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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메이커-27화 (27/240)

여객선이 있던 곳과 방울 군도까지는 멀지 않았다.

몇 시간가량 노를 젓자 도착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어깨의 상처였다. 스쳤다고는 하지만 상처가 꽤 깊었다. 출혈은 어찌어찌 멈추기는 했지만 추가적인 감염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옷을 찢어 상처를 감싸 두었지만 치료가 필요했다.

쿤은 군도에 도착하자마자 근처 부두에서 서성이는 남자한테 구명정을 팔았다.

장물이다. 푼돈이지만 이렇게 처리하는 것이 좋았다. 그는 좋다고 웃으며 배를 끌고 사라졌다.

상처 입은 쿤과 화려한 옷차림의 두 여자.

해적 소굴인 방울 군도에서는 단연 눈에 띄는 모습이다. 관심을 가지는 놈들이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 있으면 위험하다. 쿤은 판단을 내리고 즉시 인근에 있는 건물로 쑥 들어갔다.

중년 남녀가 느닷없이 들어오는 일행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마 군도에서 장사하는 사람 같았다. 쿤은 가타부타 말없이 돈을 내밀며 약과 갈아입을 옷을 요구했다. 망설임은 독이 된다. 두 남녀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 손 위로 들어오는 돈에 고개를 끄덕였다.

쿤은 지혈제와 소독약. 그리고 감염을 막기 위한 물약을 받았다.

그리고 두 여인은 화려하던 드레스를 버린 채 허름한 옷을 걸쳤다. 천이 거칠고 냄새도 심하다. 처음 겪는 일에 둘은 울상을 지었지만, 상황이 급하다 보니 따져 묻지도 못했다. 징징거리지 않는 게 쿤의 입장에서는 다행이었다.

“어이, 친구. 그쪽에 삼삼한 계집들이 있다고 하던데?”

그렇게 집 밖으로 벗어나자 건들거리는 남자 두엇과 맞닥뜨렸다. 해적이라기보다는 군도에서 살아가는 동네 한량 같았다. 예쁘고 화려한 옷의 라라와 루루가 눈에 띄었던 것이다. 쿤은 이렇게 될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우리한테도 좀 양……컥!!”

쿤이 한 팔로 남자의 정강이를 걷어 찬 뒤, 목에 단검을 들이밀었다.

한 손이 불편하지만 동네 건달 정도는 쉽다. 남자는 금세 얼굴을 하얗게 하고는 살려 달라고 빌었다. 뒤따라 왔던 건달들도 대뜸 무기를 들이미는 쿤의 기세에 주춤주춤 물러났다.

어느 바닥이나 그렇지만 처음 기세가 가장 중요하다.

이 사람을 공격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손실보다 많은가. 난폭한 무리들은 기세로 이를 가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쿤의 기세는 매우 흉흉하다. 덤볐다가는 두셋 정도는 골로 갈 거 같다. 무리가 함부로 덤벼들지 못한 이유가 그것에 있었다.

쿤이 그대로 단검을 밀어 올리며 물었다.

“공화국으로 가는 배가 있나?”

“고, 공화국으로? 그곳에서 어째……아아아! 알았다고, 그만 밀어! 자기엘카 항구로 가는 상선이 있어!”

“안내해라. 허튼 짓 안 하면 푼돈이나마 쥐어 주지.”

“그, 그래?”

결국 돈이다.

돈을 준다는 말에 남자는 혹해서는 일행을 안내했다.

루루와 라라는 얼굴을 가리게 후드를 뒤집어쓰고 쿤은 태연한 얼굴로 남자를 따라갔다. 지역민과 외부인은 분명 차이가 나지만, 군도도 오가는 사람들이 꽤 있다. 행색을 바꾼 일행에게 관심 가지는 사람은 전보다 확연하게 줄어 있었다.

“수고했다.”

군도의 작은 부두에 도착하자, 소형 상선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작은 뱃길을 가로질러서, 공국과 제국으로 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형태였다. 일반 여객선과는 그 곡선부터 차이가 났다. 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은화를 꺼내 남자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만약 누군가 와서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묻거든 제국 방면으로 도망갔다고 전해라.”

“맨입으로?”

쿤이 동전을 하나 더 튕겨 주었다.

남자가 희희낙락하며 웃었다.

‘운이 좋다면.’

