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
전쟁(2)
알 수 없는 기운에 의해 휩싸인 환수계.
그리고 여기 남쪽지역.
부르사이와 헬캣의 두 눈이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무슨...!"
-엇!!!!!!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영문을 모르는 건 단지 체스.
그 하나 뿐이었다.
"왜요? 왜요? 무슨 일이에요?"
-으음... 전쟁이다.
침울한 표정의 헬캣.
"네? 전쟁이요? 그런데 전쟁이라는 거 어딜 가나 있는 것 아니에요?"
-그렇게 인간들이 벌이는 전쟁처럼 단순한 게 아니다. 이건.
헬켓의 단호한 말투.
그리고 이어진 그의 설명.
환수계의 주인들이 다스리는 각각의 다섯 개의 지역.
이들에게 전쟁이라는 개념은 없다.
그래.
지금처럼 전쟁이 벌어졌다손 치자.
설혹 전쟁에서 승리한다 한들.
다른 지역의 주인이 정복한 지역을 다스린다라...
글쎄...
아마 백이면 백.
똑같은 질문을 받는 모든 환수들은 고개를 내저을 것이다.
게다가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그들이 그런 위험을 사서 감당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각각의 지역과 주인들이 가진 특성은 아예 다른 것.
그런 그들이 무슨 연유로 전쟁을 일으키겠는가?
그리고 애초에 환수라는 존재들 자체가 인간들과는 아예 다른 존재.
그들은 오로지 본능에 따라 움직이거늘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터인데.
헌데 전쟁이라...
"미쳤네. 미쳤어."
부르사이가 학을 뗐다.
"나는 먼저 가봐야겠다."
분명히 전.쟁이라는 것을 일으킨 녀석은 하르무.
그가 단 1의 이득도 없는 이 쓰잘데기 없는 전쟁을 일으킨 이유는 안 봐도 뻔하다.
키린이다.
오로지 키린을 잡기 위한 하르무의 드잡이질이겠지.
차라리 싸울 것이라면 지네끼리 어디를 가서 싸우던가.
"에휴..."
그녀는 떠나기 직전 둘을 다시 바라보았다.
"나는 그 녀석들을 좀 봐야겠어. 너희는 열쇠를 획득해라. 열쇠는 중앙에 위쪽으로 연결된 곳에 있으니 이 길로 쭉 올라가면 될 거야. 너희가 열쇠를 먼저 획득하고 없애야 이 모든 게 끝이 날 것 같으니 좀 서두르렴."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화려한 날개를 쫘악 펼치며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그녀.
순간 그녀의 길게 늘어진 꼬리깃을 따라 별빛처럼 반짝이는 붉은 빛의 잔영들.
그녀의 움직임과 함께 남쪽의 환수들이 함께 날아올랐다.
환상적이다.
하늘에 수를 놓는 환수들의 화려한 잔영은.
"헉... 저게 다 뭐에요...?"
처음 보는 장관에 체스가 입을 떠억 벌렸다.
-주인이 움직이니 같이 움직이는 거지.
"아... 그렇구나. 그럼 헬캣 님도 어디론가 가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왜? 내가 갔으면 좋겠냐?
"아하하... 그럴 리가요. 뭐 그런 건 아니지만 갑자기 궁금해서요."
-난 어느 주인에게 속한 몸이 아니라 상관 없지. 그리고 내 목표는 하나라.
하긴 갈 리가 없지.
그리고 확실히 알았다.
그가 인간계에 머무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구나.
'고독사를 방지하기 위해서였구나...'
헬캣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체스.
측은함이 잠시 체스의 눈동자에 머물렀다.
-뭐냐? 그 눈빛은. 이상한 눈빛을 하고 있네. 우리는 빨리 우리 갈 길이나 가자. 네 일이 더 중요하다.
다행히 체스의 감정을 읽지는못한 모양이다.
대신 얼른 체스를 채근하는 헬캣.
