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220화 (220/249)

#220

재회(1)

난장판이 되어버린 환수계.

하르무와 키린의 싸움으로 인한 여파는 온 환수계를 휩쓰는 중이었다.

지금만 봐도 그렇다.

체스와 헬캣의 눈앞에 나타난 환수.

푸르릉-

사람 하나 들어갈 정도로 크게 벌려진 콧구멍을 통해 거친 숨을 몰아쉬는 환수.

딱 봐도 몹시 흥분한 상태다.

뿌르르르르르르릉~~~!!!

울음소리 한 번에 숲 전체가 울린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고막이 찢어질 정도로 엄청난 울음소리.

헌데 그 크기.

덩치 만으로 친다면 환수계에서도 거의 최고라 할 정도로 엄청나다.

거의 집 10여 채 정도를 합친 듯한 크기.

어찌나 큰지 고개를 양껏 들어 올려도 머리 꼭대기가 보일까 말까한 정도다.

-브로키노구만.

"브로키노요? 아~"

이름을 들으니 알 것 같다.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지만.

마수도감에서 앞쪽에 써져 있던 걸 본 기억이 있다.

"마수도감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마수도감? 아~ 막시멈이 쓴 것? 그게 인간계에 있었구만.

"에??????"

-몰랐냐? 막시멈이 그거 저작권을 갖고 있지. 그 녀석은 기록하는 자거든.

이거 유명인을 눈앞에서 봤음에도 못 알아봤네.

사인이라도 받아뒀어야 했다.

전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 체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을 때.

떠올랐다.

마수도감에 써져 있던 브로키노에 대해서.

D급의 환수 브로키노.

겉모습은 마수도감에 써진 것과 다를 바 하나 없었다.

기다란 몸에 길게 늘어진 목.

그리고 털 하나 없는 매끈한 피부.

특징이...

자신의 종족이 아닌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심장마비를 일으킬 정도로 겁이 많다고 했지 아마.

헌데 그런 환수가 왜 저런 행동을 한단 말인가.

그것도 단순히 한 마리가 아니라 다수의 무리가 말이다.

브로키노의 이상행동은 그것에 그치지 않는다.

쿵- 쿵- 쿵-

숲이 아예 무너져 버릴 정도로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 큰 덩치를 여기저기 박아대는 브로키노들.

온 몸에 상처가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브로키노들은 그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브로키노가 한 번 박치기를 할 때마다 맥 없이 쓰러지는 나무들.

사람 몇 명 정도는 합쳐 놓은 듯한 수백 년을 살아왔을 정도로 굵은 나무들은 불쏘시개 갈라지듯 그냥 마구 쓰러졌다.

쿵- 쿵-

예의 온순한 모습은 이미 온 데 간 데 없다.

시뻘겋게 변해버린 눈동자.

그 외의 환수들 또한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브로키노보다 높은 등급의 환수들 또한 미친 듯 날뛰는 중이었다.

하지만 저 몇 끼의 식사에 불과했던 브로키노가 날뛰니 나머지 환수들이 발광을 하는 것은 그저 애교에 불과할 뿐이었다.

-상황이 매우 심각하군.

환수들의 온 몸에 넘치는 본능.

바로 투쟁심.

이대로 두었다가는 환수계가 열리기 전에 웬만한 환수들은 아예 멸족을 당할 것만 같았다.

그때.

체스와 헬캣이 브로키노의 시야에 포착되었다.

뿌르르르르르르르릉-

거칠고도 큰 울음소리가 숲 속 전체를 울렸다.

그리고 그 육중한 몸이 그대로 둘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우지끈- 우지끈-

브로키노의 발에 걸리는 족족 박살이 나는 나무하며 환수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쿵쿵쿵쿵쿵-

빠르다.

전혀 줄지 않은 속도.

오히려 더욱 빨라진 느낌이다.

몸에 부딪히는 족족 박살을 내가며 빠르게 치고 오는 브로키노.

귀가 다 멍할 정도다.

