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18화 (18/240)

예정된 장소에 도착하자, 군인들이 일행을 반겼다.

선두에 선 건 별을 두 개나 단 중년인이었는데, 현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지 인상이 꽤나 험악했다. 몇 사람과 이야기를 진행하더니, 부관에게 남은 일을 맡기고는 사라졌다.

“꽤나 고압적이네. 본래 저런 거야?”

나와 동식이. 그리고 남규와 서연은 개척자(서율과 차남혁)가 사용할 간이 처소를 준비하기 위해 이동했다. 군 병력이 남아돌지만, 서로가 서로 일에 터치를 못하는 상황이라 우리가 직접 가서 준비를 해야 했다.

“꽤 많아요. 군에서는 게이트 관련 일에 민간업체가 끼어드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거든요. 게이트의 자원은 국방에 연결되는 것. 고로 자신들이 모두 처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죠.”

“주요 인력인 개척자들이 대부분 민간인일 텐데?”

“그러니까 답이 없는 거죠.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탱크를 몰고 와서 게이트를 막아요. 참 나 어이가 없어서.”

“탱크?”

“아까 그 아저씨요. 철원에 게이트 떴을 때 지역 사단에 병력을 요청했었잖아요. 탱크랑 기갑부대까지 전부 요청하는 바람에 윗선에서 아주 난리 났었죠. 한때는 그 일을 빌미로 북에서 난리난리 쳤잖아요. 도발 행위라고.”

나야 혼수상태에 있던 터라 모르는 일이지만, 들어보니 어떤 모습이었을지 훤하다. 탱크라니. 게이트에서 무슨 괴수가 출몰하는 것도 아니고 지나치게 과격한 행위다.

“여기인가?”

그 사이 우리는 배정된 처소에 도착했다.

개척자가 게이트에 진입하는 일은 꽤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그네들이야 준비 한 시설에서 바이탈을 체크하고 마음만 가다듬고 들어가면 그만이지만, 뒤에서 보조하는 이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한 가지 장비가 놓아도 들어가는 선과 선반. 바닥재에 대한 관리까지 손이 많이 간다. 특히 인천의 경우는 임시 건물을 하나 세웠다가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철수하는 바람에 마땅한 시설물이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깔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건 전부 다 들어서 아는 것이다.

동식이가 주절주절 말 하며 잡일을 시켰다.

“아저씨, 뒤쪽에 있는 B라벨 박스 좀 옮겨 오세요. 옆에 푸른 색 드럼통 있으니 한 번에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아아. 금방 갔다 오지.”

“아저씨, 여기 와서 선 좀 정리해 주세요!”

“잠깐만 자리 좀 비켜 봐.”

“아저씨 거기 삐뚤어 졌잖아요. 똑바로 해야죠.”

“아, 그러네.”

처음 하는 일이지만 굴러먹던 경험이 있다.

슥 보고 필요한 물건들 옮겨주고, 시키는 일에 반응했다. 군대도 가설병으로 갔다 왔으니 선 정리 하나는 기가 막힌다. 조금은 어설프게 처리하는 동식이를 도와서 마무리를 깔끔하게 내 주었다.

“어, 도착했나보다.”

그렇게 우리가 바삐 일하고 있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서율이를 태운 차가 도착했다. 동식이가 말하기로는 샵에 들려서 꽃단장을 하기 때문에 이리 늦은 거라고 한다. 뭔가 참 묘하다. 게이트라는 외계적인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이 하는 일은 연예인과 다를 바 없다. 이런 걸 보면 참 사람은 잘도 적응하나 싶다.

웅성웅성……

밖이 꽤나 소란스럽다.

바닥을 청소하는 와중에 슬쩍 허리를 펴서 살폈다. 서율이가 도착한 건 맞는데 단지 그것 때문에 소란스러운 거 같지는 않다. 처음 보는 차량도 꽤 있고, 민간인으로 보이는 사람도 여럿 지나다닌다. 게이트는 일반인에게 공개가 안 되는 것으로 아는데. 조금은 의아했다.

“아! 촬영이 있었구나.”

“촬영?”

“저기, 저 남자 안 보여요? 나진혁 PD잖아요. 이번에 ‘게이트로 간다.’ 프로그램 맡아서 촬영한다고 하더니, 여기서 찍네요. 어쩐지 소향 누님이 서두른다 싶더니 이런 내막이 있었구나.”

