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212화 (212/249)

#212

충돌(2)

순간.

시커먼 다리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쌔애애액-

공기를 가르며 빠른 속도로 치고 들어오는 환수.

콰아앙-

강렬한 격돌음.

자욱한 먼지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어느새 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 만병.

한없이 날카로워 보이는 환수의 앞다리 2개는 이미 하나의 커다란 검에 막혀 있었다.

서로가 극한으로 끌어올린 두 힘이 호각을 이룬 상태.

허나 여유로워 보이는 페릴턴의 얼굴과는 달리 환수의 온 몸은 어딘지 모르게 긴장 서린 기색이 역력했다.

[너... 강...ㅎ...ㅏ다...]

다소 어눌하게 들려오는 말투.

한 번의 격돌로 알아차린 듯하다.

군침을 흘리게 하는 아주 먹음직스러운 먹이가 몹시도 강하다는 것을.

그그그그극-

마치 날카로운 것으로 철판을 긁는 듯한 아주 기분 나쁜 소리.

자신의 앞다리로 검의 옆날을 긁어대는가 싶던 환수는 그대로 뒤로 거리를 물렸다.

그럼과 동시에 자신의 배 꽁무니 부분을 페릴턴에게 향하는 환수.

순간 무언가 페릴턴의 시야가 무언가에 의해 막혔다.

푸슉-

몹시도 역한 냄새를 풍기는 거무튀튀한 녹색의 역체가 꽁무니로부터 빠르게 분출된 것이다.

'맞군. 자이앤트.'

확신이 들었다.

페릴턴은 손을 앞으로 스윽 한 번 휘저었다.

그러자 순간 그의 앞을 막아서는 만병 중 하나.

부웅-

일거에 거세지는 만병이 일으킨 바람.

순간 생겨난 풍막이 페릴턴의 몸을 아예 가려버렸다.

휭휭휭-

푸와아악-

덕분에 환수가 뿜어낸 요상한 액체는 그대로 풍막에 빨려 들어가며 사라져 갔다.

그리고 액체가 아예 보이지 않게 되었을 즈음.

풍막이 걷혔다.

치이이이익......

피어오르는 매케하고도 지독한 냄새.

그리고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페릴턴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앞에 둥둥 떠있는 만병 중 하나.

허나 처음 모양과는 다르게 손바닥 한 뼘 정도의 길이만 남아있을 뿐이다.

지독한 냄새는 무기의 양 끝에서부터 피어나는 연기에서부터 풍겨져 나오는 중이었다.

'흠.'

깊숙이 가라앉는 페릴턴의 눈동자.

"자이앤트가 맞나?"

이상한 게 있다.

자이앤트가 약한 환수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기운을 녹여낼 정도로 강하다?

백 번 물어봐도 아니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그 일이 벌어졌다.

[더욱 탐...난...ㄷㅏ...]

자신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간 것을 깨달은 환수가 재빠르게 자신의 기척을 지워갔다.

'음?"

페릴턴의 한쪽 눈썹이 일순 꿈틀거렸다.

지금까지의 공격 방식과는 또 다른 공격.

동시에 그의 뒤로 떠오른 만병들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샤악-

콰아앙-!!!

샤악-

슥-

콰아앙-!!!

한 번의 움직임마다 터져 나오는 강렬한 충돌음.

환수가 움직이는 경로마다 막아서는 만병들의 움직임 탓이었다.

그 후 몇 번의 빛이 연속으로 터져 나온다.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강렬한 소리와 함께.

흠.

자신의 기운을 더욱 끌어내는 페릴턴.

아예 환수의 움직임을 봉쇄해 버리겠다는 요량으로 더욱 힘을 쏟아붓기 시작한 그였다.

충돌한다.

그리고 터져 나온다.

다시 한 번 충돌.

충돌의 횟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바닥으로 떨어지는 만병들의 갯수가 늘어난다.

벌써 10여 개 정돈가.

무기가 망가진게.

'흠. 손해군.'

순간 페릴턴이 자신의 모습을 흐릿하게 만들며 싸움터에 직접 끼어들었다.

샥- 샤악- 샥-

번득이는 잔상들.

