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마치고 난 다음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른 아침에 체육관을 찾은 나는 톡으로 놀라운 소식 하나를 접하게 되었다.
[삼촌, 서율이가 게이트 그린 판정 받았데요.]
게이트 그린은, 신체 테스트 결과가 게이트를 통과해도 될 수준이라는 걸 의미한다.
이는 개척자들이 매일같이 받는 테스트로, 개척자가 게이트 너머로 이동 할 때 생성되는 주변 전자기장의 파장을 체크해서 판단한다. 보통 사람은 게이트를 건드려도 전혀 반응이 생기지 않는다. 반면, 개척자는 일정 수준의 전자기장에 새어 나오는데 이 정도를 가지고 이동이 가능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서율이가 게이트를 사용한 건 9일 전.
보통 개척자가 다음 게이트 이용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짧아도 2주다. 10일에 회복 된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9일은 그보다도 하루 더 짧은 기록. 대수롭지 않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하던 운동도 그만 둔 채, 짐을 챙겨서 재빨리 집 근처 게이트로 이동했다.
현재 서율이가 배정 된 게이트는 새로 만들어진. 즉, 집 근처에 있는 게이트. 정기 테스트를 하고 있다면 그곳이 분명했다. 여전히 많은 인파를 가로질러, 신분증(소향에게 받았다.)을 제시 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일전에 만들어 둔 처소에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다.
“뭐 특별히 먹은 거라든지? 생각나는 거 없어?”
“글쎄요. 평상시와 거의 같았는데. 딱히 기억나는 건 없어요.”
“흐음. 음식으로 인한 건 아니었나?”
가운데 서율이가 앉아 있고, 그 앞으로 하얀 가운의 중년 여인이 위치해 있었다. 척 보니 담당의? 그런 느낌의 여자였다. 회사 소속은 아닐 듯싶으니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인력이거나, 따로 계약한 민간업자 같았다.
툭툭. 그때, 누군가 옆으로 다가와 손등을 두드렸다.
시선을 돌리니 그곳에 죠엘이 있었다. 그녀가 왜? 라는 생각이 잠시 들다가, 그녀가 연구팀 소속임을 떠올렸다. 아마 게이트에서 작업을 하던 중에 이쪽 소식을 듣고 찾아 온 거겠지. 우연히 만난 거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남들 안 보이게 살짝 웃어 주었다.
“그럼 혹시 따로 피로 회복을 위해서 받은 시술 같은 거 없니? 몰래 갔던 거라도 지금 털어 놓으렴. 뭐라고 안 할 테니까.”
“아이 참. 그런 데 안 갔거든요?”
“하, 거 참 이상하네. 그럼 저번과 바뀐 게 하나도 없단 말이야. 왜 갑자기 회복 속도가 빨라졌을까?”
서율이 앞쪽에 앉은 중년 여인이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피로 회복. 톡으로 받은 내용과 현장의 상황을 살피니 어떻게 된 건지 이해가 되었다. 반지의 마법. 피로를 회복시켜주는 능력이 서율이의 게이트 이용 한도까지 바짝 당겨 준 모양이다.
솔직히 내가 느끼는 피로회복은 그다지 체감이 대단치 않다.
약간 상쾌한 정도? 하지만 이 물건이 게이트 너머에서 왔다는 걸 고려해 보면, 그 회복이라는 것이 서율이에게 더 영향이 있다는 게 납득이 되기는 한다. 다만, 그 시작이 나로부터 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조금 곤란 할 수도 있다.
나는 다른 개척자들과는 다르다.
같은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도 아니고, 쿤이 되었을 때 현실은 정지 된다. 인벤토리나 게임 시스템? 동일한 경우는 없다. 이 모든 걸 설명하고 납득시켜서 같은 대우를 받는다?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지금처럼 상황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일단 다시 한 번 체크해 보자꾸나. 회복이 빨라진 게 좋기야 하다만, 아무래도 갑작스러운 변화라 걱정이 되네.”
“그렇게 해요. 옷 좀 갈아입고 나올게요.”
그렇게 생각하던 사이, 서율이의 면담이 끝난 모양이다.
