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귀고리와 금장식 팔찌. 그리고 은화 꾸러미.
내 앞에 놓여있는 물건들이다. 이는 쿤과 루루, 라라가 바친 공물들이다. 이것들이 내 인벤토리로 넘어 온 건 전날. 동식이와 게이트 뒤처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쿤은 라라도 신관으로 만든 뒤 동일하게 하급 축복을 써 주었다.
바친 공물의 가치는 20. 사용된 축복은 50짜리다. 거기에 그가 바친 은화 꾸러미는 전부 다 털어서 50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앞선 손해까지 계산해서 딱 10의 신성 점수를 얻었다. 득실로만 따지자면 이득 없는 일이라 할 수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하급 신관. 즉, 나를 믿는 신도가 생긴 것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의아했다. 나는 진짜로 신이 아니다. 쿤이 그렇게 믿는 거뿐이고, 그 장단에 맞춰서 어울려 주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 보듯이 나와 쿤을 잇는 이 시스템은 나라는 존재를 정말로 신격화 시켜주고 있었다.
어째서?
알 수 없다. 가정을 몇 개 세워 보았지만 지금으로서는 정보가 부족하다. 알지 못할 것에 매달리는 것보다는 가진 패를 효율적으로 쓰는 편이 낫다. 신도가 생겼다는 점에 즉시 집중했다.
기본적으로 하급 신관은 쿤과 다르게 공물을 바쳐도 1할의 가치밖에 적용받지 못한다. 즉, 루루가 내게 바쳤던 반지의 경우 본래라면 400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라라의 팔찌는 200. 아직까지 가치선정의 룰을 모두 이해 한 건 아니지만, 일단 내가 소유하지 않은 물건 중에 상호간에 가치가 높은 것일수록 상등의 등급이 매겨지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내가 얻을 수 있는 하급 신관의 숫자는 전부 다섯.
그렇다면 그렇게 얻은 신관들은 쿤과 마찬가지로 무작정 공물을 바칠 수 있는가? 그건 또 아니다. 한 사람당 전부 다섯 번의 공물을 바칠 수 있고, 이는 달마다 갱신되는 것으로 보였다.
상당히 제약이 있는 거 같지만, 산술적으로 보아도 10의 가치를 지닌 공물만 바쳐도 두당 한 달에 50의 신성점수를 얻을 수 있다. 물론, 그 대가도 필요하니 몇 달에 한 번 정도는 축복을 내려 줄 수 있다. 하급 신관에서 내려 줄 수 있는 하급 축복의 경우에는 딱히 별 다른 설명이 없었는데, 아마 그 당시 바라는 일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였다.
루루는 여객선에서 벗어난 직후부터 갑자기 변한 환경을 꽤나 어려워했었다. 바닷물에 몸이 젖고, 옷도 거친 천의 것으로 갈아입었으니 불편했던 것이다. 그것들이 축복 한 번에 모두 해결이 되었다. 이것의 효과 기간이 얼마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사용하는 주체가 나와 쿤이라면 굳이 낭비해서 사용 할 이유가 없었다.
한 두 번이면 족하다.
신의 축복이라는 것이 그렇게 쉬이 얻을 수 있으면 되겠나? 충분한 공물을 바쳤을 때 한 번 정도 사용해 주면 그만이다.
결국 다섯의 하급 신관은 신성점수의 면으로 보았을 때 확실히 이득이다. 내게 넘어오는 공물을 모두 제외하고도 말이다.
놀랍다.
그리고 흥미롭다.
하급이 있다는 말은 중급과 상급도 있다는 말이다. 신관도 그 직위가 올라 갈수록 공물의 퍼센테이지나, 축복의 등급이 올라 갈 것이다. 아마 보유 숫자도 증가 하겠지. 어쩌면 공물 바치는 횟수가 증가 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내게 돌아오는 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다.
전형적인 피라미드 기업이다.
뿌리를 깊고 널리 내릴수록 가장 윗선의 존재에게 재화가 몰리는 시스템. 보통이라면 욕하겠지만 그 꼭대기의 인물이 나라면 이보다 좋을 수 있는 게 있을까 싶다.
“두 소녀도 꽤나 신분이 높아 보이고 말이야. 잘만 해서 영지 같은데 신상 하나 세우면 수천씩 신성점수가 들어 올 수도 있겠는데?”
제국 내부라면 유일신 정책으로 무리겠지만, 공국이라면 가능해 보인다.
천천히 조금씩. 여유를 가지고 진행하다보면 반드시 안 된다고 단정 할 것도 아니다.
“좋아. 좋아.”
툭툭. 잘 정리 된 노트를 접어서 서랍 안에 넣었다.
일전에 종이로 정리를 한 적이 있는데, 본격적으로 할 필요성이 느껴져서 하나 장만했다. ‘나’를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인맥 도에 있던 일과 능력 등을 빼곡하게 적어 두었다.