동네 건달을 믿지는 않는다.

되도 그만 안 되도 그만인 수. 적어도 그렇게 확률을 높이는 것이 중요했다. 물러나는 남자 등을 살핀 뒤 상선 관리자에게 향했다.

“음?”

관리자가 쿤을 발견했다.

슥. 가까이 다가가며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공국까지 태워 줄 수 있습니까? 사람은 셋.”

“맨입으로는 곤란한데?”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소?”

쿤이 은화 세 개를 꺼내 내밀었다.

이건 배를 판돈이 아니다. 루루가 가지고 있던 작은 꾸러미에 있던 돈. 동화는 없고, 금화와 은화뿐이다. 돈이 아주 썩어나는 집안인가 보다. 어쨌든 지금은 도움이 되니 다행.

관리자의 얼굴이 밝아졌다.

“흠흠. 창고로 열어 주겠소. 삼십 분 뒤에 출발이니 그 전에 준비하고 오슈.”

삼십 분. 쿤이 상선을 한 번, 대양을 한 번 바라봤다.

습격자들이 여객선을 수습하여 군도로 들어오려 한다면 얼마나 걸릴까? 좁은 해로에 폭 넓은 범선을 끌고 들어오는 건 쉽지 않다. 못해도 두어 시간 정도는 여유가 있을 것이다.

“가자. 필요한 것들을 구해 둬야 하니까.”

쿤은 탈출 직후부터 반말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라라와 루루. 둘 중 누구 하나 이것에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둘은 지금 이 상황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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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냄새나요……”

옷과 음식.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각종 도구들을 구입하고 나니, 승선 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다. 앞서 보았던 관리자의 안내를 받아 창고 쪽에 자리를 잡고 몸을 숨겼다. 워낙 군도를 거쳐 밀항하는 사람들이 많은지라 딱히 삼엄한 경비 같은 건 없었다.

다만, 루루와 라라는 이런 상황이 낯설다.

멍 하던 정신이 돌아오자 사소한 것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몸에 닿는 옷의 감촉이 거칠고, 냄새는 또 고약하다. 먹은 것도 얼마 없는데 속이 올라 올 거 같았다.

“참아. 공국까지는 이틀 정도가 걸리니까, 그 동안은 여기서 버텨야 해.”

“이, 이틀이나요!?”

“쉿. 우리는 밀항 중이야. 목소리를 낮춰.”

루루가 찔끔 고개를 숙였다.

금세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상황이 조금 안정되자, 서러움이 몰려오나 보다. 이해 할 수 있는 일이다. 순진한 귀족가의 영애가 이렇게 험한 일을 겪고 아무렇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루루야……”

“언니, 흑! 우, 우리가 왜 이렇게 된 거야? 응? 융 아저씨는 또 왜 그런 거고?”

“나도 모르겠어. 누군가 우리를 노리는 건 이해 할 수 있지만……융 아저씨가 한패라니. 나는 아직도 실감이 안 가.”

“아, 아저씨한테 뭔가 사정이 있겠지? 응? 아저씨가 막 그럴 사람이 아니잖아……”

루루가 애원하듯 물었다.

꽤나 친했던 모양이다. 얼마 전까지 아저씨, 아저씨라며 부르던 이가 배신을 했으니 충격이 클 것이다. 서로를 껴안고 다독이는 둘을 보며 쿤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틀 동안 꽤나 피곤하겠군.’

용병으로 구르던 쿤 자신이야 창고에서 이틀 버티는 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곱게 커 오던 라라와 루루는 상황이 다르다. 과연 둘이 잘 버틸 수 있을까. 그것이 걱정이었다.

“훌쩍. 저기, 벨포드 씨.”

“음?”

“인사가 늦었어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인사를 드릴게요. 구해주신 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훌쩍이던 루루가 눈물을 훔쳐내고는 인사를 건네 왔다. 라라도 같이. 쿤이 잠시 멍하니 있다, 손짓으로 이에 반응했다. 속으로는 조금 놀랐다. 두 소녀가 천진하고 착한 성정을 지녔음은 알지만 그래도 귀족이다. 이렇게 스스럼없이 감사를 표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때 묻지 않은 귀족. 아니면 교육이 잘 된 건가?’

신선한 모습이 싫지는 않았다.

