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
하르무(2)
얼마 전까지 호기롭게 외치던 하르무.
허나 그 분위기는 이미 바뀌어진 지 오래.
그의 얼굴에는 낭패가 가득했다.
"뭐냐... 뭐 이런 거지 같은 경우가..."
가뜩이나 피 칠갑을 했던 그의 몸.
이미 그의 팔 한 쪽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온데간데 없이 잘려나간 상태였다.
허전한 팔이 있던 부분.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이앤트를 압도해 나가던 무용을 뽐내던 팔.
와구와구-
콰드득- 콰드득-
[맛있다... 맛있어...]
하르무의 잘려나간 팔을 든 채 와그작 와그작 씹어 먹는 자이앤트.
표정을 잃을 수 없는 자이앤트의 모습이었지만 분명히 행복하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모습이었다.
"우쭈쭈. 맛있니?"
[더 줘. 더 줘.]
'이상하다. 힘이 모아지질 않아.'
둘이 노닥거리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던 하르무가 입을 열었다.
"너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것이지?"
그랬다.
결계가 만들어지고 자이앤트와의 싸움이 시작되었을 때.
원래대로라면 마음껏 발산되었어야 할 자신의 기운이 터져 나오질 않았다.
이런 경우가 있었던가?
평상시처럼 서있기는 하지만 하르무의 몸은 사실 평상시에 비한다면 아주 만신창이가 된 몸이었다.
뀨???
"아하하하. 무슨 짓을 하다뇨? 전 아무 짓도 한 게 없는데요?"
오히려 무슨 소리를 하냐며 자신은 아예 영문도 모르겠다며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하르무에게 되레 반문을 하는 배코다.
"하르무 님의 몸에 장난질을 친 건 아니죠. 엄밀히 따지면."
슬쩍 무언가를 흘리는 배코.
그 말에 문득 어디론가 생각이 미치는 하르무.
배코와의 접점은 지금까지로 보건대...
그가 건네준 환약 하나 밖에 없다.
그래. 맞아!
이 자식이 약에다가 장난질을 쳤음에 틀림없어.
의문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약...? 약?"
"너... 그 약..."
"오오오오~ 완전히 돌대가리는 아니었어. 그렇죠~ 맞아요. 그거 약 쪽이에요. 아하하하하하하."
배코가 만든 약.
몸의 미세혈관 그리고 세포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는 잠재력을 일거에 분출시킬 수 있는 약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야 그렇다손쳐도 결과값이 너무나 좋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땀을 흘리고 노력하여 얻은 힘이 아니라서 그런 것일까.
모든 전투가 끝난 후 사용자의 몸을 아예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나마 하르무가 주인이라서 이렇게 버티는 것이지 나머지 환수들이 저 약을 섭취했더라면 지금쯤 그저 한 줌 핏덩이로 녹아버렸을 것만 같았다.
"얼른 하셔야죠~ 아하하."
****
[맛있어.]
어느 새 팔 한 짝을 먹어 해치운 자이앤트가 하르무 쪽을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다.
"좋니? 아하하."
좋아.
일단 약 때문이라는 건 알았다.
그럼 나머지 질문 또 하나.
이번 질문은 자이앤트를 향한 것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강할 수가 있지?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궁금하죠? 응? 궁금하죠? 아~ 이걸 가르쳐 줄까 말까..."
도발에 도발을 거듭하는 배코.
단순히 화가 나는 걸 넘어서 저 놈 만큼은 찢어죽여도 시원찮을 것만 같다.
"배코... 네 놈..."
배코는 마냥 즐겁다는 듯 자신이 만든 결계 안을 팔짝팔짝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에 열이 머리 끝까지 오른 하르무.
하지만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
배코도 배코지만 자이앤트가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젠장. 이 무슨 꼴을.'
한시라도 빨리 탈출구를 찾아야만 한다.
이대로라면 왠지 먹히는 건 자신이 될 것만 같았다.
생각도 못해봤다.
자신처럼 먹이사슬의 최고봉에 있는 자가 저 중간 어디쯤에 있는 환수에게 이렇게 당할 줄은.
힐끗-
결계 너머를 바라보는 하르무.
자신이 데려온 녀석들도 있을 터.
허나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질 않는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결계의 색이 짙어 보이는 건 정말이지.
"장난질을 쳐도 잔뜩 쳐놓않군."
"아하하하. 에이~ 장난질은 무슨. 그럴 리가 없죠~"
손사래를 치며 실실 웃어제끼던 배코가 갑자기 표정을 정색했다.
"하르무 님."
허나 그저 자신을 빤히 쳐다보기만 하는 하르무.
"하르무 님?"
다시 한 번 목청을 드높이는 배코.
하지만 다시 대답을 않은 채 가만히 서있는 하르무.
'시간을 벌겠다?'
뭐 지금 저건 딱 보아하니 회복을 위한 속임수다.
이렇게 어떻게든 상처를 치유하고 체력을 회복해서 도망을 가던가 아니면 무언가를 할 생각이겠지.
"크크크크크크크크. 쓸데없는 짓을 하시네요. 하르무 님. 천하의 주인 중 한 명이 이런 봉변을 겪을 줄은 감히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으득-
순간 배코의 그 말에 하르무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대답 대신 이빨을 강하게 꺠무는 하르무.
맞는 말이다.
"자. 그럼 잠시 생각을 좀 해보자."
하르무가 몸을 천천히 돌리며 한쪽 팔이 날아간 상태로 다시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그만 끝을 내죠. 저도 바빠요. 아하하하하."
부우우웅-
배코가 턱 끝으로 하르무 쪽을 행해 가리키자 순간 자이앤트가 자세를 취했다
****
쌔애애애애액-
콰아아아앙-!!!
"크흡......"
먼지가 자욱한 곳에서 답답하 신음소리.
누가 밀리고 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이미 결계 안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에는 옆구리 한 줌.
또 뜯어낸 모양이다.
자이앤트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하르무의 조각을 낼름 섭취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먼지가 걷혔다.
조금 전에 비해 더욱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는 하르무.
얼굴은 핏기가 가신 지 오래.
허억... 허억...
말할 여유도 없다.
조금이라도 돌려야 한다.
어떻게든.
곧 고지가 코앞인데 여기에서 저딴 것들에게 당할 수는 없다.
"아이쿠~ 측은하기도 해라~ 쯧쯧쯧. 앤트야아~"
[끼릭]?]
한창 식사 중인 자신을 왜 부르냐며 짜증을 내듯 고개를 홱 돌리며 배코를 쳐다보는 자이앤트.
"뗵. 나한테 그런 표정하면 못 써요~"
마치 애들을 타이르는 듯하다.
'아휴. 손이 좀 많이 가긴 하네.'
"일단 그럼 저 환수를 잡아주겠니? 얼른 저걸 처리해야 네 허기를 달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그래. 나 배고프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꽤나 배를 많이 채웠을 법한 느낌.
그래서인지 자이앤트의 말이 신용이 안 간다는 듯 배코가 재차 자이앤트의 얼굴을 힐끗 보았다.
[나 그럼 하면 돼? 응?]
"그래~ 가능하지. 얼른 끝을 내어버리자. 저기 널부러져 있는 주인들도 네가 다 먹어야 하지 않겠어?"
순간.
자이앤트가 움직였다.
시커먼 하나의 덩어리가 한 팔을 잃고 만신창이가 된 하르무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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