발코니에 나와 바람을 쐤다.
방 안에서 머리를 굴렸더니 몸이 꽤 굳어 있었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몸을 좀 풀었다. 우득우득. 거친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중요한 건 내 일인가.”
쿤의 위기는 일단락 났다.
공국에 도착해서 어찌 진행 될 지 알 수는 없지만, 당분간은 안심이다. 그렇다면 그 동안 돌보지 못한 내 일에 신경을 써야 할 거 같다. 게이트에 접촉하기 위해서 보조팀 일을 구하기는 했으나, 그것에서 망설이기만 하면 필요한 것들을 성취하지 못한다.
딸아이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지 전혀 모른다.
필요 한 건 정보와, 그녀가 믿음을 줄 수 있는 배경이다. 돈이면 돈. 권력이면 권력. 그것도 아니라면 쿤을 통해 얻는 신기한 힘이라도 좋다. 뭐가 되었든 아빠를 믿고 달려 와 줄 배경이 필요했다.
“필요 한 것……”
쿤을 통해 받는 공물이 짭짤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은 미약하다. 이것들을 모아서 일확천금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처분하기 곤란한 부분도 있다. 그렇다면 내게 최선은 무엇일까.
도박? 주식? 경마?
몇 번이고 생각했던 것들이지만 보조팀 일을 하면서 병행하기는 어렵다. 점수로 얻을 수 있는 특기 중 관련 지식이 있기는 하지만, 책만 보고 습득한 지식으로 돈 벌 수 있다면 부자 아닌 사람이 있겠는가? 포인트가 넉넉한 상황도 아니니 그것에 매달리기는 힘들었다.
“아니, 돈에만 국한시키지 말자.”
생각을 조금 더 천천히 가다듬어 봤다.
정말로 내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 무엇인지. 단기적인 것이야 얼마든지 집어 낼 수 있다. 액션 & 스킬 타입의 효력을 증대시키기 위해서 종합격투기 체육관도 하나 끊을 생각이다. 법률과 생활 지식. 요리 기술에 관한 책자들이 구매해서 틈틈이 봐 둘 것이다. ‘나’라는 사람을 강화시켜 쿤에게도 도움을 주는 행위. 그런 것들이야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생각하고자 하는 건 조금 먼 미래를 내다보는 일.
“미래라. 미래……”
그러다 문뜩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왜 굳이 보조팀과 분리를 해서 생각을 하나 싶다. 보조팀은 개척자라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메니지먼트 회사다. 지금 당장도 그렇지만, 개척자의 가치라는 것은 시간과 비례해서 늘어만 간다. 당장, 게이트를 통해서 나오는 물건의 처분이 동결되어 있음에도 그 너머를 탐구하는 인물의 관리가 국가적이라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어떤 직장보다 개척자를 관리하는 인물. 그리고 회사가 유망하다. 물론, 지금처럼은 아니다. 말단의 직위로는 할 수 있는 게 적다. 적어도 소향 정도의 위치에는 올라야 한다. 회사 방침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자리.
만약 쿤이 있는 곳과 게이트 너머의 세상이 같은 곳이라면 이것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필요 한 것은 현재의 위치보다 높은 곳에 올라가는 방법.
“게이트에 접근을 할 수 있으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직업. 그리고 향후 국가적 재화 흐름에 관여 할 수 있는 위치.”
물론, 과장이 좀 심하기는 하다.
하지만 다른 것들로 내 위치를 공고히 하는 것보다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이득이 많다. 일단 개척자 중 한 명이 내게 깊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걸 이용하는 게 즐거운 건 아니지만, 만약의 경우 그것에 매달릴 수도 있다.
일을 배우고, 그 세계를 이해 한 뒤.
나만의 것을 세운다.
“할 수 있다.”
발코니 밖 도심의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
몇 가지 해야 할 일을 정리하며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서율이한테 연락이 왔다. 근처에 왔으니 같이 밥이나 먹자는 것이다. 스케줄이 바쁘지 않을까 싶지만, 왔다는데 돌아가라 말 하는 것도 그렇다. 대충 외투를 챙겨 입고는 아파트 아래로 내려왔다.
“아, 삼촌!”
현관에 쪼그려 앉아 있던 서율이가 나를 발견하고는 팔짝 뛰었다.
근처 온 김에 들렸다고 하는데 하얗게 변한 다리를 보니 꽤나 오랫동안 이곳에서 기다린 듯 보인다. 연락을 할까 말까 고민 한 건가?
“오래 기다렸어?”
“아뇨. 방금 왔는데요, 뭐.”
어색하게 웃으며 답 하는 모습을 보니 분명 한 거 같다.
어깨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주고는 닫힌 문을 열었다.
