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은 자신이 올려 둔 공물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즉시 손등을 두드려 창을 살폈다.
추가 된 스킬과 특기가 보이고, 승급을 생각하던 고백도 역시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신성점수는 줄어 있었지만, 늘어난 능력을 보니 아깝지 않았다.
다만, 요리의 경우는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아니지……신께서 이유 없이 이런 특기를 포함시킬 리 없다. 고백과 전투형 스킬. 위압과 요리라. 일련의 이유가 있는 것이 분명해.’
쿤이 턱을 손으로 집은 채 생각에 빠졌다.
지금까지 서 준경 신은 의미 없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작은 일에도 큰 계획이 깃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를 허투루 보고 넘긴다면 큰 횡액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벨포드 씨. 왜요? 뭔가 잘못 됐나요?”
“신께서 뭐라고 하시는데요?”
두 소녀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어왔다.
황녀라는 것을 토로하고 난 뒤 분위기가 무거웠는데, 쿤 까지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다. 불안이 가중되어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음. 위압과 요리라. 두 가지에 무슨 관계가……아!!”
“왜요? 왜요?”
“뭔가 계시가 왔어요!?”
생각을 정리하던 쿤이 손뼉을 치며 놀라자, 냉큼 고개를 들며 물었다.
빽빽 거리는 것이 모이 달라 외치는 병아리들 같았다.
쿤이 손으로 사이를 막고는 심각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의미 같다.”
“그럼 설마……”
“추격자가 근처까지 와 있거나, 어떤 방법으로든 내통자에 연락을 해서 우리를 노리고 있다는 말이겠지.”
전투 능력이 주어졌다는 것은 곧 싸우게 된다는 말과 같다. 게다가 위압과 요리라. 앞선 것은 사람을 다루는 방식이고, 뒤의 것은 노숙에서 필요한 특기다. 즉, 싸움을 겪고 사람을 다루어 외지로 나가게 된다. 지금의 상황에 빗대어 판단해 보자면 누군가 쫒아와 도망치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적어도 쿤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후드를 눌러쓰고 여기서 딱 대기하고 있어. 필요한 것들만 챙겨서 돌아 올 테니까.”
“저, 저희도 같이 가면 안 되나요?”
“일행의 구성이 전해졌다면 무리지어 움직이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다음 행선지까지 필요한 것들만 챙길 테니까, 언제라도 나올 수 있게 준비하고 있어. 그리고 누가 찾아와도 절대로 문을 열어주지 마.”
“알았어요……”
두 소녀는 불안했지만, 더 이상 쿤을 잡지 못했다.
믿고 의지 할 수 있는 건 오직 그 뿐이다.
뒤로 넘겨 두었던 후드를 깊이 눌러 쓰고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
밖으로 나온 쿤은 바삐 걸음을 놀렸다.
앞서 구하지 못했던 간이 식량과 쓸 만 한 무기. 그리고 여벌의 옷과 여정에 필요한 도구들을 빠르게 구매했다. 워낙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라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가 그를 괴롭혔다.
“아 글쎄 지금은 팔수가 없다니까요.”
“웃돈을 얹어 주겠습니다. 급해서 그러니 파시죠.”
“그리 말해도 안 됩니다. 지금 당장 밀린 배달이 몇 개인데, 마차를 팔라는 겁니까? 지금 이 시간이 가장 바쁠 때임을 몰라요?”
바로 마차였다.
고급의 물건을 찾는 것도 아니고 고작 짐마차 하나 구하는데 이렇게 애를 먹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이 항구로 들어온 물건의 공화국 전역으로 퍼지는 시기라 그렇다. 하루에도 수백 대의 마차가 마을을 출입한다. 경쟁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각 상회들은 낡은 마차까지 수리해서 굴린다.
쿤이 인상을 구겼다.
도보로 이동하는 건 무리다. 공화국 지리를 잘 아는 건 아지만, 두 소녀를 대동해서 도보로 이동 할 만큼 가깝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안다. 낡은 짐마차라도 구해서 가야 한다.
