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232화 (232/249)

#232

만남(2)

쿠당탕탕-

주르륵 밀려나는 커다란 몸뚱아리.

쿠웅-

튕겨져 나가는 속도를 멈추지 못한 듯 사정없이 밀려간 몸은 그대로 기둥에 처박혔다.

커헙-

순간 배꼽 저 밑에서부터 올라온 커다란 신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터져 나왔다.

압도적이다.

성한 몸이었을지언정 제대로 붙을 엄두조차 못낼 정도로 몹시도 강한 자였다.

'...이 정도라니.'

"그만 애써라. 곧 끝난다."

가뜩이나 만신창이였던 달란트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달한 지 오래.

들어 올리는 피로 범벅이 된 팔이 부들부들 떨린다.

퉤-

입 안에 머금어 졌던 피를 뱉어내는 달란트.

열쇠가 코 앞인데 이렇게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게 될 줄은 몰랐다.

강함.

그 말로도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의 호아류였다.

"쓸데없는 짓은 이제 그만해도 될 터인데."

그런 그의 의지를 꺾기라도 하듯 물 흐르듯 흘러 나오는 호아류의 말투.

흥.

"쓸데없다니. 난 아직 멀었는데."

"후후후."

달란트의 말이 자못 웃긴 듯 실소를 머금은 호아류의 한쪽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글쎄. 굳이 벌레 한 마리가 날뛰는 걸 잡으려 움직일 필요는 없지."

"벌레라... 그 벌레한테 어디 한 번 물려봐라."

온 몸이 부서질 것만 같은 고통 속에서도 달란트는 일어났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이 곳이 무너져라 고함을 지른 달란트가 이내 자신의 근육 곳곳에 힘을 불어넣었다.

슈와아악-

다시금 호아류에게 달려드는 그.

자신의 온 몸을 내던진 공격이었다.

****

한참 동안 미동조차 않던 열쇠의 존재.

움찔-

갑자기 열쇠의 몸이 꿈틀거린다.

끄으으으으응-

팔을 힘껏 치켜든 채 기지개를 펴는 열쇠.

바깥이 어떤 상황이건 그 어떤 반응조차 보이지 않던 열쇠가 드디어 움직임을 시작했다.

천천히 몸을 돌리는 열쇠.

그의 눈동자 가득 무언가의 모습이 담겨진다.

하나는 손만 까딱거리고.

또 하나는 부딪혀 가면 튕겨져 나가고 또 돌진하고.

호아류와 달란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열쇠라는 존재의 시선은 이내 더 먼 곳을 향한다.

그 아니 정확하게 그가 맞는 지조차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가 가진 관심은 거기를 향해 있지 않다.

대신 저 너머 그 어딘가를 향한 열쇠의 눈동자.

미동조차 않던 그의 몸을 움직이게 만든 것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저런 눈을 한 채 쳐다보는 것이지?

정확하게 정의가 내려지지는 않는다.

사랑?

아니다.

그런 인간이 잴 수 있는 감정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그렇다면 반가움?

그것 또한 아닌 듯하다.

하나의 단어로 쉬이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복잡미묘한 표정을 한 열쇠.

열쇠는 가볍게 몸을 일으켰다.

바람이라도 불어제끼면 금세 날아가버릴 듯한 갸날픈 몸.

하지만 휘청일지언정 쓰러지지는 않는다.

자박- 자박-

맨발로 앞을 향해 걸어가는 열쇠였다.

****

두근-

두근-

두근-

중심의 중심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빨라지는 심장 박동.

-왜 그러냐?

갑자기 멈춰선 체스를 향해 던져지는 헬캣의 질문.

"아. 아니에요. 갑자기 심장이 뛰어서."

-별일이네. 흥분했냐?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이상하네요."

그때 불쑥 끼어드는 막시멈.

"그래? 심장이 뛴다고? 어떻게 뛰지? 빨리 좀 읊어봐라."

체스가 말만 하면 사소한 것 하나라도 얼른 적을 기세로 그를 다그치는 막시멈이었다.

