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7화 (7/240)

쿤은 이마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에 정신을 차렸다.

황급히 물을 닦아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정신이 몽롱했다. 뺨을 두어 차례 두드리며 주변을 살폈다. 오래 된 제단과 부서진 신상. 그제야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기절했던 건가?’

뿌옇게 차 있던 가스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기절하기 전의 상황으로 봐서는 그대로 죽어야 정상이다. 헌데, 멀쩡히 깨어난 것도 모자라서……

‘몸이 회복되었다고?’

추격전으로 떨어진 체력과 상처 등이 전부 회복되어 있었다.

땀에 찌들어 있는 속옷까지 벗어 사타구니 속 작은 상처까지 살폈지만 모두 멀쩡했다. 게다가 묘하게 평소와는 다른 힘도 느껴졌다. 아랫배에 묵직하게 자리한 기운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이라면 평소 못 하던 일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 같았다.

“음?”

그렇게 몸을 더듬던 쿤은 자신의 손등에 못 보던 문양이 새겨져 있음을 발견했다.

일종의 저울로 보였다. 이런 문신을 새긴 적 있나 싶지만 기억에는 없는 일이다. 곰곰이 생각하다 제단 쪽을 바라봤다.

“저울. 설마 당신께서 나를 구원해주신 겁니까?”

부서진 신상 아래쪽으로 저울 모양이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누군가 기도를 올리던 이곳은 저울을 심벌로 삼는 어떤 신의 제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신의 힘이 쿤 자신의 몸을 회복 시켜준 게 분명했다. 손등에 새겨진 문양과 말 도 안 되는 회복이 이를 증명했다.

“소인 쿤 타이, 자비에 감사를 드립니다.”

쿤은 즉시 무릎을 꿇고 제단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신성한 힘은 숭배 받아 마땅하다. 그 이적의 힘으로 생명을 구함 받았으니 머리를 조아리는 것에 망설임은 없었다. 몇 번이고 머리를 숙이며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세운 뒤 번쩍이는 눈으로 제단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름 없는 신이여. 제 작고 힘없는 몸은 이제 곧 죽음 앞에 놓이게 됩니다. 뒤에서는 굶주린 사냥개가 쫒고, 산 아래 넓은 들 위에는 검과 창을 든 제국의 정찰병들이 득실거립니다. 이대로 그냥 나가면 당신께서 살리신 몸은 곧 갈가리 찢겨 개밥으로 뿌려질 터. 부디 한 번의 기적을 더 내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쿤이 다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제국의 포위망은 집요하다. 몸이 회복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대로 도망 갈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만약 신이 어떤 이유가 있어서 자신을 살린 것이라면 한 번의 도움을 더 바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우웅.

그리고 그에 화답하듯 그의 손등이 빛나기 시작했다.

저울 모양의 문양. 마치 튀어나올 듯 환하게 발광하고 있었다.

“이건……”

신의 이적을 직접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쿤이 떨리는 눈빛으로 빛나는 문양을 손으로 건드렸다. 그러자 빛이 한 차례 더욱 거칠게 뿜어져 나오더니, 허공에 무언가를 그려냈다.

***

이름 : 쿤 타이 / 서 준경(첫 번째 단계) 종족 : 인간

힘 : 12 민첩성 : 10

체력 : 15 지능 : 12

스킬 : 없음

특기 : 하급 생명력, 하급 단검술, 분노, 냉정한 사고

신성 점수 : 50

***

쿤 타이가 멍하니 허공에 떠 있는 글자들을 바라봤다.

모두 고국의 문자다. 읽지 못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 옆에 적힌 이름은 누구의 것이며 첫 번째 단계는 무엇인가. 힘 등의 옆으로 적힌 건 능력을 수치화 한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에 있는 신성 점수는 또 뭐란 말인가?

위기를 탈출 할 수 있는 신의 힘을 바랐는데 나오는 거라고는 영문 모를 숫자들뿐이다.

“신이시여,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제게 길을 밝혀 주십시오!”

다시 한 번 머리를 박으며 외쳐 보았다.

하지만 별 다른 변화는 없다. 허공에 뜬 이상한 글자만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 그대로 잠시 생각하던 쿤이 벌떡 일어났다.

‘생각하자. 무슨 이유가 있음이 분명해.’

신은 의미 없는 짓을 하지 않는다.

눈앞에 나타난 창이 무언가 의미가 있다면 분명 지금의 위기를 탈출시켜 줄 희망이 될 것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눈앞의 창을 살폈다.

‘서 준경. 이름이겠지? 내 옆에 있다는 것은……아!! 혹시 이것이 신의 이름? 모셔야 할 신의 이름을 이곳에 적어놓으신 건가?’

생각해보니 그것밖에는 답이 없다.

‘서 준경’ 독특한 발음이지만 신이라 그런가보다 하면 이해가 된다. 그 이름을 몇 번이고 반복하며 기억하려고 애를 썼다.

‘그 다음은 힘과 지능……내 능력을 이렇게 표시한 거겠군. 의외로 몸이 민첩하지 못하다고 나오네. 하긴 그 동안 제대로 단련을 안 했으니 당연한 얘기겠어.’