쾅- 콰앙- 콰과과광-!!!

그리고.

툭-

환수의 다리 중 하나로 보이는 시커먼 게 바닥에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거리를 벌린 채 몸을 멈춘 둘.

페릴턴의 얼굴에는 그제야 여유가 좀 흐르는 듯 보였다.

반면 환수의 떨어져 나간 다리 부위에는 녹빛 액체가 계속 꾸역꾸역 흘러 나오는 중이었다.

승부는 났다.

역시 자이앤트 정도의 실력으로 페릴턴을 이기기란 계란으로 바위 치기 격이다.

위화감이랄까 그런 느낌이 잠시 맴돌긴 했지만 그는 이내 잊어버렸다.

"고작 자이앤트 따위에게 이딴 시간 낭비라니."

마무리다.

페릴턴의 눈가에 힘이 맺혔다.

****

허공에서 춤을 추기 시작하는 만병들.

그리고 넋을 잃은 것 마냥 그 춤을 쳐다보기에 여념이 없는 환수.

시작은 잔잔하게.

그리고 더해지는 박자들.

박자가 쌓이고 쌓여 만병들의 움직임이 일련의 규칙에 맞춰 하나의 율동을 만들어 간다.

[헤......]

그런 만병의 움직임을 쳐다보던 환수가 몸을 움찔거리는가 싶더니 슬슬 들썩이기 시작했다.

제자리에서 만병들의 움직임에 맞춰 몸을 흔드는 환수.

그리고 차츰 더해져 간다.

만병들의 속도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점점 빨라지는 환수의 움직임.

'무슨 짓이지?'

페릴턴이 잠시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무슨 의도인지 알 수가 없다.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환수라면 이미 자신이 훨씬 강하다는 것도 알 것이고 곧 죽음이라는 것을 뻔히 알 것인데.

도망을 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욱 자신의 움직임에 박차를 가하는 환수의 움직임이었다.

마치 춤을 추듯이.

하지만 어정쩡한 환수 따위가 따라올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니.

그렇게 만병들의 움직임이 절정에 달한 순간.

페릴턴의 기운과 만병들의 기운이 하나가 되며 그 안에 담긴 기운을 화악 터뜨렸다.

순간 동시에 환수도 움직였다.

쿠과과과과과과과과과-!!!!!!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격한 충돌음.

마치 고막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다.

그때 뱀처럼 은밀하게 페릴턴을 향해 치고 들어오는 환수.

스아악-

환수의 날카로운 집게턱이 정확하게 페릴턴의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헙-

느껴지는 따끔함.

재빨리 피하지 않았다면 아예 팔이 날아가버렸을 정도로 강한 공격이었다.

황급히 자신의 가까이에 있는 만병을 돌려 방어로 되돌리는 페릴턴.

푸우욱-

그 중 하나의 검이 환수의 옆구리를 그대로 뚫어버렸다.

끼에에에에엑-!!!!!!

그리고 제 2의 공격이 다시 퍼부어지려는 그때.

환수는 순식간에 전장에서 모습을 감췄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만병의 포위망을 뚫은 페릴턴의 바로 옆이었다.

순간 페릴턴의 반격.

역시 경험이 적어서 그런지 아주 쉽게 달려드눈군.

이런 녀석은 초장에 끊어버려야 한다.

나중에 크나큰 재앙이 될 수도 있는 노릇이고 말이다.

그렇기에 약간의 틈을 보였을 뿐인 페릴턴이었다.

콰과과과광-

촤아아아아아악-

페릴턴의 몸에 다시 한 번 깊은 자상이 새겨졌다.

타다다닥-

슈욱-

그 후 순식간에 환수가 사라졌다.

두 개의 다리와 진득한 녹색의 체액만 남긴 채.

'이거 완전 밑지는 장사인데."

자신의 상처 부위를 쳐다보며 어이없어하는 페릴턴의 표정.

그리고 환수가 사라진 방향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듯한 그의 시선.

저건 무조건 위험하다.

...바쁘지만 않았어도...

하지만 시간이 업다.

자신의 상처 부위를 질끈 동여맨 페릴턴이 다시 길을 나섰다.

체스를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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