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240화 (240/249)

#240

침입(1)

시작은 관여자가 서있는 곳에서부터였다.

구우우우웅우우우우우웅-

깊고도 깊은 환수계의 저 밑바닥에서부터 들려오는 진동.

그 진동에 몸이 절로 떨린다.

직접 육안으로도 느껴질 정도로 강한 진동.

어엇-

바깥에 서있던 자들의 몸이 일순 휘청거릴 정도로 흔들거린다.

심지어 관여자가 있는 곳을 뚫고 들어가려던 자들도 균형을 못 잡을 정도로.

-체스! 정신을 차려! 이대로라면 무너진다!!!

헬캣의 외침이 허공에 울린다.

하지만 의미 없는 외침일 뿐.

관여자에게는 와닿지 않는 목소리일 뿐이었다.

"비켜!"

화르르르르륵-

일순 엄청난 불길이 치솟는다.

그와 동시에 순식간에 빛을 잃어가는 부르사이의 꼬리깃.

본디 치유의 힘으로 사용되는 부르사이가 자신의 깃을 사용하면서까지 관여자의 행동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흐아아아아압-!!!

그와 동시에 지상에서 펼쳐지는 시리도록 푸른 빛의 빙절.

키린 또한 넋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쿠과과과과과과-

오히려 이제야 나서는 게 이상할 정도로 몰았던 기운을 떨쳐내는 둘.

둘이 쏘아낸 기운이 일거에 몰아치는가 싶더니 그대로 관여자가 있는 곳에 직격했다.

쿠와와와왕-!!!!!!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온다.

...성공인가?

공중에 뜬 부르사이 그리고 지상에 있는 키린의 눈매가 동시에 가늘어졌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였다면 진작 이런 고생하지도 않았겠지.

역시나다.

관여자가 있는 곳은 멀쩡했다.

아니 오히려 너무 멀쩡해서 화가 치밀어 올 정도다.

"이익... 호아류! 너 진짜 아무 것도 안 할 거야???!!!"

부르사이의 불똥이 호아류에게 불쑥 튀었다.

"난 중재자다. 이건 내 소관이 아니지."

"이런 미친 놈이... 너 정말 두 세계가 합쳐져도 상관이 없다는 거야??? 이대로라면 인간계가 무너지는 건 시간 문제인데도??????"

"그래. 난 상관 없다. 나의 역할은 너희를 중재시키고 최종 결론을 내리는 자일 뿐. 이미 만들어진 것들에 대해 간섭하는 존재가 아니다."

"...... 널 오랫동안 봐 왔지만 이 정도로 냉정할 놈일 줄은..."

학을 떼는 부르사이였다.

철저하게 방관으로 일관하는 호아류였다.

"제기랄... 저걸 어떻게 해야 막을 수가 있지?"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으며 생각에 잠겨 보지만 마땅히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 사이에도 관여자에 의해 두 세계는 점점 하나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

관여자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한 그때.

변화의 시작은 통로부터였다.

쿠과가가가가가가가가-

지축의 변화는 금세 나타났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하나가 되어가는 두 세계.

그리고 두 세계가 연결된 경계 부근.

환수계에서 통로로 들어가는 곳들.

인간계에서 통로가 끝이 나는 부분.

항거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아예 존재 자체가 흩어져 가는 그것들.

옅어져 간다.

두 세계의 연결고리를 담당하던 통로라는 것들이 유명무실해져 간다.

각지의 통로들.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것은 인간계의 푸르디 푸른 환경들.

환수계와는 아예 딴판인 모습이다.

지극히 평화로운 모습의 인간계.

늘 생존과 죽음 만이 난무하던 환수계에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던 평화로운 모습이다.

저 너머에 먹이들이 있다.

굳이 자신들끼리 죽고 죽이지 않아도 손만 뻗으면 구할 수 있는 먹이들이 온 천지에 널려 있는 곳이다.

일순 경계 근처에 머무르던 환수들의 눈매가 날카로워진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통로에 있던 자신들을 가로막던 제약이 사라져 감을.