‘어쩔 수 없겠군.’
쿤이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뒤 남자 곁으로 바짝 다가갔다.
갑작스러운 접근에 상인은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정말 곤란하게 하는군요. 여기서 몇 년간 장사 했습니까?”
“오, 올해로 7년째 됩니다. 근데 그건 갑자기 왜 묻고 그럽니까?”
“그 정도 일했으면 대충 알아들어야 하는 거 아니요?”
“뭐, 뭘 말입니까?”
쿤이 고개를 사선으로 꺾어 무심한 눈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강렬한, 그리고 뭔가 있어 보이는 그 얼굴에 상인이 바짝 얼며 마른 침을 삼켰다. 그러고 보니 무언가 머리를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호, 혹시 제국에서 오셨습니까?”
“하. 이제야 좀 알아듣는군.”
“아, 아니 그런 분이 어째서 짐마차 같은 것을……?”
“쯧. 일일이 설명을 해야 하나? 귀인을 모시기 위해서는 우리 같은 자들이 먼저 움직여야 하네. 다만, 이번에는 시기가 공교로웠어. 하필이면 이럴 때 물건을 공수해야 하다니……”
일부러 말을 낮추고, 그럴싸한 말을 늘어놓았다.
보아하니 상인은 제국의 유명 인사를 떠올리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쪽 상상에 맞춰서 이야기를 진행하면 그만이다.
“하, 하지만 마차를 내어주면 저도 목이 위험합니다. 아! 그럴게 아니라 차라리 상단주를 만나 보심이……”
“씁. 조용히 하게. 내가 왜 이런 냄새나는 곳까지 와서 직접 마차를 구하는지 이해를 못 한 건가? 눈에 띄어서는 안 돼. 최대한 주변 것들에 섞일 만 한 물건이 필요하지.”
“아, 아. 그렇군요.”
대체 누구를 상상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쿤은 당황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분위기 탓인지 상인은 쉬이 넘어갔다. 고개를 몇 번 주억거리더니 알았다고 답을 하며 보관 중이던 짐마차를 내어주었다.
“고맙네. 자네의 행동은 내 기억하지. 그리고 이것,”
쿤이 은화를 한 줌 쥐어 건네주었다.
마차 값은 충분히 나올 것이다. 상인이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황급히 이를 주머니에 쑤셔 박았다. 그리고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보는 것이 ‘역시 제국의……’따위를 생각하는 모양이다.
쿤이 ‘그래, 그거,’ 라는 의미의 웃음을 보여 준 뒤 마지막 당부를 했다.
“알겠지만, 우리가 만난 건 비밀이네. 혹여나 발설한다면……”
“아, 안합니다! 절대 안 합니다요.”
“그럼 됐네.”
목 언저리로 다가오는 단검에 상인이 기겁을 하며 약속을 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쿤이 그대로 몸을 돌렸다.
필요한 것들은 모두 구했다.
#
쿤은 마차를 여관 옆에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들어가려고 했다. 문을 밀려는 순간 안쪽의 목소리가 그의 발을 잡아챘기 때문이다.
“남자 하나에 여자 둘이라고? 분명한 거겠지?”
“아, 그럼요. 제가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제국 동화까지 척 내밀면서 들어왔다니까요.”
“흐음.”
“어떻게 할까? 우리끼리 올라가? 아니면 대장한테 일단 보고를 해?”
한 쪽은 여관의 주인의 목소리였다.
분위기를 보니 일행의 구성원을 알고 찾으러 온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예상했던 것처럼 어떤 수를 내어 자기엘카 쪽의 사람을 움직인 것이다. 지금 여관 위쪽에는 라라와 루루만 있는 상황. 방문자가 올라가면 그대로 걸릴 수밖에 없다.
‘……’
한 순간에 엄청난 생각이 스쳐갔다.
