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엥카가 내 온 음식들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갓 잡아 구운 사슴 뒷다리 요리와, 향신료를 넣어 끓인 스튜. 뒷산에서 따 온 풀 등을 새콤한 소스로 버무린 샐러드까지 곁들여 나왔다. 왕년에 요리 좀 했다며 껄껄거리는 얼굴이 그리 못미더워 보이지 않았다.
루루와 라라도 입맛에 맞는지 잘 먹었다.
여정이 진행되는 중간중간, 육포나 간이식량에 불편한 모습을 보이곤 했으니 다행이었다. 배부르다며 툭툭 치는 루루의 모습에 슈엥카가 또 한 번 웃었다.
식사 내내 둘은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는데, 쿤은 안식절이라는 말로 둘러댔다. 안식절은 가까운 지인이 죽었을 때 기리는 시기를 의미한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행하는 방법은 다 다르지만, 얼굴을 가리는 방식이 제일 흔했다.
슈엥카는 돌덩이 같은 얼굴에 근심 잔뜩 얹고는 라라와 루루를 걱정해 주었다.
그리고는 들어가 먹으라며 발효시켜 둔 빵까지 내어 주었다. 잘 다독이라며 쿤에게 조언까지 아끼지 모습이 누가 보면 몇 년은 알아 온 사람 같았다.
“잘 먹었습니다, 슈엥카 씨.”
“잘 먹었어요!!”
후식으로 허브 차까지 한 잔씩 마시고 난 뒤, 늦은 시간에 일행은 집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괜찮다는데, 슈엥카가 입구까지 나와서는 가는 길을 살펴 주었다. 라라와 루루가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했고 쿤도 웃음으로 호의에 응대를 해 주었다.
“하하하. 시끌시끌하게 밥 먹으니 나도 기분이 좋았수다. 언제 가는지 모르겠지만, 그 전에 한 번 더 들러주시게나. 내 이번에는 힘 좀 써서 근사하게 한 상 차려 주겠소.”
“진짜요?”
“얘, 그렇다고 냉큼 받으면 어떻게 하니?”
“파하! 냉큼 받으면 좋지 뭘 그러오? 맛있게 먹고 가는 길에 걸린 가죽 두어 장 정도 사주면 더 좋고. 하하하하!”
“에이~본심은 그거였어요?”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겠수?”
껄껄 웃는 슈엥카의 모습에 루루도 입을 희게 벌리고 마주 웃었다.
친근한 그가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다. 나름대로 긴장하고 왔을 테니, 이럴 때 풀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쿤은 한 걸음 떨어진 위치에서 팔짱을 낀 채 지켜만 봤다.
쿵쿵.
그때, 낯선 울림과 함께 한 사람이 일행 쪽으로 빠르게 달려왔다.
걸음이 얼마나 날래던지 쿤이 미처 경계를 하기도 전에 도착해 있었다. 속으로 아차 싶었다. 마을 분위기에 너무 풀어져 있던 것이다. 만약 그가 적대적인 인물이었다면 첫 공격조차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행인 점이라면 그가 적이 아니라는 것.
비렁뱅이 같은 꼴을 한 채 슈엥카의 바짓단을 잡으며 늘어졌다.
“도, 도와주게!!”
“세이혼? 갑자기 무슨 일인가?”
“란! 란이가 아프다네! 열이 너무 심해서 눈도 못 뜨고 있어! 도와주게나, 제발!”
“아프다고? 그런 거면 내가 아니라 젠……아아! 그 인간은 항구로 향했지. 이런!”
무언가 긴박해 보이는 상황이다.
쿤이 라라와 루루의 앞으로 가, 둘을 등 뒤로 가린 채 상황을 살폈다. 아픈 딸을 둔 남자가 마을 사람에게 도와 달라 말 하는 그럴 법 한 그림.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하기에는 앞서 보였던 세이혼의 움직임이 너무나 독특하다.
‘그런 속도는 단장 급에서도 흔치 않은데……’
이런 촌구석. 하필 쫓기고 있을 때.
