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47화 (47/240)

마을을 벗어나 한적한 곳에 도착했을 때, 쿤은 마차를 세웠다.

황급히 짚을 덜어내고 막아 둔 나무를 뜯어냈다.

하얗게 질린 라라와 루루를 확인 할 수 있었다.

“흐아아앙!!”

겁에 질린 루루가 냉큼 뛰어 안겨 들었다.

쿤이 허리를 잡아 다독이며 그녀와 라라의 상태를 살폈다. 창을 맞은 흔적은 없었다. 안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길게 파인 흔적과 밀알이 조금 보였다. 정확하게 두 소녀의 사이. 이건 천운이라고 밖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신의 보살핌인가? 사정이 나아지면 제대로 공물을 바쳐 인사를 드려야겠군.’

걸렸다면 뒤는 상상하기도 싫다.

쿤이 서 준경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보낸 뒤 마차를 다시 손보기 시작했다. 마을을 벗어난 이상 계속 숨어있을 필요는 없다. 짐짝도 아니고 좁은 공간에서 계속 버티기도 힘들다. 단을 하나 더 내어 의자처럼 만든 뒤 둘을 앉혔다. 짚단을 깔고 미리 구해 둔 모포를 덮으니 그럭저럭 앉아 갈 만 한 형태는 되었다.

“숲길을 타고 반나절을 더 간 뒤 오블락 마을 쪽으로 빠질 예정이다. 공화국의 수도로 가는 길을 생각해 봤는데, 대로로 달리는 것은 아무리 봐도 위험해. 작은 마을을 타며 가도로 이동하는 것이 낫겠어.”

“저희는 잘 모르니 벨포드 씨가 잘 인도해 주세요.”

“그렇게 가면 며칠이나 걸려요?”

“며칠이 아니다. 짧게 잡으면 한 달. 어쩌면 그 배도 걸릴 수 있지.”

두 소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공화국 내 주요 도시를 잇는 교통편이 있는 건 안다. 하지만 이미 내부까지 적의 손길이 닿아 있음을 아는 이상 사용하기 어렵다. 최대한 인적이 드문 곳으로 소리 없이 움직여야 한다.

한 달도 별 탈이 없을 때를 가정한 것이다.

만약 중간에 적과 조우라도 한다면 그 기간은 얼마든지 길어 질 수 있다.

“쉽지 않겠군요.”

“아아. 그나마 다행인 건 배에서 도망 칠 때 패물을 잘 챙겨 왔다는 것 정도인데……”

쿤이 주머니를 손으로 튕겨 봤다.

금화가 꽤 많이 들어 있다. 필요하다면 건물이라도 한 두 채 정도는 거뜬하게 살 만 한 금액이다. 하지만 상황이 흘러가는 추세로 볼 때 이를 사용 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제국의 금화는 그 자체만으로 희귀한 물건이다. 상대가 머리 있는 자들이라면 이를 추격의 단서로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조금 큰 마을로 나가면 장물을 취급하는 곳이 있지 않을까요?”

“음. 하지만 그래도 제국 금화는 너무 눈에 띄어. 차라리 기회를 봐서 녹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아……그렇게 사용 할 수도 있군요.”

“가끔 그렇게 하곤 했다. 우리야 동화를 녹여서 화살촉으로 쓰던 정도지만.”

금화가 가진 가치보다 녹인 금조각의 가치가 더 떨어진다.

하지만 당장 교환 할 방법이 없는 이상에야 그것이 최선이다. 한 달이 넘는 여정에는 돈도 만만치 않게 든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가야 하는 여정이라면 더더욱.

“일단 잡담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마을을 벗어났다지만 언제 또 추격대가 올지 모르는 일이니까.”

“후드는 계속 쓰고 있어야 해요?”

“답답해도 참아라. 너희 둘의 외모는 너무 눈에 띄어. 최대한 가리는 게 좋겠지.”

“으우. 알았어요.”

루루가 입을 비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라라는 답이 없다. 쿤이 무슨 일인가 싶어 그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라라?”

“네, 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하는 거냐?”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루루야 빨리 타자.”

“……”

이미 마차 안에 타 있으면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쿤이 잠시 이상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다 마부석으로 향했다. 걱정 때문에 머리가 복잡한 것이라 여겼다.

다그닥.

이내,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

일행이 향하는 오블락은 자기엘카 항구를 빠져나와 나스리 지방의 경계에 위치한 작은 수렵 마을이다. 호수도 채 백이 안 되고 짐승의 고기나 가죽 등을 자기엘카로 내다 팔며 연명하는 사냥꾼들이 대부분인 지역이다. 싸구려 지도에는 표시도 안 되고, 가는 길이 험해서 목적이 없으면 잘 찾지 않는다.

그런 만큼 사람의 눈을 피해서 움직이기에는 좋은 곳이라 할 수 있다.

“괜찮군.”

