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아아아아아!!!!!”
빨려 들어갔던 의식이 돌아오고 아득한 고통이 몸을 잠식했다.
사방이 일그러지고 점점이 모인 영상이 고장 난 필름마냥 덜컥거렸다. 흑백의 칼라의 반복. 이명이 고막을 울리고, 뭔지 모를 액체가 얼굴을 덮었다.
“……요!? ……자기……아!”
누군가의 목소리. 누군가의 얼굴.
알아 볼 수가 없었고, 이해 할 수가 없었다. 하얗게 물들어가는 머릿속은 생각을 차단하고 오로지 하나에만 생각을 허락했다.
고통. 창자가 하나하나 잘리고, 몸의 뼈란 뼈는 죄다 토막이 나는 기분이었다. 살면서 이것저것 다쳐 본 일도 많았지만 이런 것은 처음이었다. 차라리 죽고 싶다. 극단적이지만 누군가 앞에 있었다면 이렇게 빌었을 것이다.
덜컹. 덜컹.
무언가 몸을 떠받치고 이동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얀 빛이 눈가를 스치고, 쇠를 닮은 냄새가 코끝을 지나갔다. 몸에 닿는 차가운 감각, 팔목을 감싸고 들어오는 이질적인 느낌. 하나하나가 고통으로 다가왔다. 떡 벌어진 입에서는 비명인지 모를 괴성이 쏟아져 나갔다.
띠……띠……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고통과 고통. 영원할 것만 같던 그 느낌이 조금씩 희석되기 시작했다. 토막 난 몸이 붙고, 벌어진 상처를 꿰맨 느낌이다. 정처 없이 부유하던 이성이 간신히 발 디딜 곳을 찾아 본래의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촌!”
귓가를 때리는 소리.
풀로 붙인 듯 끈적끈적한 눈두덩을 밀어냈다. 앞이 뿌옇게 물들어 있었다. 누군가 눈앞에 미스트라도 살포 한 거 같다. 몇 번이고 깜빡이고 나서야 간신히 앞의 모습을 살필 수 있었다.
“삼촌!! 정신이 들어요!?”
화장이 다 번진 서율이가 재난영화의 여주인공처럼 울고 있었다.
그 옆으로 동식이와 남규가 보이고, 한 걸음 떨어진 곳에 소향의 모습도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일까? 고장 난 컴퓨터마냥 머리가 잘 굴러가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쉰 목소리. 말을 하고 깜짝 놀라 입을 다물고 말았다.
오래전 좋아하던 벤드의 공연이라고 하루 종일 외치고 났을 때도 목소리가 이렇지 않았었다. 점점이 떠오르는 고함 소리 중 태반이 내 것이었을까?
“기억 안 나요!? 갑자기 쓰러져서 실려 왔잖아요. 비명 지르고 마구 난리치는 통에 손과 발까지 전부 묶었었다고요.”
“실려와? 그럼 여긴……?”
“병원이에요. 응급실에 있다가 상태가 호전되는 거 같아서 병실을 옮겼어요.”
눈을 몇 번 더 깜빡였다.
사진 같은 영상이 둥둥 떠오르기는 했으나, 전부가 기억나지는 않았다. 다만, 그보다 선명한 한 가지. 쿤의 일이 퍼뜩 떠올랐다. 인고의 시간. 그 여파를 받은 쿤이 괴로움이 발버둥을 쳤고, 어느 한 순간 갑자기 그 세계와의 연결이 끊겨버렸다.
그리고 내가 되어 고통에 휩쓸렸다……
처음 있는 일이다.
쿤과 나를 이어주는 것은 게이트. 그리고 공물이었다. 다른 방식으로 본래의 나로 돌아 온 건 처음이었다. 마치 게임 속 캐릭터가 서버오류나 버그 등의 이유로 튕긴 거 같다. 몸에 남은 여파는 짜증과 분노 수준이 아니었지만.
“걱정을 시켰네……의사는 뭐라고 하는데?”