아무래도 그냥 믿기는 곤란한 부분이 있었다. 뭔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루루를 뒤로 계속 밀어냈다.
“내가 부탁 할 수 있는 건 자네밖에 없네! 제발! 제발 좀 도와주게!!”
“아, 이거 참……아! 혹시 여러분 중에는 약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습니까?”
“음. 아쉽게도 그런 건 없습니다.”
“있잖아요, 그거! 신……”
부정하는 쿤을 보며 루루가 크게 외치다 자기 입을 턱하니 막았다.
신성력. 그녀가 하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걸 떠벌려도 될까? 쫒기는 입장이라는 걸 떠올리자 깜짝 놀라서 입을 막은 것이다.
다만, 조금 늦은 감이 있다. 다급한 사람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슈엥카를 붙잡고 있던 세이혼이 이번에는 쿤 앞으로 와서는 다급히 외쳤다.
“도와주십시오! 딸아이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으음……”
쿤이 미간을 좁혔다.
딱 잘라 거절을 하려 했는데, 왠지 모르게 가슴 한 구석이 저려왔다. 얄팍한 동정심 때문에?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았다면 이미 죽어서 시체가 됐을 것이다. 이건 조금 더 깊고 무거운 감정이었다. 세이혼이 말 한 딸아이라는 단어에서 전해지는……
“제발……! 제발 부탁입니다! 그 아이가 죽어버리면 저는 살아 갈 수가 없습니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세이혼이 머리를 바닥에 쿵쿵 찍었다.
금세 피가 배어 나왔다. 슈엥카가 ‘아니, 지금 뭐하는 짓인가!?’라며 말려 보았지만 얼마나 힘이 억센지 사냥꾼인 그가 그냥 밀려났다.
그리고는 다시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안 말리고 두면 그대로 머리통에 쪼개져서 죽을 판이었다.
“베, 벨포드 씨……!”
“그냥 두고만 볼 거예요?”
뒤에서 두 소녀가 다급하게 물어왔다.
쿤이 혀를 찼다. 이건 분명 자신과 안 맞는 일이다. 남 일에 끼어서 피해보는 것은 정말로 싫어하는 일. 하지만 가슴에서 느껴지는 무거운 감정도, 속삭이는 두 소녀의 목소리도. 바닥에 머리를 찧는 세이혼의 절절한 눈빛도. 하나같이 말 하고 있다.
‘도와주어라.’
잘 짜여 진 연극의 한 장면과 같다.
입술을 잘끈 씹으며 생각했다. 도와주었을 때 생기는 일과, 그렇지 않았을 때의 일. 상대의 수상쩍은 신분은 둘째 치고라도 괜한 일로 주의를 끌어서 좋을 것은 없다.
하지만 그때, 한 가지. 쿤의 머리를 스치고 가는 생각이 있었다.
‘잠깐만. 우연이 아니라면?’
개인적 판단은 둘째 치고 그 자신은 서 준경이라는 신의 사도다. 그리고 신의 사도라면 모름지기 그 말을 밖으로 전하고 뜻에 맞는 일을 행함이 기본이 된다. 만약, 세이혼과의 만남이 그런 일의 연장선이라면? 단순한 기호로 무시하는 건 옳지 않다.
신의 말을 전함에 있어서 운명적 조우는 신화의 한 페이지와 같다.
만약 잊힌 신이 부활을 함에 있어 그 행보를 기록하고자 하는 거라면 특별한 만남이 앞길에 놓여있다고 해서 이상하지 않다는 말이다.
슥. 잠시 생각하던 쿤이 한 쪽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춘 뒤, 세이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안내하시죠. 도움이 될 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살펴는 보겠습니다.”
“아, 아아……!”
아마, 이렇게 하면 되는 거겠지.
쿤이 경건한 몸짓으로 세이혼을 일으켜 세웠다.
