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
만남(2)
쿠당탕탕-
주르륵 밀려나는 커다란 몸뚱아리.
쿠웅-
튕겨져 나가는 속도를 멈추지 못한 듯 사정없이 밀려간 몸은 그대로 기둥에 처박혔다.
커헙-
순간 배꼽 저 밑에서부터 올라온 커다란 신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터져 나왔다.
압도적이다.
성한 몸이었을지언정 제대로 붙을 엄두조차 못낼 정도로 몹시도 강한 자였다.
'...이 정도라니.'
"그만 애써라. 곧 끝난다."
가뜩이나 만신창이였던 달란트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달한 지 오래.
들어 올리는 피로 범벅이 된 팔이 부들부들 떨린다.
퉤-
입 안에 머금어 졌던 피를 뱉어내는 달란트.
열쇠가 코 앞인데 이렇게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게 될 줄은 몰랐다.
강함.
그 말로도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의 호아류였다.
"쓸데없는 짓은 이제 그만해도 될 터인데."
그런 그의 의지를 꺾기라도 하듯 물 흐르듯 흘러 나오는 호아류의 말투.
흥.
"쓸데없다니. 난 아직 멀었는데."
"후후후."
달란트의 말이 자못 웃긴 듯 실소를 머금은 호아류의 한쪽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글쎄. 굳이 벌레 한 마리가 날뛰는 걸 잡으려 움직일 필요는 없지."
"벌레라... 그 벌레한테 어디 한 번 물려봐라."
온 몸이 부서질 것만 같은 고통 속에서도 달란트는 일어났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이 곳이 무너져라 고함을 지른 달란트가 이내 자신의 근육 곳곳에 힘을 불어넣었다.
슈와아악-
다시금 호아류에게 달려드는 그.
자신의 온 몸을 내던진 공격이었다.
****
한참 동안 미동조차 않던 열쇠의 존재.
움찔-
갑자기 열쇠의 몸이 꿈틀거린다.
끄으으으으응-
팔을 힘껏 치켜든 채 기지개를 펴는 열쇠.
바깥이 어떤 상황이건 그 어떤 반응조차 보이지 않던 열쇠가 드디어 움직임을 시작했다.
천천히 몸을 돌리는 열쇠.
그의 눈동자 가득 무언가의 모습이 담겨진다.
하나는 손만 까딱거리고.
또 하나는 부딪혀 가면 튕겨져 나가고 또 돌진하고.
호아류와 달란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열쇠라는 존재의 시선은 이내 더 먼 곳을 향한다.
그 아니 정확하게 그가 맞는 지조차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가 가진 관심은 거기를 향해 있지 않다.
대신 저 너머 그 어딘가를 향한 열쇠의 눈동자.
미동조차 않던 그의 몸을 움직이게 만든 것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저런 눈을 한 채 쳐다보는 것이지?
정확하게 정의가 내려지지는 않는다.
사랑?
아니다.
그런 인간이 잴 수 있는 감정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그렇다면 반가움?
그것 또한 아닌 듯하다.
하나의 단어로 쉬이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복잡미묘한 표정을 한 열쇠.
열쇠는 가볍게 몸을 일으켰다.
바람이라도 불어제끼면 금세 날아가버릴 듯한 갸날픈 몸.
하지만 휘청일지언정 쓰러지지는 않는다.
자박- 자박-
맨발로 앞을 향해 걸어가는 열쇠였다.
****
두근-
두근-
두근-
중심의 중심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빨라지는 심장 박동.
-왜 그러냐?
갑자기 멈춰선 체스를 향해 던져지는 헬캣의 질문.
"아. 아니에요. 갑자기 심장이 뛰어서."
-별일이네. 흥분했냐?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이상하네요."
그때 불쑥 끼어드는 막시멈.
"그래? 심장이 뛴다고? 어떻게 뛰지? 빨리 좀 읊어봐라."
체스가 말만 하면 사소한 것 하나라도 얼른 적을 기세로 그를 다그치는 막시멈이었다.
