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217화 (217/249)

#217

전쟁(1)

배코?

이 시점에 배코?

뜬금없이...?

몸을 돌려 그 곳을 벗어나려던 하르무가 멈칫거렸다.

질문이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나왔다 싶을 정도로 생뚱맞았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네가 배코를 찾을 때도 있나? 그나저나 배코는 왜? 또 어딘가 돌아다니고 있겠지."

"그래? 그렇군."

놀란 하르무에 비해 지나치게 무덤덤한 호아류.

하르무가 듣고 싶어하던 대답은 아직 흘러 나오지 안았다.

"갑자기 배코를 왜 찾는 거야? 그 녀석은 언제나 혼자 돌아다니잖나. 나도 그 녀석을 본 지 꽤 오래 되었지 아마."

"흠... 그런가. 알겠어."

"... 그게 끝이야?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별 일이 있어서 무언가 궁금한 게 있어서 물어본 게 아니다. 그냥 궁금했을 뿐."

순간 하르무의 눈꼬리가 살짜 가늘어졌다.

저렇게 의미 없는 질문을 던질 녀석이 아닌데...

뭔가 있나?

의심이란 게 그렇다.

한 번 생겨나기 시작하면 물고 물고 늘어져 끝도 없이 이어지는 법.

하지만 굳이 캐묻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네 일은 네 일이고 내 일은 내 일일 뿐.

하르무는 더 이상 거기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

"난 이제 곧 바빠질 예정이니 그만 가보지. 거 계속 여기에만 있지 말고 좀 움직이고."

"그래. 내 알아서 하지. 나머지는 네 마음 가는 대로 해라."

여전히 열쇠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만 달싹이는 호아류.

훗-

그들 사이에 인사는 굳이 필요 없다.

하르무는 그 길로 시선을 거두며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시 조용해진 방 안.

방 안은 이내 호아류의 숨소리 이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저벅- 저벅-

하르무의 힘이 실린 걸음소리.

밖은 이미 자라이가 하르무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대화는 잘 끝났나요? 어떻게...?"

결과가 자못 궁금한 듯 하르무를 채근하는 자라이.

"그래."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하르무.

"예~~~스!!!!!! 드디어 눈엣가시들을 치워버릴 수 있겠군요!"

두 주먹을 불끈 쥐는 자라이.

반면 하르무의 표정은 영 심드렁하다.

뚝-

갑자기 걸음을 멈춘 하르무.

"...안 가십니까?"

"가야지. 그런데 말이야. 이상하단 말이지..."

팔짱을 낀 채 턱을 벅벅 긁어 대는 하르무.

눈동자가 한 쪽으로 쏠리는 걸로 봐서 어떤 생각에 잠긴 듯 보인다.

"왜 그러시죠?"

"아니다. 별 건 아니고 배코 녀석을 좀 찾아봐라."

"네? 배...코...말입니까? 갑자기 배코는 왜...?"

"내가 신경 쓰이는 게 좀 있어서 그런다. 일일이 묻지 말고 그 녀석을 찾아서 그 녀석이 뭘 하는지 좀 알아봐라. 웬만하면 은신 기능이 있는 녀석들이 제일 좋겠지. 눈치가 빠른 녀석이니까."

이유는 딱히 말해주지 않는 하르무였다.

궁금하긴 하지만 저런 식이면 더 이상 캐물어도 나올 건 없다.

그래도 그가 저렇게 이야기한다는 건 뭔가 켕기는 게 있단 말일 터.

"아... 네. 뭐 그러죠."

으하하하하하하-

갑자기 하르무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주변을 울릴 정도로 쩌렁쩌렁한 웃음소리였다.

"전쟁이다!!!!!!"

다가올 전쟁으로 인해 잔뜩 달아오른 하르무의 고함소리였다.

****

흐음~~~

흐음~~~

흐음~~~

요리도 보고 저리도 보고 체스의 온 몸을 샅샅이 훑어보는 부르사이.

"......왜 그러세요?"

체스의 눈에 의문이 서렸다.

그녀가 이럴 때마다 온 몸에 한기가 서리는 듯한 게 소름이 돋을 정도다.

