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
하르무(3)
푸왁-
살점이 뜯겨져 나간다.
이번에는 가슴팍.
이미 몸의 균형은 깨진 지 오래.
허억.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몰아쉰다.
자신이 이 정도 밖에 안 된 것인지 아니면 단지 그 약 때문인지 지친 탓인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하나는 확실하다.
강하다.
확실히 강하다.
게다가 모든 건 아니지만 자신의 육체를 흡수한 탓에 하르무 자신의 능력도 은연 중 발현이 된다.
지금도 밀리는 판국에 배코마저 가세한다면...
금방이겠지 아마도.
그렇다면 결혼은 하나.
배코가 가세하기 전에 박살을 낸다.
저기 가슴팍에 갑각이 깨어진 부분.
저 곳만 집중적으로 공격을 해야겠다.
비록 팔은 하나 밖에 남지 않았지만.
"오라!"
[끼리릭. 얼른 먹어어지. 너 너무 맛있어. 이런 식사는 처음이야.]
키에에에에에에엑-
으랴아아아아아아압-!!!
결계 안에 둘의 고함소리가 다시금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자.
배코의 입가에 미소가 살며시 걸렸다.
몹시 앙증맞고도 사랑스러울 정도의 미소가.
****
콰드득-
시커먼 갑각의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한쪽 눈이 부풀어 올라서 앞의 시야가 잘 보이지도 않는 하르무에게도 똑똑히 보였다.
정확하게 자이앤트의 가슴팍에 파고든 자신의 주먹이.
한쪽 입꼬리가 싸악 말려 올라가며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났다.
'좋아. 먹히고 있어.'
키에아아아아아-!!!
고통스러운 비명.
할 만하다.
그 비명이 마치 노랫소리처럼 들리는 건 하르무 만의 착각이겠지.
하르무는 주먹을 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되레 자이앤트와의 거리를 좁혀 버리는 하르무.
으흐흐흐흐흐-
본능이 이끄는 대로.
하르무의 몸은 그렇게 움직였다.
크와아아아-
입을 쩌억 벌린 채 그대로 자이앤트의 앞다리 하나를 물어버리는 하르무.
그리고는 입으로 물은 앞다리를 사정없이 뽑아버리는 그였다.
짝짝짝짝-
"아하하하. 이거 너무 재미있어요~ 하르무 님. 이렇게 하르무 님이 막싸움을 하는 걸 처음 봐요. 역시 이 정도는 되어야 주인이라고 할 만하죠~"
박장대소를 치며 즐거워하는 배코.
그에게는 자이앤트의 안위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다만 완전히 죽지만 않으면 그 뿐.
상처를 입은 건 치료를 하면 그만이다.
솔직히 자신이 손을 조금만 거들어 준다면 진작에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재미있는 걸 어떡해?
지금은 정말 오로지 유흥을 위해서 즐기고 있는 배코였다.
비틀거리는 자이앤트.
"좀더 힘을 내! 앤트! 날 실망시킬 셈이야?"
조금 부족한 듯하긴 한데...
배코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 사이 다시 이어지는 둘의 난타전.
오로지 서로 물고 뜯고 때리고 치고 박아대는 둘이었다.
****
'됐다.'
배코 쪽을 한 번 흘겨보는 하르무.
저 아이 같은 모습을 한 녀석은 여전히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럼 마무리.
마무리를 지을 시간이다.
아무리 그래도 환수계의 주인 중 한 명인 자신을 환수 따위가 이길 리가 만무하지.
일순 하르무의 남은 팔이 날카롭게 변했다.
마. 무. 리.
하르무의 팔이 바람을 가르며 빠른 속도로 자이앤트를 찔러갔다.
슈와아아아아아-
바로 그때.
지금껏 침묵을 지키고 있던 배코가 손가락을 까닥였다.
단 한 번의 손짓.
실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눈 한 번 깜박이는 시간보다도 훨씬 짧은 시간.