"아. 그렇지. 빨리 끝을 내야 돈을 받죠."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릴 뻔했다.
그러고 보니 돈 갚을 날이 하루 이틀 정도 지난 것 같은데...
가만히 손가락을 들어 뭔가를 세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갸웃거리는 체스.
-왜 그러냐?
"아... 그러고 보니 빚 갚는 날이 얼추 된 것 같아서요."
-멍청하냐? 네가 환수계에 있는데 인간들이 어떻게 돈을 받으러 오냐?
"맞다! 여기 인간계가 아니죠?"
깜빡할 뻔했다.
인간들이 올 리가 없지.
갑자기 힘이 마구마구 솟기 시작한다.
"얼른 가요~ 빚 갚아야죠~"
씩씩한 외침과 함께 앞으로 크게 한 걸음을 내딛는 체스.
-......쟤가 갑자기 왜 저래...
하여간 이해를 할 수 없는 놈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헬캣은 한숨을 가볍게 내쉬며 그의 걸음을 따라갔다.
****
한편 무거운 분위기에 지배 당해버린 이 곳.
키린의 성 안이다.
"키린 님. 어쩌시겠어요?"
"......"
허나 키린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무언가 마냥 생각에 잠겨 있는 듯 보였다.
"키린 님."
다시 한 번 불러 보았으나 여전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키린 님!"
약간 언성을 더 높인 켄타.
"어... 어...?"
화들짝 놀란 키린이 눈을 번쩍 떴다.
"...뭐 하시는 거에요? 설마... 지금 졸았다거나 제가 생각하는 그런 류의 것은 아니...겠죠?"
쓰읍-
켄타가 눈치 못 챈 사이에 슬쩍 자신의 입가를 닦으며 헛기침을 하는 키린.
"그럴 리가 있냐? 졸다니. 지금 이 급박한 시기에 한 지역의 주인으로서 내가 어떻게 졸 수 있겠냐?"
"그럼 얼른 대답을 하시죠. 어떡하시겠어요?"
의심쩍은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채 켄타가 키린을 재촉했다.
그제야 기지개를 쭉 펴며 입을 열기 시작하는 키린.
"뭘 어쩌긴 어째. 대화로 풀어야지. 주인끼리 싸우면 이 환수계가 뒤집어지는 걸 모르지도 않을 건데. 저 아이들을 어떻게 다 죽이냐?"
이 와중에도 자신의 지역에 존재하는 환수들을 걱정하는 키린이었다.
켄타도 그 마음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키린의 희망.
자신이 보기에는 절대 대화 만으로는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전쟁이라구요. 지금껏 환수계에서 단 한 번도 없었던 전쟁이라구요. 열쇠도 만들어진 마당에 더 이상 그것만 기다리지는 않겠다는 협박이라구요."
"그거야 알지. 하지만 그러기에는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잖냐."
"그럼 진작 열쇠가 만들어지는 걸 막았어야죠... 기운은 나눠줘버리고 애진즉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어요 진짜."
시작된 켄타의 잔소리에 키린이 귀를 틀어 막아버렸다.
다시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키린.
허나 이번에는 금방 눈을 떴다.
"좋아. 하르무에게 가자. 말로 하면 되겠지. 그 녀석도 관여자가 둘이나 있으니 미친 놈 널뛰는 것 마냥 치고 들어오진 않겠지. 물론 내가 매번 반대를 해서 눈엣가시이긴 하겠지만 관여자가 정리되지 않는 한 굳이 이렇게 우리와 드잡이질을 해서 힘을 뺄 필요는 없으니까."
"그건 맞는 말이지만 과연 말이 통할 지 모르겠네요. 북쪽의 환수들이 몽땅 올 텐데 말이 안 통하면 바로 전쟁이라구요."
"그러니 더더욱 가야지."
키린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그 또한 하르무와의 만남을 위해 곧장 성 밖으로 걸음을 옮겨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