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15화 (15/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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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화술

조금 더 매끄럽게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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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화술에 대한 설명이다.

설명대로 말을 조금 더 잘 하게 되는 특기. 있어서 나쁠 것은 없지만, 이것이 갑자기 생성 된 이유가 조금 의아했다. 대화라면 깨어난 직후로 많은 사람들과 했다. 조엘과의 대화가 다른 이들과의 것과는 다른 특징이 있었다는 걸까?

“흠.”

분노, 냉정한 사고. 그리고 하급 화술.

셋을 나란히 놓고 생각을 해 봤다. 과연 특기가 생성되는 원리가 무엇일까. 그냥 생겨서 좋구나! 라면서 넘어 갈 수도 있지만 이를 분명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혼란이 올 수도 있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그러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그냥 늙은이의 격언이 아니다. 당면한 것부터 하나씩 정리를 못하면 나중에는 감당 할 수 없는 게 오는 법이다.

열린 특기 창을 살피며 깊이 생각했다.

“쿤이 내게 있어서 게임 캐릭터와 같다면, 나 역시 쿤에게는 게임 캐릭터와 같아. 인식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쌍방향으로 영향을 주고받음은 같지. 공물이라는 것이 경험치. 아니, 요즘 식으로 보자면 캐쉬인가? 그와 비슷하게 작용하는 거고. 그렇다면 나도……”

펜으로 종이를 톡톡 두드렸다.

그림과 선등이 복잡하게 그려져 있었다. 쿤과 나. 그리고 여러 특기들에 대해서 정리를 해 둔 것이다.

“깨어나고 난 뒤 특기 생성을 한 것은 나뿐이야. 거칠게 움직인 건 오히려 쿤 쪽이었는데 말이지. 아직 실례가 3개뿐이지만, 그렇게 결론을 내려 볼 수 있어.”

중얼거리며 종이 위에 표시를 했다.

“잠깐만. 반드시 공물과 같은 형식이라고 생각 할 이유는 없잖아. 쿤이 내게 영향을 주는 방식과 내가 쿤에게 주는 방식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 점수로 치환하는 고전 게임의 방식이 쿤이라면 나는……심즈. 그래, 심즈와 같은 건가?”

내 이름이 쓰인 곳 옆으로 줄을 긋고 심즈라 끼적였다.

심즈는 꽤 역사가 깊은 게임으로 아바타를 만들어 생활 전반에 걸친 것들을 시뮬레이팅 하는 게임이다. 정해진 테이터에 따라 특정 액션은 스킬을 획득하게 하고, 이는 반복적인 노동에 의해서 점차 발전하게 된다.

나는 내 주변 상황에 극히 분노를 하였고, 이것이 분노라는 스킬로 구현화 되었다. 그리고 그 상황을 억누르며 사고를 진행했을 때, 냉정한 사고가 만들어졌다. 이번에는 죠엘과의 대화에서 어색함을 누르고 부드럽게 말을 성공시키자 하급 화술이 생성되었다.

물론, 이건 비약일 수도 있다.

겨우 세 개 뿐인 예제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운 거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나름대로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이 된다. 내가 어떤 상황 어떤 환경에서 특정한 행위를 성공시켰을 때, 특기가 만들어 지는 것.

액션 & 스킬 타입이다.

“후우.”

기본적인 사항 말고도 생각 할 것들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특기를 보면 알겠지만, 분노와 냉정한 사고에는 등급이 붙어 있지 않다. 하급이라는 접두사라를 붙인 다른 것들과 차이가 있는 것이다.

왜? 가장 간다하게 생각 해 볼 수 있는 건 등업의 가능성이다. 하급을 중급으로. 중급을 상급으로. 하지만 그런 표시가 없는 건 1레벨이 MAX인 스킬.

“이것도 가정이지만.”

툭. 마침표를 찍으며 종이를 접었다.

안 쓰는 액자 뒤에 꽂아 놓고는 소파에 몸을 걸쳤다. 안 쓰던 머리를 복잡하게 굴렸더니 두통이 다 올 거 같았다.