하지만 이들 하르무와 자이앤트 사이에서 흐르는 시간 속에 그 찰나의 시간은 엄청난 반작용으로 돌아왔다.
하르무의 양껏 벌려진 입이 자이앤트의 머리를 깨무려는 바로 그 순간.
그의 몸이 멈춰버렸다.
그 사이를 파고든 건 자이앤트의 날카로운 주둥이.
그것은 유감스럽게도 하르무의 목을 반절 이상 날려버렸다.
푸와아아악-
피가 사방팔방 튄다.
...어...어...?
잠시 멈칫거리던 그의 몸이 스르륵 무너졌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하르무.
"이런 개........."
피가 낭자한 땅에 그대로 퍼질러지는 하르무의 몸.
치명상이었다.
그리고 그 때 쏜살같이 달려드는 자이앤트.
자신이 이겼다든가 겨우 살았다든가라는 건 자이앤트의 머릿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감정이었다.
득달같이 달려들어 하르무의 몸을 먹기 시작하는 자이앤트.
와구와구와구와구-
그렇게 먹혀가는 하르무.
아픔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환수계의 주인 중 한 명인 자신이 이런 최후를 맞이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듯한 그의 표정.
시...바... ㄹ.
****
결계 안.
그저 잘근잘근 씹어 먹어 치우는 소리만 들려온다.
"천천히 먹어야지~"
이미 하르무의 몸 반 이상을 먹어치운 자이앤트.
하지만 하르무의 생명은 아직 이어진 채였다.
"그거 다 먹으면 저기 나머지 주인들도 먹어야 해."
아차.
그 소리에 점점 편안해져만 가던 하르무의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안돼.
저들을 그렇게 하찮게 죽음을 맞이하게 할 수는 없지.
비록 자신은 싸움에 패배해 이렇게 되는 것이지만 자신을 먹어 치우는 이 녀석에게 더 이상의 힘을 줄 수는 없다.
마지막 남은 자신의 기운을 쥐어 짜는 하르무.
다행히 배코의 결계에 조그마한 공간을 만들 정도의 기운은 될 것 같다.
후... 다행이군.
마무리를 이렇게 맞이하는 건 원치 않았지만...
비록 진영이 달라 대립하긴 했지만 그건 단지 자신과 가는 결이 달랐을 뿐.
나머지는 너희 둘에게 맡기겠다.
'어떻게든...'
하르무의 남은 팔 하나에 일순 기운이 모아졌다.
솨아아아아아아아-
"앗! 아직 저런 기운이!"
배코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뭔가 노림수가 있다.
그렇게 배코가 하르무의 숨통을 아예 끊어버리려는 찰나.
하르무의 손에서부터 기운이 터져 나왔다.
퍼어어어억-
자이앤트의 가슴 부분을 그대로 휩쓸고 가며 키린과 부르사이에게 쏘아진 기운은 둘을 그대로 감싸안았다.
배코는 거기에 대해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대응하기에는 하르무의 노림수가 무엇인지도 몰랐을 뿐더러 순식간에 벌어진 탓이었다.
그 사이 하르무가 쏘아낸 기운.
쿠와아아앙-
둘을 감싼 기운은 그대로 배코가 만든 결계를 부수며 밖으로 튀어 나갔다.
"돼...ㅆ...다... 후...후후..."
하르무의 마지막 말.
한없이 만족스러운 표정과 함께 그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반면.
이이이이이익......
처음으로 일그러지는 배코의 얼굴.
한없이 귀엽게만 보이던 그의 얼굴이 마치 귀신처럼 보일 정도였다.
손을 쓰기에는 이미 늦었다.
이미 자신이 만들어 놓은 결계는 와장창 무너져 내리고 있었으니.
그리고 밖에 보이는 하르무의 부하들.
"귀찮게 됐네. 저런 발버둥을 칠 줄은. 쩝."
배코의 중얼거림.
그와 동시에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하르무의 부하들이 자신에게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