덜그럭거리는 마부석 위에서 쿤이 중얼거렸다.

항구에서 산 오래된 지도에는 오블락을 꼭 가 봐야 할 마을이라 표시해 두었었다. 설명인 즉슨, 산지에서 내오는 가죽이 인근 출 납품 중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는 것. 본래 용도는 상인들을 위한 지침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쿤은 이를 보고 행선지를 결정지었다.

“여기가 목적지에요?”

뒤편에서 루루가 고개를 불쑥 내민 채 물었다.

마차만 타고 벌서 이틀째니 지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밥도 불을 쓰지 않은 채 최소한으로 해결했고, 용변 볼 때나 겨우 내려서 공기를 만끽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한창때인 그녀가 모두 수용하고 지내기는 버거웠다.

“하루를 쉬고, 출발 할 예정이다. 지도에 나온 길이 있지만, 아무래도 현지 사람에게 묻는 게 낫겠지.”

“엑. 그럼 또 올라올 때 처럼 산길로 가는 거예요?”

“엉덩이가 아파도 어쩔 수 없어. 닦인 곳으로 가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우……”

“루루야, 벨포드 씨 말 들어야지.”

토라진 루루를 라라가 다독였다.

오면서 계속 이런 패턴이다. 간혹 루루가 투정을 부릴 때면 그녀가 어르고 달랬다. 쿤의 입장에서는 다행이었다. 어린애 투정까지 전부 다 받아주다가는 아무리 그라도 지쳐서 나가 떨어졌을 테니까.

“오, 여행자이신가?”

그때, 마을 어귀에서 머리가 희끗한 남자가 나타났다.

얼굴만 보면 쉰은 족히 넘어 보였는데 몸은 청년 못지않았다. 등 뒤로 커다란 곡궁을 맨 채 느긋한 걸음으로 일행에게 다가왔다.

쿤이 마차를 세운 채 남자를 경계했다.

“하하. 경계하실 것 없습니다. 마을의 대표를 맡고 있는 슈엥카라 하외다.”

“테엔인 겁니까?”

“이 작은 마을에 무슨 테엔입니까? 그냥 마을사람들끼리 모여서 자질구레한 일 떠맡을 사람 하나 정한 것뿐이죠. 자기엘카에서 오는 길입니까?”

“아, 네. 이곳 가죽이 좋다 해서 들러 봤습니다.”

특산품이 좋다 해 주니, 슈엥카가 크게 웃었다.

불이라도 집어 삼킨 듯 목소리가 아주 우렁찼다.

“이쪽으로 오시죠.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테엔은 공화국의 지위 중 하나로 작은 마을의 대표를 의미한다. 비록, 그가 정식 선출자는 아니라 해도 하는 행동을 보면 묵인 하에 그런 대접을 받는 듯하다. 그렇다면 마을뿐만이 아니라 주변 정세에도 눈이 밝을 터.

친분을 가져서 나쁠 건 없었다.

슈엥카의 안내를 받아 마을 안쪽으로 들어왔다.

이방인이 흔하지는 않은 듯 일 하던 사람들이 한 번 씩은 고개를 돌려 일행을 바라봤다. 전형적인 촌사람들. 딱히 눈에 띄는 건 없었다. 사냥과 수렵을 주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라 다들 몸이 건장하다는 것 정도가 특이사항이라면 특이사항.

마을 회관에 도착해 짐을 풀었을 때는 쿤도 어느 정도 마음을 놓고 있었다.

“하하하. 오늘은 여기서 쉬면 될 겁니다.”

“비용은 어찌……?”

“크하, 거 무슨 소리를. 이런 마을에 외부인이 오는 게 뭐 그리 많다고. 그냥 푹 쉬다가 돌아가서 좋은 곳 들렸다 말 한 마디만 해 주면 됩니다. 가죽 몇 장 사서 돌아가면 더 좋고. 하하하.”

그것도 그렇다.

쿤이 마주 웃어 준 뒤, 라라와 루루를 이끌고 회관 안쪽으로 향했다.

정말로 방문객이 적은 듯 사람의 흔적이 오랫동안 안 닿은 티가 역력했다. 슈엥카가 조금 민망한 표정으로 이를 슥슥 닦아냈다. 손바닥에 묻은 먼지가 꽤나 두터웠다.

“이거 원. 매일같이 청소하라 달달 볶는데도 말을 안 들어먹는구먼.”

멋쩍어 하는 그의 얼굴에 라라와 루루가 킥킥 거리며 웃었다.

곰 같은 사람이 민망해 하는 꼴은 보기에 제법 재미났다.

좋은 분위기. 그대로 품에 안은 채 방으로 향했다.

“출출하면 있다 내려오시죠. 마을 안에는 딱히 음식점이 없어서 돈 내고 사먹기가 어려울 겁니다. 밖에 있던 큰 오크 나무 뒤편이 내 집이외다.”