#
세이혼을 따라 도착한 곳은 앞서 살폈던 내천 건너에 덩그러니 있던 바로 그 집이었다. 참 묘하다 싶을 정도로 맞아 떨어지는 구석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오래된 커튼으로 바람을 막아 둔 방이 하나 나왔다. 가운데에는 낡은 침대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그 위로 병약한 안색의 소녀 한명이 보였다. 열 살 남짓한 얼굴. 솜이 다 빠져나온 이불을 덮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 아까부터 이 상태입니다. 불러도 정신을 못 차리고, 어찌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본래부터 지병이 있었나요?”
“흑열병을 앓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는 한 번도 발작을 한 적이 없었는데……”
“흑열병이라니.”
“위험한 병이에요?”
나지막하게 묻는 라라에게 쿤이 고개를 끄덕였다.
흑열병은 검은 물이 뜨거운 열기와 함께 몸 밖으로 배출된다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병이다. 워낙 경우가 희귀하고 세간에 알려진 바가 없어 들어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쿤은 오래된 동료 중 하나가 이 병으로 죽은 일이 있어서 알고 있던 것뿐이다.
‘전염성은 없지만……’
문제는 이 흑열병이 난치병이라는 것이다.
약학으로는 병세를 늦출 수만 있고, 고위 신관의 세례만이 이를 완치 시킬 수 있다. 하지만 고위 신관은 쉬이 모습을 보이지도, 함부로 성력을 사용하지도 않는다. 척 봐도 없어 보이는 부녀가 그런 기적을 바라기는 무리였다.
‘그보다 조금 이상하군.’
쿤이 란의 이마에 손을 올리고 열을 쟀다.
세이혼의 말 대로 굉장한 고열이었다. 정상체온은 이미 아득하게 넘어서 있었다. 이대로 그냥 두면 소녀가 절명하는 건 정말로 시간 문제였다. 다만, 단순히 흑열병이라 보기에는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그가 아는 바에 의하면 흑열병은 체내의 수분이 검게 물들어 밖으로 빠져 나오며 천천히 죽어가는 병. 그 과정에서 체온이 조금 오르기는 하나 지금처럼 극심한 수준에 이르지는 않는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소녀의 몸 어디에서도 검은 물은 볼 수가 없다.
“이렇게 되기 전에 뭔가 먹은 게 있습니까?”
“펴, 평소와 거의 같았습니다.”
“조금이라도 다른 게 없었습니까? 아주 작은 거라도 상관없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뒷산에서 땄다며 나팔 모양의 꽃잎을 입에 물고 있었습니다.”
“아이쿠! 도플라시오 잎이군!!”
경탄성이 튀어나온 건 슈엥카의 입에서였다.
그는 안타까운 얼굴로 무릎을 두드렸다.
“도플라시오? 어떤 식물입니까?”
“산사람 아니면 잘 모를 겁니다. 예쁘게 생긴 잎사귀와는 다르게 몸에서 열을 내게 하는 특징이 있어, 체력이 허한 남자들이 찾는 물건인데 그걸……”
“발열 효과가 있는 잎……흑열병으로 약해진 몸이라 그 조차 견디지 못한 거군요.”
“아, 아아! 내가 확인을 했어야 하는데!! 내가 멍청해서!!”
세이혼이 절규하며 바닥을 두드렸다.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작고 예쁜 잎 하나가 이런 사태를 불러 올 거라 어찌 알았겠는가. 루루와 라라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흑열병이라면 불가능 하겠지만, 단순히 발열의 문제라면……’
‘하급 질병 치유’가 있다. 도플라시오 잎에 의한 발열을 질병으로 판단해 주는지, 그리고 그 축복이 과연 란을 치료 할 수 있을지는 불명이다. 하지만 적어도 시도 해 볼 만 한 가능성은 있었다.
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부여잡았다.
타오르는 듯 뜨거웠다.
“서 준경이라는 거룩한 이름으로 비옵니다. 부디 이 가련한 소녀의 짐을 덜어내 주시옵소서.”
그럴듯한 말과 함께, 속으로 하급 질병 치유를 읊조렸다.
