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211화 (211/249)

#211

충돌(1)

이그르바트.

환수계 전체에 그 수는 그다지 많지 않은 환수들이다.

하지만 적은 수에 비해 이그르바트라는 환수는 환수계 어디에도 존재하는 환수들이었다.

등급은 S급.

비행종 환수들 중에서는 남쪽의 주인 부르사이를 제외하고는 거의 먹이사슬의 최상층의 환수에 속하는 종족이었다.

주로 밤에만 활동하는 환수인 이그르바트.

그렇기에 야행성인 이그르바트가 사는 곳은 어둡고 습한 곳.

이 곳처럼 말이다.

환수계 어디 구석진 곳의 동굴.

천장에는 거꾸로 매달린 이그르바트 한 무리가 얼기설기 모여 있었다.

호로로록-

밤이 왔음을 알리는 소리.

어느 이그르바트가 울음소리를 내자 한창 잠에 빠져 있던 이그르바트들도 하나 둘 잠에서 깨어났다.

그들이 활동할 시간이다.

호로로록-

호로로록-

호로로록-

그에 맞춰 일제히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이그르바트.

10여 마리 정도의 이그르바트가 길게 찢어진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밝을 동안 굳어있던 근육을 풀어제끼는 그들.

옹기종기 모여있던 그들이 자신의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다.

양 날개를 양껏 펼치니 4미터는 족히 될 법한 너비.

넓어 보이던 동굴이 순식간에 급격히 좁아 보였다.

그때.

어둠보다 더 어두운 동체를 가진 무언가가 움직였다.

이그르바트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말이다.

슈아아악-

끼에에엑-

누구의 것인지 모를 구슬픈 비명소리가 동굴에 울려퍼졌다.

동족의 비명.

침입자다.

자신들의 공간을 넘보는 침입자다.

순간 동굴이 웅웅 울릴 정도로 이그르바트들의 기운이 터져 나왔다.

이그르바트는 개개의 개체가 S급인 만큼 몹시도 강한 환수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진정으로 무서운 이유.

이그르바트는 유난히 종족애가 강한 환수로 유명했다.

누군가에 의해 자신들의 종족 중 하나가 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분노, 증오의 기운이 삽시간에 동굴 안을 지배해 갔다.

순식간에 그들의 몸이 단단해져 간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샛노란 눈이 흉광을 번득였다.

키릭-

그때 절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짧은 소리.

소리가 난 곳으로 일제히 돌아가는 이그르바트들의 고개.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하는 정체 모를 침입자.

시커먼 동체 하나가 이그르바트 중 하나를 빠른 속도로 덮쳐갔다.

콰앙-

격렬한 충돌음.

하지만 조금 전처럼 방심하고 있을 때와는 다르다.

재빨리 날개로 온 몸을 덮어 자신의 몸을 방어해 나가는 이그르바트.

콰드득-

그런데...

날카로운 손톱이 그 날개를 뚫어버렸다.

질기기로는 쇠심줄보다 유명한 이그르바트의 날갯죽지를 말이다.

아예 종잇장 찢어발기듯 이그르바트의 날개를 찢더니 몸 안쪽까지 파고든 손톱.

끼에에에에에에엑-

또 한 마리의 비명소리.

난리가 났다.

동굴 안은 살기 그리고 압살의 기운이 뒤범벅이 되어갔다.

연거푸 자신들의 종족이 죽어나가자 격한 흥분 상태에 빠져든 이그르바트.

그들의 눈에 빠르게 움직이는 시커먼 동체가 들어온다.

정체 불명의 그것을 향해 마구잡이로 덮쳐가는 이그르바트들.

하지만 통하지 않는다.

무려 S급의 환수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씹어 먹히는 건 원래 동굴 안의 주인들이다.

날개가 찢겨져 간다.

단단한 육체에 금이 간다.

압도적인 힘에 아예 짓눌려 나가는 이그르바트들.

이그르바트들은 포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리다.

그들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는 존재.

그렇게 그들의 평화롭던 일상은 박살이 났다.

어느 새 차가운 시체가 되어 동굴 바닥에 처박힌 이그르바트들.

그제야 움직임을 멈춘 동체는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전리품인 시체를 손에 쥔 채 하나씩 뜯어먹기 시작했다.