“그럼 프로그램도 대타를 뛰는 건가?”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요? 그럼 아까 그 군인 아저씨가 인상 구긴 이유도 대충 납득이 가네요. 자기네 쪽이랑 얘기가 다 되어 있었는데 교통사고 하나로 죄다 엎어졌으니……”

개척자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고, 게이트는 새로운 것들이 속속들이 발견되고 있다. 그런 관계로 지역 게이트에 대한 관할 분배가 난항을 겪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나름대로의 위치를 공고히 하려던 차에 교통사고로 일이 어그러졌으니 화가 난 것도 이해 할 만은 하다. 같은 개척자라고 해도 자기 쪽 사람과 다른 곳에서 빌려온 사람은 다른 거니까.

“캬~그나저나 저 두 사람은 진짜로 잘 어울린다. 아저씨가 보기에도 그렇죠?”

창밖에서는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었다.

서율과 차남혁이 나란히 서서서 기자의 질문에 답을 했다. 예쁘고 참한 서율이와 큰 키에 조각 같은 외모를 지닌 차 남혁은 누가 봐도 선남선녀.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솔직히 배가 아프다.

내가 서율이한테 무슨 흑심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그냥 가지지 못한 것을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배알이 꼴리는 것뿐. 젊고 멋있고 능력 좋은 남자. 누가 안 그럴까 싶다.

다만,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니 그것을 그냥 씁쓸하게 웃으며 날려버릴 줄 아는 것뿐이다. 화가 나서 씩씩 거리는 게 아니라.

“차 남혁이라. 정말 잘 생기기는 잘 생겼네. 그런데 L그룹 장남이라고? 내가 아는 그 L그룹이 맞나?”

“우리나라 대표 기업 중 하나인 L그룹. 맞아요. 저놈은 양수도 아마 금으로 되어 있었을 겁니다. 부럽다, 금 수저.”

“그룹에도 계열사가 여럿 있잖아. 설마 오너 일가 직통이야?”

“넵. 저 인간님 할아버지가 현재 L그룹의 오너죠. 형제들이 계열사를 나누어서 관리하고 있기는 하지만, 뿌리인 철강 사업에 관해서는 직계 말고는 손을 못 대게 하고 있어요. 뿌리가 튼튼해야 그룹이 잘 자란다나. 부럽죠. 나도 그런 할아버지 한 분 있었으면 이렇게 고생 안 하고 있었을 텐데.”

동식이가 푸념을 늘어놓았다.

툴툴거리는 것치고는 꽤 자세히 알고 있다. 요즘 청년들은 기업 구조에 대해서도 빠삭한 걸까. 조금은 신기하게 바라봤다.

“혹시 결혼 했다는 이야기는 없나?”

“결혼이요? 차 남혁이?”

“혹시 있었어?”

깨어나고 난 뒤 사고 기록을 살핀 적이 있다.

하지만 알아 낸 건 이름 석 자 뿐이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차 남혁이 아니었다. 조금 더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었지만 경찰은 이를 거부했다. 이미 합의가 끝난 일이니 개인 정보는 알려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억울했지만 어쩌겠는가. 틈틈이 구글링 하며 이름을 검색해 봤다. 하지만 역시나 특별하게 이 사람이라고 말 할 인물은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차 남혁을 만난 것이다.

L그룹의 장남. 아내도 나를 찾아왔을 때 미소와 결혼한 사람이 L그룹 사장의 아들이라고 했다. 혹시 이름을 잘못 안 걸까. 어쩌면 눈앞에 있는 저 사람이 미소와 결혼한 사람은 아닐까. 계속 떠오르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저씨가 우리나라 뭇 여성들 가슴에 못 박는 소리를 하네요. 저 인간이 결혼 했으면 아마 엄청나게 난리가 났을 걸요? 현대판 왕자 아닙니까? 그냥 넘어 갈 리 없죠.”

“그럼 안 했다는 건가?”

“안 했어요.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뒤로 첩을 두어서 변태적 성생활을 즐길 수도 있지만 그건 모르는 거죠. 안 그래요? 아저……씨?”

동식이가 움찔 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눈동자에 내 얼굴이 어른거린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슬쩍 고개를 숙였다.

진정하자 서 준경. 동식이가 한 말은 그저 농담일 뿐이다. 진짜로 그렇다는 게 아니다. 참아라. 참아.