최대한 담담하게 물었다.
그러자 문가에 서 있던 소향이 다가왔다.
“신체적인 이상 징후는 발견하지 못했어요. 다만, 전신이 멍들어 있더군요. 몇 개는 땅을 구르며 생긴 거 같지만 나머지는 이유를 못 찾겠어요. 어디서 막노동이라도 하고 온 건가요?”
“……운동을 배우고 있습니다.”
“정도가 심하더군요. 너무 무리하는 건 좋지 않아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견이 뭐라 합니까?”
“정밀 검사를 더 해봐야 알겠지만, 일단은 신경발작으로 판단을 하는 거 같습니다.”
“신경발작?”
“뇌에 남은 특정 기억이 몸의 반응을 이끌어 내는 거라고 하더군요. 준경 씨의 경우는 아마도 교통사고. 게이트를 지켜보던 게 특정 트라우마를 이끌어 낸 것이죠.”
눈을 깜빡이며 생각을 해 봤다.
어차피 게이트 너머의 일을 얘기 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심리적인 이유로 발작. 교통사고 이력도 있으니 제법 타당한 이야기가 된다.
“자세한 이야기는 담당하시는 분이 와서 해 줄 거예요. 호출했으니 조금 있으면 오겠죠.”
“걱정을 끼쳤군요.”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해요. 일단은 쉬도록 하세요. 내일 다시 찾아오도록 하죠.”
“언니 나는……”
“휴. 스케줄은 빼 뒀으니 간호하다가 돌아 갈 때가 되면 동식이한테 연락 해. 그리고 웬만하면 혼자서 나가지 말고. 스켄들 터져서 좋을 건 하나 없으니까.”
이야기를 정리 한 뒤 소향 일행은 서율이만 남겨 둔 채 병실을 빠져나갔다.
쾌유하세요. 몸조리 잘 하세요. 나가면서 한 마디 씩 해 주는 게 꽤나 고맙다. 쉰 목소리로 답을 해 주고는 몸을 푹 묻었다.
“깨어나셨군요.”
그리고 조금 지나자 인자한 인상의 남자가 들어왔다.
나를 담당하는 의사인가보다.
몸이 어떻고, 신경이 어떻고.
길고 긴 주문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
설명을 끝낸 의사가 나가고 방 안에 나와 서율이만 남게 됐다.
추가 검사와 사후 상황을 봐야하기 때문에 적어도 며칠은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한다. 마뜩치 않지만 걱정하는 사람들 때문이라도 어쩔 수 없다.
그러다 한 가지가 떠올라 서율이한테 물었다.
“혹시 미소한테 연락 안 왔니?”
“아……! 아까 전화 왔었는데, 경황이 없어서 잊고 있었네요. 지금 오라고 할게요.”
“아니다, 하지 마. 괜히 입원한 거 알면 걱정한다. 그냥 일 때문에 조금 늦는다고 하지 뭐.”
“에이, 삼촌. 그건 아니죠. 나중에 입원했던 거 알면 미소가 얼마나 서운하겠어요? 걱정하는 것도 자식의 권리라고요. 곁에 있을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래도……라고 말을 하려 했지만, 또랑또랑한 서율이의 눈을 보자 내가 틀린 건가 싶었다. 하긴, 미소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을 때 얼마나 갑갑했는가. 아픈 것도 아프다 말 할 수 있는 사이가 좋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에게 전화를 걸었다.
[벼, 병원이요!?]
입원했다는 말에 그녀는 기겁을 했다.
하지만 별 거 아니고, 좀 쉬면 괜찮아 질 거라는 말에 그나마 안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걱정시키는 게 싫다고 생각했지만, 또 막상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게 기뻤다. 참 모순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주소를 알려주고 통화를 끝냈다.
“잘 했어요.”
“하하. 나보다 네가 낫구나.”
“피. 그런 말 할 기운 있으면 아프지나 마세요. 갑자기 쓰러져서 얼마나 걱정 했는지 아세요?”
