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은 그리 익숙한 단어가 아니다.
선별된 소수의 인물들만이 다룰 수 있으며, 그 혜택은 낮은 위치의 이들에게 퍼지지 않는다. 이적. 기적. 신비. 무엇으로도 그 현상을 전부 설명 할 수 없으며, 그 끝 모를 힘은 과거 신의 위치까지 인간을 올려놓았다 평가를 받는다.
이런 마법을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서 하나의 물건에 담아낸 걸 마도구라 칭한다. 마도구는 이를 만든 마법사의 실력, 들어간 재료와 시간. 바탕이 되는 물건의 종료에 따라 가치가 천차만별로 갈리지만 기본적으로 단 하나의 공통점은 존재한다.
바로 비싸다는 것이다.
마법사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중 하나 정도의 확률로 재능이 등장하고, 그것을 각고의 노력과 시간을 들여서 개화시키는 이들이다. 그 하나하나의 가치는 금괴와 비할 바 아니며 그 지위 역시 모든 신분계급을 뛰어 넘어 인정을 받는다.
그런 인물들이 온갖 노력을 쏟아 부어서 만드는 것이 바로 마도구다.
아무리 하찮은 마법에, 시간을 적게 들인다 해도 그 가치가 절대로 낮을 리 없다.
어릴 적 생일 선물로 받았다 하는 루루의 반지 역시.
“이런 걸 그냥 주셔도 괜찮은 겁니까?”
“헤헤. 생일날 받은 것들 중에 화려하지 않아서 차고 다니는 물건 중 하나일 뿐이에요. 괜찮아요.”
“그렇……습니까?”
마도구를 이렇게 취급 할 수 있는 집안.
더욱 루루와 라라의 정체가 의심스러워진다. 쿤이 앞에 놓인 와인을 쭉 들이키고는 반지를 받았다. 새벽녘의 공기와 같이 청량한 기운이 전해졌다.
“신기한 느낌이군요.”
“카넬 할아버지가 줄 때 그랬어요. 차고 있으면 머리가 맑아져서 공부 할 때 좋다고요.”
“머리를 맑게 하는 힘이 있군요.”
“그 정도면 사랑 이야기를 듣는 마음으로 충분하겠죠?”
“……그럼요. 충분합니다.”
충분하다 뿐일까.
넘치고 넘친다. 조금은 미안한 마음에 쿤이 시선을 돌렸다. 이런 일로 만난 사이가 아니라면 귀족과 용병의 신분을 넘어서 잘 다독여 주고 싶은 아이다.
“베네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지금 해 줄 수 있는 건 그녀가 바라는 대로 정말로 재미있는 얘기를 해 주는 것 뿐. 우연히 만난 바드의 사랑 노래. 여급의 신세 한탄. 같이 등을 맞대던 여 용병의 사정들. 갖은 이야기들을 머릿속에서 떠올리며 입을 떼었다.
오늘 만큼은 이야기꾼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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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깜빡 졸던 루루가 탁자에 이마를 콩 박고는 물러났다.
더 듣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이제는 슬슬 곤란하다 생각했는지 문 밖의 남자들이 신호를 보내왔다. ‘나중에 또 이야기 해 주세요!’ 라고 몇 번이나 말 하고는 자기 위해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 홀로 남은 쿤이 침상에 몸을 묻었다.
새벽이 깊었으니 그도 피곤하기는 매 한 가지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급한 일이 있었다. 루루에게 받은 반지를 꺼내 들었다.
‘마법 반지. 마법 반지……’
쿤이 용병으로 돌아다니면서 얻어 본 물건 중에 최고로 가치가 높은 것이다.
정확하게 어느 정도의 가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몇 달. 아니 몇 년은 의뢰를 안 해도 될 정도일 터. 그렇다 보니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이걸 제물로 바쳐 말아.’
서 준경 신에 의해서 목숨을 구원 받고 지금껏 도움을 받아 온 건 사실이지만, 막상 눈앞에 보물이 있자 혹하는 게 사실이었다. 지금의 일만 어떻게 잘 넘기고 제국의 눈을 벗어나 물건을 처리 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팔자 피는 것이다. 굳이 반지를 공물로 바치고 신에게 도움을 받지 않아도 말이다.