“가자. 날도 좋은데 맛있는 거 먹으면서 기분 전환이나 하자고.”
“아, 아! 그 전에 잠깐만 저 좀 따라오면 안 돼요?”
“응? 어디 따로 갈 곳이 있어?”
“요 앞인데……”
손을 조물조물 거리며 망설이는 기색을 보인다.
무슨 일일까? 급히 부탁해야 하는 일이라도 있는 걸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알았다고 답을 했다.
그녀가 안내 한 곳은 아파트 앞 주차장이었다.
“여기야? 무슨 일인데?”
딱히 별 다른 건 안 보인다.
평소와 같이 주차된 차들과 쌓인 먼지. 이곳까지 불러와서 할 말이 따로 있는가 싶었다.
“이, 이거 받아주세요!”
“응?”
그때, 그녀가 두 손을 꼭 쥔 채 앞으로 내밀었다.
선물? 의아하지만 일단 손을 내밀어 받았다. 사탕이나 초콜릿 정도를 예상했다. 삼촌이라 부르니까, 그 정도는 괜찮다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내 손 위에 올려 둔 건 사탕 따위가 아니었다.
“바, 받아주세요!”
차키였다.
그것도 처음 보는 종류의. 곧바로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멍하니 그녀를 봤다. 차키를 주면서 받아 달라? 장난인가?
“저쪽에 주차 돼 있는 차인데……”
아직 할 말을 정하지 않았는데 그녀가 손짓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주차장 구석진 자리에 은색 SUV가 한 대 있었다. 때깔이 번쩍번쩍 한 걸 보니 뽑은 지 얼마 안 되는 신상이었다.
“잠깐만.”
그리고 그 즈음이 되자 멍했던 정신이 돌아왔다.
손에 들린 차키와 주차 된 은색 SUV. 받아 달라는 말은 저 차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서 서율이를 봤다.
“이게 무슨 의미야?”
“선물……로 생각해 주세요.”
“어째서? 이런 걸 받을 이유가 없잖아.”
“이, 있어요! 그러니까 제가 제대로 보답도 못 했잖아요. 저 때문에 삼촌은 병원 신세도 오랫동안 지고 또 아내 분과도……”
그녀가 힘껏 말을 하다 말미에는 입을 오물거렸다.
무슨 의미인지 알 거 같다. 묘한 기분에 뒷머리만 긁었다.
“그 일은 그냥 사고라고 했잖아.”
“알아요. 삼촌이 그렇게 생각하는 거. 하지만 쭉 생각했어요. 정말로 내가 할 도리를 다했나, 하고요. 사실 삼촌이 병원을 옮긴 뒤에 짐을 지기 싫어서 찾는 걸 포기 한 건 아닌가 싶었어요. 겨우 이런 물건으로 삼촌의 시간이 돌아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렇게 보답을 하고 싶어요.”
“서율아……”
“제발 아무 말 하지 말고 받아 주세요. 그래야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할 거 같아요. 보조 팀에서 일 하는 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이런 거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차가 없어서 택시를 타고 다닌다면서요. 그래도 삼촌 체면이 있지 그러면 안 되잖아요.”
“하, 체면이라고 할 게 있나 싶다만……”
슬쩍 SUV를 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욕심이 안 생기는가? 그럴 리 없다. 남자라면 멋진 차에 대한 욕구는 다 있는 거니까. 나도 마찬가지다. 은색으로 번쩍거리는 차는 딱 내 취향이다.
“제발요. 네? 삼촌.”
“휴. 알았다, 알았어. 내가 저런 물건을 받아도 되나 싶지만 네가 그래야 편하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또 이런 일을 하지는 마. 조카 뜯어먹는 삼촌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와! 만세! 고마워요!”
받는 건 나인데, 서율이가 좋아한다.
그 모습이 아이 같아 나도 웃고 말았다.
“근데 이 차는 뭐냐? 처음 보는데.”
“신형 레인지로버요! 남자들이 좋아하는 차라고 해서 샀어요!”
“비쌀 거 같은데……”
“신경 쓰지 마세요. 보험료랑 자잘한 비용은 다 제가 내니까, 삼촌은 그냥 멋지게 타기만 하면 된답니다.”
“내가 탄다고 멋있어 지냐?”
“그럼요~!”
엄지까지 척 내밀며 좋아하니 뭐라 하기도 힘들다.
그리고 사실 내 입 꼬리도 살살 올라가고 있다. 내가 물욕 없는 고승도 아니고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차키를 손에 쥐고 흔들었다.
“한 번 타 볼까?”
“네!”
밥은 조금 먼 곳으로 나가서 먹어야 할 거 같다.
※작가의 말
그 동안 잊혀졌던 우리의 준경 등장.
현시창에서 널 꺼내 주마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