"...에? 갑자기 왜 무슨?"
과도한 호기심을 보이는 막시멈이 섬찟한 듯 뒤로 슬쩍 몸을 물리는 체스.
자신은 그저 심장이 두근거린다 했을 뿐이지 않은가.
헌데 갑자기 저리도 호기심을 보이며 얼굴을 불쑥 들이대는 게 영 불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아. 빨리 이야기해봐라. 관여자라는 게 이렇게 딱 내 눈앞에 있는데 일거수일투족을 다 적어놔야 되지 않겠냐? 내가 명색이 기록하는 자인데 말이야. 에헴."
"그... 그래도 너무 가까..."
어떻게든 얼굴을 들이대는 막시멈.
그 와중에도 그의 손은 열심히 펜을 놀리고 있었지만.
이익...
겨우 그의 얼굴을 밀어낸 체스.
그리고는 냅다 내달리기 시작했다.
어...? 어...???
"야~ 얘기를 해줘야지~!!!"
황급히 먼저 앞으로 치고 나가는 체스를 쫓는 막시멈이었다.
****
달란트는 이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죽지는 않은 듯하나 정신을 아예 잃어버린 듯하다.
자박-
자박-
가벼운 발걸음 소리.
열쇠는 처음으로 자신이 있던 세계를 벗어났다.
결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좁은 보폭.
그렇게 열쇠는 앞으로 앞으로 한 걸음 씩 나아갔다.
전투랄 것도 없는 그저 잠깐 동안의 유흥을 즐긴 호아류의 시선.
그의 시선은 여전히 열쇠로부터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그 또한 알고 싶었을 것이다.
열쇠라는 존재에 대해.
그 사이 열쇠는 어느 새 호아류의 곁을 스쳐 지나간 채였다.
굳게 닫힌 입술.
그저 말없이 그런 행동을 지켜보기만 하는 호아류.
호아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른다.
단지 그저 묵묵히 열쇠의 행동 하나하나를 쳐다만 볼 뿐.
뚝-
그리고 열쇠는 걸음을 멈췄다.
막 이 곳으로 들어온 체스의 앞에서.
****
드디어 만났다.
활짝 펴진 열쇠의 미소.
허나 열쇠 또한 마찬가지.
열쇠는 체스와 눈을 맞춘 채 그저 싱글벙글이었다.
"...넌 누구지?"
체스의 질문.
하지만 질문이 한없이 멍청하다.
뻔히 알고 있지만 지극히 상투적인 질문.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아이.
열쇠와 관여자의 만남.
수백여 년을 지나 그들이 한 자리에 있게 된 것이었다.
"나는 나. 너는 너. 그리고 나는 너. 너는 나."
그렇지.
그들은 하나인 동시에 둘이었고 둘인 동시에 하나였다.
"호오~~~ 놀랍구나. 놀라워~"
황급히 체스를 따라왔던 막시멈.
그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얼른 품 안에서 돋보기를 꺼내 아이의 생김새를 유심히 살피는 그.
슥슥슥슥- 슥슥슥슥-
손이 점점 빨라진다.
그럼에 따라 점점 빼곡히 채워지는 기록하는 자의 책자.
그의 손은 여전히 바쁘게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눈은 호기심을 잔뜩 드러낸 채였다.
"열쇠... 이렇게 생겼군. 보자. 키는 이 정도에 몸무게는 뭐 별로 안 나가겠네."
요리조리 방향을 바꿔가며 열쇠를 살피는 막시멈.
"말은 못 하는 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막시멈.
바로 그때.
"우리는 하나가 될 거야."
명량한 듯한 아이의 목소리.
그리고 열쇠는 자신의 팔을 천천히 들어올려 체스의 가슴팍에 손을 갖다 대었다.
두근-
두근두근-
두근두근두근-
열쇠의 손이 닿은 체스의 심장이 격동을 일으킬 정도로 급격히 빨라진다.
그 순간 체스는 알 수 있었다.
관여자라는 존재.
그리고 왜 열쇠가 존재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