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충돌(3)
[끼에에에에...]
어디론가 급하게 도망친 환수.
하아...
하아......
하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무 그루터기에 몸을 뉘인 환수였다.
감당할 수가 없는 자였어.
자신의 가슴팍의 옆 부분을 내려다 보는 환수의 커다란 2개의 시커먼 눈.
지금 상황.
아주 위험하다.
죽음의 신이 저기 코앞에서 왜 이제 왔냐며 손짓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다.
말 그대로 박살이 났다.
아예 깨져 버린 갑각 부분.
가슴의 1/3 이상이 그의 공격 한 번으로 박살이 나 버린 상태다.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속했다고 생각했거늘.
여태껏 섭취하며 먹었던 먹이량 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힘을 비축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오판이었다.
환수계에서 처음으로 접한 강자 중의 강자.
그저 본능에 따라 움직이고 사냥하고 먹고 했을 뿐이었는데.
이렇게 볼썽사납게 도망쳐 버릴 줄이야.
심지어 살아 남을지도 의문스럽다.
이대로라면...
[끼에...]
하지만 현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딱히 없다.
그저 이 몸 안의 녹색의 혈액이 조금이라도 덜 새어 나오게 하기 위해 누르는 것 정도?
그렇게 환수는 점점 죽음의 문턱에 다가가고 있었다.
만신창이가 된 몰골로.
****
"으휴... 쯧쯧쯧쯧."
혀를 끌끌 차는 소리.
순간 아득해졌던 환수의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남은 모든 힘을 쥐어짜 고개를 소리가 난 쪽으로 돌리는 환수.
조그마한 인영이다.
이 상황에 습격이라면 곤란하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에 이대로라면 죽음만 더 가까워질 뿐.
환수는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혹여나 있을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애썼다.
그 사이 점점 다가오는 조그마한 인영.
옆에는 보라색의 연미복을 입은 화장이 짙은 남자를 대동한 채.
어글리불이다.
그렇다면 옆에 있는 자는...?
잠시 후.
그 키 작은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환수가 힘 없이 다리를 축 늘어 뜨렸다.
[키이이... 키이이... 키이이... 아...빠...]
아빠?
두 귀를 의심케 하는 단어.
단어 선택이 잘못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전혀 뜻밖의 단어다.
헌데 남자의 반응이 더욱 해괴하다.
완전히 예상을 벗어난 그의 행동.
"그래. 우쭈쭈. 우리 아기. 내 그래서 아무 거나 먹으려 하면 체한다니까. 왜 이런 사달을 만드니."
상냥하고도 따스함이 느껴지는 목소리.
장난끼도 조금 섞인 듯하고.
하지만 그 입에서 흘러 나오는 목소리는 분명히 아이의 목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그만 남자는 환수를 마치 자신의 아이 다루듯 대하고 있었다.
"아이구. 이 상처 좀 봐라. 에휴..."
상처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는 남자.
그런 그에게 환수가 연이어 칭얼거린다.
[아...ㅍㅏ... 호...해줘...]
"그래 그래. 잠시만 기다려 봐."
잠시 후 남자의 손에 둘러지는 새하얀 빛.
그는 그 손을 환수의 상처 부위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
한편 어글리불은 앞으로 가지런히 손을 모은 채 둘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다소 착잡한 표정의 어글리불.
어글리불이 이렇게 얌전하게 예의를 지키고 있는 이유.
자신의 앞에서 환수를 돌보고 있는 저 자가 바로 배코이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저걸 왜 저리 다루시나 모르겠군. 정말이지...'
저리도 귀찮은 일을 말이다.
눈앞의 저 환수는 자이앤트퀸의 새끼.
유일하게 남은 자이앤트킹이다.
실은 자이앤트 퀸이 마지막 숨이 끊어질 당시.
그녀의 배를 가른 존재가 바로 배코였다.
죽어가는 자이앤트퀸의 뱃속에서 강제로 꺼내진 자이앤트킹.