우우웅. 우우웅.

꼭 누우면 전화가 오더라.

짜증 가득한 얼굴을 한 채 비적비적 일어나 외투에 넣어 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혹시 죠엘이 연락을 했나 싶어 살짝 쪼이며 살폈지만 아쉽게도 그건 아니었다.

발신자에 적힌 이름은 아내의 것.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택시를 타고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꽤 비싸 보이는 술집이었다. 입구에서 아내의 이름을 대자, 반듯하게 차려입은 종업원이 나를 안내했다. 작게 만들어진 정원의 조경수나 장식품.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목향이 조금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고급 식당은 익숙하지가 않다.

가끔 윤 이사를 따라서 이런 장소에 와 본 적은 있지만 역시나 몸에 안 맞는 느낌이다. 과시라 할까. 이만큼이나 잘났으니 알아서 돈을 내 놓아라. 이런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곳을 여유롭게 오가지 못하는 주머니 사정의 비틀린 시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다.

이런 곳에 약속을 잡은 아내를 속으로 욕하며 안내 된 곳에 발을 들였다.

드르륵.

미닫이문이 옆으로 밀렸다.

“갑자기 전화를 했으면 무슨 용건인지 말을……”

일전과 같이 쏘아주려던 찰나.

내 눈에 맞은편 자리에 앉은 한 소녀. 아니, 숙녀가 들어왔다. 곱게 내린 머리카락에 짙지 않은 화장. 하얀 블라우스로 멋을 낸.

내……딸이다.

“아빠……”

딸이 불렀다.

몽글몽글 눈가로 눈물이 차올랐다.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기억하는 딸의 마지막 모습은 과제가 많다며 툴툴 거리던 얼굴이다. 그때는 머리가 짧았는데, 지금은 꽤 길다. 화장품도 바꿨는지 냄새도 조금 다르다.

술 취한 사람처럼 걸어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서서 그녀를 바라만 봤다. 기억으로는 얼마 전이지만, 다시 본 모습은 조금 낯설었다. 가슴이 먹먹하고 목이 멨다. 눈가에 맺힌 눈물은 금방이라도 떨어 질 것처럼 데롱데롱 흔들렸다.

“주책부리지 말고 와서 앉아. 사람들이 다 쳐다보겠어.”

“……”

내 감성을 비집고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번 쏘아본 뒤 다시 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담담한. 그리고 조금은 복잡한 보이는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조금은 서운했다. 2년 반. 그렇게나 긴 시간 만에 만나는 아빠라면 일어나서 안아 줄 만도 한데 말이다.

어색해서 그렇겠지.

생각을 정리하며 맞은편에 앉았다.

소매로 눈을 슥 하고 훔쳐냈는데, 조금은 민망했다.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딸이야. 이제 만족하겠어?”

“딸. 오랜만이야. 아빠 안 보고 싶었어?”

아내의 말을 무시 한 채 딸에게 물었다.

그녀는 내 목소리에 조금 놀란 듯 보더니,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꾹 눌린 얼굴이다. 무슨 의미일까 저건.

“짐이라고 그거. 이제 와서 미소가 무슨 말을 해 주기를 원하는 건데?”

“딸이잖아. 2년 반 만에 만나는 딸인데 말도 못하게 할 셈이야?”

“흥. 어차피 그 전에도 그리 친하지는 않았잖아. 이제 와서 자상한 아빠인 척 하지 말라고.”

“……”

순간 말을 잃었다.

아내의 말이 틀리지 않다. 자상한 아빠? 아니다. 회식이다 뭐다 하면서 늦게 들어가기 일쑤였고, 좋은 옷이나 화장품을 사 준 기억도 거의 없다. 친구가 아빠와 멋지게 차려입고 데이트 했다고 말 하면, 그건 다 가식이라고 둘러댔다.

마음과 행동은 다른 것이다. 그녀를 세상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자신 할 수 있지만, 과연 그렇게 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 할 수가 없었다. 변명이라면 차고 넘치도록 있다. 돈 벌기 위해서. 야근 때문에. 회식 때문에. 허리가 아파서.

