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36화 (36/240)

준비가 끝나고 서율이와 함께 게이트로 이동했다.

앞서 보았던 중년 여인이 채비를 갖추고 기다리고 있었다. 예정에 없던 일이라 전에 보았던 것보다는 사람이 적었다. 긴장 된 속을 누르며 다가갔다.

“삼촌, 잘 잡아 주셔야 돼요?”

“걱정하지 마. 나만 믿고 있으렴.”

게이트 앞에 서자, 서율이 몸에 이런 저런 선들을 부착했다.

바이탈을 체크하고 미세하게 발생하는 각종 신호를 잡아내는 도구라고 한다. 전공자도 아니고 그 이상은 알아듣지 못하겠다.

“스탠바이 들어갑니다.”

이내, 중년 여인의 신호와 함께 사람들이 물러나고, 나와 남규의 부축을 받은 서율이가 게이트 쪽으로 접근을 했다. 삐삐 거리는 기계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접근과 동시에 개척자의 특유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다른 건 없을까?

서율이와 달리 나도 게이트로 접근하는 중이다. 무언가 다른 반응이 있지는 않을까 하고 중년 여인의 표정을 계속 살폈다. 하지만 그 앞에 바로서기 까지 별 다른 표정의 변화는 읽을 수 없었다.

“후우. 진입합니다!”

서율이의 목소리였다.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크게 발걸음을 떼었다. 발끝이 게이트에 나오는 희미한 빛과 닿고, 한 순간 묘한 일렁임이 그녀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레이저? 빛이 몸을 코팅하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휘청. 동시에 그녀의 몸이 무겁게 늘어졌다.

게이트와 접촉을 하면서 이쪽의 몸은 제어권을 잃은 것이다. 남규와 내가 잡고 있던 손에 힘을 가득 주었다. 넘어지지 않게 부축을 한 뒤, 미리 준비해 둔 의자에 앉혔다.

이건 나도 오면서 들은 내용인데, 이렇게 접촉한 개척자는 깨어나기 전까지 게이트 주변에 머무르고 있어야 한다. 일정 범위 이상으로 떨어져 버리면 게이트 넘어갔던 의식이 돌아오지 못해 그대로 식물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얼마 못 가 모두 죽음이라는 결과로 드러난다.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목숨을 걸고 일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휴우. 수고했어요.”

“너도 수고했다. 이렇게 푹 쓰러지는 건지는 몰랐네.”

“흐흐. 좀 놀랐죠? 저도 첫날에는 깜짝 놀라서 놓칠 뻔 했다니까요?”

남규와 말을 주고받으며 뒤로 물러났다.

생각보다 별 일이 없어서 실망했다. 빛이 몸을 감싸고 돈 건 대단했지만, 그것만으로 만족하기는 힘들었다. 어떤 특이점. 개척자가 가지는 나와는 다른 부분을 찾고 있었으니까.

“응?”

“왜요, 박사님?”

“여기 희미한 잔여 수치 말이다. 조금 과하게 높은데?”

그때, 기계를 살피던 중년 여인이 화면을 가리키며 말을 했다.

조수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 안경을 고쳐 쓰며 이를 살폈다. 전자기파를 표시 한 것으로 그래프가 자잘하게 물결치고 있었다.

“그러네요? 회복이 일러서 그런 걸까요?”

“아니야. 이건 마치 개척자의 반응과 비슷하구나. 수치는 매우 미미하지만.”

순간 놀랐다.

그녀의 말 때문? 아니다. 손끝에 남아있는 빛 무리 때문이었다. 이걸 왜 못 봤지 싶을 정도로 눈에 띠었다. 황급히 주머니에 쑤셔 박고는 딴청을 피웠다. 다행히 그녀가 한 말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나를 보고 있던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 빛은 서율이를 감쌌던 것과 같다.

그것이 왜 내 손에 남아 있었을까? 나도 개척자와 비슷한 반응성을 가져서? 아니면 저쪽 세계와의 관련성 때문에? 어느 쪽이든 우연히 생겼을 리는 없다.

“음? 다시 사라졌군. 기계 오작동이었나?”

중년 여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슬쩍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을 꺼내 봤다. 빛 무리 역시 사라져 있었다. 기계에 기록 된 전자기파는 내 손에 깃든 빛과 관련이 있던 것이다.

“……‘

이걸로 어느 정도 확신을 할 수 있게 됐다.

개척자가 게이트를 사용해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것과, 내가 게이트에 접촉하여 쿤이 되는 건 분명 연관성이 있다. 아마 그 과정에 작용하는 것이 앞서 보았던 하얀 빛. 마치 내세로 끌어가는 천국의 광휘와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준경 씨, 그럼 서율이가 깨어 날 때 까지 좀 부탁할게요.”

“네. 일 보세요.”

당장 확인 할 방법은 없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느낀 것만으로도 수확은 있다.

소향에게 짧게 답을 한 뒤, 서율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반나절에서 하루. 그녀 곁을 지키는 게 내 일이었다.

물론, 그 사이 잠깐 다른 일도 할 생각이다.

