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
과거(2)
"저 아이는 어째 두려워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대?"
뭔가 이상한 느낌이 없자나 들긴 하지만...
그래도 같은 인간이 아닌가.
한 명의 마수 사냥꾼이 아이를 향해 손짓을 한다.
위험한 마수에게서 도망치라며.
자신들이 구해주겠다며.
하지만 페릴턴은 미동조차 않았다.
마수를 끌어 안은 것 같은 모양새다.
마치 죽어가는 마수를 보호하는 것처럼.
그러는 사이 몇몇은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몇몇은 마수를 잡기 위해 양 갈래로 나뉘어지기 시작했다.
슥슥- 슥슥-
발이 움직이는 곳을 따라 풀이 허리를 굽힌다.
땅을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마수 사냥꾼들.
캬아아아아아아-
낮고 날카로운 울음소리.
입으로 피를 질질 토해내는 와중에도 마수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도망을 가려면 충분히 갈 수 있다.
하지만 굳이 도망을 치지 않는 이유.
페릴턴 때문이었다.
이 아이가 없어야 뭐라도 할 수 있을 터이나 이대로 뒀다가는 오히려 아이가 위험해 질 수도 있으니...
한 걸음도 떼지 않는 페릴턴을 마치 감싸듯 몸을 둥글게 마는 마수.
"아이! 아이부터 되찾아라!"
어느 새 방향을 나눈 채 지척까지 접근한 마수 사냥꾼들.
페릴턴을 보호하는 마수와 페릴턴을 무사히 구출하기 위한 그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
캬악-
억-!!!
"으악!!! 내 팔!"
"이 짐승이!"
꾸엑-!
크와아아앙-!
"다리! 다리부터!"
"못 움직이게 막아!"
캬아악-
딱- 딱-
빈 틈 없는 이빨을 들이대 자신에게 칼을 들이대는 마수 사냥꾼 하나의 허리를 그대로 씹어버린 마수.
촤악-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며 피가 촤악 튀었다.
그때.
팟- 팟-
사방에서 날아오는 클링어.
그것들은 마수의 몸을 칭칭 감아버리는 한편 페릴턴의 허리를 그대로 사라락 휘감았다.
"!!!!!!"
[!!!!!!]
그 광경에 마수가 방향을 틀어 다시 페릴턴을 되찾으려 했다.
그 까닭에 마수의 커다란 육체에 빈틈이 잔뜩 생겨났다.
푹-
푸욱-
푹-
푹-
"됐다!"
"더 찔러! 숨통을 끊어버려!"
난도질이 시작되었다.
크와아아아아아아아악-!!!!!!!!!
고통스러운 마수의 울음소리.
그 사이 페릴턴은 제대로 대항조차 못 한 채 속절없이 마수 사냥꾼들에게 구출되는 중이었다.
"안돼!!!"
눈물을 흘리며 마수에게로 손을 뻗는 페릴턴.
하지만 이미 난도질을 당해버린 마수의 몸.
생명의 불꽃이 점점 꺼져가는 중인 마수였다.
[...살아라... 인간은 인간과 함...]
스걱-
말을 채 잇지도 못한 마수.
어느 마수 사냥꾼에 의해 그대로 목이 땅에 툭 떨어졌다.
그리고 그걸 본 페릴턴.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않은 채 그저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
그 모습에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마수 사냥꾼들은 아이를 보살피는 한편 마수의 잔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
그 후 페릴턴은 아동 보호 시설에 맡겨졌다.
연고도 없고 그렇다고 자신이 어떤 아이인지 입도 열지 않는 아이였다.
그러니 입양을 보내려 해도 어느 부모가 좋아하겠는가?
그렇게 그는 그저 혼자 있을 뿐이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그 후 어느 순간.
페릴턴은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그 누구도 찾을 수 없게끔.
사람들은 그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니 알았을 때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하지만 아이가 없어졌음에도 난리법석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루 이틀 단지 찾는 시늉만 할 뿐.
그걸로 끝이었다.
그 후 페릴턴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때.
한 명 씩 한 명 씩 랭커를 죽여갈 때였다.
그리고 지금 그가 죽어가고 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체스.
하지만 마무리를 짓지 않고 대신 검을 집어 넣는 그였다.
이제 곧이다.
곧 죽을 자에게 굳이 검을 재차 꽂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하악... 하아악... 난... 인간이 싫다..."
그런 체스를 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조금 더 이어가는 페릴턴.
아까는 왜 갑자기 그렇게나 삶을 구걸했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삶에 대한 애착이 생겨버린 것일까?
하지만 모든 것을 내려 놓으니 오히려 편해졌다.
쿨럭- 쿨럭- 쿨럭-
한동안 피 섞인 기침 소리가 이어졌다.
기침을 하는 동안 튀어 나온 피에는 검붉은 덩어리가 보이는 게 부르사이가 오더라도 살아남을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였다.
"......"
그저 페릴턴을 바라보고 있을 뿐인 체스.
"...허억. 허억... 하지만... 왠지 널 여기에서 안 만났다면... 하악... 괜찮을 수도 있었겠지."
"그게 무슨... 말이지?"
"뭐... 말 그대로다... 가끔은 인간으로... 인간과 어울리고 싶었다..."
곧이라도 끊어질 실날 같은 숨을 이어가며 페릴턴이 자신의 진정한 속내를 읊었다.
지금까지 그의 이야기를 들은 체스는 페릴턴 그가 저렇게 이야기를 하는 게 이해는 갔다.
외로웠겠지.
하지만 자신의 가족과도 같은 마수를 죽인 인간들이 미울 수 밖에 없었겠지.
그래서 더욱 뛰어다녔겠지.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을 했더라면 더욱 좋은 삶으로 나아갈 수도 있었던 사람이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페릴턴을 보며 왠지 한편으로 가엾다는 생각이 드는 체스였다.
"...하아... 이제... 모든 건... 너에게... 달렸ㄱ..."
푹-
페릴턴은 나머지 말을 잇지 못했다.
짧다면 짧았던 그의 인생의 마지막이었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살지 못한 관여자의 최후였다.
순간.
슈르르-
페릴턴의 몸에서 반투명한 아지랑이가 흘러 나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희끄무레한 아지랑이는 그대로 체스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점점 더 짙어지는 아지랑이.
갈라져 있던 관여자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더욱 깊어진 체스의 눈매.
페릴턴의 기억 그리고 그가 느끼고 있던 감정 그 모든 것이 체스에게 흘러온 까닭이었다.
입을 다문 채 있던 체스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가는 자에 대한 마지막 예의였다.
서로 무기를 겨누기는 했지만 마지막은 인간으로서 죽음을 맞이한 페릴턴이었다.
이 정도는 사치가 아니겠지.
그렇게 체스는 페릴턴을 마음 속으로나마 배웅했다.
그리고 체스의 모든 행동이 끝난 후에야 입을 떼는 헬캣.
-흐음. 갈까?
"네. 이제 가면 될 것 같아요."
말투가 한없이 가라앉은 체스였다.
****
"으하하하하하하하!!!!!!"
광오한 웃음소리.
환수계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어마하게 광오한 웃음소리다.
온 몸이 피투성이를 한 자.
하르무였다.
그가 웃은 이유.
바로 자신의 앞에 펼쳐진 상황 때문이었다.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파란 녀석 그리고 빨간 녀석.
"으하하. 2명의 주인을 이기다니!"
옆구리가 길게 베어진 꽤나 심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르무는 아직도 힘이 남아도는 듯 보였다.
"죽지는 않았으니. 으흐."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하르무.
그런 그의 앞에 무언가가 스륵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