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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의 채무 탈출기-215화 (215/249)

#215

남쪽(2)

"아휴. 바쁘다 바빠. 짐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이건 넣고 아 저건 또 필요가 없지."

홱-

홱-

쿠당탕-

보지도 않고 뒤로 물건을 막 던지는 막시멈.

어느 새 그의 뒤에는 던져버린 물건이 마구잡이로 쌓여 있었다.

허나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

그는 자신의 일에 열중이었다.

갈 때 가더라도 언제나 만반의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하는 법.

챙길 건 다 챙겨야 한다.

"이번에는 좀 길겠지? 빨리 가야겠는데."

툭 튀어 나온 저 입은 쉬지도 않는다.

연신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짐을 싸기에 여념이 없는 그의 손길.

이미 가방은 한 가득이다.

하지만 저 조막 만한 가방에 뭐 저리 공간이 많은지 계속 밀어 넣어도 끝이 없다.

집 안의 물건 중 거의 절반이 사라질 정도로.

"아휴... 힘들어. 이 놈에 관절도 아파 죽겠구만 진짜."

그래도 얼추 끝이 났나 보다.

으차차.

만족스러운 얼굴로 꽉 찬 가방을 보며 허리를 두들기는 막시멈.

그들이 모두 떠난 후에도 도통 쉬지 못 한 그였다.

이미 다크서클은 그의 턱 밑까지 점령하고 있었으니.

하지만 그는 여전히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만 했다.

기록하는 자로서.

자신은 언제나 펜대와 함께 살아가는 자였으니.

"그나저나. 가볼까 어디?"

으차.

가방을 둘러메는 막시멈.

그때.

들려오는 인기척.

막시멈의 귀가 쫑긋거렸다.

똑똑똑-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아주 정중한 노크 소리.

"어험. 계십니까?"

중저음의 목소리.

응?

"누구요?"

"지나가는 사람입니다만, 잠시 시간 좀 괜찮으십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는 막시멈.

환수계에서 지금 이 시점에 자신의 집에 올 사람이 있던가?

혹시 강도...?

"아니지. 그럴 리가 없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막시멈.

그나저나.

...그건 둘째치고.

바쁜데 왜 와서 지랄이야.

벌컥-

막시멈이 짜증이 확 난 얼굴로 문을 열어젖혔다.

잡상인이기만 해봐라.

****

문이 열렸다.

그리고 막시멈의 시선에 들어온 두 남자.

뱀눈을 뜬 채 두 눈으로 그들을 스캔하는 막시멈.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온통 검은 색 일색의 두 명이다.

...영 수상하게 보이는 게 잡상인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말이지.

"뉘시오?"

"아. 잠시 지나가는 길에 들렀습니다."

"흐음...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라... 인간 아닌가? 인간 아니우? 뭐 환수는 아닌 것 같은데."

별다르게 정체를 밝히지 않는 그들을 보며 여전히 미심쩍은 눈초리로 그들을 노려보는 막시멈.

"뭐 인간은 맞습니다. 인간이죠. 본론부터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 이 자를 아시나요?"

속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는 그.

거기에는 어떤 얼굴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사람으로 치면 못 생겨도 저렇게 못 생길 수가 없을 정도로 못 그린 초상화이다.

"뭐야. 에??? 이 아이???"

불과 얼마 전에 막시멈의 집을 잠시 들렀던 아이.

몇 번을 봐도 그 아이가 맞다.

"이 자를 아십니까?"

역시 그럴 줄 알았다.

막시멈의 반응에 확실히 감이 온 그.

둘은 구면이다.

다 년 간의 촉이 확실히 알려주고 있었다.

그 사이 감탄하기에 여념이 없는 막시멈.

"이야~ 이거 누가 그린 거지?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지? 이 이목구비들. 아니

가만히 보니 그림이 더 나은 것 같은데."

대단하다.

그가 감탄을 멈추지 못할 정도로.