중년 여인은 재차 테스트를 진행하기를 원했고, 서율이는 다시 옷을 갈아입기 위해 빠졌다. 몰려왔던 사람들도 제각각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잠시 동안 웅성거림 이어지다 금세 조용해졌다.
“신기해요.”
“음?”
그렇게 사방이 조용해 졌을 때,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죠엘이다. 다른 연구원들은 다 빠져나갔는데 그녀는 남아 있었다.
“그 동안 개척자의 상태는 나름대로 연구가 진행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모르는 게 많이 남아 있네요.”
“뭐……그렇겠죠. 게이트 너머는 전혀 모르는 세상이니까요.”
“그런가요?”
“음?”
“우리는 그 세상의 흙과 돌. 일부를 가져오고 있어요. 이들은 언뜻 하찮게 보이나, 세상의 일말을 전해주는 창구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가 게이트 너머에 대해서 아는 건 결코 적지 않답니다.”
마른 침이 넘어갔다.
무슨 의미일까. 단순히 연구원으로서 하는 말인가?
“아, 괜히 또 흥분했네요. 버릇이라 그런지 잘 고쳐지지가 않아요.”
“괜찮습니다. 열의가 있어서 하는 말이니까요. 무언가를 위해서 분투한다는 건 항상 멋진 일이죠. 그래서 게이트 너머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건 뭐가 있을까요?”
표정을 연기하며, 넌지시 물었다.
“당시의 지질학적 환경을 읽을 수 있죠. 특히 지표위로 드러난 흙과 돌들은 과거 주변의 환경이 어떠했는지를 말해주는 증거가 된답니다. 지금으로 말 할 수 있는 정보라고는……일대 지역이 매우 고열에 놓여 있었다는 것 정도. 확인된 지형 중 일부는 통째로 지반이 녹았다가 강처럼 흐르며 굳은 것으로 보이기도 해요.”
“지역이 통째로? 그런 게 가능한가요?”
“글쎄요. 현대 병기로는 가능 할 거 같지만, 남아있는 흔적 중에 딱히 그 증거를 잡기 어려우니……”
“현대 병기라. 죠엘 씨는 게이트 너머에 이성을 지닌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중요한 질문이다.
나는 궁금해요. 라는 표정을 지은 채,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그녀는 턱에 손을 올린 채 깊게 생각하다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모호한 태도.
“개인적으로는 그럴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으니 딱 잘라 그렇다 하기도 힘드네요. 다만, 그런 의문은 있어요. 게이트는 왜 우리 앞에 나타났을까.”
“우연……이라고 답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군요.”
“네. 저는 이것이 누군가의 의지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이야기하는 지적 생명체가 되겠죠. 하지만 인간의 모습이나 지금껏 그려왔던 외계의 것들을 투영시키는 건 어리석다 생각해요.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모습이나, 형태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 말은 이미……”
“우리 곁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죠. 저 게이트를 넘어 와서.”
꼴깍.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녀의 말은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찔러왔다. 쿤의 여정으로 보았던 사람들. 단순히 그들이 게이트 너머의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이보다 더욱 본질적인 존재가 우리에게 개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를 돕고 있는 누군가와 같이.
“박사님, 옷 다 갈아입었어요~!”
그때, 처소 안쪽 개별 천막이 걷히고, 서율이가 종종 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후후. 이야기는 여기까지 해야 할 거 같네요. 누군가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항상 기꺼운 일이네요. 다음에도 기회가 있을 때 또 같이 자리를 해 봐요.”
“으음. 기대하겠습니다.”
죠엘이 살포시 웃고는 물러났다.
다를 바 없이 아름다운 얼굴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녀의 얼굴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남기고 간 작은 돌이 머릿속에서 커다란 파문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
“삼촌?”
그것은 뒤늦게 나를 발견한 서율이가 소매를 당길 때 까지 이어졌다.
#
서율이는 두 차례에 걸쳐서 반복적으로 테스트를 받았다.
결과는 동일. 그녀의 상태는 당장이라도 게이트 너머로 진입해도 될 정도였다. 테스트를 진행했던 중년 여인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이를 보고했다.
