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
중심(2)
바이야의 봉에서부터 나온 진동은 중심 중의 중심부를 건드렸다.
그렇게 새어나온 희끄무레한 연기.
사아아아아아아아아......
천천히 생겨난다.
사람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환수도 아니게 보인다.
단지 그저...
100여 마리의 유령 아닌 유령들.
그렇지.
오히려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정도로 궁금하기 그지없던 그들의 정체.
그 모든 것들은 오랫동안 환수계를 지켜오던 수호령들이었다.
그들이 나고 자란 곳.
그들은 자신들이 죽으며 환수계의 기둥이 되고자 원했다,
아마도 자신들이 그렇게나 사랑하던 곳이기 때문이겠지.
그리하여 사후에도 저런 모습으로 환수계의 중심에서 중심을 맞추어 가는 자들.
그들은 환수계의 모든 것이 담긴 이 곳 만을 지켜왔으며 오로지 단 하나의 것으로만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기에 오로지 이 곳에서만 가능한 일이기도 하였고 이 곳에서만 저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
바이야가 호아류에게 최초로 명 받은 일이었으며 그가 이 곳에서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 사이 처음 본 정체불명의 것들을 보며 잠시 어리둥절하던 환수들이 거리를 좁혀온다.
"어리석은 것들."
나지막한 소리와 함께 바이야의 눈매가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이내 그들과 침입자라 명명된 환수들이 크게 부딪혔다.
****
다시 현재.
막대한 희생을 내어가던 달란트와 그의 환수들이 이내 한 곳으로 타점을 집중하기 시잭했다.
서로가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 죽어가는 환수들.
그 수는 적잖았다.
달란트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마치 블빛에 달려드는 나방들처럼 자신의 몸을 내던져가며 길을 만들어 내는 녀석들을.
마음 깊숙한 한 켠에서는 벌써 수백 번도 멈추라는 이야기가 흘러 나온 지 오래였다.
하지만 저들의 희생.
지금도 동료이고 나중에도 동료일 이들이 흘리는 피의 값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입술을 잘근 깨무은 달란트였다.
이들의 희생을 헛되이 할 수도 없는 노릇에 혹여나 이 곳에서 죽었을 경우 죽음의 신 앞에서 동료들에게 삿대질을 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크으. 미안하다. 이 자식들. 내가 다신 꼭 저기 저 녀석을 무너뜨리마.'
그렇게 한참을 일진일퇴를 벌여 나가던 그들.
드디어 원해 마지 않던 길이 슬쩍 열리기 시작했다.
부서져 나간 환영들의 재생속도가 제법 느려졌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빈 자리를 메워 나가는 환수들.
"빨리 가! 너 이씨. 이번에 실패하면 죽는다!!!!!!"
어디선가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온다.
아마 달란트에게 퍼붓는 소리겠지.
그의 한쪽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안다. 이 자식들아~'
척-
대답 대신 그의 승리포즈인 한쪽 팔을 힘껏 들어올린 달란트.
그 순간 그의 몸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
"쓰잘데기 없는 짓을."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바이야.
아무리 봐도 저건 병신 같은 행동이었다.
딱 봐도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
게다가 더욱 멍청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안 되는 걸 뻔히 알면서도 더욱 강하게 밀어 붙이는 저들 때문이었다.
"학습 효과 정도는 알고 있을 녀석들일 텐데. 그게 아니라면 모두가 다 죽고야 끝이 나겠지."
순간 들려왔다.
"네 놈! 바이야!!!!!!"
몹시도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바이야.
놀란 그가 화들짝 눈을 떴다.
헉-!!!!!!
그리고 더욱 놀라버린 바이야.
달란트다.
용케도 길을 만든 그들의 희생을 벗 삼아 어떻게든 바이야의 코앞까지 다가온 그였다.
"받아라아아아아아앗!!!!!!"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손을 그대로 내지르는 달란트.
쌔애애애애액-
그간 당한 동료들의 분노가 서린 탓인지 달란트의 그 손길은 마치 공기를 찢어버리는 천신처럼 보일 정도였다.
헙-!
콰와아아아앙.
달란트의 팔과 바이야의 한 손이 격하게 부딪혔다.
어마어마한 충격의 여파.
하지만 그 와중에도 바이야는 자신의 봉을 빼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저거구만?'
촉이 왔다.
이 상황에도 한 번 내려찍힌 장소를 악착 같이 버텨가며 사수하는 이유.
'좋아. 그렇다면 저것의 균형을 무너뜨리면 된다는 말이겠네.'
달란트의 눈이 살짝 빛을 발하는가 싶더니.
시작되었다.
폭풍우와 같이 휘몰아치는 공격이.
하나는 지키는 자.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뚫는 자.
허나 둘의 손속의 교환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밑천이 바닥나는 것은 바이야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바이야에게는 지켜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제기랄. 완전히 말려버렸다.'
하지만......
...이건 지켜야 한다.
라고 생각하는 찰나.
순간 달란트의 발이 바이야의 눈앞에 불쑥 튀어 나왔다.
응??????
놀란 토끼눈이 된 바이야.
그리고 시작되었다.
퍽- 퍽- 퍼어어억- 퍽- 퍼어억-
순식간에 살아있는 샌드백 수준이 되어 버린 바이야.
밀리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지팡이를 지키고는 싶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휭힁휭휭-
저 멀리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버리는 봉.
아아아......
'제기랄.'
실패다.
속으로 욕을 내뱉는 바이야.
그리고 그와 동시에 중심을 지키던 병사들의 모습이 일거에 무너져 내렸다.
사라라라라-
반짝반짝이듯 여운을 남기며 저절로 흩어져 가는 그들.
"...졌다."
그리고 그 말을 내뱉는 바이야를 내려보는 달란트.
"안으로 가는 방법과 열쇠를 어떻게 하는 지 말해라."
"열쇠는..."
이제는 텅 비어버린 중심을 보며 바이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던 막시멈.
"호오~ 이런 건 좀더 상세하게 적어둬야겠군. 으흐흐."
그 모습들을 보며 더욱 빨라지는 막시멈의 손놀림이었다.
****
그 사이.
도착이다.
체스와 헬캣은 중심을 향해 그리고 몸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앞으로 주욱 지나온 길이었다.
별다른 저항은 없었다.
가끔 이 와중에도 정신 나간 환수들이 한두 마리 인간의 냄새에 취해 달려들긴 했지만...
여하튼.
그들이 도착한 죽은 중심.
"오~ 이거 완전 이상한 느낌이네요. 밝음이라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주위를 훑어본 체스가 중얼거렸다.
-당연하지 자식아. 여기는 호아류의 지역이나 그가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곳. 그러니 이럴 수 밖에.
"아아~ 그렇군요."
-모르면서 욕 좀 덜 얻어 먹으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
"하하하하. 전 먼저 갑니다~"
괜스레 불똥이라도 튈 까봐 얼른 걸음을 옮긴 그.
-이놈 보게~ 나랑 좀 친해졌다 이거냐?
그리고 중심으로 올라가는 체스의 뒤를 헬캣이 얼른 졸졸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