“그런데 벨포드 씨는 여행자 치고는 능력이 대단하시네요.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무사히 빠져 나오다니.”

“돌아다니며 배운 재주일 뿐이야. 운이 좋았지.”

“운도 실력이라고 하잖아요. 아마 하늘에 계신 아스모포스(제국의 유일신)께서 보우하신 걸 거예요.”

“그는 아니다.”

“네?”

“아, 음……”

쿤이 반사적으로 답을 하다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신이라고 그 동안 모셔 왔더니 나름의 충성심이 생긴 것 같다. 아스모포스를 언급하니 저도 모르게 반발심이 튀어나온 것이다.

“아, 혹시 다른 신을 모시는 거예요?”

“제국의 법을 나한테 적용하려거든 말 하지 마라. 나는……”

“아니에요. 루루도 그렇고 저도 다신에 대한 믿음이 옳다고 생각 하거든요. 아버님께서 항상 그러했어요. 믿음은 주관적이다. 사람을 올곧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길바닥의 돌멩이라 하여도 믿음을 주어도 좋다, 라고요.”

“음. 꽤나 사고가 트인 분이군.”

“저도 신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어요! 룽가, 타리오스, 쿤타라, 페이니시스. 또, 또. 뭐가 있더라?”

루루다. 조금 전까지는 울더니, 아는 게 나오니 금세 반색하고는 달려들었다. 아이 같은 모습이지만, 계속 울적해 하는 것보다는 낫다. 라라도 다른 신들의 이름을 하나씩 대며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었다.

“흥. 그런 신들은 내가 모시는 분에 비하면 별 거 아니다.”

가만히 듣던 쿤이 코웃음 쳤다.

그 자신은 서 준경 신의 은혜를 지금껏 몸으로 받아 왔다. 세상의 어떤 신도 그 정도로 신도를 챙기지는 않는다. 자부심이라 해야 할까. 그런 것이 있었다.

루루와 라라가 흥미를 보이며 눈을 반짝였다.

“벨포드 씨가 모시는 신이 어떤 분인데요?”

“우리가 아는 이름이에요?”

“그 분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권능과 은혜는 여타의 신과 궤를 달리하지. 너희도 그 은총을 한 번 입으면 깜짝 놀라게 될 거야.”

“뭔데요? 이름이 뭐에요?”

삐약삐약. 모이 달라고 외치는 병아리 같다.

쿤이 슬쩍 웃으며 잠시 뜸을 들였다. 모시는 신이 관심을 받으니 왠지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고 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분의 이름은 서 준경.”

“서 준경? 와, 이름이 독특해요!”

“처음 들어 보는데……어느 지역에서 전해지는 신이죠?”

[경험치가 증가하였습니다.]

그 순간, 묘한 알림 음이 쿤의 귀를 흔들었다.

경험치? 단어 자체로 파악하자면 어떤 일에 숙련이 되었다는 말 같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게 있었던가? 쿤은 한 번에 이해 할 수 없었다.

“벨포드 씨?”

“아, 아!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지는 신이다. 지금은 그 시작이 잊히기는 했지만, 내가 지금껏 살아 올 수 있었던 것도 그분의 은총이지.”

“와아! 대단한 신인가 봐요?”

“그럼. 대단하지. 그 분의 힘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라면……”

말을 하던 쿤이 잠시 멈칫했다.

경험치라는 알림이 뜨기 전, 루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서 준경이라는 신의 이름을 직접 언급했다. 즉, 신의 이름을 알린 일이 된 것이다.

‘포교로구나!’

당연하다.

신은 믿음에서 힘을 얻는다. 신도가 늘어날수록 그 힘이 강해지는 건 기정사실이다. 당장 신도가 아니더라도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혹시 말이야……”

쿤이 잠시 생각하다 입을 떼었다.

두 소녀의 눈이 별빛처럼 반짝였다.

“다른 신을 섬겨 볼 생각 없어?”

※작가의 말

슬슬 변화 파트도 끝나가는군요!

군도 파트도 구상한 게 있었지만...너무 쿤쪽으로 늘어지는 거 같아서 과감하게 싹둑.

속도를 좀 내볼까 합니다.

그 동안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던 레벨에 대한 단서가 나왔습니다.

신의 신도라면 마땅히 필요 한 것이 있죠.

* 자네 서 준경 신을 믿어 볼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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