하지만 정말로 할 수 없었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흔들 뿐이다.

그래서 아내의 말에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됐고, 도장이나 찍어 줘.”

“……”

아내가 이혼 서류를 테이블 위로 올렸다.

제대로 된 인사조차 없이. 병원에서 깨어난 뒤 보았던 모습보다 더 거리가 멀어져 있었다. 이제는 정말로 남은 정마저 없는 듯싶다.

“기다려. 내가 분명히 말 했잖아. 미소가 어떻게 사는지 확인 한 뒤에 찍어 주겠다고.”

“그래서 데려왔잖아. 애가 안 좋아 보여? 아니면 뭐, 맞고 살기라도 하는 거 같아? 그런 망상 좀 버려. 다 피해의식에서 나오는 거라고. 당신만 빠지면 우리는 아주 행복하다고.”

“정말이니, 미소야? 네 엄마 말 대로 잘 지내고 있는 거야?”

미소를 보며 물었다.

그녀는 앞에 놓인 물 잔만 손가락으로 돌리고 있다. 이 자리가 어색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아빠를 친 사람과 살고 있는 죄책감? 설마 이 자리가 귀찮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아빠.”

그러다 미소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물 잔을 돌리던 손을 딱 멈춘 채 나를 봤다. 읽기 힘든 저 모습 속에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갈까.

“나……잘 살고 있어요. 그이도 사고 뒤로 정신 차리고 잘 대해 줘요. 학교도 나갈 수 있었고, 지금은 부전공으로 법 쪽도 공부하고 있어요. 많이 억울하고 힘든 건 알지만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정말 인 거니? 억지로 결혼했다든지 그런 건 아니고?”

“……그럴 리 없잖아요. 처음에는 조금 망설이기는 했지만, 만나보고 나니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요. 나중에. 아주 나중에 모두가 괜찮아 질 때가 오면 아빠한테도 소개시켜 줄게요.”

“하지만 미소야……”

“아빠.”

그녀가 날 부르고 큰 눈으로 봤다.

속이 바싹바싹 마르는 기분이었다.

“괜찮아요. 정말로. 이제는 맘 편히 털어 버리고 아빠의 삶을 사세요.”

숨이 꽉 막혔다.

내 인생. 그래, 어쩌면 그것이 편할 수도 있겠지. 쿤도 있겠다 보신하면서 내 갈 길 찾아가면 얼마든지 멋진 미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딸 아이 가는 길도 살펴주지 못한 채 그러는 게 의미가 있을까? 과연 그런다고 내가 행복 할 수 있을까?

앞에 놓인 물 잔을 들어 벌컥벌컥 마신 뒤 세게 내려놓았다.

쿵! 하고 울리는 소리에 미소가 눈데 띠게 놀랐다.

“미소야, 솔직하게 말 해. 다 그놈이 시킨 거지? 아니, 여기 있는 여편네가 그렇게 말 하라고 했어? 그래야 쇼핑 할 돈이라도 두둑이 떨어진다고!?”

목소리가 올라갔다.

웃으며 지나치던 종업원들이 우리 쪽을 바라봤다.

“당신, 목소리 좀 낮춰요. 사람이 교양 없게 대체 왜 그래요?”

“교양!? 교양! 언제부터 우리가 교양을 그리 따졌다고 그래? 그쪽 집안에 들어가니 배운 사람처럼 행동하고 싶은가 보지? 남편 팔고 딸 팔아 그렇게 돈 벌어 행동하니 좋아?”

“무,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해요? 누가 누굴 팔았다고. 미소도 방금 그랬잖아요. 잘 지낸다고. 망상하고 다르게 풀린다고 무작정 부인하지 좀 말아요.”

이성이 띡 하고 끊길 거 같았다.

그녀의 말이 맞는 걸까? 정말로 내 상상과 맞지 않는 일 때문에 이렇게 분이 치밀어 오르는 걸까? 인정 할 수 없는 현실에서 억지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걸까?