“어이! 다 끝냈으면 이쪽으로 와!”

그때, 때 맞게 서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굳어있는 입매를 풀어냈다. 간신히 웃음 비슷한 게 만들어졌다. 그제야 동식이가 ‘어우……’라며 낮게 신음을 흘렸다. 꽤 표정이 무서웠나 보다.

“가자고. 뭐 해?”

얼어있는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앞장서 나갔다.

#

인터뷰가 끝나고 게이트 진입이 시작되기 전에 조금 시간이 났다.

여기서 부터는 개척자의 몫. 자잘하게 정비 해 줄 사람만 남으면 나머지는 돌아가도 좋은 일이다. 보조 팀에서는 소향과 남규가 남고 나머지는 퇴근 명령이 떨어졌다. 하지만 나는 뒤처리를 하면서 일 좀 배우겠다는 말로 남았다.

목적이야 뻔하다.

게이트를 사용 할 생각이다.

“휴. 삼촌 힘들었죠?”

그렇게 있는데 서율이가 다가왔다.

양 손에 캔 커피가 들려있다. 그러고 보니 사고 나기 전에도 둘이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사실 사적으로 대화를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조금은 묘한 기분. 건네는 커피를 받아 들고는 웃었다.

“왜요?”

“전에도 비슷한 기억이 있어서.”

“아……그때.”

서율이의 얼굴이 조금 처졌다.

멍청하기는. 괜한 이야기를 꺼냈다. 손을 흔들며 재빠르게 말을 받았다.

“하하. 괜찮아. 괜찮다니까. 내가 못나서 또 쓸데없는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네.”

“아니에요, 삼촌이 어디가 못났다고. 오늘도 들어보니까 서연 언니가 삼촌 칭찬 많이 하던데요?”

“그래?”

“네. 겉보기와 다르게 체력이 좋대요. 보조팀 일이라는 게 꽤나 일이 힘들어서 보통은 쩔쩔매기 바쁘잖아요. 그런데 삼촌은 막 주도해서 일을 처리하고, 처음 하는 사람 같지 않았대요. 동식이 보다도 낫다고 그러던대요?”

뒷말은 바짝 다가와서 속삭이듯이 했다.

인터뷰 때문에 화장을 새로 해서 그런지 처음 맡아보는 향수 냄새가 났다. 조금은 센. 그래서 더욱 아찔한 느낌이 났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었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손에 쥔 캔을 쭉 들이마셨다.

“헤. 목이 말랐나 보네요?”

“하하. 뭐 그렇지. 그보다 게이트 진입은 언제야?”

“조금 있다가요.”

“안 힘들어? 들어보니 일정이 좀 빠듯했다고 하던데.”

“사실 좀 힘들어요. 갔다 온 지 아직 2주도 안 됐는데, 또 들어가는 거거든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번 일 펑크나면 줄줄이 깨지게 생겼거든요. 미안하기도 하고……어쩔 수 없죠.”

그녀가 입술을 죽 내민 채 가볍게 툴툴거렸다.

깨진다고 하지만 그녀에게 해당사항이 있을 리 없다. 아마 회사나, 연결 된 주변 사람들 일 터.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사람들에게도 마음 쓰는 그녀가 예뻐 보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내게 다가와 털어 놓는다는 사실이 기뻤다.

이렇게 한다는 건 기대 준다는 의미니까.

물론, 삼촌 힘들어요. 라는 의미 일 테지만.

“서율아~어디 있어? 곧 들어간다. 준비해야지.”

“아, 소향 언니가 찾네요.”

“가 봐. 나도 남규랑 뒤처리 준비 하러 갈 테니까.”

조금은 힘겨운 듯 일어나는 그녀를 다독이고는 나도 엉덩이를 떼었다.

곧 게이트로 개척자가 들어 갈 것이다. 몰려 온 방송 팀은 그것을 열띤 표정과 반응으로 내보내겠지. 그리고 이는 전파를 타고 멀리멀리 퍼져나가 사람들의 환호를 불러 올 것이다. 게이트. 신비의 산물.

신세계로의 길이다.

하늘의 은총이다.

새로운 개척지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사람들의 환호가 잦아드는 뒤안길.

남들 모르게 간직하는 작은 비밀의 통로이다.

“쿤.”

곧 만나러 간다.

※작가의 말

오늘은 한 편 더 갑니다.

잠깐! 넘어 가기 전에 잊은 거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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