웠다.

#

세이혼의 말대로 삼십분을 달리자, 작은 호수가 나왔다.

동물들이 쉬었다 가는 장소인지, 노루와 사슴 등이 여럿 보였다. 일행이 거친 숨소리와 함께 부근에 도착하자 고개를 들고는 푸르륵 거리며 도망쳤다.

“라라는 일단 잎을 찾고, 루루는 나와 함께 나뭇가지를 모으자.”

“저도 도울게요!”

“……그래. 쥘 수 있는 것들로 들고 와라.”

란의 조박만한 손이 도움이 될까 싶지만, 아비가 위험을 자처하고 나갔으니 뭐라도 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근이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를 주워와 한 곳에 모았다. 습기가 꽤 짙어 불을 붙이면 연기가 새어나갈 것 같았다. 쿤이 단검을 쥐어 호수 옆의 땅을 깊게 파 들어갔다. 워낙 힘이 세서 어렵지 않았다.

“찾았어요!”

조금 지나 라라가 유리파 잎을 한 움큼 뜯어 왔다.

충분해 보이는 양. 쿤이 받아서 모은 나뭇가지와 함께 뚫어 둔 굴 안으로 쑤셔 박았다. 옷을 태우면 연기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물기가 있는 토벽을 둘러서 그 사이로 스며들게 하여 이를 줄이는 게 그나마 최선이다.

“둘 다 알고 있지만……”

“괜찮아요.”

“각오했거든요!”

옷을 갈아입고 연기를 쐬는 것은 효과가 적다.

일단은 알몸으로 연기를 쐬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리 그 동안 같이 위기를 넘겨왔다고는 해도, 라라나 루루. 심지어 란조차 여자인 것. 수치심이 생기지 않을 리 없었다.

하지만 칭얼거리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붉어진 얼굴에 눈 꼬리에는 눈물까지 맺혀 있지만, 옷을 벗는 손길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쿤이 쑤셔 넣은 나뭇가지 사이로 불을 피워냈을 무렵에는 모두 알몸이 되어 있었다.

“이쪽으로 와라.”

쿤이 눈을 감은 채 셋을 인도했다.

하푼 식 수련으로 가까운 거리라면 눈을 감고도 평상시처럼 움직일 수 있었다. 이럴 때 도움 되라고 배운 요령은 아닐 텐데. 묘한 상황에 쿤이 속으로 쓴 웃음을 지었다.

“콜록……!”

“잠시만 참아.”

“매, 매워요.”

유리파 잎이 타면서 새어나오는 연기는 꽤나 독했다.

특히 몸이 약한 란이 힘들어 했다. 쿤이 새 천을 물에 적셔서 입을 닦아주고 나서야 겨우겨우 견딜 수 있었다.

몸을 다 씻어 냈으면 다음으로는 가지고 온 짐들이다.

쿤이 바닥에 늘어놓은 것들을 연기로 씻었다. 피부가 따갑고 눈이 코가 매웠지만, 꾹 참고 있는 라라 등을 봐서라도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꼼꼼하게 하나하나 처리를 한 뒤, 옷부터 찾아 셋에게 건넸다.

‘이제 문제는 세이혼이 추격대를 떼어내고 돌아오는 건데……’

세이혼 혼자라면 숲속에서 도망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상대가 뒤늦게 목표가 없음을 알고 고삐를 돌린다면 그 틈에 일행과 합류하여 냄새를 씻어낼 수 있을 터. 남은 흔적을 지운 뒤, 도주를 하여 사둠타 부족으로 향하면 된다. 어렵기도 어렵거니와 그렇게 도망친 뒤에 사둠타 부족에서 안전하리라고 장담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지.’

상대가 보병이었다면 어찌 상대 해 볼 만 한 각이라도 나오겠지만, 기마대다. 공화국은 전통적으로 평지가 넓어 말의 수출이 왕성하고, 기마술에 능한 나라. 아무리 숲이라 해도 기마대와 맞붙는 건 죽여 달라는 시위와 같다.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세이혼도 우선적으로 도주를 고려한 것이다.

“다 갈아입었어요.”

“이제 어떻게 해요?”

그 사이 셋이 옷을 다 갈아입었다.

쿤도 허리 매듭을 마무리 하고, 단검을 틈에 집어넣었다. 머릿속에서는 생각이 복잡하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겁먹은 셋을 다독이는 게 우선. 천천히 눈꺼풀을 밀어 올려, 시야를 확보 하려고 했다.

쉬이잇……!!

하지만 그때.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섬뜩한 느낌이 몸을 강타했다.

소리, 밀려나는 대기의 움직임. 그리고 뒤늦게 발동한 하급 위기 감지 능력까지. 복합적인 감각이 공격의 궤도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었다.

팅—!!

쿤이 날렵하게 단검을 뽑아 화살을 튕겨냈다.

핑핑 돈 화살이 바닥에 박혔다.

“잘도 막는군.”

“……!!”

푸르륵 거리는 투레질 소리와 함께 호숫가로 모습을 드러내는 한 남자.

붕대로 머리를 감고 있지만 그 얼굴은 절대로 잊을 수 없다.

“집요한 새끼……”

자기엘카 항구의 경비 대장이자 굴락의 팔 일원.

쿤을 죽음 가장자리까지 밀어 넣었던 그 남자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작가의 말

예약연재!!

* 머리깨진 아저씨 재 등장.

* 속옷의 형태를 묘사할까 하다가 변태 같아서 패스.

* 준경과 다르게 쿤은 행동으로 특기를 습득하지 못하며, 특수하게 ‘전수’형식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 능력대비 점수가 소모됩니다.

* 단어에 대한 많은 조언 감사드립니다. 용어정립을 한 뒤 써야겠네용.

* 잼게 보고 가세용~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