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
다시(6)
어...? 어...?
당혹감에 떨리는 열쇠의 눈빛.
그의 눈앞에 선 자는 원래대로 돌아온 체스.
"이...이럴 리가 없는데."
말까지 더듬을 정도로 심히 당황해 버렸다.
"왜? 놀랐나?"
그런 당황하는 모습이 자못 재미있다는 듯 체스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텁-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열쇠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체스.
"하나부터 열까지 네 말이 다 맞을 지도 몰라.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고 따지고 보면 그런 방향이 더 나을 수도 있겠지."
"......에???"
체스의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열쇠의 표정이다.
"네 말이 틀린 말은 아니란 말이야. 솔직히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인간들 그것들 나도 참 꼴 보기 싫은 것도 많아. 그런데 말이야. 확실히 달라. 모든 인간들이 그렇지도 않을 뿐더러 그들은 그 안에서 또 그렇게 살아가는 걸."
"하지만 너도 그렇게 생각은 했잖아."
"물론 네 말에 잠시 그렇게 생각은 하긴 했었어. 그래. 어차피 속 시끄러운 것들 뭐 이 기회에 다 정리도 하고 아예 깔끔하게 말이야.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까지 할 건 아닌 것 같아. 그래서 생각을 바꾸었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체스의 손에서부터 흘러 나오는 빛.
그 빛은 이내 열쇠의 온 몸을 감싸 안기 시작했다.
윽윽윽-
몸을 비틀어 거기에서 빠져 나가려는 그.
그때.
체스의 말.
"받아 들여. 난 더 이상 너에게 휘둘리지도 않을 거고 인간들이 그렇게 되는 것도 보지 않을 거야. 원래대로 돌아갈 시간이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사르르 흩어지는 열쇠의 몸.
체스의 몸을 한 그는 더 이상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공기에 몸을 맡길 따름이었다.
사륵-
체스의 손바닥에 남은 열쇠.
체스는 그걸 물끄러미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이내 달란트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고마워요. 아빠."
"응? 내가 왜?"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이렇게 되지 못했을 거에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이유.
달란트 때문이었다.
달란트가 없었더라면.
그가 자신의 생명력을 뽑아내지 않았더라면.
아마 체스는 절대 돌아오지 못했겠지.
열쇠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 갇힌 채.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겠어요."
열쇠를 불끈 쥔 체스가 자신이 들어온 곳으로 성큼 걸음을 옮겼다.
****
"... 안되겠다. 키린. 가자."
갑자기 부르사이가 결심이 선 듯 키린을 불렀다.
"응? 뭘? 어디로 가?"
"인간계."
이미 결심이 선 듯한 그녀의 단호한 표정이다.
"인간계를 왜 가?"
"이대로 그럼 인간들이 멸망하는 걸 가만히 지켜만 볼 거야? 인간들이 미쳐 버린 듯 날뛰는 환수들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아니야. 절대 못 막아."
"흐음. 뭐 네 말도 맞긴 한데 그렇다고 우리가 막상 또 끼어들자니 애매하기도 하고 말이야."
"아씨. 이 자식은 도대체 말을 뭘 그렇게 하는 거야? 그냥 도와줄 거면 도와주면 되지. 확 그냥. 안 따라와?"
히익-
팔을 치켜들며 으름장을 놓는 부르사이의 기세에 일순 키린의 어깨가 움츠러 들었다.
그리고 마지못해 둘이 움직이려는 찰나.
체스가 달란트와 함께 돌아왔다.
"야야! 저 열쇠부터 막아. 인간계로 갈 게 아니라 저 열쇠를 막아야 하네. 젠장... 오늘 여기서 뼈를 묻겠구만..."
부르사이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다가올 전투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키린의 등을 쳐가며.
****
저벅저벅 걸어오는 체스.
자신들에게 다가오던 그가 갑자기 방향을 획 튼다.
그대로 호아류에게 향하는 체스의 발걸음.
그리고 그는 호아류와 마주 보고 섰다.
체스와 똑바로 마주 친 호아류의 얼굴.
그저 무표정한 얼굴에 감정의 변화라고는 단 1도 읽을 수가 없다.
스윽-
그런 그를 보며 체스가 무언가를 내민다.
그의 손에 들린 건 다름 아닌 열쇠.