“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차후에도 지속적으로 보고를 말이죠? 알겠습니다.”
아마도 그녀의 상사.
어쩌면 정부 고위직인지도 모르겠다. 정식 스케줄이 아닌 상황에서 서율이가 정상 컨디션을 되찾았으니, 게이트 사용 건에 대해서 물어 본 것일 거다.
그리고 짐작대로 전화를 끊은 그녀가 다가와 서율이를 향해 말했다.
“서율아, 지금 게이트를 사용해 줘야겠다.”
“뒤쪽 스케줄은 어떻게 해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준경 씨. 이쪽 좀 도와주겠어요?”
“아, 그렇게 할게요.”
소향의 호출을 받아서 갔다.
오늘의 스케줄이라면 나도 기억하고 있다. 잡지 촬영과 다큐멘터리 사전 미팅. 머리를 빙빙 돌리며 다른 시간으로 뺄 수 있는지를 가늠해 봤다.
“그럼 준비해 주겠니?”
“으으. 일정에 없던 거라도 돈은 똑같이 나오죠?”
“당연하지. 우리가 언제 너를 속이든?”
“게이트 타고 한 번 넘어갔다 오면 몸이 녹초가 된다고요. 일정에 없던 거니까 확실히 돈이라도 받아야죠.”
서율이가 드물게 강한 어조로 말을 했다.
계획에 없던 게이트 사용이 꽤나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탈력감. 개척자들은 개인차가 조금 있지만 공통적으로 게이트 사용 후 굉장한 탈력감에 시달린다고 한다. 반나절이나 하루면 회복이 되기는 하지만 그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괜히 미안하다.
그녀가 상태를 회복 한 건 아무리 봐도 내 마법반지 때문 인 거 같으니.
“준경 씨?”
“아아, 지금 체크 할 게요.”
소향의 태블릿 피씨를 받아 들었다.
서연이 있다면 그녀가 하겠지만, 오늘은 쉬는 날. 화면을 넘기고, 서율이의 스케줄을 확인했다. 기억하고 있던 내용 그대로였다. 스텟이 올라서인지 예전보다 기억력이 좋아 진 거 같다.
시간을 체크하고, 소향과 상의해서 스케줄 대상들에게 연락을 했다. 정해진 약속을 깨트리는 일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상대 쪽에서 탐탁지 않은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일단 단순 방송에 관해서는 서율이 갑이다. 부드러운 태도로 양해를 구하니, 그쪽도 과하지 않은 반응으로 넘어가 주었다. 날짜를 재조정하고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
“후후. 능숙하네요.”
“이 정도는 다들 하잖아요.”
칭찬에 어색하게 웃었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세팅은 끝났는데, 보조는 누가 할 거죠?”
그때, 서율이와 얘기하던 중년 여인이 소향을 보며 물어왔다.
보조는 말 그대로, 게이트에 접촉하는 개척자를 옆에서 보조하는 인원을 말 한다. 개척자는 게이트에 접촉하는 순간 그 너머의 존재로 의식이 전이되고, 남은 육체는 힘을 잃고 쓰러진다. 이를 지탱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준경 씨가, 남규와 같이 서율이 보조를 맡아 주세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전 처음 해 보는 일인데……”
“그냥 옆에서 잡아주는 거뿐인데요 뭐. 그리고 서율이도 준경 씨를 삼촌같이 여기니 그 편이 나을 거 같아요.”
그런가 해서 옆을 돌아보니, 서율이가 손가락을 동글게 만 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조금 기뻐 보이는 얼굴이다. 어차피 넘어가는 건 잡아주는 역할인데, 기쁘고 말고 할 게 있을까 싶다.
고개를 끄덕이고, 대강의 진행 사항을 전해 들었다.
멀리서 본 적은 있지만, 개척자가 게이트로 진입하는 걸 곁에서 보는 건 처음이다. 조금 긴장이 된다. 과연 나와는 어떻게 다를까.
두근두근.
심장이 조금 세차게 뛰었다.
※작가의 말
조금 중요한 포인트가 나왔네요.
* 댓글로 응원해 주신 많은 분들 감사합니다.
* 비축분을 쌓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