기습을 할까. 기다렸다 둘을 빼 올까. 아니면 밖에 불을 질러 혼란을 야기할까. 수십 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일단 보고부터 하지. 혹시 모르니까.”
“그럴까? 그럼 내가……”
안쪽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쿤이 입술을 잘근 씹으며 그대로 문을 열었다. 판단은 순식간에 내려졌다. 그것이 옳고 그른지 생각 할 겨를은 없었다.
“어? 저 사람입니다.”
들어오는 쿤을 보며 주인이 손가락질을 했다.
‘빌어먹을 놈.’ 그가 속으로 욕을 날렸다. 하지만 얼굴은 태연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이, 거기 멈춰라.”
“무슨 일이십니까?”
“경비대에서 왔다. 제국방면에서 온 일남 이녀의 일행을 찾고 있다. 듣자하니, 동행이 여자 둘이라던데. 확실한가?”
“그렇기는 합니다만, 제 아내와 처제입니다. 공화국 쪽으로 여행을 온 것뿐인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요.”
태연하게 바라보니 경비대로 소개한 두 남자가 미간을 좁혔다.
태연한 반응에 찾는 이가 맞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걸로 한 가지는 확실해 졌다. 어떤 수단으로 항구 쪽 사람에게 연락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의 인상착의는 전해지지 않았다.
“그럼 다른 일행도 확인시켜 줄 수 있나?”
“아, 뭐. 필요하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위층에서 쉬고 있을 텐데 제가 안내를 하죠.”
“으음. 공무중의 일이니 너무 불쾌하게 생각하지는 마라.”
“하하. 괜찮습니다. 도시의 치안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최대한 친화적으로 반응했다.
카운터에 있는 여관 주인이 난감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나름에는 무언가 건수를 잡고 돈 좀 만지나 싶었을 것이다. 빌어먹을 놈. 쿤이 속으로 욕했다.
저벅 저벅.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 방 문 앞에 섰다.
바로 뒤에 경비 둘이 위치했다. 반 족장도 안 되는 거리. 쿤이 문고리를 잡았다. 안의 둘을 불러 열게 할 수 있지만 그러면 거리가 너무 가깝다. 손에 힘을 주어 문고리를 비틀었다. 살짝 거친 소리와 함께 문이 그대로 열렸다.
“벨포드 씨?”
라라가 먼저 발견하고 고개를 돌렸다.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후드를 깊이 눌러쓰고 있었다. 곧, 경비 둘이 뒤따라 들어왔다. 라라와 루루는 시선에 잡혔지만 후드 때문에 얼굴 식별이 안 됐다.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푸욱.
쿤이 망설임 없이 단검을 뽑아 지척에 있던 경비의 턱에 쑤셔 넣었다. 피가 팍 튀고, 비명도 지르지 못한 그가 그대로 옆으로 넘어갔다. 반걸음 앞서 나가던 다른 경비가 뭔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
“큽……!”
손으로 입을 막고 목을 돌렸다.
검을 뽑으려 손이 아래로 내려가기는 했으나 쿤의 반응이 훨씬 빨랐다. 별 다른 소리 없이 천천히 아래로 몸이 내려왔다.
“베, 벨포드 씨!?”
“이게 대체 무슨……?”
“조용히 해라.”
쿤이 짧게 답을 하며 방문을 닫았다.
틈으로 아래를 살폈지만 다행히 들키지는 않았다. 시체 둘을 끌어 침대 아래로 우겨넣고는 호흡을 골랐다. 다급히 움직인 터라 심장이 꽤 거칠게 뛰고 있었다.
“음.”
정문으로 나가면 여관 주인과 맞닥뜨리게 된다.
경비 둘이 따라가는 걸 봤는데, 일행만 나가면 의심할 확률이 높다. 냉큼 신고하는 모양새를 보니, 뒤를 장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대뜸 처리 할 수도 없는 노릇. 차라리 다른 길을 찾는 게 낫다.
끼익.
창문을 열고 아래를 살폈다.