“음.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하하. 신세는 무슨. 아들놈 도시로 나가 적적했던 터이니, 손님이 오면 북적거려서 좋지. 그럼, 너무 늦지 않게 오시게나.”

말투도 조금 편해졌다.

그가 너털웃음을 짓고는 일행을 두고 건물 밖으로 빠져나갔다.

“좋은 사람 같아요!”

루루가 불쑥 말 했다.

그리고는 답답했는지 후드를 벗었다. 옆에 선 라라도 벗을까 말까 고민하는 눈치. 쿤이 여기 서까지 가릴 필요는 없겠다 싶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순박한 거지. 이곳으로 행선지를 잡은 건 잘 한 판단 같다.”

“아빠도 딱 저런 느낌이었는데.”

“응. 그러네. 누굴 닮았나 했는데, 아빠랑 비슷해.”

무신이 저런 인상이라.

쿤이 머릿속으로 한 번 그려 보고는 피식 웃었다. 전장을 호령하는 장군에 너털웃음과 순박한 얼굴을 대니, 조금 우스웠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만나보고 싶군. 그보다 일단 옷부터 갈아입어. 주변에 씻을 만 한 곳이 있는지 알아보고 올 테니까.”

“아, 벨포드 씨! 혹시 마을 안에서는 후드 벗고 있어도 괜찮아요?”

“미안하지만 안 돼. 이곳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두면 차후에 추격의 발판이 될 수도 있어.”

“하, 하지만 후드 쓰고 다니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요?”

“변명거리는 있으니 그런 건 걱정하지 마.”

물러서지 않는 쿤의 답에 루루가 쀼루퉁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걸 안다. 잠시 입을 비죽이다, 알겠다고 답을 한 뒤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갔다. 쿤이 픽 웃고는 라라에게 귓속말로 잘 부탁한다고 전했다. 잠시 멍하니 서 있는 게 의아하기는 하지만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양새를 보니 잘 해 줄 것 같다.

‘그보다 씻을 만 한 곳이 있었으면 좋겠군.’

쿤도 안 씻고 달려온 게 벌서 이틀째다.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갔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

쿤의 바람이 통했는지 마을회관 안쪽에 씻을 만 한 곳이 있었다. 호화롭게 뜨거운 물을 쓰지는 못했지만 묵은 먼지를 벗겨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좋았다. 두 소녀는 쿤의 경계 아래에서 깔깔 거리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꾹 참고 지낸다 해도, 전과 다르게 제때 씻지 못하는 생활이 편할 리 없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풀어주는 것이 필요했다.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난 뒤 쿤은 둘을 둔 채 마을을 둘러보기 위해서 나왔다.

촌마을이고 의심 가는 부분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만약을 대비하는 것이 몸에 배인 습관이었다.

“흐음.”

쭉 도는데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사람 사는 가호를 셈해도 채 스물이 넘지 않았다. 그 중 혼자 사는 집을 고려해서 숫자를 헤아리면 마을 안에 사는 사람은 오십도 되지 않았다. 생각보다도 더 작은 마을이었다.

중간중간 들짐승을 방비한 울타리가 보였지만 딱히 침입을 막기 위한 수단은 없었다. 그만큼 외인에 대한 경계가 없다는 말이었다.

‘이 정도라면 혹시나 다른 이가 왔었다 해도 티가 나겠군.’

정말이지 티끌 같은 걱정조차 지금은 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쿤이 불룩 솟은 돌 위에 엉덩이를 걸친 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항상 긴장하고 주변을 살피는 것은 굉장히 피곤한 일이다. 아무리 익숙하다고 해도 지치지 않을 수 없다. 긴 한숨에는 그러한 피로가 짙게 담겨 있었다.

‘……음?’

그런데, 그때 그의 눈에 조금은 묘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한 곳에 모여 있는 집들 밖으로 동떨어진 건물 하나. 마을 주변으로 흐르는 내천을 경계로 반대편에 위치해 있었다. 처음에는 버려진 건물인가 싶었는데 안쪽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게다가 그림자 역시. 누군가 안쪽에 사는 것이 분명했다.

‘이런 마을에도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건가?’

작은 그룹일수록 배척은 강하다.

하지만 느낀바 분위기는 그런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그냥 거리를 두고 사는 게 좋은 사람일까? 쿤이 한 동안 그 집을 바라봤다.

“……”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지우고는 돌에서 내려왔다.

너무 의심이 많아졌다. 촌마을, 조금 동떨어진 집 한 채 있다고 그것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

엉덩이를 툭툭 털고는 회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배가 출출하다.

둘도 주린 배를 움켜 쥔 채 뒹굴고 있을 터.

조금은 서둘렀다.

※작가의 말

지나가는 마을...일리가 없겠죠.

그보다 감상글, 후원금 모두 감사합니다(__) 공모전이라 모든 게 조심스러워 이렇게 말을 남깁니다.

*어벤져스 2보고 왔습니다. 오와...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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