슬쩍 주변 눈치를 살폈다. 머지않아 틈이 생길 거 같다.

#

덜컹.

흔들림에 쿤이 잠에서 깨어났다.

공물 바친 것이 벌서 이틀 전이다. 대가로 돌아온 특기들이 조금은 생소한 것들이지만, 다 서 준경 신의 뜻이라 생각하고 받아 들였다.

좁은 실내와 냄새나는 바닥.

딱딱한 육포와 빵. 그리 좋다고 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쿤 등은 이틀을 견뎌 냈다. 그야 이런 경험도 많으니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지만, 역시 라라와 루루가 문제였다. 먹고 자는 건 둘째 치더라도 싸는 게 문제였다. 좁은 창고에서는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냥 바닥에 지리기에는 냄새가 문제였고, 다른 곳을 찾기에는 처지가 허락하지 않았다.

해서 쿤은 창고내의 쓰지 않는 목재와 짚 등을 모아 켜켜이 쌓아 화장실을 만들어 주었다. 바닥에 지리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눈을 가리고 등 돌리면, 라라와 루루가 돌아가며 볼일을 봤다. 소리가 배의 마찰음 사이로 비집고 들어 올 때면 둘은 터질 듯이 얼굴을 붉히곤 했다. 하지만 그것도 삼일 째 아침이 되는 시점에는 거의 희석 되었다. 이래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부르는가 보다.

“슬슬 도착하는 모양이군. 선원들 내릴 때 섞여서 갈 테니까, 딴 곳 보지 말고 내 뒤만 따라와라.”

“알겠어요.”

“그럴게요.”

이틀간 못 볼 꼴 보면서 한 장소에 머물러서 그런지 셋은 꽤나 가까워져 있었다.

특히 루루가 쿤에게 의지하는 경향을 보였다. 위기에 도와 준 것도 그이고, 신의 기적까지 사용하는 남자 아니던가? 여행자라고는 하지만, 온갖 모험담을 섭렵한 그녀의 눈에는 일종의 용사처럼 보였을 것이다.

끼이이익.

그때, 배가 부두에 닿는 소리가 들렸다.

쿤이 창고 입구로 다가가 밖의 상황을 살폈다.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배에 탄 사람들이 하나씩 내리고 있었다. 손짓으로 라라와 루루를 부른 뒤 슬쩍 문을 열고 사람들 사이에 합류했다.

“화아~!”

“여기가 공국이군요?”

별 탈 없이 땅에 발을 디디니, 둘이 동시에 환호했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이틀이나 박혀 있었으니 답답했을 것이다. 두 팔을 쭉 피며 자유를 만끽했다.

“얼굴 가리고. 이쪽으로 와라.”

꾀죄죄한 행색이지만 둘의 미모는 일반인의 것이 아니다.

벗겨지려는 후드를 깊이 눌러주고는 앞장섰다. 쿤 역시 공국은 처음이지만 사람 사는 곳은 대충 비슷하다. 주변을 살펴, 지친 여행객이 향하는 곳으로 따라갔다.

얼마 안 가 허름한 간판의 여관을 하나 찾을 수 있었다.

“셋. 큰 방 하나에, 따듯한 물과 간단한 식사.”

“동화 열다섯 개요.”

“제국 동화도 받습니까?”

“가려 받으면 장사가 되겠습니까?”

여관 주인의 답에 쿤이 안심하고 돈을 지불했다.

무역 단절관계는 아니라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혹시나 하는 일말의 불안이 있었다. 여관 내 분위기를 눈짓으로 살핀 뒤 둘을 데리고 위로 올라갔다.

방은 담백했다.

여객선에서 쓰던 방과 비교 될 것은 분명 아니나 창고 보다야 훨씬 좋았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루루와 라라도 불평하지 않았다. 종종 걸음으로 가서는 침대에 몸을 묻었다. 오래된 천에 닭과 양의 털을 우겨넣은 것이지만, 그 푹신함이 좋은 모양이다.

“일단 오늘은 여기서 묵도록 하자. 씻고 식사를 끝내면 대충 날이 저물 테니, 바로 출발하기는 힘들겠지.”

“저, 벨포드 씨. 그럼 자고 난 다음에는 어디로 가나요?”

“……”

쿤이 잠시 말을 아꼈다.

여기까지다. 라라와 루루와 함께 행동하는 것은. 이대로 둘을 남겨 둔 채 그냥 떠나면 그만. 아직까지 남아있는 이유는 맹약이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벨포드 씨?”

“일단 쉬고 있어라. 주변을 살피고 와서 말 해 줄 테니.”

답을 아낀 채, 쿤이 방 밖으로 벗어났다.

그리고 통로에 서서 잠시 생각했다. 맹약이 완수되지 않는 이유는 무언가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용은 둘을 테베스 공화국으로 데리고 간다. 이것이 끝. 단순하게 보자면 지금 이 상황에서 완수가 되어야 정상이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테베스 공화국으로 인정되지 않았다는 말이겠군.’

꽤 불공평한 조건이지만 어쩔 수 없다.

후드를 당겨서 얼굴을 가린 뒤, 여관을 벗어났다.