이층이라 조금 높았지만 쿤에게 부담되는 높이는 아니었다. 마차를 세워 둔 곳도 가까우니 이대로 내려가는 것이 나을 듯싶었다.
긴장한 둘을 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이미 도시 안에 우리를 찾는 이들이 퍼져있다. 정면으로 나가는 건 무리고, 창문을 통해서 밖으로 가야 하는데……뛰어 내릴 수 있겠냐?”
“여, 여기 서요?”
“너무 높아요!”
둘이 쪼르륵 가 창문 아래를 살폈다.
밖에서 보자면 대수롭지 않은 높이지만, 위에서 내려다보기에는 꽤나 무서운 수준이었다. 둘이 거의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소란 없이 나가는 길은 여기가 유일하다. 내가 먼저 내려 갈 테니, 날 믿고 뛰어 내려.”
“벨포드 씨한테요?”
“받아 줄 테니까. 절대로 못하겠으면 지금 말해라. 만약 그렇다면 피 볼 각오를 하면서 나가야 할 테니까.”
담담한 그의 말에 두 소녀가 시선을 교차하며 생각에 빠졌다.
그 사이, 쿤이 문틈으로 다시 한 번 아래층을 살폈다. 여관 주인이 신경 쓰이는 듯 위쪽을 계속 살피고 있었다. 역시 정면으로 가는 건 소란을 불러 올 수밖에 없다. 창문으로 도주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받아 주시는 거죠?”
“뛰, 뛰어 볼게요!”
그때, 두 소녀가 생각을 정리했는지 말을 붙여왔다.
비장한 얼굴이었다. 처지를 이해하고 용기를 냈는지, 아니면 쿤에 대한 믿음이 그렇게 두터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 중요하다.
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대로 창틈으로 뛰어내렸다.
벽을 짚고 고양이처럼 몸을 바닥에 착지했다.
소리조차 없었다. 건물 사이라 사람도 안 보이고, 딱 좋았다. 그가 그대로 고개를 들어 두 사람에게 손짓을 했다.
“읍!!”
먼저 뛴 건 라라였다.
언니라고 용기를 낸 모양이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그대로 추락했다. 쿤이 양 팔을 벌려서 그녀를 품에 안았다. 충격을 예상했지만 증가한 신체능력 덕분인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아……고, 고마워요.”
바닥에 천천히 내려주자, 그녀가 붉어진 얼굴로 말을 했다.
쿤이 흘겨본 뒤, 아직 뛰지 못한 루루를 불렀다. 그녀는 창틈에 발을 걸친 채 망설이고 있었다. 항상 대차게 말을 하곤 해서 언니인 라라보다 잘 뛸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의 곳에서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여관으로 향했다고?”
“그렇다고 하던데요? 그쪽에서 뭐라도 발견 한 걸까요?”
그때, 골목 어귀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쿤은 직감적으로 이것이 다른 경비임을 알 수 있었다. 만약 그들이 이층으로 올라가 둘의 시체를 확인하면 일이 커진다. 그 전에 한시라도 거리를 벌려둘 필요가 있었다.
조금 다급해진 목소리로 말을 했다.
“당장 뛰어. 아니면 너를 버리고 갈 수밖에 없어!”
“으, 으으……”
“쿠타타가 뒤에 있어!”
그래도 루루가 망설이자, 라라가 냉큼 외쳤다.
쿠타타. 예전에 쿤이 사용했던 방법이다. 한 번 사용했던 게 또 통할까 싶었는데,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루루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창틈을 넘어 뛰어 내렸다.
쿤이 재빨리 몸을 날려 떨어지는 그녀를 받아냈다.
눈을 꼭 감은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게 그렇게 무섭나?’
의문이지만 어쨌든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됐다.
쿤이 그대로 루루를 업은 채 골목을 뛰었다.
지금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작가의 말
두근두근 콩콩.
오랜만에 쿤 등장. 과연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 라라와 루루. 누가 더 마음에 드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