그가 제일 처음 세상의 빛을 봤을 때 처음으로 인식한 존재가 바로 배코였다.
그러니 지금 그가 저렇게 배코를 향해 애정 어린 시선으로 모든 걸 맡기는 것이겠지.
그 후.
소위 정성과 사랑으로 키워진 자이앤트킹.
하긴 먹고 자고 사냥하고 그것 외에는 할 일도 없지.
배코가 저 자이앤트킹을 저리도 정성스럽게 키우는 이유는 알 수 없다.
주인이 하는 일이니 그저 그런가 보다 할 뿐.
궁금해 하지도 않았고 딱히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때.
자신을 부르는 배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 이리 와~"
배코의 말에 반응한 어글리불이 발을 슬쩍 떼며 둘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찰나.
쏟아질 듯이 퍼부어지는 적대감.
온통 시커먼 적의로 가득 찬 모골을 송연케 하는 살기였다.
어글리불을 향해 오롯이 쏟아지는 저 적대감.
자이앤트킹의 짓이다.
순간 넘치는 살기로 온 몸을 감싼 어글리불.
환수인 자신에게 이건 지극히 본능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그는 광대.
자신의 기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이내 얼굴 전체에 미소를 드리운 채 천천히 천천히 한 걸음씩 걸어갔다.
"진정해. 우웅~ 착하지. 그래. 그래."
배코가 자이앤트킹의 더듬이를 어루만진다.
그제야 안정이 되는 듯 조금씩 가라앉는 적의.
"네. 제가 뭘 하면 될까요?"
훨씬 큰 덩치 임에도 불구하고 자이앤트킹은 배코의 품에 포옥 안겨져 있었다.
적의가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처음 쏟아내던 살기에 비하면 이건 아주 애교 수준이다.
뭐 이유는 대충 짐작은 간다.
소위 애정을 갈구하는 것.
그리고 배코를 완전히 자신의 소유라 생각하는 것이겠지.
이를테면 독점욕?
자이앤트킹이 보기에는 자신이 분명히 그 영역을 깨뜨리는 존재로 보일 터이고.
그러니 더욱 저렇게 행동하는 것이겠지.
[크으으으...]
다시 한 번 으르렁거리는 자이앤트킹.
"어허. 뚝!"
낮은 울음소리를 내는 자이앤트킹을 향해 강한 어조로 말하는 배코의 목소리.
그의 손은 여전히 자이앤트킹의 상처 부위에 대어져 있었다.
재생.
재생.
새로이 돋아나는 상처 부위.
이미 출혈은 멈춘 지 오래이고 이제는 새 갑각을 두르는 중인 모습이었다.
"먹이를 좀 구해와. 많이 허기질 것 같아."
"네. 알겠습니다."
간단한 대답과 함께 어글리불이 그대로 기척을 감췄다.
그리고 그 공간에 남은 건 둘.
"어서 어서 먹어치워서 모든 걸 네 힘으로 만들어라~ 알겠지?"
자못 귀여워 견딜 수 없다는 듯 자이앤트킹의 머리를 쓰다듬는 배코.
그 손길이 너무나도 좋은 듯 자이앤트킹의 입에서는 연신 기분 좋은 소리가 흘러 나왔다.
****
그리고 남쪽.
부르사이가 다스리는 곳.
"흐에에에엑!!! 죽겠어요!!!"
체스의 다급한 목소리.
그는 현재 누워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의 앞.
저 편에서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지켜보기에 여념이 없는 헬캣.
-부르사이 님이 어련히 알아서 안 해주시겠냐? 기다려라 좀.
"아니! 저게 지금 말이 되요? 저런 건 죽는다구요!!!"
다시 한 번 터져 나오는 절규.
그가 그렇게 울부짖는 이유.
"오호호호호호호호호."
바로 찐득한 웃음을 흘리며 무언가를 들고 자신의 앞에 서있는 부르사이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