와그작- 와그작-

한참을 그렇게 식사에 열중하던 그것.

[부족하다. 부족해.]

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어눌한 말투로 연이어 무언가 중얼거리던 그것.

그것은 자신의 식사가 모두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이내 동굴 밖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그것.

그렇게 일방적인 학살은 끝이 났다.

별다른 저항조차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 이그르바트들.

워낙 깔끔하게 먹어치운 후라 남은 건 단지 핏자국 뿐.

여기에 무언가가 벌어졌다는 것을 알리는 아주 약간의 흔적 뿐이었다.

****

그리고 지금 또 다른 사낭감을 해치운 동체.

한참 동안을 무언가 씹어 먹는 행위에 열중하고 있던 어떤 존재.

그것이 행동을 멈춘 것은 페릴턴이 자신을 부른 직후였다.

"환순가? 보아하니 지난 번 인간계로 넘어갔다던 그 자이앤트 같은데."

자신의 기억 상으로는 확실히 자이앤트가 맞는 듯하다.

헌데 당시에 다 넘어갔던 게 아니었었나.

"넘어가지 못한 녀석이 있었나 보군."

하지만 여왕이 없으면 어차피 종족의 멸망은 확정되어 있다.

"열심히 살아라."

그의 입에서 절대 튀어나올 수 없는 격려의 말.

하지만 모습을 보아하니 오히려 역효과 같다.

저 잔뜩 달아오른 모습.

"귀찮군."

페릴턴의 한쪽 눈매가 급격히 찌그러졌다.

그때.

[그르륵. 너 맛있어 보인다.]

다소 어눌한 말투.

그럼에도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는 그것이었다.

새로운 먹잇감의 출현.

지금 먹고 있는 것 따위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느낄 정도로 군침이 절로 흐르는 먹잇감.

흥분에 도취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더듬이가 부르르 떨렸다.

허나 페릴턴은 그딴 것은 관심이 없었다.

환수 따위.

지금 자신이 집중해야 하는 것은 환수들 따위가 아니다.

이내 관심을 끈 페릴턴이 몸을 빙글 돌려 자리를 떠나려는 찰나.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

풍문으로 들려오던 어떤 소문.

환수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는 녀석이 있다는 것.

'이거였나보군.'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지.

완전히 관심을 끈 페릴턴이 몸을 다시 돌렸다.

그때.

뒤에서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그 어눌한 말투가 다시 한 번 들려왔다.

[너. 머...ㄱ을 거야...]

그 말에 다시 몸을 돌린 페릴턴.

"귀찮게 하는군."

짧지만 간결한 말투.

감히 자신을 먹는다는 말을 자신의 뒤에서 저렇게나 스스럼 없게 한단 말인가.

하지만 의미 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

어차피 상대도 제대로 못 알아보고 덤비는 것 아니겠나.

굳이 귀찮은 일을 할 필요는 없었기에 페릴턴이 일순 자신의 기운을 화악 끌어 올렸다.

환수들이란 모름지기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들.

그렇다면 자신의 이 압도적인 기운을 본다면 당연히 더 이상 귀찮게 싸움을 걸어오지는 않을 터.

쿠와아아아아아아-

그의 몸에서부터 시작된 강력한 바람.

주변의 모든 사물이 페릴턴의 기운에 반응했다.

일거에 모든 것을 날려버릴 기세로 강하게 휘몰아치는 그가 일으킨 바람.

허나 눈앞의 환수는 미동조차 없다.

오히려 더욱 심하게 떨리는 더듬이.

툭 튀어나온 시커먼 눈 부위에서 일순 샛노란 안광이 번득이는 듯한 느낌이다.

[하아아아아악... ㄴ...ㅓ 최고야. 너 같은 먹ㅇ...ㅣ 본 적이 없ㅇ...ㅓ...]

더듬거리며 말하는 뽄새를 보아하니 자신을 아예 먹이로 생각하는 듯하다.

자신의 이 기운을 보고도 말이다.

오롯이 페릴턴 그에게 쏟아지는 환수의 살기.

"정신 나간 녀석이군."

마뜩찮은 표정을 한 페릴턴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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