“그러고 보니 제대로 못 물었네.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됐다기보다, 저도 나와서 발견 한 게 전부에요. 게이트 연결을 끝내고 부축을 받아서 보는데 삼촌이 쓰러져 있잖아요. 입에는 거품 물고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얼마나 무서웠는데요……”
늘어지는 눈매를 보자, 괜히 미안해졌다.
바로 옆에서 지켜봤을 테니 그녀 말마따나 많이 무서웠을 것이다. 이불보를 꼭 쥔 채 부르르 떠는 그녀의 어깨를 살며시 두드려 주었다.
“그러니까 이제는 아프기 없기에요. 알았죠?”
“내가, 너 무서워서라도 아프지 말아야겠구나.”
작게 농을 던지자, 그녀가 베시시 웃어왔다.
눈물에 화장이 번져 있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괜히 심장이 뛰고 몸에서 열이 났다. 조카뻘 아이를 보고 무슨 짓인가 싶지만 신체적 현상이니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뭐 어차피 쓸 수도 없는 몸.
그냥 이러다 말겠지.
“……”
아니, 이러다 말아야 정상이다.
그런데 아래쪽에서 슬금슬금 올라오는 기운은 대체 뭐란 말인가? 후끈 도는 열기와 함께 뻐근해지는 아래 춤. 추억마냥 기억나는 마지막 경험을 비추어 생각해 보면 이건 분명 남자의 성적 반응이다. 보통 사람에게는 아주 당연한. 그리고 내게는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바로 그 반응.
“삼촌, 어디 불편해요? 얼굴이 빨개요?”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목이 좀 쓰린데, 물 좀 주겠니?”
“물이요? 잠시 만요.”
개인실이라 냉장고가 따로 붙어 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쪽으로 이동했다. 그 틈에 냉큼 이불을 들춰서 아래를 확인했다. 설악산 대청봉마냥 우뚝 서 있는 상징을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었다. 어찌 반응 할지 몰라 마른 침만 꼴깍 삼키고, 냉장고 문 여는 소리에 황급히 이불을 다시 덮었다. 그리고 재빠르게 애국가를 속으로 제창했다.
“여기요.”
“고, 고맙구나.”
그 노력이 성공한 건지 대청봉은 호남평야가 돼 있었다.
목이 타 벌컥벌컥 마셨다. 튕겨 나와 고통에 휘말린 것도 모자라 몸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단순히 쿤의 영향으로 변화가 촉진 된 거라면 이미 옛적에 나타났어야 한다. 공물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연결이 끊기고, 이런 변화가 나타났다는 것은 어떤 연관관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오버히트 됐다든지……
쿤과 나는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이는 백퍼센트 그대로 전해지는 게 아니다. 쿤의 능력과 스텟을 공유하면서도 동일한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는 것으로 이미 증명을 했었다. 둘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보정치. 혹은 제어장치. 각각을 나누어 주는 무언가가 존재했음이 분명하다.
그것이 인고의 시간이 터지면서 오버히트 된 것.
아직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갑자기 연결이 끊긴 것이나 신체적 변화를 보면 납득이 되는 가정이다.
“끄응.”
일단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다.
남자가 돼서 물건이 튼실하게 작동한다는 것은 일종의 자존심 문제. 쓸 곳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남과 같아졌다는 사실 만으로 뭔가 허리가 쭉 서는 그런 기쁨이 있다. 상황만 이렇지 않았어도 아마 혼자서 바닥을 구르며 웃지 않았을까?
다만 몇 가지 걱정은 남아 있다.
갑자기 연결이 끊긴 것에 부작용은 없는 걸까? 서버 폭주로 접속 제한이 걸리는 온라인 게임이 있듯이, 쿤과 내 관계에도 이상이 생겼을 수 있다.
다른 것은 접근에 대한 문제.