정말 기회가 있다면 이 그림을 그린 자에게 칭찬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잘 그린 그림이었다.

헌데 얼굴을 모른다라?

"그런데 이 녀석을 잘 모르나 보오?"

"네. 그렇습니다. 실은 저희도 이 곳에 온 것도 처음이고 담당이 바뀌는 바람에 오게 된 것이라."

"흠. 그렇군. 보아하니 사채업자나 이런 것 같은데 맞수?"

"아. 네. 뭐 그런 셈 치십시오. 여하튼 이 자는 어디로 갔습니까?"

그래도 잠시 함께 있었다고 또 괜스레 골려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막시멈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이들에게 일일이 사실대로 고해야 할 의무도 없지 않은가.

"북쪽으로 갔수."

"북쪽?"

"그래. 그 북쪽 말이오. 난 그렇게 들었소."

"흠... 그렇군요. 그 정도 정보만 해도 감사합니다. 귀중한 시간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까지 예의를 차린 채 빙글 돌아서는 추심조였다.

"뭐 잘 가시오~ 하는 일 꼭 잘 되고."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꾸벅인 후 둘은 그대로 떠나갔다.

그리고 반쯤 열린 문 틈으로 사라지는 둘을 쳐다보는 막시멈.

"그 녀석. 달란트의 자식이라 봐줬다. 그나저나 도대체 인간계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녔던 거야? 사채업자라고 하니 낯빚이 바뀌는 걸로 봐서는 어지간히 헛짓만 하고 다녔나보네. 젊은 녀석이 말이야. 쯧쯧쯧."

그나저나 뜻밖의 방문객 때문에 일정이 너무 늦어져 버렸다.

"참. 이럴 때가 아니지. 빨리 가야지. 에잉. 저것들 때문에..."

허둥대며 움직이던 막시멈.

그는 얼른 집 안으로 들어가 나머지 채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

막시멈의 집을 나온 둘.

둘 사이에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한참 흐르던 정적을 먼저 깬 것은 그램이었다.

"그럼 저희는 이제 북쪽으로 가는 겁니까?"

빈센트는 추적기를 보는 중이었다.

그램의 질문에 그제야 추적기에서 눈을 떼는 빈센트.

"우리는 남쪽으로 간다."

그의 말에 깜짝 놀란 그램.

"아까 그 영감이 북쪽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남쪽이다. 여기 추적기도 남쪽을 가리키고 있고 그 영감. 아까 내가 질문을 던졌을때 눈이 일순 흔들리는 걸 보았다. 거짓말을 한 것이지."

"아~ 정말입니까???"

"그래. 확실하다."

"크으... 그런 걸 알아차리시다뇨. 역시 추심조 중 최고의 사채업자라 불리는 빈센트 님다우십니다.."

역시 짬은 괜히 먹는 게 아니다.

이런 눈치는 도대체 얼마나 경험이 쌓여야 가질 수 있는 것이란 말인가.

하지만 단어 선택이 잘못 되었다.

사채업자라니.

빈센트가 그램을 홱 돌아보았다.

아무리 직업이 하찮아보일지언정 그런 단여는 사용하면 안 되지.

추심조에게 있어 최고의 금기어를 말해버린 그램에게 일순 빈센트가 감정을 드러냈다.

'아차차. 말실수를 해버렸네...'

최소 중징계감인 짓을 저질러 버린 그램의 얼굴이 순간 잿빛으로 바뀌었다.

빈센트가 아직 제대로 화내는 걸 본 적은 없지만 지금 저 화난 모습만 봐도 오금이 저릴 정도다.

"죄... 죄송합니다."

"이번은 그냥 넘어가지. 조심하도록 해."

"네."

"우리도 좀더 빨리 움직인다.

그 말을 끝으로 빈센트의 걸음이 속도를 더해갔다.

"아? 가...같이 가요!!!"

빈센트가 길을 아는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가다보면 알겠지.

그램 또한 먼저 걸어가는 빈센트를 따라잡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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