처음으로 호아류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걸 왜 나에게?"
"당신의 진정한 역할. 그걸 할 때야."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는 투의 체스의 말.
그 말에 호아류가 나지막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게 너의 결론인가?"
"그래. 이게 나의 결론이야. 예전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야."
그렇게 열쇠가 호아류의 손으로 건네졌다.
"그렇다면 관여자 당신이 원하는 대로."
중재자의 역할.
그 옛날 신이 넘겨준 또 하나의 의무.
실상 호아류가 가진 힘의 모든 근원은 바로 이것을 위한 것이었다.
모든 것을 원복시킬 수 있는 힘.
그리고 두 세계의 균형을 맞춰 나가는 일.
하지만 이 마지막 임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하는 일.
말 그대로 생명 자체를 바쳐야 하는 일이었다.
잠시 고개를 돌린 호아류의 시선이 키린과 부르사이에게로 향했다.
이제 남은 주인은 둘.
하지만 뭐 둘이 알아서 잘 하겠지.
걱정은 딱히 되지 않는다.
미련도 딱히 있지도 않고.
자신의 운명은 늘 그렇게 만들어져 있었지 않은가.
"시작하겠다."
슈아아아아아아-
단 한 마디 말과 함께 호아류의 전신이 빛에 물들어 간다.
그리고 뿜어져 나오는 그 빛.
점점 그 경계를 넓혀간다.
쿠구구구구-
갑작스레 시작된 진동.
"어? 어?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부르사이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에 반해 키린은 상대적으로 차분한 표정이긴 했으나 그 역시 놀라기는 매한가지.
'그런 것이었나. 어쩐지 우리와 좀 다르다 싶더니...'
확실히 호아류는 자신들과는 좀 달랐다.
그랬기에 저렇게 지금껏 그저 가만히 팔짱만 낀 채 있던 것이었다.
'흐음...'
호아류가 뿜어내는 저 빛.
자신의 모든 것을 내뿜는 듯한 빛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빛은 자신들을 모두 집어 삼켰다.
지금 그들이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이 곳을 넘어 환수계 전역으로 또 인간계로까지.
****
챙-
챙-
챙-
크아아아악-
커억-
온갖 비명이 난무한다.
이미 시체는 쌓일 대로 쌓여 마수들의 놀이터가 되어 버린 이 곳.
순식간에 들이닥친 마수들로 인해 인간계는 말 그대로 풍전등화였다.
창칼을 들 수 있는 모든 이가 분전에 분전을 거듭하고는 있지만 글쎄...
그나마 그들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들이 없었더라면 이미 수백 번도 더 먹히고도 남았을 정도의 마수들의 수였다.
"막아!!! 이 곳이 뚫리면 위험하다!!!"
여기저기서 고함이 터져 나온다.
어떻게든 가족을 지키겠다는 의지.
자신들이 사는 이 세상을 지키겠다는 의지.
인간들은 죽을지언정 자신이 사는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채 사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헉-헉-
랭킹 48위의 사만다.
두 자루의 낫을 워낙 잘 쓴 탓에 사팔이라 불리는 그녀.
그런 그녀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건 한 자루의 낫 뿐.
이미 어느 마수를 베어 넘기느라 박살이 나버린 까닭이었다.
헌데 지금 그녀의 눈빛이 절망감으로 물들어 간다.
쌔애애애애액-
마수의 날카로운 집게가 자신을 순식간에 양분이라도 할 듯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탓이었다.
막을 수 없어.
...젠장.
그리고 그 집게가 그녀의 허리를 가볍게 가르려는 그 순간.
공포심에 너무 사로잡힌 나머지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응?
헌데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슬그머니 한 쪽 눈을 뜨는 그녀.
그와 동시에 들어오는 주변의 풍경.
마수들이 마치 신기루 마냥 흩어지고 있다.
"이... 이게 다 무슨 일이야???"
하지만 까닭을 아는 이 하나 없다.
그들 또한 이런 상황을 처음 겪기에 그저 멀뚱멀뚱 주위를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마수들은 하나 둘 사라져 갔다.
영문은 알 수 없지만.
****
호아류가 눈을 떴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열쇠가 부스스 먼지가 되어 사라져 간다.
"이제 다 끝이 났다. 모든 것은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아."