쭉 내려가며 읽었다.

스킬은 없다고 나오는데, 쿤은 이것이 정확히 뭘 말하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당장 파악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 그냥 넘겨서 다음 단계인 특기를 살폈다. 단검술과 생명력. 그리고 조금은 생소한 두 가지 능력이 있었다.

단검술은 용병일을 하면서 배워 둔 기술이다.

어릴 적에 따라다니던 용병단 단장이 길 가다 뒈지지 말라면서 대충 손짓 조금 가르쳐 준 적이 있다. 생명력이야 워낙 잡초같이 살아온 몸이니 특기라 말 할 수 있고. 하지만 분노와 냉정한 사고는 한 번에 다가오지 않는다. 앞의 것은 특기라 보기에 조금 이상했고, 뒤의 것은 자신과 맡지 않는다.

“자세한 설명이라도……워!”

무심결에 창을 손으로 만진 쿤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분노’에 손을 대는 순간 앞으로 창 하나가 더 튀어나온 것이다.

***

분노

소유자가 분노에 휘둘릴수록 능력의 변화가 극심하게 나타난다.

힘, 민첩성, 체력 증가. 지능 하락. 유지 시간은 정신 상태의 변화에 기인하며 등락폭도 감정의 고저에 따른다.

***

설명을 보니, 어째서 특기에 들어가 있는지 이해 할 수 있었다.

내친김에 다른 것들도 하나씩 누르며 살폈다. 단검술과 생명력은 예상대로의 설명이었고, 냉정한 사고력은 조금 의외의 내용이었다. 아무리 좋게 봐도 그 자신은 냉정한 사고와는 거리가 멀다. 나름대로 통박을 굴리고 눈치를 재지만 열이 받으면 그냥 치고 보는 타입이니까.

“아, 그럼 이것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능력이라면 신이 준 것이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쫒기는 와중에 냉정하게 상태를 살피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다. 평소라면 조금 더 초조하고 분기를 드러내야 정상이니까. 이 모든 것이 신의 이적. 그렇게 생각하니 확실하게 납득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서 준경 신이시여.”

꾸벅. 꾸벅. 두 번이나 제단에 고개를 숙였다.

“그럼 마지막 신성 점수가 나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 줄 힘이라는 건데……”

냉정한 사고가 된다고 지금 상황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건 아니다.

유일한 희망이라면 마지막 신성 점수.

‘신성은 신성력의 약자일 테고, 점수가 뭘 가리키느냐가 중요한데. 신이 내리는 점수? 내가 행동을 평가해서 이곳에 기입하는 건가? 그럼 난 50점 밖에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뜻인가?’

생각을 해 봐도 딱히 명확한 것은 없다.

쿤이 고개를 끄덕이며 창으로 손을 뻗었다. 특기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무언가 알려 줄 수 있는 게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

하급 탐지 - 100

하급 회피술 - 100

하급 은신 - 100

하급 지도 읽기 - 100

……

***

창 아래로 목록이 주르륵 펼쳐졌다.

전부 하급이라는 접두사를 달고 있다. 본래 가지고 있던 단검술과 생명력에 달린 것과 같이. 그리고 후미에 달린 숫자는 모두 100. 이것이 신성 점수를 나타낸다는 것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왜 100이지?”

가지고 있는 점수는 고작 50이다.

이 중 무언가를 얻으려 해도 50이 부족하다.

‘뭔가 점수를 올릴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당연한 일이다.

신은 아무 이유 없이 도움을 주지 않는다. 목숨을 구하고 이런 능력을 주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주어야만 한다. 신이라면 공물. 그리고 눈앞에 있는 것은 제단이었다.

쿤이 황급히 제단으로 다가가 먼지를 털어내고 부서진 신상을 세웠다.

쫒아오는 추격자들이 급하지만 지금은 이게 우선이었다. 쓸고 닦고. 옷으로 문대기를 한참이나 했더니 그럭저럭 괜찮은 제단의 모습이 갖춰졌다.

‘아직 50점 그대로군. 그렇다면……’

제단에 무언가를 올려야 한다는 말이다.

뭘까. 대체 뭘 올려야 서준경 신은 은혜를 내려주실까. 쿤이 미간을 깊게 판 채 생각했다. 신이 바라는 것은 인간과 다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내어 줄 수 있는 것은 정말로 한계가 정해져 있다.

‘내 몸뚱이를 제외하고는 옷가지가 전부. 아! 아니지 아직 쓸 만 한 게 하나 있어.’

쿤이 허리춤에 데롱데롱 달려있는 단검을 뽑아 들었다.

꽤 오래전에 전장에서 부딪히던 전우에게서 받은 물건이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내구성이 좋고 손에 착 감기는 맛이 괜찮아 애용하던 물건이다.

아쉽다면 아쉽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었다.

‘미안하다, 벨포드.’

전우의 이름을 떠올리며 단검을 제단 위에 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새하얀 빛이 제단 안을 가득 채워갔다.

※작가의 말

1. 서준경은 쿤타이를 기억하나, 쿤타이는 서준경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2. 스텟과 스킬의 변화는 두 사람이 공통되게 나타납니다.

재밌게 보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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