해가 머리맡에 뜬 시간이라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 무역상. 짐마차를 가득 채우고는 달그락 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공화국은 예전부터 넓은 곡창지대로 유명했다. 보리와 밀 등을 수확하여 타국으로 수출하고, 그것으로 나라를 무장시켰다.

오래전에 떠나온 고향과 비슷한 냄새를 풍겼다.

“이보시오. 파는 거요?”

“하하. 팔지 않으면 내 놓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쿤은 그대로 주변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것들을 구비했다.

방울 군도에서는 시간이 부족해서 제대로 물건을 구입 할 수가 없었다. 식사 준비까지는 시간이 있을 터. 필요한 것들을 미리 챙겨 둘 필요가 있었다.

“혹시 주변에 이상한 소문 없습니까?”

“이상한 소문?”

“뭐, 유명한 사람이 도망갔다든지. 그런 것들이요. 몇 가지 이야기라도 주워가야, 술이라도 한 잔 걸칠 텐데 영 마뜩치가 않군요.”

“오, 여행자였나? 그래, 어디보자……소문이라.”

그리고 주변 소문 역시.

융과 암습자를 군도에서 따돌리기는 했으나, 그들이 어떤 수단을 가지고 있는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어쩌면 공국으로 연락이 닿아 있을 수는 없다. 쉬쉬하며 움직인다 하여도 밑바닥 소문은 피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 이렇게 밀 한 자루 사며 듣는 이야기가 정보로는 신용이 높다.

“그러고 보니 세라자드님 생신에 두 아가씨께서 온다고 하더이다.”

“두 아가씨?”

“쌍둥이 공주 이야기를 모릅니까?”

“쌍둥이……아!”

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쿤은 머리에 망치를 맞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비어있던 퍼즐의 한 부분에 꼭 맞는 조각이 들어간 느낌이었다. 착착착. 하며 생각이 정리되고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어갔다.

‘설마 그 둘이……?’

지금껏 라라와 루루에 대해서 묻지 않은 건 어차피 헤어질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금증이 없었던 건 아니다. 둘이 대체 어떤 신분이기에 여객선을 쓸어버리면서까지 납치를 하려 한 걸까. 지금까지의 단서로 추리를 했고, 고위 귀족의 자녀가 아닐까 하고 심증을 굳혔었다.

하지만 상인의 말을 듣는 순간 생각이 뒤집혔다.

공화국에 사는 이모를 찾아가는 두 소녀. 제국령을 거쳐 온 듯 보이며, 고위 귀족 수준의 호위를 받고 있었다. 지나온 시간 동안의 일들이 하나로 뭉치며 새로운 결론을 도출했다.

“하여튼 그 소식으로 수도가 시끌벅적 합니다. 덕분에 우리 같은 소상인이야, 물건 팔 기회가 많아져서 좋지요.”

“그렇군요. 잘 들었습니다.”

빠르게 계산을 마치고, 쿤이 여관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정말로 두 사람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맞다면 그냥 여기서 손 흔들고 작별해서 끝날 이야기가 아니다. 확인이 필요했다.

‘쌍둥이 공주라니……!’

제국 내에서도 널리 전해지는 이야기다.

제국의 정복전쟁이 시작되기 전, 황제의 두 딸은 한 남자와 동시에 사랑에 빠졌다. 그 주인공이 현재 공화국의 대표로 선출된, 공왕 율리우스. 두 딸의 이름은 세라자드와 시에라였다. 남자 하나와 여자 둘의 이야기. 게다가 쌍둥이인 두 여자는 호사가들의 입을 타고 널리 퍼져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인지 두 딸 중 언니인 시에라는 자식을 낳자마자 급사를 하게 된다. 한 남자에 두 딸을 모두 시집보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제국의 황제는 이에 분노를 하여, 율리우스를 징벌 하겠다 군대를 일으켰다. 깜작 놀란 건 공화국이었다. 제국과의 국방력은 차이는 명백한 상황. 전쟁이 벌어지면 도무지 버텨 낼 수단이 없었다. 결국 공화국은 당신의 손녀가 이곳에 있으니, 부디 노여움을 감추어 달라 간청을 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마침내 두 손녀를 제국으로 보내게 된다.

이때 제국으로 넘어간 두 손녀 역시 쌍둥이라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붙여 진 이름이 쌍둥이 공주. 어머니였던 시에라와 마찬가지로 두 딸도 그렇다 하여 호사가들의 노래를 타고 전해지게 된 것이다.

상인의 말에 따르면 지금 그 쌍둥이 공주가 공화국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루루와 라라. 둘은 이모를 만나기 위해 공화국으로 가는 길이라 설명을 하였다. 쌍둥이 자매와 공화국. 죽 늘어놓고 보니 답이 보인다.

‘제국의 황녀였어!!!’

여관으로 가는 쿤의 발걸음이 다급했다.

※작가의 말

* 쿤의 이야기는 이번 포함 두 편입니다.

* 중요한 포인트가 등장했습니다.

* 쿤은 신도를 만들고, 준경은...

재밌게 보고 가세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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