"나머지는 남은 자들의 몫이다. 나의 역할은 이걸로 끝이니."
말이 끝남과 동시에 호아류의 몸은 조금씩 옅어져 가기 시작했다.
"...호아류..."
그제야 모든 것을 안 부르사이가 다가와 그의 몸에 손을 갖다 댔다.
"이 자식. 이런 게 네 역할이었으면 진작 말을 해줬어야지... 젠장..."
동료를 잃는 슬픔.
부르사이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어차피 우리는 그런 존재들이다. 저마다의 역할이 다른 법이고 난 내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 동안 즐거웠다. 그럼 다시 보는 그 날까지 건강해라."
사락-
이별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호아류의 몸은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아..."
한숨을 푹 내쉬는 키린.
이제 또 뭔가 해야 할 일이 태산일 듯했다.
하지만 그 전에.
"넌 이제 인간계로 돌아가는 것이냐?"
그의 질문이 향한 곳은 체스.
"그렇죠. 이제 집에 가야죠."
"그래. 고생했다."
군더더기 없는 짧은 마무리였다.
"뭐 나중에 놀러오시던가요~"
"후후. 그래. 알았다. 다음에는 이런 저런 얘기를 좀 하자꾸나."
"네. 뭐 그럼 언젠가 다시 만나요~"
그렇게 그들은 헤어졌다.
마지막 인사와 함께.
****
이제 통로.
이 곳을 지나면 다시 인간계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런데 왜 안 돌아가고 계속 제 옆에 있는 거에요?"
체스의 질문이 그의 옆을 향했다.
그 곳에는 헬캣.
여전히 체스의 옆에 찰싹 달라 붙은 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서 있다.
-휴. 네가 걱정이 되어서 말이지. 또 헛짓을 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말이야. 게다가 네 애비가 사고라도 치면 그걸 또 수습해야 할 것 아니냐?
그래.
체스의 옆에는 달란트 또한 함께 서있었다.
어느 새 일행이 한 명 더 늘어버린 그들이었다.
"어휴..."
둘 다 철이 들려면 멀었다 멀었다.
체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말해 뭐해요... 에휴..."
그때.
"아휴... 고객님!!!!!!"
체스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응?
이 곳에서 자신을 찾을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리고 그의 시선에 들어온 2명의 남자.
온통 검정 일색의 복장을 한 2명의 남자였다.
'아... 정산할 게 남아 있었지. 지독한 것들.'
누군지 바로 알 것만 같았다.
예전에 몇 번이고 마주쳤던 자들이 아닌가.
잠시 후 체스 앞에 선 2명의 남자.
"고객님. 왜 이렇게 멀리까지 가시는 거에요? 이거 저희가 찾기가 너무 힘드네요."
"...그런데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 여기까지는 어떻게 오는 거에요...? 원래 막 채무 때문에 인간계며 환수계며 다 다니고 막 그러시는 건가요?"
확실히 체스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만도 하지.
이들은 어찌 됐거나 인간이 아닌가.
"그건 영업 비밀입니다. 그런 건 알려 하지 마시고 정산을 시작하죠. 보자... 남은 게... 연체이자까지 하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열심히 끄적거리기 시작하는 남자.
피식-
그 모습에 체스의 한쪽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그리고는 이내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하는 그.
슈아아아아-
찬란한 빛이 체스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큼지막한 마정석 2개였다.
"여기요. 이거면 아마 충분하고도 남을 거에요. 남는 돈은 거기 협회에 쟁여두세요. 제가 찾으러 갈 테니까."
헉-!!!
"이... 이건..."
그걸 받아 든 남자의 이마에서 땀이 한 방울 또르르 흘러 내린다.
손에 들린 값어치가 쉬이 상정이 안 될 정도다.
이 정도면 지금 있는 빚을 다 갚고도 남을 정도 만큼인데...
"그거면 되죠? 나머지는 정산해서 알려줘요~"
그리고 이내 볼일이 다 끝났다는 듯 통로로 향하는 체스와 나머지 일행들.
"......"
잠시 멀뚱히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추심조.
허나 이내 정신을 차려 체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고객님~ 그럼 서류 받아 가셔야죠~!!!"
언제 어느 상황에서건 프로 정신이 투철한 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