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
여정의 끝
곳곳에 건물이 무너진 흔적이 역력하다.
전쟁의 화마가 삼키고 간 마을.
엘윈 마을이다.
그래도 다행히 직접적인 피해까지는 입지는 않았다.
이 곳은 통로에서 꽤나 먼 곳이기도 했고 자경단도 있었으며 마침 지나가던 마수 사냥꾼단들이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피해는 입기는 했기에 지금은 거기에 대한 복구가 한창이었다.
"아니! 남자가 그런 거 하나 못 들고 도대체 뭘 하는 거에욧!"
앙칼진 중년 여성의 목소리.
그 소리에 무너진 집의 잔재를 치우던 남자가 쩔쩔 맨다.
"아... 안나... 이게 그래도 무겁고 막 그래서... 내가 하기는 하는데..."
"아니. 그래도 이이가 투덜거리네? 지금 할 일이 얼마나 태산인데 밤낮으로 할 거에요?"
아이를 안고 있던 안나가 그 소리에 뭔가 또 잔소리를 하려던 찰나.
"아... 아니. 잠깐. 애 좀 맡아 봐요."
"으...으으...ㅇ?"
온 몸에 먼지를 묻힌 채 그저 소처럼 일하던 토마스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잔재를 내려놓았다.
그녀의 말은 곧 법.
그날의 저녁밥이 안나의 기분에 따라 좌우되는 터라 토마스가 반항할 수 있는 여지는 없었다.
응애- 응애- 응애애애애애애-
안나의 품에서 떨어지자마자 자지러지게 울어 젖히는 아이.
하지만 안나는 유령이라도 본 듯 어디론가 허겁지겁 달려가는 중이었다.
"뭐...뭐야? 저 여편네 진짜."
다짜고짜 달려가는 그녀를 보며 어이없다는 투로 중얼거리는 토마스.
그리고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꼈다.
헉!!!
****
와락-
"아이고~ 이게 누구야!!! 설마 유령은 아니겠지?"
애 얼굴을 그저 주물락펴락하는 그녀.
"하하하하. 유령이라뇨? 잘 지내셨죠?"
그녀의 눈앞에는 수염이 덥수룩한 체스가 떡 하니 서있었다.
"어이쿠우~ 아주 어른이 다 되어버렸네? 이젠 뭐 한 살림 차려도 되겠어?"
요리조리 체스의 몸을 살피는 그녀.
"이 여편네야! 체스!!!!!! 어디 다 큰 애의 몸을 그렇게 떡 주무르듯이 주무르고 있어?"
뒤에서 아기를 안은 채 헐레벌떡 뛰어온 토마스가 버럭 외쳤다.
말은 안나를 책망하는 듯하지만 체스를 발견한 그의 얼굴은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체스~ 이 녀석! 그렇게 연락도 없고! 어디 좀 보자~ 이 놈 덩치가 더 커진 것 좀 보게~"
연신 감탄을 뱉어내는 토마스.
"아니. 이 양반이~ 애 떨어뜨릴라! 제대로 안 봐요??? 빨리~"
예나 지금이나 바뀐 게 없다.
여전히 구박에 구박을 당하는 토마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실로 오랜 만에 만난 체스를 보느라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지금 그게 문제야? 아니 이럴 게 아니지. 지금 이 소식을 얼른 마을에 알려야지~"
아이를 안고 있던 토마스가 갑자기 어디론가 헐레벌떡 뛰어갔다.
"애는 내려두고 가야지!!!!!!"
"그게 문제야아아아아아아아아???!!!"
버럭 소리를 지르며 뛰어가는 그를 보며 안나가 혀를 찼다.
"어휴... 저 양반은 아빠가 되어도 철이 안 들어... 그나저나 그래 어떻게 지냈니?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이야기를 좀 해봐 그 동안 그래."
얼른 체스를 앉히며 말을 시키는 안나.
그때 체스의 옆에 서있는 어떤 근육덩어리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에? 누구...?"
'익숙한데...? 어디서 봤더라......'
분명히 익숙한데...