-건방지게 그런 욕망에나 사로잡혀서는.

잠시 안타까운 눈빛이 헬캣의 눈매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지역에 구애를 받지 않는 자신조차 뭔가 몸이 달아 오르는 듯한 느낌인데 하물며 낮은 등급의 환수들이 이걸 버텨낼 수 있을 리 없다.

단지 이렇게 이들의 목숨을 빼앗아야 한다는 게 열이 받을 뿐.

-내가 처리하지.

헬캣의 말에 막 검을 꺼내려던 체스가 일순 멈칫거렸다.

"...에?"

-나중에 무덤이나 좀 만들어라.

그 사이 헬캣이 자신의 앞발에 기운을 모아갔다.

슈아아아아아아.

단 한 번으로 끝내겠다.

지금도 내면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을 브로키노들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는 않은 헬캣이었다.

그리고 헬캣이 높게 뛰어올라 브로키노를 처리하려는 찰나.

번쩍-

브로키노들의 저 뒤편에서부터 어떤 섬광 하나가 뿜어져 나왔다.

촤라라라라락-

****

페릴턴에게도 환수들의 변화는 느껴졌다.

하지만 그가 알 바 아니다.

그의 표정에는 변화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걸음걸이 또한 전혀 바뀌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 더 빨라진 듯한 그의 걸음.

왠지 얼마 후면 자신의 목표를 만나게 될 거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속도를 줄이려는 속셈인지 아니면 지나치게 본능에 빠져버린 탓인지 자신에게도 덤벼 들어오는 정신 나간 환수들도 꽤 있었다.

혹여나 그에게 동정이라는 자그마한 감정이 있었다면 그 환수들을 측은히 여겼겠지.

그리고 살았겠지.

그러나 페릴턴에게 그런 감정은 남아있지 않다.

냉랭한 표정의 페릴턴은 그저 걸어갈 뿐이다.

걸어간 흔적 뒤에 남은 건 단지 환수들의 시체 뿐.

그에게 덤벼간 환수들은 모두 산산조각이 났다.

자비란 없다.

방금도 어떤 환수 하나가 미쳐서 달려들었지만.

그것은 감히 페릴턴의 범위 안에 발조차 디디지 못했다.

앞발이라도 내밀라손하는 순간 페릴턴의 만병들이 빠른 속도로 날아오른 것이다.

그리고 그 만병들이 빛에 반짝이는 걸 보는 순간.

그 때가 환수의 마지막이다.

삽시간에 난도질이 되어버린 환수.

그렇게 여기까지 걸어왔다.

그리고 자신의 눈에 들어온 것.

날뛰는 환수.

또 목표물.

페릴턴의 눈매가 깊게 가라앉는 순간.

그의 의지에 따라 만병이 떠올랐다.

슝- 슝- 슝-

허공에 뜬 채 다음 지시를 기다리는 만병.

당장에라도 뛰쳐 나가겠다는 의지를 전신으로 표출하며.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가벼운 손길.

순간 섬광이 번득였다.

만병이 만들어 내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유려한 곡선은 허공에서 춤을 춘다.

그 섬광이 향한 곳은 미친 듯이 날뛰고 있는 브로키노.

촥- 촥- 서걱- 촥- 서걱-

꼬리.

다리.

몸통.

머리.

브로키노의 몸이 차례차례 썰려 나간다.

극한의 예리함을 가진 만병은 마치 두부 썰듯이 브로키노의 몸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후두두두둑-

마치 비가 내리듯 땅으로 쏟아지는 잘려나간 파편과 피.

이내 땅은 질척한 피의 웅덩이를 만들어 내며 시체가 가득한 곳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마주 친 서로의 눈동자.

파바박-

마구 튀어 오르는 불꽃.

하긴 어디 이들이 보통 사이겠는가.

한 시대에 공존할 수 없는 두 명의 관여자.

열쇠를 가질 수 있는 자.

서로가 서로의 인생을 멸절시켜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난 이들이었다.

먼저 입을 연 건 페릴턴.

"오랜만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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