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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의 채무 탈출기-228화 (228/249)

#228

하르무(4)

"...그런가. 그렇게 되었군."

한참을 미동도 않고 서있던 호아류.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이미 그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한 말투다.

그가 저리 말하는 이유.

관여자가 한 명이 되었다.

왜 자신의 시대에 관여자가 둘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신의 장난인지.

아니면 이미 만들어진 운명인지.

하지만 결국은 그리 될 일이었다.

그리고 둘 중 하나가 살아남았다.

둘 중 누가 살아남은 것일까?

거기까지는 알 수 없다.

득이 될 지.

혹은 실이 될 지.

하지만 이제 곧 만나면 알게 될 터.

열쇠와 관여자가 만나 반응을 하게 될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 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거긴 자신이 모르는 미지의 영역.

환수계 그리고 인간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자신이 모를 수가 없다.

그렇게 자부할 수 있다.

하지만 신의 손바닥 안에 있는 세상.

그곳은 자신이 모른다.

아니 알 수조차 없다.

"...곧 알게 되겠지."

여전히 열쇠는 자신 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중이다.

곧이라도 껍질을 깨고 나올 것만 같은 모습으로.

****

으으......

미약한 신음소리.

드디어 정신을 차린 자.

자신의 공간에서 깨어난 키린이었다.

그가 이 곳까지 보내진 이유.

하르무의 죽음을 맞이하기 전 마지막 배려였다.

그때.

!!!!!!

"키린 니이이이이이이임!!!"

자신의 주인의 기척을 느낀 켄타가 황급히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키린이 우선 해야 할 일.

상황 파악 중인 키린의 모습.

"...내가 왜... 여기에 있지...?"

옆을 보니 부르사이는 아직 깨어나지 못한 듯하다.

그나마 자신보다는 부상이 좀 덜한 듯 하지만 그녀의 부상도 쉬이 가볍게 보이지는 않는다.

자신은 왜 여기까지 돌아와 있는 것인가.

짐작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하르무가 뭔가 손을 쓴 듯하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투로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키린.

'일단은 몸을...'

끄어...

일순 키린의 눈가에 깊은 주름이 잡히며 미간이 찡그러졌다.

비명을 지르는 근육.

게다가 뼈도 몇 군데는 박살이 난 듯하다.

핏자국이 덕지덕지 붙어 있지만 상처 부위의 출혈은 멈춘 것 같다.

하지만 통증은 여전했다.

중간중간 느껴지는 그런 통증 탓에 얼굴을 찡그리는 키린.

"...괜찮으세요?"

걱정스러운 표정의 켄타.

결계가 깨어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날아 가버린 키린.

그리고 켄타의 두 눈에는 그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은 켄타.

그 후는 뭐...

전투고 나발이고 없었다.

북쪽의 환수들이 하르무의 복수를 어떻게 하든 말든 키린을 좇아 온 켄타였다.

정신 잃은 키린의 몸이 향한 곳은 자신의 성.

사정 없이 내팽겨진 키린의 몸은 그 후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며 켄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옆에서 지켜보는 것 뿐.

그런 켄타의 걱정을 당연히 안다는 듯 재깍 반응하는 키린.

"... 이게 괜찮아 보여...? 하르무 녀석. 엄청 강해."

"...결계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에요?"

"그게 중요한 게 아냐. 얼른 부르사이부터 깨워... 회복을 좀 해야겠어. 아이고오..."

하르무에게 당한 여파는 꽤나 심각했다.

더는 통증을 못 참겠다는 듯 벌러덩 누워버리는 키린이었다.

****

"오호호호호. 둘다 만신창이가 되어서는 원."

부르사이의 호쾌한 웃음소리.

그녀의 몸은 어느 새 멀쩡한 상태였다.

더불어 키린까지.

붕붕-

팔을 양껏 돌려보는 키린.

"역시 네 치유는 알아줘야 해."

"어떠냐? 아픈 곳이 없지?"

"응. 이 정도면 거의 최상인데? 이래서 부르사이 부르사이 하는구나. 괜히 주인이 아니었어."

만족스러웠다.

전투를 하기 전보다 오히려 훨씬 좋아진 느낌이다.

"키린 님. 확실히 컨디션이 훨씬 좋아 보여요."

옆에서 말을 거드는 켄타.

꽃이 피어나는 화기애애한 둘의 대화가 이어졌다.

블라블라블라블라-

"............"

끝이 없네.

가만히 둘을 지켜보던 부르사이.

그런 둘의 대화를 부르사이가 싹둑 끊었다.

"아유~ 이것들 조금만 풀어주니까 또 지네끼리 좋아서 시시덕거리네. 닥쳐봐. 지금이 이럴 때냐???!!!"

아차차.

부르사이의 잔소리에 일순 분위기가 바뀌었다.

순식간에 싹 가라앉은 분위기.

이들에게는 느껴졌다.

깨어난 직후 가장 먼저 느껴졌던 사실.

하르무의 죽음.

분명히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 기억 속에 하르무는 힘이 넘치던 모습이었는데...

이해를 할 수 없는 그들이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그리고 이들이 거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다른 한 명의 존재 또한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

미간에 약간의 주름이 패인 호아류.

느껴졌다.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

그것은 고스란히 호아류에게도 느껴졌다.

균형을 이루던 하나의 축이 무너졌다.

자신은 중재자.

다른 주인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짓을 하는지 나머지 것들은 자신이 관여하지 않는다.

결국 그들 다섯은 동급이니까.

그런데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낸 하르무가 죽어버렸다.

다섯 중 하나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슬프지는 않다.

하지만 궁금하다.

하르무를 죽일 수 있는 존재가 환수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누구의 소행일까?

유추를 해본다면 제일 확률이 높은 것은 역시 그 녀석이다.

키린.

하르무가 그 녀석과의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니.

그렇다면 정말 키린?

하르무가 키린과의 싸움에서 패배했다?

하지만 호아류가 객관적으로 보기에 그건 아니었다.

유감스럽지만 키린이 하르무를 이기는 건 좀 힘들지 않을까 생각하는 호아류였다.

헌데 또 이상한 게 키린의 생명은 건재하단 말이지.

...그게 아니라면 제3 자의 개입인가?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영문인지.

그의 죽음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어떤 형태로 이뤄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

그는 이제 환수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열쇠도 원하겠지?"

누가 하르무의 생명을 끊었든 간에 하나는 확실하다.

하르무를 죽인 자가 원하는 것.

그것은 분명 여기 존재하는 열쇠일 터.

혹은.

그에 앞서 관여자를 자신의 손 안에 넣으려 할 지도 모르는 것이고.

관여자와 열쇠는 곧 하나이니.

"흠..."

과연 어떤 식으로 귀결을 맺게 될 지.

호아류의 얼굴은 여전히 많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

"하르무가 죽었다."

하르무의 죽음에 대한 소식은 환수계 곳곳에 스며들어 갔다.

그 소식은 힘을 다시 회복하고 있던 그들에게 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가자. 이번에야말로 열쇠를 되찾아서 모든 것을 다시 원래대로 돌리는 거야."

그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감님 갑시다~ 이제 할 일 해야지."

어둠 속의 어딘가를 향해 말을 거는 남자.

"이제 가냐? 기다리느라 좀이 쑤셔 죽을 뻔했다. 이 녀석아."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존재.

"어이쿠. 다리가 저리네..."

그가 뭔가를 기록하던 손을 멈춘 채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자신의 허리를 연신 두들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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