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
중심(1)
환수계의 중심부.
정확히는 호아류의 영역이자 열쇠가 머물고 있는 곳.
저 멀리에서부터 밀려온 강한 바람.
기세 좋게 밀려온 바람은 중심에 이르러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의 존재 자체를 잃어버리고 마는 곳이다.
호아류가 다스리는 중심의 상징은 침묵.
중재자라는 주인의 명칭에 걸맞게 언제나 침묵에 의해 지배 되는 이 곳.
물론 최근 들어 조금 시끄러워지기는 했지만 그건 이 곳에서는 단지 사.소.한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았다.
여하튼 호아류의 이 곳은 곧 호아류였으며 호아류로 전부 설명이 되는 곳.
그렇기에 늘 침묵 만이 존재하던 곳이었다.
헌데.
밀려온다.
그리고 들려온다.
귀청을 따갑게 울리는 소리들.
어떻게 생각하면 잡음.
어떻게 생각하면 환수계에 어울리는 청량한 음.
허나 그것은 단지 구색 맞추기에 지나지 않는다.
환수계의 중심의 주인인 호아류의 기분을 망칠 정도로 살기가 덕지덕지 붙은 비명 그리고 고통에 가득 찬 목소리들.
그 비명의 주인공들.
여기저기 널부러진 환수들의 시체들.
그리고 발에 채이는 시체는 도외시한 채 그 위에서 날뛰고 있는 환수들.
아마도 그 비명은 저들의 것인 모양이다.
그치지 않고 들려오는 갖은 고함 또한 괴성.
우어어어어어아아아아아아아-!!!!!!
순간 그 비명을 압도할 정도로 우렁찬 목소리가 중심을 뒤흔들었다.
목소리의 주인공.
그는 주변 동료들을 격려하는 한편 눈앞의 적을 걷어내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뚫어라! 여기만 뚫으면 된다!"
카악-
그의 발톱이 정면에 있는 적을 사정 없이 휩쓸어 간다.
스르륵-
단 일격.
정확하게 옆구리부터 휩쓸려 나간 눈앞의 적이 마치 모래성이 허물어지듯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다시 원래의 원형을 갖추어 나가는 그것.
"이것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없어지는 거야!!!!!!"
냅다 고함을 지르는 그.
몹시도 신경질적이다.
그 남자.
막시멈의 집에 있었던 달란트다.
온 몸에 상처가 그득한 몸을 한 채 연신 자신의 몸을 던져대던 달란트의 외침.
그의 주위에 존재하는 환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 또한 이미 자신들의 본 모습을 드러낸 지 오래.
모두는 자신의 목숨은 도외시한 채 오로지 중심으로 들어가겠다는 일념 하에 전력을 쏟아붓는 중이었다.
달란트 그리고 그 휘하의 모든 환수들.
이들의 목표 달성에 있어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하르무였다.
그런 하르무의 죽음을 안 이상 이들이 머뭇거릴 이유는 더 이상 없었다.
그렇기에 벌어진 작금의 상황.
그들은 자신들의 총 전력을 끌어 모았다.
그리고 지금 온 몸을 내던져 가며 중심으로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들이었다.
허나.
하르무.
그 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몰랐다.
여기는 사지 중의 사지.
어서 오라며 손짓하는 여기가 바로 죽음이 넘실거리는 곳이었다.
모든 시작은 저기 저 놈.
바이야로부터 시작되었다.
환수계의 중심에 서서 무게 중심을 잡은 그로부터 시작된 이곳의 방어.
그는 굳이 본 모습을 드러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바이야가 한 일은 단지 한 가지.
그는 들고 있던 봉을 쿵 내려 찍은 것 뿐이었다.
순간 바뀌었다.
단 한 번의 동작에 삽시간에 바뀌어버리는 중심의 기류.
솨아아아아아아-
불쑥-
불쑥-
불쑥-
여기저기서 솟아오르는 정체불명의 존재들.
그들은 실체가 없어 보였다.
단지 희끄무레한 연기와도 같은 모습에 갑옷을 두른 그들.
처음에는 몰랐으나 이 곳의 방어를 담당하는 것이 아마도 그들의 역할인 듯 보였다.
그리고 지금 달란트와 환수들을 막아선 그들.
생각지도 못한 저항에 달란트의 입이 바싹 말라 들어갔다.
죽여도 죽여도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죽이면 죽일수록 더욱 살아나는 그들.
쾅- 쾅-
연이어 강력한 공격을 퍼부어 보지만 소용이 없다.
마치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그들은 그렇게 환수들의 공격을 막아섰다.
헉헉-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거칠고도 지친 숨소리.
"아니. 저것들은 도대체 뭐야?"
"...글쎄. 허억... 허억... 그런데 어딘가 이상하지 않아?"
"이상한 거 볼 시간에 저것들 없앨 생각이나 좀 해라."
달란트가 자신의 옆에 선 환수에게 핀잔을 주었다.
"아니~ 진짜 이상하다니까."
"아이씨. 도대체 뭐가?"
"우리가 일정 거리 이상 가지 않으면 공격을 하지 않잖아. 마치 그저 지키려는 듯한 모습에."
그 모습에 다시 정면을 바라보는 달란트.
말마따나 자세히 보니 그랬다.
"오! 이런 간단한 것을 몰랐단 말이야?"
탄성을 내뱉는 달란트.
마치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린 탓이다.
그 까닭에 이제야 알아차렸다.
그러고 보니 자신들이 가까이 접근했을 때에만 반격이 시작되었다.
그 말인즉슨 가까이 가지 않는 이상 아무 것도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바꾸어 말하면 저들을 뚫어야 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 아닌가.
"저기 저 녀석이 문젠가. 바이야를 쓰러뜨리면 되려나?"
달란트의 시선이 향한 곳.
그 곳에 서 있는 건 호아류의 직속 바이야.
단지 서있는 것 만으로도 느껴지는 위압감.
마치 그로 인해 비로소 진정한 방어가 완성이 만들어 지는 것과 같은...
호아류의 부하라는 게 믿기지가 않을 정도다.
그 정도로 그가 떨쳐내는 기세는 어마어마하였으며 가히 신과 동급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저 녀석만...
쉽지 않아 보여서 그렇지.
"...저기까지 갈 수만 있다면 뭔가 해볼 여지는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딱 한 곳만 뚫자. 딱 한 곳만 뚫어서 그 길을 열어 줄 테니 그리로 들어가."
"젠장. 그건 당연히 내 몫이겠지?"
"당연히 대장이 해야지. 대장보다 약한 우리가 하리? 으흐."
서로 말을 주거니 받거니하며 다시 한 번 전력을 가다듬는 그들이었다.
****
바이야가 응시하고 있는 것.
그는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환수들을 바라보는 중이다.
"과연 뚫을 수 있겠느냐?"
이 곳은 중심.
그들의 말마따나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괜히 환수계의 중심이라 하겠는가.
지금 저들이 저리 오는 건 중심이 어떤 곳인지 몰라서 저러는 것이다.
그렇다면 또 보여줘야지.
한 팔을 슬쩍 드는 바이야.
스릉-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봉 하나가 그의 손에 감겨든다.
가볍게 봉을 움켜쥐는 바이야.
그의 입꼬리 한 쪽이 희미하게 올라갔다.
바이야는 몹시 즐거울 따름이었다.
이렇게 혼자 있을 때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그의 감정.
아마 그를 아는 누군가가 보았다면 깜짝 놀랐겠지.
도통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는 그였기에 말이다.
"어디 뚫어봐라."
여전히 입꼬리를 만 채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바이야.
투웅-
봉이 가볍게 내리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