예의 50점 소모 알림이 스쳐가고 푸른빛이 그의 손등을 타고 번져나갔다. 신비한 색과 빛이었다. 장내에 모인 이들이 하나같이 감탄 섞인 표정을 지었다. 이적을 지켜보는 일은 그리 흔한 것이 아니었다.
[흑열병 치유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들려온 음성에 쿤이 얼굴을 구겼다.
실패. 하급 질병 치유는 신체의 발열을 무시하고 흑열병을 건드렸다. 그리고 실패했다. 하급이니 난치병인 흑열병을 치료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 한 일. 다만, 신체이상을 무시하고 들어간 것은 예상 밖이었다.
‘질병이 아니라는 겁니까?’
난감했다.
지금 가진 능력 중에는 신체 이상을 회복시킬 만 한 수단이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상처 치유는 말 그대로 상처를 회복시키는 능력 일 터. 발열을 통한 신체 이상을 상처라고 정의하기는 힘들었다.
“아, 안 되는 겁니까? 오……오오! 안 된다. 란아!”
세이혼이 굵은 눈물을 죽죽 뽑아냈다.
쿤의 가슴에서 짜증이 확 하고 올라왔다. 실패해서 그런 건지, 다 큰 남자가 질질 짜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다.
“아……! 벨포드 씨, 저번에 저희한테 해 주었던 거요. 신관으로 만들어서 축복을 내리면 되지 않을까요? 몸이 상쾌하게 됐으니 열도 내려 갈 거 같은데요.”
그때, 라라가 손뼉을 크게 치며 말을 붙여왔다.
신관. 분명 신관이 되면 개별적인 축복을 내릴 수 있다. 두 소녀의 상태를 회복시켜 준 경우가 있으니 이번에도 열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
다만, 한 가지……
“신관이 되려면 적어도 의식이 있어야 한다. 아무렇게나 신관의 위를 내려 줄 수는 없어.”
“그……럼, 혹시 여기 티말레 잎이나 베이레 잎 있나요?”
“티말레? 아! 해열제를 만들려는 거군요!”
라라의 말에 슈엥카가 반응했다.
그리고는 가타부타 말없이 방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해열제를 만들 수 있는 거였냐? 그런 거면 왜 진작 말을 안 했어?”
“아, 정확하게는 해열제가 아니에요. 머리를 맑게 해서 정신을 일깨워 주는. 일종의 각성제라 보는 게 맞아요. 일시적이라 이 아이한테 쓰기는 오히려 안 좋죠. 하지만 신관의 위를 받기에는 충분 할 거 같아요.”
“그런가? 의외로군, 네가 그런 걸 알고 있다니.”
“넓은 곳에서 할 일이 딱히 없었거든요. 귀동냥으로 배워봤어요.”
상황에 맞는 조합을 찾는 것이 귀동냥으로 될까 싶지만, 어쨌든 지금 상황에서는 다행이었다. 잠시 기다리자 나갔던 슈엥카가 돌아왔다. 쟁여 둔 약초인지 두 뿌리를 건넸다. 라라가 받아 들어 잠시 살피더니 작은 쪽을 들어서는 죽죽 찢기 시작했다.
“끓인 물을 좀 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눈물을 죽죽 뽑아내던 세이혼이 어느새 일어나 물을 끓이고 있었다.
눈물은 많지만 그래도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라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끓는 물 위에 찢은 약초를 넣었다. 그리고는 나무 막대기로 천천히 저었다. 색이 점차 연녹색이 되어가고, 톡 쏘는 냄새가 날 즈음 이파리를 꺼냈다. 약이라기보다는 이끼와 흡사했다.
“이걸 먹이면 되는 건가?”
“아뇨, 잠시 만요. 식혀서 굳힌 다음에 미지근한 물과 함께 먹여야 흡수가 빨라요.”
“오! 제대로 알고 있군요.”