"호옹~ 내가 왜 그럴까나~"

그녀의 장난기 어린 말투.

부르사이의 눈은 체스의 온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어느 새 말끔해진 체스의 몸.

그렇게 숱하게 당했음에도 그의 몸은 상처 하나 심지어 멍 하나 없었다.

모든 것은 부르사이의 능력 때문이었다.

소위 병 주고 약 주는 것이 그녀가 가진 것.

다섯 명의 주인이 그렇듯이 그녀도 고유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녀의 능력은 치유.

무덤 속으로 기어 들어가더라도 죽음의 신의 도장이 찍히기 전이라면 언제든지 데려올 수 있는 게 바로 그녀의 능력이었다.

그러니 체스가 입은 상처 쯤이야.

누워서 떡 먹기지.

여하튼 심히 만족스러운 그녀의 표정.

"내가 하긴 했지만 정말 어쩌면 이렇게 딱 알맞게 만들어졌나 몰라~ 안 그래?"

말은 상냥하지만 얼른 인정을 하라는 어투다.

헬캣을 향해 돌아보는 부르사이.

-뭐 나쁘지는 않네요. 훨씬 보기도 좋고.

빈말이 아니라 정말 그러했다.

상중하 단의 기운이 섞여 있기는 했으나 키린의 기운 탓일까.

본디 푸르스름하던 체스의 기운은 어느 새 옅은 보라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마 두 개의 기운이 적절하게 섞인 까닭일 것이다.

"그렇지? 만족스럽네. 키린 녀석 왜 저리 기운을 많이 넣어둔 거야. 균형을 맞추느라 죽을 뻔했네."

흘러내린 자신의 머리를 쓸어 올리며 중얼거리는 부르사이.

허나 아주 산뜻한 마무리였다.

그것도 매우 만족스럽게.

이제 쌓인 걸 모두 풀었으니.

몸을 한 바퀴 핑그르르 돌리며 붉은 빛을 흩날리는 그녀.

"이제 여기에서 내가 할 일은 다 끝났어."

"...다 끝났나요?"

"그래. 다 끝났지. 내 스트레스가 다 풀렸으니 다 끝난 거지. 당연한 것 아냐?"

"네???"

어이없다는 듯 체스가 반문했다.

아차차-

말실수를 한 듯하다.

얼른 화제를 돌리는 그녀.

"얼른 가. 난 이만 들어가 봐야겠다. 할 일이 너무 많아~ 아유~ 씻기도 해야 하고. 이거 봐. 찬란한 내 깃들에 먼지가 이렇게나 잔뜩 쌓였잖니!"

"...분명히 스트레스 어쩌고 저쩌고 하시던데... 설마 일부러 이렇게...?"

"아유~ 얘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이렇게나 고상한 내가 무슨 그런 걸 하고 막 그러겠니."

"아니. 젝...ㅏ..."

훠이~ 훠이~

얼른 가라며 자신의 날개를 휙휙 휘저으며 자리를 내뺴는 그녀였다.

남은 건 멀뚱히 그녀의 뒷모습만 쳐다보는 체스 그리고 헬캣.

"이렇게 끝...난 거에요?"

-...어... 그런가 본데? 우... 우리도 가자.

주인이 떠난 자리에 할 일이 무에 있겠는가.

체스와 헬캣이 다시 떠나기 위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열쇠가 있는 곳으로 가면 되겠죠?"

-어디에 있는지 아냐?

"네. 그건 알 것 같아요. 희미하지만 열쇠는 느껴져요."

-관여자라서 그런가 보다. 그게 어디지?

"글쎄요. 제가 이 곳 지리는 잘 모르지만 대충 북쪽으로 가다 보면 있는 것 같아요."

체스의 느낌은 확실했다.

자세한 위치는 그 근처로 가봐야 알겠지만 우선은 북쪽 어딘가로 가야할 것 같았다.

"가시죠."

그렇게 둘이 부르사이의 성을 떠나려는 찰나.

부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남쪽 지역 전체 아니 환수계 전체에 정체불명의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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