그녀가 고개를 가웃거렸다.
****
"맙소사......"
달란트라니.
체스의 부모라니...
안나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리고는...
"에라이! 이 인간아!"
퍼어어어억-
냅다 그의 뒤통수를 휘갈기는 그녀.
"네가 뭔 생각으로 여길 왔냐???"
안나가 씩씩거리며 그를 연신 타박한다.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진정해요. 진정해~"
엉겁결에 체스가 그녀를 말리는 꼴이 되었다.
그 와중에도 손과 발을 휘두르며 정신이 없는 안나.
"넌 더 맞아야 해! 엉? 더 맞아야지!"
악-! 악-! 악-!
뜬금없는 매 찜질에 그저 맞고만 있는 달란트였다.
하긴 충분히 맞을 자격이 넘치지.
달란트는 별다른 반항도 못 한 채 그저 두들겨 맞을 뿐이었다.
****
이미 축제 분위기다.
엘윈 마을의 유일한 술집은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술잔을 기울이느라 정신이 없다.
오늘 만큼은 흠뻑 적셔도 되는 날이다.
체스의 귀환이라니.
짠- 짠-
부어라!
마셔라!
와하하하하하하하하-
가게가 떠나가라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
체스와 달란트는 이미 만취 상태였다.
그리고 그 소음이 자못 시끄러운 듯 찡그려진 표정.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듯하다.
꼬리를 탕탕 치며 자신의 기분을 표현하는 자.
저 위 창틀 부근에 엎드린 채 그들을 내려다보는 헬캣이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
체스가 술잔을 든 채 연신 즐거움을 터뜨리고 있는 중이다.
저 녀석을 보게 된 것도 참 말하자면 길군.
참... 어쩌다 보니 만나게 되어서 온갖 걸 다 해봤네.
그래도 이제 다 끝이 났다.
환수계와 인간계는 다시 예전의 그 모습으로 돌아갔다.
더 이상 그런 야욕을 부리는 자들 또한 없다.
모든 곳은 평화를 되찾았고 이제는 일상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는 나도 좀 쉬어볼까?
그러다가 지겨워지면 또 다른 곳으로 가지 뭐.
하아아아아아아암-
갑작스레 밀려오는 하품.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며 사르르 눈을 감는 헬캣.
그때 자신을 덥석 안는 자.
-뭐냐?
"잠깐만요~"
그를 안은 채 몰래 밖으로 나가는 체스였다.
****
어둠이 내려앉은 곳에서 술집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는 체스와 헬캣.
-뭐냐? 왜 막 자려는 날 끌어낸 거냐?
"뭐 그냥요~ 고마워요. 쭉 함께 해줘서. 아마 헬캣 님이 없었으면 아무 것도 해내지 못했을 거에요."
쑥스러운 듯 자신의 콧잔등을 긁으며 이야기하는 체스를 보며 헬캣이 피식거렸다.
-뭔 헛소리냐? 네가 잘 했으니 다 된 거지. 여하튼 모든 결과는 네가 만든 것 아니냐?
"에이~ 사람이 칭찬을 하면 딱 그렇게 들으면 되지. 또 그렇게 틱틱 쏜다."
-요게 이게 머리 좀 굵어졌다고 맞먹으려고 하네?
헬캣이 위협적으로 앞발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게 헬캣 나름의 애정 표현 임을 체스는 안다.
"으흐흐흐. 쑥스러워 하시기는. 여하튼 고맙습니다!"
-그래. 그래. 알았다. 이제는 좀 다 내려놓고 편안하게 살아라.
"흐흐. 네. 으차~ 후련하네요~~~"
둘의 시선은 여전히 웃음소리와 함성소리가 뒤범벅이 된 술집에 향해 있었다.
항상 저런 즐거움 그리고 행복 만이 가득 넘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아마도 자신들이 하나씩 만들어 가야겠지?
어느 덧 절정이 되어 가는 밤.
그렇게 그들의 시간은 걸음에 걸음을 더해가며 밤하늘 가득한 별빛은 더욱 그 자태를 뽐내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