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
전쟁(1)
배코?
이 시점에 배코?
뜬금없이...?
몸을 돌려 그 곳을 벗어나려던 하르무가 멈칫거렸다.
질문이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나왔다 싶을 정도로 생뚱맞았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네가 배코를 찾을 때도 있나? 그나저나 배코는 왜? 또 어딘가 돌아다니고 있겠지."
"그래? 그렇군."
놀란 하르무에 비해 지나치게 무덤덤한 호아류.
하르무가 듣고 싶어하던 대답은 아직 흘러 나오지 안았다.
"갑자기 배코를 왜 찾는 거야? 그 녀석은 언제나 혼자 돌아다니잖나. 나도 그 녀석을 본 지 꽤 오래 되었지 아마."
"흠... 그런가. 알겠어."
"... 그게 끝이야?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별 일이 있어서 무언가 궁금한 게 있어서 물어본 게 아니다. 그냥 궁금했을 뿐."
순간 하르무의 눈꼬리가 살짜 가늘어졌다.
저렇게 의미 없는 질문을 던질 녀석이 아닌데...
뭔가 있나?
의심이란 게 그렇다.
한 번 생겨나기 시작하면 물고 물고 늘어져 끝도 없이 이어지는 법.
하지만 굳이 캐묻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네 일은 네 일이고 내 일은 내 일일 뿐.
하르무는 더 이상 거기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
"난 이제 곧 바빠질 예정이니 그만 가보지. 거 계속 여기에만 있지 말고 좀 움직이고."
"그래. 내 알아서 하지. 나머지는 네 마음 가는 대로 해라."
여전히 열쇠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만 달싹이는 호아류.
훗-
그들 사이에 인사는 굳이 필요 없다.
하르무는 그 길로 시선을 거두며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시 조용해진 방 안.
방 안은 이내 호아류의 숨소리 이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저벅- 저벅-
하르무의 힘이 실린 걸음소리.
밖은 이미 자라이가 하르무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대화는 잘 끝났나요? 어떻게...?"
결과가 자못 궁금한 듯 하르무를 채근하는 자라이.
"그래."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하르무.
"예~~~스!!!!!! 드디어 눈엣가시들을 치워버릴 수 있겠군요!"
두 주먹을 불끈 쥐는 자라이.
반면 하르무의 표정은 영 심드렁하다.
뚝-
갑자기 걸음을 멈춘 하르무.
"...안 가십니까?"
"가야지. 그런데 말이야. 이상하단 말이지..."
팔짱을 낀 채 턱을 벅벅 긁어 대는 하르무.
눈동자가 한 쪽으로 쏠리는 걸로 봐서 어떤 생각에 잠긴 듯 보인다.
"왜 그러시죠?"
"아니다. 별 건 아니고 배코 녀석을 좀 찾아봐라."
"네? 배...코...말입니까? 갑자기 배코는 왜...?"
"내가 신경 쓰이는 게 좀 있어서 그런다. 일일이 묻지 말고 그 녀석을 찾아서 그 녀석이 뭘 하는지 좀 알아봐라. 웬만하면 은신 기능이 있는 녀석들이 제일 좋겠지. 눈치가 빠른 녀석이니까."
이유는 딱히 말해주지 않는 하르무였다.
궁금하긴 하지만 저런 식이면 더 이상 캐물어도 나올 건 없다.
그래도 그가 저렇게 이야기한다는 건 뭔가 켕기는 게 있단 말일 터.
"아... 네. 뭐 그러죠."
으하하하하하하-
갑자기 하르무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주변을 울릴 정도로 쩌렁쩌렁한 웃음소리였다.
"전쟁이다!!!!!!"
다가올 전쟁으로 인해 잔뜩 달아오른 하르무의 고함소리였다.
****
흐음~~~
흐음~~~
흐음~~~
요리도 보고 저리도 보고 체스의 온 몸을 샅샅이 훑어보는 부르사이.
"......왜 그러세요?"
체스의 눈에 의문이 서렸다.
그녀가 이럴 때마다 온 몸에 한기가 서리는 듯한 게 소름이 돋을 정도다.