게이트 근처에 앉아 있다가 발작을 일으켰는데, 또 다시 가서 일 보겠다고 하면 과연 들어 줄까 걱정이었다. 신체적 문제가 없다지만, 심리적인 게 더 무서운 법이다. 트라우마를 야기 시킨 게 어떤 건지도 모르는 판에 내가 소향이라면 함부로 그 자리에 다시 앉히지 않을 것이다.
안정적으로 게이트 접근을 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다.
“코오……”
“응?”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낮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삐걱거리며 고개를 돌리자 서율이가 침대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들어 있었다. 물마시고 잠시 생각하는 사이에 잠든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그녀는 이제 막 게이트에서 돌아온 상황이다.
탈력감이 대단 할 텐데 병원까지 와서 이리 남아있으니 피곤하지 않을 수 없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마음이 조금 복잡했다.
위잉……
반지의 마법을 사용해서 그녀의 피로를 풀어 주었다.
기분이 좋은지 잠시 몸을 뒤척이다 미소를 만들었다.
“잘 자렴.”
생각은 일단 그곳에서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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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지나고 퇴원을 했다.
정밀검사 결과 신체에 이상은 없었다. 나이보다 훨씬 젊은. 아니, 20대의 그것보다도 훨씬 생생한 몸뚱이에 의사들이 다들 놀라워했다. 적절한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하라고 충고를 건네 준 뒤 나올 수 있었다.
미소의 잔소리를 듣고, 소향과 회사 식구들의 격려를 받았다.
다들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다가와 게이트 업무에서 손 떼라는 소향의 말은 내 걱정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라 마뜩치 않았다. 접근의 용이함이 아니었다면 굳이 이 일에 매달려 있을 필요가 없다.
트라우마를 피해서는 안 된다.
심리치료를 병행하면서 이겨내겠다. 나에게도 필요 한 일이다. 소향을 잡고 줄창 설득 한 끝에 간신히 유예를 받아 낼 수 있었다. 아마 화술 경험치가 적지 않게 쌓였을 것이다.
일단 걱정 하나는 덜었다.
“미치겠네……”
하지만 전부가 끝난 건 아니었다.
쿤에게서 튕겨 나온 다음 날 부터 느껴지는 생경한 감각들. 마치 젊었을 적 피 끓던 때로 돌아 간 거 같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티비에서 짧은 치마 입은 연예인이라도 나올라치면 몸이 즉시 반응했다. 나이 먹고 그래 본 경험이 거의 없어 처리하기 어려웠다. 야동 잡고 해소하기에는 미소가 있어서 곤란했다.
물론, 생리적인 부분에서만 변화가 온 것은 아니었다.
체력, 근력, 민첩성. 전반적인 신체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체육관 관장이 진지하게 입문 해 볼 생각이 없냐고 물을 지경이었다. 쿤과 나 사이의 장벽이 무너진 것 때문이다. 일정 비율로 전해지던 영향력이 증가했다고 보면 편하다.
벤치 프레스 150kg을 거뜬하게 들어 올리고 개인적으로 잰 것에 의하면 100미터를 10초대에 주파 할 수 있다. 내 나이에서 나올 수 있는 능력이라 보기 어렵다. 그것뿐인가? 피부가 탱탱해지고 주름이 펴지고 있다. 얼핏 보면 20대 후반이라 생각 할 정도의 외모가 되었다. 오죽했으면 미소가 성형수술 한 게 아니냐며 물어왔을 정도다.
좋지 않냐고? 물론 좋다.
하지만 급격한 변화는 항상 부작용을 가지고 오는 법이다. 세상에 오직 플러스만 존재하는 일은 없다. 양이 있으면 음이 있는 법. 긍정적인 효과 뒤에는 부정적인 효과가 따라온다.
“게이트 금지령!?”
어쩌면 이렇게.
갑자기 걸려온 전화 한 통에는 소향의 울분 섞인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나는 한 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작가의 말
* 고자탈출.
* 아픔은 강해지기 위한 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