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233화 (233/249)

#233

만남(3)

쌔애애애애애애액-

하늘을 날아가는 다수의 인영들.

몹시도 빠른 속도로 어디론가 향하는 다수의 무리였다.

그러던 중 선두에서 터져 나오는 앙칼진 목소리.

공중을 날고 있음에도 지상에까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몹시도 높은 음이었다.

환수계에서 이 정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라면...

"야이! 넌 그것도 못 이겨서 그런 꼴이 되냐? 응? 그 녀석 정도는 가볍게 이겨줘야 할 것 아냐? 안 그렇냐? 그걸 그렇게 만신창이가 되어서 박살이 나냐? 나참~ 어이가 없어서 원. 하여간 제대로 하는 게 없어. 아주 그냥."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는 그녀.

붉은 빛의 잔상을 흩날려가며 하늘을 날아가고 있는 부르사이다.

잔소리가 향하는 곳은 그녀의 옆.

푸르른 덩어리의 빛 무리를 만들어 내는 걸로 봐서는 키린 밖에 없지.

키린은 별다른 대꾸도 못 한 채 그녀의 말을 그저 듣고 있을 뿐이었다.

기가 잔뜩 죽은 탓인지 오늘따라 유난히 그의 눈이 퀭하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 아니. 너도 뻗었잖아. 지는..."

"뭐??????"

키린의 힘 없는 대꾸에 눈을 부라리는 그녀.

"야! 내가 너랑 똑같냐? 너야 공격형이지만 난 다른 것에 특화된 몸이라고. 똑같은 주인이라고 다 해서 다 같은 줄 아나. 나야 너도 알다시피 지원형이라고. 지. 원. 몰라???"

날아가는 와중에도 연이어 다다다다 쏘아붙이는 부르사이의 기세에 그저 쪼그라든 키린이었다.

"......아니... 그거야 알지만..."

대들기는.

말 하나 제대로 못 받아치는 키린이 무에 말을 하겠나.

힘 없이 대꾸를 하긴 하나 어차피 모든 대화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부르사이일 뿐이다.

키린이 말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으휴. 사내 놈이 그렇게 기백이 없어서야원... 됐다 됐어. 빨리 가기나 해."

부르사이는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키린 역시 무어라 말을 거들지는 않은 채 뾰루퉁한 얼굴로 앞을 날아갈 따름이었다.

****

밖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사이.

중심의 중심.

기묘한 대치가 벌어지고 있는 이 곳.

여러 명이 모여 있건만 체스와 열쇠.

그 둘을 중심으로 형성된 애매모호한 기류가 모두를 어색하게 감싸고 있는 중이다.

열쇠와 관여자.

관여자와 열쇠.

둘은 하나다.

하지만 둘의 역할은 각각이 달랐다.

우선 열쇠.

만들어 진 열쇠는 선악의 개념이 없다.

그저 자신이 태어난 직후.

자신이 봐오고 한 것 모든 것을 종합해 어느 것은 선이고 어느 것은 악이라는 것을 그저 결정지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열쇠가 무언가를 징벌하거나 멸망시킨다거나 등의 행위에 대해서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열쇠는 그저 두 세계를 합칠 수 있는 말 그대로 열쇠가 될 뿐이니.

그렇기에 열쇠는 단지 문을 열 수 있는 장치일 뿐이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포인트가 하나가 있다.

열쇠가 선이 되느냐 악이 되느냐에 따라 관여자의 성향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관여자의 힘.

관여자가 어떤 존재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지금까지 대부분의 관여자들은 주인들을 압도할 정도의 힘과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이렇게 열쇠가 만들어진 건 처음이었기에 열쇠와 관여자가 직접 마주 보고 서있는 것은 처음이긴 했지만 말이다.

여하튼 그러했다.

열쇠가 결정하는 것.

그리고 그 후 관여자가 결정하는 것.

거기에 따라 인간계와 환수계가 어떻게 될 지 판가름이 나는 것이다.