슈엥카의 때 아닌 칭찬에 그녀가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조금 지나자 놋쇠그릇 주변으로 녹색 진액이 엉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를 나무 막대기로 하나씩 걷어냈다. 대충 손가락 마디 정도. 동그랗게 굴리니 먹을 만 한 환이 하나 만들어졌다.
“길지 않을 거예요. 깨어나면 바로 해 주세요.”
“아아. 세이혼 씨. 이쪽으로 와서 따님이 깨어나면 당황하지 않게 잘 다독여 주세요. 신관의 위를 내리면 그걸 받아들일 수 있게요.”
“그렇게 하면 나을 수 있는 겁니까!?”
“확신은 하지 못하지만……적어도 시도 해 볼만은 할 겁니다.”
지금 상황에서 그게 어디인가.
그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쿤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럼 먹일게요.”
라라가 신호를 보낸 뒤 란의 입을 벌려 환을 천천히 밀어 넣었다.
그리고 미지근한 물을 천천히 그 위로 부었다. 고열에 끙끙거리던 란이 입 안에 들어온 이물질에 반사적으로 밀어냈다. 하지만 코를 막고 목 언저리를 살살 쓰다듬자 어어 하는 사이에 환이 스르륵 넘어갔다.
“……콜록, 콜록! 아, 아빠?”
그렇게 조금 지나자 란이 힘겹게 눈꺼풀을 밀어냈다.
부친인 세이혼을 먼저 발견하고, 주변에 앉은 쿤 등을 한 박자 늦게 알아챘다. 살짝 몸을 떨며 긴장하는 기색을 보였다.
세이혼이 냉큼 손을 잡으며 다독였다.
“란아, 잘 들으렴. 지금부터 이 분이 네게 세례를 내릴 거야. 그럼 너는 그걸 받아들이면 돼.”
“세, 세례요?”
“응. 지금 네 몸이 조금 아프단다. 이 분이 하라는 대로 따라서 하면 나을 수 있어. 그러니 당황하지 말고. 알았지, 우리 딸?”
“네……”
평소에도 고분고분한 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순순히 응하는 모습이 지금은 기껍다. 쿤이 고개를 끄덕여 세이혼에게 신호를 준 뒤, 그가 잡고 있던 손을 대신 이어받았다. 그리고 ‘하급 신관의 축복’을 사용했다.
푸른빛이 새어나와 주변을 잠시 맴돌다 란의 손등 위로 모여들었다.
“서 준경 신님을 모시는 신관이 되겠다. 그렇게 말 하렴.”
“서, 서 준경 신님을 모시는 신관이 되겠습니다.”
란이 눈을 깜빡이며 쿤의 말을 따라했다.
그러자 손등에 맺혀있던 빛이 천천히 스며들며 문양을 그려냈다. ‘아……’ 그녀가 이를 보며 탄성을 흘렸다.
“되, 된 겁니까?”
“아직 아닙니다.”
다급히 묻는 세이혼을 진정시킨 뒤 쿤이 상태창을 살폈다.
일전과 마찬가지로 란의 이름이 창 하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제대로 먹힌 것이다. 망설임 없이 ‘하급 축복’을 개방했다. 푸른빛이 은은하게 흘러나와 란의 몸을 적셨다.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빛이 꽤나 오랫동안 그 위를 맴돌았다.
‘되나? 되나!?’
쿤이 초조한 눈빛으로 란을 바라봤다.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던 본래의 모습 대신 딸을 보는 아비의 눈빛이 그곳에 있었다. 주먹을 꼭 쥔 채 그녀의 변화를 주시했다. 그리고 얼마 안지나 빛이 잠잠해지고 소리가 멈췄다.
장내의 모두가 란의 얼굴만을 응시했다.
“아빠……”
천천히 그녀의 입이 열렸다.
귀가 쫑긋쫑긋.
“배고파요.”
어헝헝. 세이혼이 짐승처럼 울면서 그녀를 껴안았다.
※작가의 말
* 재밌게 보고 가세용.
* 즐거운 주말의 시작...인가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