“끄응.”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신이니까. 신이니까 당연히 일단 바쳐야 한다고 생각을 했지만, 반지 낀 손에서 느껴지는 청량감을 보자면 또 자꾸 마음이 흔들렸다. 이것만 팔아넘기면 진짜로 팔자 필 거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후. 침착하자.”
거울 앞 화장대를 손으로 짚은 채 생각했다.
제국의 포위를 피하는 와중에 무너진 신전 제단을 찾은 건 우연이다. 하지만 과연 단지 우연일까? 신이다. 신이 하는 일에 우연을 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렇다면 어떤 힘에 이끌려 그 제단을 찾았다는 것이 맞다.
‘어쩌면 이 반지도.’
신의 시험? 그럴 수도 있다.
신은 끊임없이 신도를 시험한다. 난관에 들게 하고, 꿀 같은 유혹을 하여 그 신앙을 의심케 한다. 쿤은 진심으로 서 준경을 섬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 필요성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신을 따라 목숨을 구하고 이곳까지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것이 신에 대한 시험의 일종이라면 현명하게 판단 할 필요성이 있다.
‘크게 보자 쿤.’
입술을 깨물고는 반지를 뺐다.
그리고 앞서 만들었던 제단 위에 올려놓았다. 청량하게 느껴지던 감각이 사라지니 기분이 조금은 울적했다.
하지만 이것이 옳은 판단.
믿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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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에서 깨어나고 얼마 안 있어, 동식이가 잠시 쉬었다 하자며 담배 한 가치를 내밀었다. 나야 담배를 안피지만, 마침 잘 됐다 싶어 같이 게이트 옆 작은 공터로 이동했다. 북적거리던 촬영진과 다른 보조팀 인원들은 전부 철수했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커피 하나 가지고 온다면서 보조팀이 사용하던 거처로 혼자 왔다.
“마법반지라니……”
놀랍다. 쿤의 기억과 경험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존재함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내 손에 들어오니 느낌이 달랐다. 인벤토리를 열어 반지를 꺼내 봤다. 투박한 형태. 손가락에 가져다 대니 크기가 늘어나며 쏙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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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카넬의 마법반지(3)
가치 : 700
마법 : 깨어있는 정신
봄의 기운
알 수 없음(지능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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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포드의 단검이나 금화 등과는 다른 설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마법. 아주 단순한 단어 옆으로 나열된 것들은 그 종류 같았다. 깨어있는 정신과 봄의 기운. 꽤나 서정적인 이름이다. 내가 생각한 마법은 파이어 볼이나 헤이스트 같은 것들이었으니까.
툭. 템의 설명 창에 다시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깨어있는 정신 옆으로 작은 창이 하나 더 튀어나왔다. 일정의 마법 설명창이다. 특기와는 다르게 개별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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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정신
소유주의 정신을 맑게 해 준다.
정신 간섭형 마법에 대해서 방어 능력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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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불성실한 설명이다.
저항력이 퍼센트로 나오거나, 내성 굴림 수치 정도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런 시스템에서 살아가는 건 다른 아닌 나다. 창을 닫고 아래쪽 봄의 기운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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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기운
소유주의 피로를 풀어 준다.
반지를 착용한 손을 통해 타인에게 사용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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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기운 역시 간단한 설명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조금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바로 손을 통해 타인에게 사용이 가능하다는 부분. 이 말인즉슨 반지 낀 손으로 누군가를 만지면 피로를 회복시켜 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타이 마사지 샵이라도 열라는 말일까?
좋은 듯 나쁜 듯. 타인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만을 머리에 담아 두었다.
“아래쪽 열리지 않은 마법은 지능이 20 이상 되어야 풀린다는 거 같네. 스텟 제한이라. 전형적인 게임의 형식을 따르는군.”
현재 지능은 12. 특기를 승급시켜도 13이다. 20이라는 수치는 일단 요원해 보인다. 일단 아이템 중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것도 있다. 라는 정보만 꼭꼭 눌러 담아 두었다.
“흠.”
손에 낀 반지를 가만히 바라봤다.