물론 만약 하르무가 그대로 살아 있었다면 그리고 페릴턴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면 두말 할 나위없이 두 세계는 합쳐지겠지.

하지만 체스는 아니었다.

두 세계가 합쳐진다는 것은 지금까지 평화롭던 아니지 평화롭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랬던 인간계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체스는 원하지 않았다.

방금 한 열쇠의 말을 듣고 더더욱.

****

방금 열쇠의 입에서 나온 말.

저렇게 천진난만해 보이는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나오기에는 너무나 좋지 않은 말이 열쇠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아주 자연스레.

자신이 지금까지 보고 온 것을 바탕으로 결과를 내린 것이다.

순간.

슈와아아아아아아아아-

체스의 주변 세상이 바뀌었다.

어딘가 허공에 붕 떠있는 체스의 몸.

어두운데 그렇다고 완전 어둡지는 않은 이공간 같은 곳.

"...여긴 어디...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바뀐 이 곳에 존재하는 이는 열쇠 그리고 자신 밖에 없었다.

씨익-

갑자기 웃음을 보이는 열쇠.

"인간들 나빠."

체스가 오기 전까지 보고 보고 본 후 열쇠가 내린 결론.

그것이 바로 저 말.

다섯 글자였다.

생글생글 웃으며 저렇게 말을 하는 열쇠.

무엇이 열쇠를 저리 만들었나 모르겠지만 그가 내린 결론은 그것인 듯 보였다.

"...왜 그렇지?"

체스의 질문에 더듬더듬 이야기하는 열쇠.

말을 하는 게 어눌해서 그렇지 다 알아들을 수 있다.

천천히 입을 떼는 열쇠.

"인간들은 나빠. 너무 수도 많아졌어. 그래서 나쁜 일이 너무 생겨. 죽이고 훔치고 빼앗고 모든 걸 자기가 가지려고 해."

"그런 것도 있지만 모두가 그렇게 하지는 않아."

"아니야. 대부분은 그랬어. 인간들은 욕심이 너무 많아. 그에 비해 환수들은 본능에 따라 움직여. 그들은 생존을 위해 하는 거야. 인간과는 달라."

틀린 말은 아니다.

열쇠의 말을 듣고 있던 체스가 뭐라 반박을 하려 했으나 뭐라 반박을 해야할 지 알 수 없었다.

"아니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겠어? 인간들이 나쁜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나쁘지는 않아. 대부분은 선량한 사람들이기도 하고 물론 소소하게 욕심을 부리거나 하지만 다 그러진 않아."

"아니야. 몇 번을 봐도 그래. 어쩔 수 없어. 인간들은 인간들에게 서로 미안하다고 해야 해. 자~"

체스의 가슴팍에 다시 손을 갖다대는 열쇠.

"다른 세상을 만들어."

체스는 그 손을 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불가항력.

이것은 인위적으로 거부할 수가 없는 힘.

자신을 옴싹달싹하지 못하게 옭아맨 힘은 그렇게 자신의 몸을 부동석으로 만들었다.

이익...

몸을 어떻게든 비틀어 열쇠의 손을 피하려 하는 체스이지만 안된다.

그 사이.

체스에게 점점 다가오는 열쇠.

순간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변화가 생겨난다.

눈부시게 순수하게 보이던 아이의 모습이 점점 어두워진다.

처음의 시작은 머리카락의 변화에서부터였다.

은발? 백발?

거의 그 정도의 색이었던 열쇠의 머리카락은 끝에서부터 조금씩 어두워져갔다.

'저게 무슨...?'

처음에는 눈에 잘 띄지 않았지만 순식간에 머리는 흑발이 되어갔다.

"너... 머리가..."

"응. 당연한 거야. 그건 어쩔 수 없어. 이게 지금 나의 결론이야."

"...오... 오지 마."

생글생글-

하지만 열쇠는 따르지 않았다.

대신 그의 손이 체스의 가슴팍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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