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
다시(3)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아이.
"아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인데 말이 좀 심하시네요?"
정색이다.
"어...??? 어??? 아니다. 아니지."
갑자기 툭 던져진 아이의 말에 오히려 당황은 달란트의 몫이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말이었다.
"이렇게 인물도 좋고 착하고 한 너를 혼자 내버려 두면 그거야말로 나쁜 아빠 아니냐? 나도 너 만한 아이가 있는 입장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걸?"
스스로가 자신의 욕을 하는 지도 모르고 어느 새 아이의 입장을 대변하는 달란트.
그런 그를 아이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에휴. 아저씨가 뭘 알겠어요? 우리 아빠는 바쁘다구요. 뭘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엄마가 바쁘다고 했어요."
'내가 바빴었나? 체스가 요만했을 때라면 보자... 그때는 거의...'
어쩌다 보니 흘러 들어가게 된 인간계.
거기에서 어떤 묘령의 여성을 만나 반하게 된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태어난 게 바로 체스였으니.
그렇게 자신이 하려던 것도 잊어버린 채 살았다.
아니 오히려 도망을 쳤다는 게 더 올바른 표현이겠다.
허나 그것도 잠시.
이내 환수계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 그리고 그리움이랄까 그런 감정들이 뒤섞이니 점점 그 쪽으로 눈이 쏠릴 수 밖에 없는 자신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소흘해질 수 밖에 없는 자신.
물론 자신의 아내에게는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그저 자신을 믿어주던 그녀.
그런 그녀의 사후.
그는 도망치다시피 환수계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이 곳에서 어느 새 장성해 버린 체스를 만나버렸다.
시간이라는 게 참 상대적이다.
자신은 엄연히 환수.
그렇기에 생명이 끝나는 시점이 언제인 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런 환수의 시간의 테두리 안에서의 삶만 생각을 하던 자신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아이가 그 짧은 시간 동안 자신에 육박할 정도로 클 것이라고는 단 일절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인물이며 덩치는 또 어찌나 훤칠한지.
역시 환수계에서 준수한 편에 속하는 자신의 얼굴을 닮아서 그런지 너무나 흡족하게 잘 생긴 모습이었다.
게다가 더욱 놀란 것은 관여자.
관여자라는 존재가 되어버린 자신의 아이.
단지 환수의 자식이 아니라 인간의 자식이 아니라 세계를 좌지우지할 존재가 되어 버렸다.
자신이 제대로 된 부모의 역할을 못했음에도 잘 자라준 아이.
그러니 괜히 제 풀에 찔려 입 밖으로 감히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속으로는 대견하기 그지 없는 아이였다.
그런 자신이 이 곳까지 오게 되었다라...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달란트 속에 내재되어 있던 무의식의 발현.
이제 와서 아빠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의 이유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느 틈에 들어오게 된 관여자의 정신세계.
그 속에서 찾아낸 자신의 아이.
그 아이는 어릴 적 모습 그대로였다.
귀엽고 앙증맞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만 같던 그 모습 그대로 말이다.
'후...'
결국 자신에게 남겨진 마지막 숙제가 바로 이것이었나 보다.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달란트가 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 입술을 슬쩍 열었다.
****
아이는 이미 자신의 눈앞에 있는 달란트에게서 흥미를 잃어버린 채였다.
다시금 혼자 만의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
그런 아이를 달란트가 지긋이 쳐다보았다.
"체스야."
달란트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온화한 목소리.
"??????"
고개를 들어올리는 아이.
아이의 눈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안 갔어요? 왜 계속 여기에 있는 거에요? 집이 없어요?"
"아니야. 그런 게 아니란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달란트의 눈에는 애정이 가득했다.
"이상한 아저씨네. 왜 남의 머리를 쓰다듬고 그래요?"
아이는 자신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는 달란트의 손을 치우려 했다.
따스함이 느껴지는 그 손길이 싫지는 않지만 뭔가 가슴 한 구석이 몽글몽글해지는 듯한 느낌에 간지러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달란트는 자신의 손을 치우지 않았다.
대신 오히려 자신의 손을 통해 기운을 뿜어내는 달란트.
사아아아아아아아-
처음 아이가 느꼈던 그 기운.
따스하고도 애정이 가득 찬 그 기운.
헌데 기운이라 하기에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저건 뭐지?
따뜻하고 몸 전체를 가득 안아주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긴 하는데.
뭐랄까...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이런 느낌이라...
그래.
생명.
생명이다.
맞다.
지금 달란트는 체스를 되돌리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하는 중이었다.
허나 단지 자신의 기운을 이용해서 되돌릴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게 아니다.
이것은 자신의 온몸을 던져야 가능한 일.
그렇기에 그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은 자신의 생명력 그 자체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구아아아아아-
달란트의 온 몸을 가득 채운 생명력 그 자체.
그리고 동시에 아이의 온 몸을 가득 덮어가는 달란트의 기운.
"와~~~ 이게 뭐지??? 이게 뭐에요???"
아이의 눈이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이런 건 처음 본다.
자신의 손이며 몸을 연신 움직여 가며 아이는 달란트가 뿜어내는 생명의 기운을 붙잡으려 하고 있었다.
후훗-
그 모습이 자못 귀여운 듯 살짝 미소를 머금은 달란트.
하지만 그의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꽤나 힘겨워하는 그의 표정.
생명력.
환수의 근간이자 모든 생명체의 근간.
그건 흔히들 알고 있는 상중하단을 돌려서 되는 게 아니다.
그보다 더욱 깊숙이 자리한 몸 속 깊고도 깊은 곳.
온 몸의 모든 것이 시작되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 곳에서부터 끌어내는 생명력.
아마 보통의 환수들이라면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보통은 끌어내기는커녕 느낄 수조차 없는 그런 기운이니.
하지만 달란트 정도의 환수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자신의 생명력까지 끌어내며 체스를 되돌리려 하는 중이었다.
후훗.
힘겨워하는 가운데에도 달란트는 지금까지의 표정 중 제일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근데 아저씨. 어디 아파요?"
문득 이상함을 느낀 아이가 달란트를 바라보았다.
쉿-
입가에 손가락을 올리며 아이의 입을 막는 달란트.
아이의 눈가에는 의아함이 가득했지만 달란트의 행동에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그를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사아아아-
사아아아아-
사아아아아아아-
그가 뿜어내는 생명력의 색이 한층 더 짙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를 비추던 빛을 덮어버리며 공간 전체를 자신의 생명으로 가득 채운 바로 그때.
"멈춰!!!!!!"
누군가가 난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