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
관여자(2)
춤을 추는 배코의 손가락.
사아아아아아-
여전히 움직이지 못하는 관여자.
이건 안 봐도 척이다.
모든 것은 갖추어졌다.
이제 남은 건 그의 정신.
'모든 게 내 것이다!'
흡-
눈을 부릅뜬 배코가 활짝 펼쳐진 자신의 두 손을 콰악 오므렸다.
좌아아아아아아아-
순간 배코의 눈앞에 펼쳐진 다른 세상.
온통 어둠으로 뒤덮인 곳에 점점이 뭍어 있는 허연 빛들.
'흐음. 이게 이 녀석의 정신 상태인가? 그걸 그렇게 먹힌단 말이야? 하긴 그렇게 됐으니 더 쉽게 되긴 했지만. 크크크크.'
끝이 어딘지 알 수는 없다.
단지 배코는 무언가가 있음직한 곳으로 발을 내딛을 뿐이었다.
****
아하하하하하-
푸르게 펼쳐진 초원.
거기에 들려오는 행복한 아이의 웃음소리.
"체스~ 그렇게 뛰면 다쳐~"
"엄마~ 엄마~ 얼른 나 잡아봐~"
"아유~ 얘도 참. 왜 그렇게 빨리 뛰니?"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채 얼른 엄마를 재촉하는 아이.
반면에 허리를 숙인 채 숨을 고르는 엄마.
남자아이를 따라잡는 게 힘에 부친 듯 보이는 그녀였다.
이제 한 12,3 살 정도 되었을까?
딱 그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아이다.
"어휴. 힘들어 죽겠네. 당신~ 얼른 쟤랑 좀 놀아줘요~ 이이는 놀러 나왔으면 애랑 좀 놀아줄 생각도 하고 해야지. 누워서 빈둥거리기만 하고 있어~"
반쯤 잠이 든 남편에게 타박을 하는 아내.
그녀는 뛰어다니던 길을 되돌아 간 후 누워있는 남편을 흔들었다.
"어우... 잠이 너무 솔솔 오네."
그제야 눈을 어슴프레 뜨기 시작하는 남편이다.
으갸갸갸갸갸갸갸-
앓는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힘껏 편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체스~ 8살 정도나 되었으면 혼자서 놀고 해야지. 엄마를 왜 그렇게 못 괴롭혀서 안달이냐?"
......8살?
믿을 수가 없다.
저 덩치.
저 단단해 보이는 몸.
저런 아이가 고작 8살이라고...?
도대체 뭘 얼마나 잘 먹였길래 아이가 저렇게나 자랐단 말인가...?
그때.
"아직 8살치고는 작다 작아~ 좀더 많이 먹여야겠구나~ 으흐흐."
우렁찬 남자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부모의 곁으로 다가온 남자아이가 입을 뺴죽거렸다.
"칫. 나도 잘 먹고는 있단 말이야. 나도 빨리 커서 아빠처럼 될 거야."
그 말에 남자아이를 양껏 들어 올리는 남자.
아하하하하-
"이 애비를 닮고 싶냐? 그러면 얼른 뛰어놀고 더욱 많이 먹어야지~ 안 그래? 여보. 으하하하하핫."
"어휴... 얼마나 잘 먹는 줄 알아요? 매일 밥값 대는 것 만으로도 허리가 휘청거릴 지경이라구요."
"그래. 나무 껍데기라도 잘근잘근 씹어 먹을 나이지. 으흐."
부비적- 부비적-
남자가 아이를 힘껏 끌어 안은 채 자신의 덥수룩한 수염을 마구 비벼댔다.
"아~ 따거. 따거~"
투덜거리는 아이.
그 모습을 보며 미소짓는 엄마.
호탕하게 웃어제끼는 아빠.
행복함이 가득 차다 못해 흘러내릴 정도로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
"저기군."
배코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광경.
몹시도 행복해 보이는 하루.
드넓은 초원.
소풍을 즐기는 온 가족.
세 가족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한 떄를 보내고 있는 저 곳이었다.
타닥-
흐음~
얇은 콧소리를 내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배코.