"호옹~ 내가 왜 그럴까나~"
그녀의 장난기 어린 말투.
부르사이의 눈은 체스의 온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어느 새 말끔해진 체스의 몸.
그렇게 숱하게 당했음에도 그의 몸은 상처 하나 심지어 멍 하나 없었다.
모든 것은 부르사이의 능력 때문이었다.
소위 병 주고 약 주는 것이 그녀가 가진 것.
다섯 명의 주인이 그렇듯이 그녀도 고유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녀의 능력은 치유.
무덤 속으로 기어 들어가더라도 죽음의 신의 도장이 찍히기 전이라면 언제든지 데려올 수 있는 게 바로 그녀의 능력이었다.
그러니 체스가 입은 상처 쯤이야.
누워서 떡 먹기지.
여하튼 심히 만족스러운 그녀의 표정.
"내가 하긴 했지만 정말 어쩌면 이렇게 딱 알맞게 만들어졌나 몰라~ 안 그래?"
말은 상냥하지만 얼른 인정을 하라는 어투다.
헬캣을 향해 돌아보는 부르사이.
-뭐 나쁘지는 않네요. 훨씬 보기도 좋고.
빈말이 아니라 정말 그러했다.
상중하 단의 기운이 섞여 있기는 했으나 키린의 기운 탓일까.
본디 푸르스름하던 체스의 기운은 어느 새 옅은 보라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마 두 개의 기운이 적절하게 섞인 까닭일 것이다.
"그렇지? 만족스럽네. 키린 녀석 왜 저리 기운을 많이 넣어둔 거야. 균형을 맞추느라 죽을 뻔했네."
흘러내린 자신의 머리를 쓸어 올리며 중얼거리는 부르사이.
허나 아주 산뜻한 마무리였다.
그것도 매우 만족스럽게.
이제 쌓인 걸 모두 풀었으니.
몸을 한 바퀴 핑그르르 돌리며 붉은 빛을 흩날리는 그녀.
"이제 여기에서 내가 할 일은 다 끝났어."
"...다 끝났나요?"
"그래. 다 끝났지. 내 스트레스가 다 풀렸으니 다 끝난 거지. 당연한 것 아냐?"
"네???"
어이없다는 듯 체스가 반문했다.
아차차-
말실수를 한 듯하다.
얼른 화제를 돌리는 그녀.
"얼른 가. 난 이만 들어가 봐야겠다. 할 일이 너무 많아~ 아유~ 씻기도 해야 하고. 이거 봐. 찬란한 내 깃들에 먼지가 이렇게나 잔뜩 쌓였잖니!"
"...분명히 스트레스 어쩌고 저쩌고 하시던데... 설마 일부러 이렇게...?"
"아유~ 얘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이렇게나 고상한 내가 무슨 그런 걸 하고 막 그러겠니."
"아니. 젝...ㅏ..."
훠이~ 훠이~
얼른 가라며 자신의 날개를 휙휙 휘저으며 자리를 내뺴는 그녀였다.
남은 건 멀뚱히 그녀의 뒷모습만 쳐다보는 체스 그리고 헬캣.
"이렇게 끝...난 거에요?"
-...어... 그런가 본데? 우... 우리도 가자.
주인이 떠난 자리에 할 일이 무에 있겠는가.
체스와 헬캣이 다시 떠나기 위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열쇠가 있는 곳으로 가면 되겠죠?"
-어디에 있는지 아냐?
"네. 그건 알 것 같아요. 희미하지만 열쇠는 느껴져요."
-관여자라서 그런가 보다. 그게 어디지?
"글쎄요. 제가 이 곳 지리는 잘 모르지만 대충 북쪽으로 가다 보면 있는 것 같아요."
체스의 느낌은 확실했다.
자세한 위치는 그 근처로 가봐야 알겠지만 우선은 북쪽 어딘가로 가야할 것 같았다.
"가시죠."
그렇게 둘이 부르사이의 성을 떠나려는 찰나.
부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남쪽 지역 전체 아니 환수계 전체에 정체불명의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