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221화 (221/249)

#221

재회(2)

정말 살아 있다.

"어떻게 살아 있지?"

묻고 싶은 게 많다.

하지만 체스는 거기에 대해 별로 대답을 하고 싶어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하긴 자신도 딱히 잘 모르니 설명을 할 방도가 없었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어깨를 으쓱거리는 체스.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이제 다시는 이런 질문을 못 들을 것이니. 이번에는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주지."

"글쎄. 가능할까? 이번에는 정말 다른 것 같은데."

체스의 어투에서 느껴지는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

'무언가 바뀐 것 같긴 하군."

페릴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나는 안 보이냐?

새까맣게 무시 당한 헬캣이 발끈했다.

"아. 미안하군."

체스도 살아있는데 헬캣이 살아있는 것 정도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다.

그다지 헬캣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는 페릴턴.

순간 헬캣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린다.

-이 놈이 무시르으으을...???

하지만 페릴턴은 들은 척도 않는다.

대신 체스를 지그시 응시하는 그의 눈.

그의 머릿속에는 체스 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관여자 대 관여자.

아마 서로를 마주 보고 이렇게 서있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 터.

물론 마지막에 서있는 자는 페릴턴 자신이 될 수 밖에 없지.

"예전에 비해 여유가 넘치는군."

그렇다면 어디 한 번 얼마나 바뀌었는지 볼까.

저 자신감의 근원.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고 싶었다.

팔을 가볍게 늘어뜨리는 페릴턴.

스응-

그의 의지가 발현이 된 모양이다.

허공에 둥실 떠오르는 수많은 만병 중 하나.

정확하게 체스가 있는 방향을 향해 세워진 날.

"우선 맛보기다."

****

페릴턴을 다시 만났을 때의 체스.

그의 온 몸에 있는 털이 바짝 서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 번에 만났을 때와는 다른 의미의 느낌.

부르사이에게 실컷 두들겨 아니 가르침을 받은 게 확실히 도움이 된 듯하다.

이제는 보인다.

체스의 두 눈 그리고 뇌리 깊숙이 박혀 들어오는 또다른 관여자.

그 페릴턴이 얼마나 강대한 기운을 몸 안에 품고 있는지.

체스에게 느껴지는 페릴턴의 상단과 중단 그리고 하단에 머금어진 기운.

엄청나다.

그리고 고요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심장이 뛴다.

저 기운이 얼마나 날카로운 이빨을 숨기고 있는 것인지 체스 자신은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런 것만 보아도 페릴턴이 얼마나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넣고 단련을 한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있다.

단지 관여자라서가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서 말이다.

저도 모르게 체스의 중단이 반응을 한다.

페릴턴의 기운에 자연스레 기운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중단에서 시작된 조그마한 회전.

그 회전은 회전에 회전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치 따스한 봄날 볼에 느껴지는 산들바람과 같았다.

부드럽게 부드럽게 그리고 겹쳐지고 겹쳐진 바람은 어느 새 태풍과도 같은 회전을 이끌어 낸다.

그렇게 체스의 중단에서부터 시작된 태풍은 그의 하단과 상단을 끊임없이 옮겨가며

점점 그 힘을 키웠다.

관여자의 기운에 키린 그리고 부르사이의 기운까지 곁들어진 체스의 몸.

손 대면 터질 것만 같은 기운이 체스의 중단에 가득 차오른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경이로울 정도로 강한 자연스레 끌어올려진 체스의 기운은 이내 중단에서 점차 압축이 되어갔다.

누르고 누르고 또 눌러지며 압축이 된 힘.

그리고 그 기운이 정점에 달해 더 이상 작아질 수 없을 정도로 작아진 체스의 기운.

그때.

보였다.

페릴턴의 행동.

그가 원하는 것이.

그와 동시에 날아들었다.

빛살처럼 쏘아진 페릴턴의 만병 중 하나가.

****

쌔애애애애애애애액-

공기를 가르며 몹시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만병.

그리고 정확하게 체스의 목 부근을 노린 그것.

곧이라도 그의 목이 뚫릴 것만 같은 긴박한 상황이다.

1미터.

50센티.

30센티.

그리고 곧!

바로 그때.

뚝-

체스의 목에서 불과 10센티 정도 떨어진 허공에서 붕 떠있는 그것.

만병이 멈춰버렸다.

웅웅 소리와 함께 격하게 진동하는 만병.

"이 정도로는 부족하지."

체스의 한쪽 입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그 소리에 한층 더 격해진 진동.

하지만 무용이다.

갑자기 진동이 뚝 멈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페릴턴과 만병 사이의 연결이 끊어져 버렸다.

꿈틀.

페릴턴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패였다.

순간.

뿌득- 콰득-

움직임을 멈추었던 그것이 빠르게 짜부라져 간다.

반으로 접히고 또 반으로 접히고 쇳덩이인 그것은 그렇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어느 순간 한 손에 들어갈 정도로 동그랗게 말려 들어갔다.

툭-

데구르르-

동그랗게 말려진 그것은 체스의 바로 발 밑에 떨어지는가 싶더니 몇 바퀴 구른 후 그대로 멈췄다.

"좋아."

단 한 마디.

페릴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등 뒤에 매인 모든 만병이 둥실 떠올랐다.

관여자로서의 기운.

페릴턴이 가진 모든 기운이 만병을 통해 발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아아아아아압-

그리고 페릴턴이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체스를 향해.

****

-나도 함께 할게!

헬캣이 순식간에 몸을 원래대로 돌렸다.

체스의 몇 배는 될 정도로 커진 헬캣의 몸.

쿠와아아아아앙-!!!!!!

고막이 터져 나갈 정도로 울음소리를 낸 헬캣이 뒷다리에 힘을 꽉 집어넣었다.

땅이 패어 나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이다.

그때.

"비켜요!"

옆에 서있던 체스가 고함을 꽥 질렀다.

에...?

막 뛰쳐나가려던 헬캣이 그만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땅바닥에 철퍽 처박혔다.

"내가 할게요~"

그리고 그와 동시에 체스가 한 팔로 헬캣을 투욱 밀었다.

어...? 어...???

속절없이 밀려 나가는 헬캣.

-어...어...엇... 이... 이 놈이...???!!!

당황할 틈도 없이 헬캣은 그대로 옆으로 튕겨져 나갔다.

날라가던 헬캣이 자세를 채 잡기도 전.

둘은 충돌했다.

****

자신의 손에 든 대검을 크게 한 바퀴 휘두른다.

부우우우웅-

마치 나무 작대기를 휘두르듯 아주 가볍게 휘둘러지는 그의 대검.

콰콰콰콰콰쾅-

대검과 만병이 부딪힌다.

하지만 체스는 멈추지 않았다.

만병들이 다시 자세를 잡기도 전 체스는 휘두른 기세를 오히려 이용해 자신의 기운을 힘껏 휘둘렀다.

순간 바람이 인다.

자신의 앞을 모두 날려버릴 것처럼 엄청난 기운의 바람이.

엇!!!

만병과 함께 돌진하던 페릴턴의 몸이 갑자기 멈칫거렸다.

생각보다 훨씬 강한 저항에 자신이 가진 대검으로 땅을 그대로 찍어버리는 페릴턴.

헌데.

주르르르륵-

간신히 버티기는 했지만 그의 몸은 그대로 뒤로 밀려갔다.

처음 그가 서있던 그 자리로 속절없이 돌아와 버린 페릴턴의 몸.

"...뭐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페릴턴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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