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246화 (246/249)

#246

다시(5)

사아아아아-

순간 과거의 체스로부터 생명력이 터져 나온다.

같은 공간의 세 명의 온 몸을 물들여 가며 온 사방에 퍼진 그 기운.

이이익...

하나 막았다 싶었더니 이번에는 이 녀석이냐...!!!

한쪽 눈썹이 기괴하게 찡그려진 열쇠의 얼굴.

아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건 봄이 왔음을 알리는 기운들 마냥 몹시도 따스하건만 이건 왜 이리 자신의 근원을 건드려 오는지.

그 사이에도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 그것이 점점 몸을 잠식해 온다.

어떻게든 이 기운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이리저리 애를 쓰며 몸부림을 치지만 그럴수록 이건 더욱 자신의 몸을 옥죄어 온다.

"이... 좀 놔라 좀...!!!"

당혹감으로 물들어 버린 얼굴이 바알갛게 보인다.

하지만 발그스레한 것도 잠시.

순식간에 모든 몸이 변해간다.

그 순간.

변화는 과거의 체스에게서도 시작되었다.

마치 급속도로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듯 눈 깜짝할 사이에 성장을 해버리는 체스의 몸.

쑤우우우우우-

****

둥둥~

누운 채 다리를 꼬고 있는 체스.

한참을 아늑하고도 몽롱한 상태였다.

자신의 정신이 마치 어디론가 가버린 것 마냥.

열쇠와 하나가 된 순간부터 줄곧 이 상태였다.

이제는 좀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끝이 없는 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기분이 아직 몸 끝에 맴도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기분이 마냥 싫지는 않은 듯 체스는 그저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

"편하긴 한데 말이지."

엎었다 뒤집었다 다시 돌린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안 가 결국 가만히 누운 채 곰곰이 생각에 빠져든다.

열쇠가 했던 말들에 대해 곱씹어 보는 체스.

그가 했던 말들을 따져보면 인간들은 결국 먹혀야만 하는 존재들이지.

따지고 보면 모든 생명체 중에 그렇게나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존재들도 또 없잖은가.

그래.

맞아.

뭐 살인이니 약탈이니 그딴 것들...

게다가 한때 자신한테 보이던 그런 시선들.

그럼에 따라 자연스레 생겨나던 인간들에 대한 감정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차라리 마수들이 넘치는 세상이 나쁘지 않지.

솔직히 말이 나와서 말인데 어느 정도 정리도 필요하고 말이지.

이미 자신의 범주를 벗어나 버린 일.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디 한 번 망해버리던가.

열쇠가 한 말이 딱히 틀린 것도 없고 말이다.

다 자업자득인 셈이지.

그러게 처음부터 좀 잘 했더라면 이런 일도 진작에 벌어지지 않았겠지.

한 놈 한 놈들 전부 너나 할 것 없이 그저 자기 욕심 채우는데 급급하더니.

"뭐 내 알 바냐? 됐어~ 나는 할 만큼 했어. 이제는 나도 편하게 좀 쉬어야 할 때기도 하고 말이야. 빚 갚는 것도 지쳤다 지쳤어."

에라 모르겠다며 다시 벌러덩 공간에 누워버리는 체스.

그는 다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혼자 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

룰루랄라~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한참을 비비적거리던 체스.

문득-

어떤 기억들이 체스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떠올리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기억들.

그리고 절로 자신의 얼굴에 미소를 띠우게 만드는 기억들.

"그때 참 즐거웠었는데."

엘윈 마을의 사람들.

어릴 적부터 톡톡히 신세를 졌었지.

좋은 일이건 슬픈 일이건 모든 걸 함께 한 사람들이다.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람들.

왜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그들이 떠올랐다.

자신이 엘윈 마을을 떠날 때만 해도 사람들이 참 걱정을 많이 해줬었지.

물론 몰래 빠져나가긴 했지만.

"키키킥. 아저씨는 아직도 아줌마한테 매일 혼나고 있겠지?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참 진상이었네. 매번 거기에서 취하는 바람에. 고 기집애 아직 일은 잘 하고 있겠지? 별일은 없겠지 뭐~"

대꾸해 주는 이 하나 없다.

하지만 체스는 무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기억을 끄집어 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창 과거의 추억에 빠져 혼잣말로 떠들며 박장대소를 치던 체스.

문득.

또르르-

갑자기 그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또르르 흘러 내린다.

음?

...뭐야?

자신의 관자놀이를 적시는 듯한 뜨뜻미지근한 눈물에 손을 가져가는 체스.

그는 슬쩍 그 부위를 문지렀다.

"...뭐야? 이 즐거운 때에..."

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안구 가득 차오르는 그의 눈물.

도대체 왜 인지 왜 지금 이 즐거운 이 상황에 되레 눈물이 나는지 본인조차 알 수 없다.

그리고 갑자기 후욱 드는 생각.

이건 조금 전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는 다르다.

지금은...

오히려 그들이 보고 싶다.

몹시도.

벌떡-

체스가 갑자기 몸을 확 일으켰다.

어딘지 모르게 심각해 보이는 그의 표정.

그는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아니야.

비록 인간들이 그렇지만 모든 인간들이 그렇지는 않아.

모두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하루하루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들도 있고...

나쁜 이들도 있지만 모두가 나쁘지는 않다.

그리고 설혹 나쁘다 한들 뭐 어때.

그 안에서 바뀌는 사람들도 있고 모두 그렇게 살아가는 걸.

열쇠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이런 식으로 사라져야만 하는 암적인 존재들이 아니야.

열쇠의 생각을 부정하기 시작한 체스.

결심이 섰다.

돌아가야겠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품으로.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지?"

방향을 분간할 수가 없는 이 곳.

"너무 어둡잖아. 이거."

체스는 자신이 어떻게 나가야 할 지 어디로 가야 할 지 방법을 전혀 알지 못했다.

헤엄도 쳐보고 달려도 보고 날아도 보았지만 언제나 원점이다.

말 그대로 아예 갇혀 버린 것이다.

그때.

흘러 들어왔다.

한 자락의 빛이.

자신도 모르게 거기로 끌려가는 체스의 몸.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왠지 저 빛으로 향하면 모르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둥둥~

"팔을 저어라~ 다리를 저어라~"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열심히 다리와 팔을 휘저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체스.

확실히 목적지가 있으니 생각 만큼 오래 걸리는 것 같지 않다.

자석에 끌려가듯 빛으로 향하는 체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자신을 이끌던 빛 사이에 다다랐다.

슬며시 자신의 팔을 빛으로 갖다 대는 체스.

"아... 이건..."

정확히 콕 집어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몹시도 그리운 느낌이 든다.

마치 자신과 연결이 된 듯한 이 빛.

순간.

체스의 손길을 느끼기라도 하는 양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빛.

빛이 더욱 짙어졌다.

"어...? 어...? 어...?"

체스의 눈동자가 떨린다.

온 공간으로 뻗어나가며 파아아아아아 터져가는 빛.

그리고 체스가 당황하는 사이.

순식간에 뻗어 나간 그 빛은 이내 체스의 몸은 물론 모든 공간을 하나로 만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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