그 외에 다른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열쇠라고 특정 지을 만한 것 또한 보이지 않는다.
"좋아. 그럼 이게 저 관여자 녀석의 정신 세계일 것이고 지금 이 때가 저 녀석 인생의 가장 행복한 때렷다?"
열쇠와 합쳐지며 자신의 자아를 잃어버린 관여자였다.
열쇠가 보이지 않는 게 한켠으로 이상하긴 하지만 필경 하나로 동화되어 버린 탓일 것이다.
보자...
그렇다면 저기 추억 속의 아버지에게 안겨 하하호호거리는 저 녀석만 처리하면 되는 것이겠군.
배코의 몸에서부터 진득하고도 짙은 기운이 흘러 나왔다.
전방을 아우르는 그 기운.
그리고 넘실넘실 파도를 타던 그 기운은 그대로 아이가 있는 곳으로 전달이 되었다.
살기.
이것은 살기다.
순간 아이를 안고 어기야 둥둥 놀아주던 아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누구냐!"
몸을 홱 돌리며 일갈을 지르는 아이의 아빠.
도저히 그냥 묵과할 수 없는 살기였다.
게다가 오롯이 자신의 아이에게 쏟아지고 있는 살기가 아닌가.
그 모습을 본 배코.
그의 눈이 반달처럼 확 휘어졌다.
"호오~ 환수였었어?????? 그렇다면..."
남자 너머의 아이를 넘겨다 보는 배코.
알겠다 알겠어.
왜 저렇게 관여자로까지 될 수 있나 싶었더니 다~ 이유가 있었군.
아하하하하하하-
"그것까진 몰랐는걸?"
배코의 맑은 웃음소리.
허업-
그 순간.
숨을 들이키는 남자.
자신은 환수이기에 결코 모를 수가 없는 상대.
주...인...
"...배...코...?"
"그래그래~ 맞아~ 낄낄낄."
"...당신이 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남자.
하지만 배코는 굳이 설명을 해주려 하지 않았다.
어차피 기억 속의 단편들.
그 조각들일 뿐.
"뭐 굳이 알려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기억은 기억답게 사라락 사라지면 되지~"
스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일순 배코가 자신의 기운을 부드럽게 밀어냈다.
"아니. 여보. 이ㄱ...ㅔ..."
제일 먼저 사라진 것은 아내.
무슨 일이냐며 남자의 곁으로 다가가던 그녀는 그대로 녹아내렸다.
"이...!"
그리고 다음 차례는 남자.
무언가 거기에 저항을 하기 위해 대항을 하던 남자였으나 그 또한 배코의 기운에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남자 또한 사르르 녹으며 사라지고.
남은 건 영문도 모른 채 눈만 뻐끔거리는 아이.
"자~ 이제 너만 남았구나~ 아하하하하하."
어떤 일을 하더라도 절대 쉬이 하지 않는 배코였다.
그는 혹시나 모를 만에 하나의 불확실성조차 없애기 위해 자신의 기운을 전부 터뜨려 나갔다.
아예 공간을 압축시키며 사방에서 밀고 들어오는 배코의 기운.
수와아아아아-
그리고 마침내 아이의 몸에 배코의 기운이 닿으려는 찰나.
투웅-
반발이 일어났다.
정확히는 아이의 몸에서부터 시작된 튕김.
그것은 배코의 힘에 대항을 시작했다.
"호오~ 견딘단 말이지??????"
하지만.
지금 저 상태로 자신을 버텨낸다?
훗.
가찮군.
배코의 손이 다시 한 번 춤을 추었다.
끄으으-
더욱 강해지는 압력.
그가 뿜어내는 기운은 곧이라도 아이를 압축시켜 버릴 것만 같았다.
"으흐흐흐하하하하하하하. 넌 내 꺼야!!!!!!"
배코의 득의양양한 웃음소리가 관여자의 정신 세계 곳곳을 맴돌았다.
어?
그런데 이상하다.
이미 끝이 났어도 끝이 났어야 할 게 끝이 나지 않는다.
"...뭐지?"
그때.
변화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