크르르르릉-

크르르르릉-

낮은 울음소리.

다가올 살육에 대한 쾌락에 젖어버린 울음소리다.

저마다 환수 특유의 낮은 울음소리를 흘려가며 한 발자국 씩 앞으로 내딛는 모든 환수계의 환수들.

통로를 넘어 환수들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

그간 피폐해질 정도로 피폐해진 인간계.

마수들이 사라짐에 따라 그들의 생활 또한 바뀌어 버렸다.

지금까지야 마수들이 나타남에 따라 그걸 사냥해 획득한 마정석으로 모든 걸 생활하던 인간들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들이 한순간에 사라지자마자 인간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삶을 제대로 영위할 수조차 없었다.

밤이 다가오고 어둠이 깔리면 늘 길을 환하게 밝혀주던 가로등조차 켜지 못하는 암울한 상황.

삶의 질 자체가 바닥까지 확 떨어져 버린 것이다.

헌데 그 때보다 더욱 암울한 상황이 펼쳐졌다.

통로가 있음직한 부근에 보이는 인간계 너머 환수계의 풍경.

어떤 곳은 뜨거운 열기가 확 뿜어져 나온다.

어떤 곳은 뼈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기가 확 뿜어져 나온다.

어떤 곳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수목이 우거진 곳.

어떤 곳은 몽환적인 안개가 가득 찬 곳이다.

환수계의 각각의 지역에 연결된 통로.

그것들이 옅어져 감에 따라 벌어진 꿈만 같은 상황.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본 적조차 없는 마수들이 쏟아진다.

그리고 그 근방을 지나던 행인 혹은 근처에 살던 거주민들.

그들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재앙이었다.

마구 닥쳐오는 어둠의 물결들.

마치 물을 만난 양 미친 듯이 날뛰는 환수들의 물결이었다.

하급 환수들부터 상급의 환수들까지 종류는 각양각색.

그들은 그렇게 인간계로 넘어오게 되었다.

아주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

통로가 있던 바로 근처의 조그만 마을.

듬성듬성 풀로 얽히고 설킨 그저 그런 수수한 지붕의 집들이 모인 마을이다.

대충 모양새로 보아하니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로 몹시도 가난해 보이는 그런 집들.

헌데 지금 그런 마을이 난리가 났다.

쿠구구구구구궁-

꿈틀꿈틀- 꿈틀꿈틀-

굵기는 성인 남자 5명 정도를 합쳐놓은 듯한 굵기다.

땅 위와 지하를 오가며 자신의 매끈한 몸통을 마구 굴려가는 커다란 환수.

회전을 거듭하는 그 몸에 달린 성인 남자 하나 정도의 팔에는 이미 인간들이 꽉 잡혀 있었다.

"사...살려...!!! 으...으......"

고통스러운 듯 잔뜩 일그러진 얼굴.

중년의 남성은 자신의 몸을 파고든 마수의 발톱을 어떻게든 빼려 했으나 미약한 인간의 힘으로는 택도 없는 일이다.

이대로는...

이대로는...

"여보!!!!!!"

순간 지상에서 들려오는 절박한 목소리.

아내의 목소리다.

그저 이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줄곧 일이나 하며 하루하루 먹고 사는 데 열중한 탓에 유난히 늦게 결혼을 한 자신이었다.

그런 그가 불과 한 달 전에 살림을 합치게 된 여자.

그녀가 자신을 보며 다급하게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한창 깨가 쏟아져도 모자랄 판에...

그는 자신의 몸이 이런 상황임에도 애써 웃음을 지으며 어서 당신이라도 도망 가라며 손을 훠훠 내저었다.

"여보~ 어서 도망가~ 자네라도 살아야지~~~~~~"

절박한 하지만 애써 담담하게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하는 남편의 목소리였다.

바로 그때.

와그작- 와그작-

뼈가 박살이 나며 갈려나가는 소리.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높은 비명소리가 마을을 울렸다.

그리고 얼마 후 마을은 폐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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