가치 700의 물건이다. 지금껏 나왔던 공물 중 가장 높은 수치. 위험하다 생각한 맹약 초기의 가치보다도 높다. 순진한 소녀 하나 속여서 공물 뜯어내는 쪽이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 월등히 효율이 좋다. 물론, 그것을 행하는 건 쿤의 입장이지만 무언가 복잡 미묘한 기분이다.
흔들흔들.
고개를 저었다.
일단 지금 급한 건 감성적인 접근이 아니다. 반지로 얻은 신성 포인트에 대한 분배. 앞서 스스로 포인트를 얻게끔 풀어 주었던 상황과는 다르게 지금은 쿤이 고민하여 공물을 바친 상황이다. 여기서 손을 놓아 버리면 쿤은 신에 대한 믿음을 저 버릴 수 있다. 그 스스로는 믿음이 아니라 이해 타산적 결합이라 여기고 있지만, 그와 하나였던 나는 안다. 지금까지 몇 차례나 도움을 받으며 자기도 모르는 믿음이 생기고 있다.
신앙이라는 건 별 거 없다.
필요 할 때 부르는 것이 신이고, 그 믿음이 신앙이다. 쿤은 위험 할 때면 나를 불렀고, 그것이 반복 될수록 믿음은 공고하게 쌓이게 된다.
그렇기에 다음 번 선택이 중요해진다.
861의 포인트.
과연 어떻게 써야 잘 썼다는 말이 나올까?
“일단 500은 승급에 쓴다고 해도 300이 넘게 남는군. 특기에 투자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킵?”
턱을 톡톡 치며 생각을 해 봤다.
특기 중 하나가 승급이 되었으니, 보유중인 다른 것들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급 접두사가 붙은 것들은 아마 중급이나 상급 등으로 올라가겠지. 그렇다면 나중을 대비해서 남기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툭툭. 턱을 티는 손길이 조금 빨라졌다.
“아니야. 아니야……”
일단은 쿤이 처한 지금의 상황을 도와주는 것이 좋다.
단지 500을 투자하고 끝을 내면 있어야 할 것이 일어났다 생각하고 말 수가 있다. 쿤도 일이 위험하겠거니 생각하고는 있지만 지금의 나처럼 심각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다. 게임에서 보상 경험치는 난이도와 직결된다.
500이 1000으로 늘었다면 앞으로 일어날 일이 굉장히 위험하다는 증거다.
“경고를 할 수 있는 특기가 좋겠군.”
포인트를 눌러 획득 가능한 특기를 열었다.
쓸 만 한 것들이 주르륵 나열되었지만, 확하고 와 닿는 것은 없었다. 전부 다 찍어두면 도움이 될 것들이지만 포인트는 한정되어 있다. 적당히 분배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위기. 쿤이 위기라 생각 할 만 한 특기가 필요하다.
……
죽죽 내려가며 살폈다.
“아!”
그러다 한 가지를 발견했다.
어쩌면 가장 먼저 떠올렸어야 할 특기인지 모르겠다. 쿡 찍어 설명을 살폈다.
***
하급 위기감지
낮은 수준으로 위협을 감지한다.
소유주가 주변 환경에 민감할수록 위력이 높다.
***
주인공이라면 미리미리 위기를 감지하고 대비 할 필요성이 있다.
아래의 조건이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쿤의 경험을 생각해 보면 나름대로 괜찮을 거 같다. 앞으로 다양한 일을 겪을 터. 그 과정에서 승급이 된다면 활용성이 높았다.
“그리고……이것도 하나.”
***
하급 청력
청각이 날카로워진다.
***
설명은 볼품없지만 쓰기 따라서는 얼마든지 도움이 될 수 있는 특기다. 게다가 이것은 나한테도 도움이 된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하지 않는가. 기민하게 주변과 반응해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나쁜 특기가 아니다.
“남은 포인트는 일단 뒤를 위해 남겨 주자.”
위기 감지와 하급 청력이면 쿤도 알아먹을 것이다.
자신에게 위험이 닥치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신이 보듬어 보고 있음을 나타내는 지표와 같다.
자, 보아라!
내가 이렇게 너를 보살펴 주고 있다.
그러니 냉큼 더 공물을 바쳐라.
신과 신도?
사장과 직원이라 부르는 건 어떨까.
※작가의 말
재미있게 보고 가세용~
반지의 효능!! 개보린과 타이 마사지!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