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
다시(1)
관여자의 눈이 향한 곳.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수십 여 개의 화면이 떠올라 있다.
같은 장면은 하나도 없다.
수 많은 화면 속에서 보여지는 곳은 각기 다른 곳.
저마다 다른 장면을 흘려 보내는 각각의 장면이었다.
끼야아아아악-
싫어어어어어어어어!!!
대부분의 화면에서 흘러 나오는 건 처참한 비명 소리.
그리고 누군가가 누군가를 찢어 발기는 듯한 소리.
확실한 것은 모든 장면이 비추는 것은 처참한 살육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었다.
인간들.
지금 관여자가 보고 있는 것은 인간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이었다.
관여자.
그는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지금 자신이 만들어 놓은 상황을 만끽 중이었다.
자고로 반드시 보아야 할 구경거리가 불구경 그리고 싸움구경이라고 했던가.
그걸 이 먼 곳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또 얼마나 색다른 재미인지.
가끔씩 몸까지 들썩여가며 움직이는 게 점점 흥이 돋나 보다.
이미 한쪽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 관여자.
그러던 와중.
문득 관여자의 눈이 빛을 발했다.
몇 군데의 장면에서 예상치 못한 움직임이 보인다.
반전.
실망하려던 찰나 반전이 보이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호오~
약간 벌려진 입술에서 가볍게 흘러 나오는 탄성.
"이거이거~ 재미있어지네~"
꼴깍-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킨다.
하긴 일방적으로 당하는 장면도 계속 보면 질리기 마련.
이제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들이 만들어진다.
"야야! 거기서 그렇게 하면 어떡하냐? 어휴. 저 멍청한 놈. 얼레? 저긴 또 왜 저래. 하~ 참나. 답답해 죽겠네. 이거 내가 나갈 수도 없고 말이야~"
연신 감 놔라 배 놔라 삿대질까지 해가며 쉬지 않고 중얼거리는 그였다.
이대로라면 아예 장면에 빠져들겠는데?
거의 장면에 밀착한 채로 얼굴을 바싹 갖다댄 관여자.
주먹도 불끈 쥐었다 폈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그는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그리고 바깥쪽.
장면을 바라보는 관여자를 바라보는 주인들.
"정말 이대로 가만히 넋 놓고 있어야만 해???"
부르사이가 역정을 냈다.
보아하니 호아류는 뭔가를 알고 있는 투다.
하지만 그는 이 곳에서 철저히 방관자일 뿐이다.
하아...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이대로라면 두 세계의 앞에 펼쳐진 길은 필멸 밖에는 없거늘.
분명히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리 행동하는 연유를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하다못해 배코라도 도움이 되었더라면...
부르사이의 눈이 저편에 있는 배코에게로 향했다.
"에헤헤~ 여기는 하얗고 또 하얗고 저기는 까맣고 또 까맣고~"
바닥에 주저앉아 혼자 중얼거리는 배코.
정신줄을 아예 놓아버린 녀석이었다.
이 녀석이 제 정신만 차리더라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도 같은데...
허나 저런 상태이니 딱히 뭘 할 수도 없고 그저 답답하기 그지없는 부르사이였다.
그때.
구석에서 느껴지는 움직임.
망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뻗어 있던 달란트가 마치 유령처럼 스르르 움직이기 시작했다.
"??????"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로 냅다 달려가는 막시멈.
"야. 너 괜찮냐?"
달른트의 몸 구석구석을 요리조리 살피기 시작하는 막시멈.
순간.
푸왁-
달란트가 자신의 팔을 잡은 막시멈을 강하게 뿌리쳤다.
쿵-
"...아니. 왜...?"
그만 바닥에 주저앉아버린 막시멈.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달란트를 쳐다보는 막시멈의 얼굴에는 당혹감 만이 떠올라 있었다.
"...어디 가냐...? 나도 못 알아보는 녀석이."
****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뭔가가 느껴진다.
옛날의 추억을 떠오르게 만드는 듯한 뇌 속으로 직접 울려 퍼지는 그 소리.
저 소리가 왜 나오는지 그것의 정체 또한 모르겠지만 마치 자신을 꺼내 달라고 얘기하는 듯하다.
달란트는 그저 앞으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자신을 바라보는 몇 개의 눈동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 한 번도 그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아니 반 쯤 무아지경에 빠진 듯 오히려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게 맞는 표현 같다.
그렇게 그는 수십 걸음을 걷더니 앞에서 멈춰 섰다.
정확히는 관여자가 만들어 놓은 그 기운의 장벽 앞까지 말이다.
뭘 하는 것이지?
여전히 그를 쳐다보고 있는 주인들.
궁금하기는 하나 별다른 말은 않은 채 그저 쳐다볼 뿐인 그들이었다.
하지만 다 의미 없는 짓이다.
이미 수십 번도 더 해본 것이 아닌가.
어차피 저렇게 해봤자 씨알도 안 먹힐 것을.
그때.
스르륵-
힘 없는 동작으로 팔을 스르륵 들어 올리는 그.
그리고 그의 펼쳐진 손바닥이 관여자가 만들어 놓은 기운에 가볍게 맞닿았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
순간.
변화가 일어났다.
슈와아아아아아아-
딱 달란트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열린 기운.
응??????
저리 간단한 방법이...
모두의 눈에 경악이 떠올랐다.
그 찰나 달란트는 그 안으로 거침없이 발걸음을 이어갔다.
순식간에 빨려드는 듯 그 안으로 들어가버리는 달란트의 몸.
어엇.
황급히 정신을 차린 모두가 그 안으로 뛰어들기 위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불과 눈 한 번 깜박이기도 전의 시간이건만 그 사이에 닫혀버린 그 기운.
관여자가 허락한 자는 단지 달란트 그 뿐인 듯했다.
쾅쾅쾅쾅-
"이봐! 들려???"
들어갈 수만 있으면 어떤 것이라도 해보겠거늘...
이미 닫혀 버린 건 다시 열릴 생각을 않았다.
"이거 도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또 어떻게 들어간 거야???"
서로의 얼굴에 떠오른 의문.
하지만 거기에 대답해 주는 이 하나 없었다.
단지 호아류 만이 팔짱을 푼 채 전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 관여자.
순간 그의 눈에 놀람이 떠올랐다.
관여자의 눈에 들어온 광경.
분명히 널부러져 있던 녀석이었는데 저 녀석이 어떻게 들어온 것이지?
분명 자신은 허락한 적이 없거늘 왜 어떻게 어떤 이유로 이렇게 들어온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너는 어떻게 들어온 것이지?"
하지만 들려오는 답변은 없다.
대신 발을 질질 끌며 걸어오는 그 자.
흥미가 돋는다.
딱 봐도 정상이 아닌 듯한 몸뚱아리 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금도 볼 게 넘칠 정도로 있으나 관여자의 호기심은 이미 달란트에게로 향해 버렸다.
"너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아니지. 죽었으면 움직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겠지. 그나저나 어떻게 들어온 것인지 알 수가 없네. 이거."
그 사이 어느 새 관여자의 앞까지 다가온 달란트.
??????
'뭘 하는 것이지...?'
그때.
관여자의 얼굴에 궁금함이 떠오른 사이.
넋이 반쯤 나간 듯한 달란트가 관여자를 덥석 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