"...에? 갑자기 왜 무슨?"

과도한 호기심을 보이는 막시멈이 섬찟한 듯 뒤로 슬쩍 몸을 물리는 체스.

자신은 그저 심장이 두근거린다 했을 뿐이지 않은가.

헌데 갑자기 저리도 호기심을 보이며 얼굴을 불쑥 들이대는 게 영 불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아. 빨리 이야기해봐라. 관여자라는 게 이렇게 딱 내 눈앞에 있는데 일거수일투족을 다 적어놔야 되지 않겠냐? 내가 명색이 기록하는 자인데 말이야. 에헴."

"그... 그래도 너무 가까..."

어떻게든 얼굴을 들이대는 막시멈.

그 와중에도 그의 손은 열심히 펜을 놀리고 있었지만.

이익...

겨우 그의 얼굴을 밀어낸 체스.

그리고는 냅다 내달리기 시작했다.

어...? 어...???

"야~ 얘기를 해줘야지~!!!"

황급히 먼저 앞으로 치고 나가는 체스를 쫓는 막시멈이었다.

****

달란트는 이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죽지는 않은 듯하나 정신을 아예 잃어버린 듯하다.

자박-

자박-

가벼운 발걸음 소리.

열쇠는 처음으로 자신이 있던 세계를 벗어났다.

결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좁은 보폭.

그렇게 열쇠는 앞으로 앞으로 한 걸음 씩 나아갔다.

전투랄 것도 없는 그저 잠깐 동안의 유흥을 즐긴 호아류의 시선.

그의 시선은 여전히 열쇠로부터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그 또한 알고 싶었을 것이다.

열쇠라는 존재에 대해.

그 사이 열쇠는 어느 새 호아류의 곁을 스쳐 지나간 채였다.

굳게 닫힌 입술.

그저 말없이 그런 행동을 지켜보기만 하는 호아류.

호아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른다.

단지 그저 묵묵히 열쇠의 행동 하나하나를 쳐다만 볼 뿐.

뚝-

그리고 열쇠는 걸음을 멈췄다.

막 이 곳으로 들어온 체스의 앞에서.

****

드디어 만났다.

활짝 펴진 열쇠의 미소.

허나 열쇠 또한 마찬가지.

열쇠는 체스와 눈을 맞춘 채 그저 싱글벙글이었다.

"...넌 누구지?"

체스의 질문.

하지만 질문이 한없이 멍청하다.

뻔히 알고 있지만 지극히 상투적인 질문.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아이.

열쇠와 관여자의 만남.

수백여 년을 지나 그들이 한 자리에 있게 된 것이었다.

"나는 나. 너는 너. 그리고 나는 너. 너는 나."

그렇지.

그들은 하나인 동시에 둘이었고 둘인 동시에 하나였다.

"호오~~~ 놀랍구나. 놀라워~"

황급히 체스를 따라왔던 막시멈.

그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얼른 품 안에서 돋보기를 꺼내 아이의 생김새를 유심히 살피는 그.

슥슥슥슥- 슥슥슥슥-

손이 점점 빨라진다.

그럼에 따라 점점 빼곡히 채워지는 기록하는 자의 책자.

그의 손은 여전히 바쁘게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눈은 호기심을 잔뜩 드러낸 채였다.

"열쇠... 이렇게 생겼군. 보자. 키는 이 정도에 몸무게는 뭐 별로 안 나가겠네."

요리조리 방향을 바꿔가며 열쇠를 살피는 막시멈.

"말은 못 하는 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막시멈.

바로 그때.

"우리는 하나가 될 거야."

명량한 듯한 아이의 목소리.

그리고 열쇠는 자신의 팔을 천천히 들어올려 체스의 가슴팍에 손을 갖다 대었다.

두근-

두근두근-

두근두근두근-

열쇠의 손이 닿은 체스의 심장이 격동을 일으킬 정도로 급격히 빨라진다.

그 순간 체스는 알 수 있었다.

관여자라는 존재.

그리고 왜 열쇠가 존재하는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