“……”

그때, 흔들리는 미소의 눈동자가 내 시야에 잡혔다.

옅은 물기가 배어 있는 눈동자. 여전히 담담하지만 그 안에 깃들어 있는 어려움을 읽을 수 있었다. 왜? 왜 어려워하는 걸까. 무슨 일이 있어서 내게 말을 못하고, 이렇게 행동을 하는 걸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라도 있는 거니?”

갑자기 냉정한 사고가 발동 한 거 같다.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낮아진 목소리로 미소를 향해서 물었다. 그녀의 몸이 움찔 하고 흔들렸다. 대답은 듣지 않아도 충분했다.

“혹시 돈 때문이니?”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당장 떠오르는 것은 돈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묻자, 미소 옆에 앉아있던 아내가 고개를 획 돌리며 그녀의 허벅지를 쥐었다. 나름 숨기려 한 거 같지만 쿤과 하나로 엮인 내 신체는 전보다 기민했다.

“아빠……”

“말 해 보렴. 이 아빠가 그래도 나름대로 능력이 있어. 돈이 문제라면 어떻게든 해결 해 줄 게.”

“그만 해요. 난 정말 괜찮아요.”

“미소야. 아빠가 정말 괜찮다니까. 해결 해 줄 수 있어.”

“하지 마요. 난 정말로 괜찮으니까. 그냥 이대로 잘 지내요, 우리. 더 이상 힘들지 않게.”

“미소야……!”

“당신, 이제 그만해요. 그만 얘기하고 이혼 서류에 도장이나 찍어요.”

미소에게 다시 물으려 하는데, 아내가 막아섰다.

장식으로 놓인 촛대를 들어서 이 여자를 찍어 버리면 어떨까? 평소 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이 불쑥 솟구쳤다. 목을 찌르고 옆으로 당겨서 경동맥을 끊어 버리면 피가 철철 나올 텐데. 몸이 화끈할 정도로 충돌이 거세게 돌았다.

“그만! 둘 다 그만해요! 싸우는 모습 보여주려고 날 부른 거예요?”

하지만 뒤이어 나온 미소의 외침에 충동이 쏙 들어가고 말았다.

그녀는 눈물을 그렁그렁 단 채 나와 아내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제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이해 할 수 있었다.

미소 저 여린 아이가 중간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말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말 하지 못하는 심정은 오죽할까. 그런데 아빠라는 건 철없이 무작정 믿으라고 말하기만 하니, 눈물이 안 날 수 없었을 것이다.

침착하자, 서 준경.

무작정 닦달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미소는 미소 나름대로의 상황이 있는 것이다. 그게 돈이든 아니면 다른 상황이든 지금 힘으로 밀어 붙여서는 안 된다.

심호흡을 하고 아내를 돌아봤다.

“사인해서 우편으로 보내 주지.”

서류를 받아 들었다.

어차피 그녀와의 인연은 끝이 났다. 미련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다시 고개를 돌려 미소를 봤다.

“미소야.”

“……네, 아빠.”

“조금만 참고 기다려. 아빠가 어떻게든 해 줄게.”

“아빠, 난……”

“괜찮아. 그리고 괜찮아 질 거야. 우리 미소도, 아빠도. 다 괜찮아 질 거니까 걱정 하지 마.”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고 말 하지 않았다.

그냥 다짐과 같은 말만 뱉어냈다. 나는 미소를 억누르고 있는 것이 뭔지 알아 낼 것이다. 그리고 그걸 반드시 되돌릴 것이다.

대가가 무엇이든. 얼마의 시간이 흐르든.

반드시. 나는 그걸 이루고야 말 것이다.

“우리 미소 그때는 웃으면서 다시 보자.”

서 준경. 내 이름을 걸고 하는 맹세다.

[스킬 맹약(盟約)이 생성되었습니다.]

※작가의 말

첫 스킬이 등장했네요.

이 맹약은 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스킬입니다.

예약연재의 힘! 투척하고 갑니다.

꼬물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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