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이니아(3)
난입한 한 집단.
클링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걸 보아 마수 사냥꾼이다.
그렇다면 지원군이란 말인데...
도대체 어느 정도의 인원들이 자신들을 공격해 온 것인지 이니아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저 인원들이 끝이라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자신과 페실린 사이에 반 절 이상이 박혀있는 창.
다 잡은 녀석을...
이니아가 손을 슬쩍 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확 줄어드는 창칼이 부딪히는 소리.
캉고르단의 남은 생존자들은 속속들이 그녀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보는 그녀.
살아남은 수는 반도 되지 않는다.
부상자까지 합치면 흠...
다시 재기하는 건 무리일려나.
"엄마. 엄마. 우리 이대로 도망가야 하는 것 아냐?"
"도망 가서 어디로 가냐? 있어봐라. 아들."
호들갑을 떠는 제프를 진정시키는 이니아.
게다가 기분도 아예 식어 버렸다.
처음에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하지만 싸우다 보니 치솟는 아드레날린에 더욱 더 날뛸까 했더니.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저 빌어먹을 창 때문에.
****
전장의 소음이 잦아들었다.
멈춰버린 싸움.
후아......
가슴을 쓸어내리는 페실린.
분명히 자신이 우위에 있었거늘 저 망할 여편네.
저 손이 문제였다.
반짝이는 금붙이들이 마찰을 일으키는 순간.
순식간에 우위에 섰던 위치가 뒤바뀌어 버렸다.
까딱 잘못했으면 벌써 저 구름 저편에서 손짓하고 있었겠지.
아마도 이 창이 없었으면 말이다.
이 창의 주인.
자신이 익히 아는 자이다.
게다가 친분도 꽤나 있질 않은가.
페실린의 얼굴에 안도감 반, 반가움 반이 떠올랐다.
아니나다를까.
저기서 널널한 웃음을 보이며 걸어오고 있지 않나.
"형님~~~~~~"
그 부름을 들었나보다.
그 또한 저편에서 설렁설렁 걸어오며 손을 슬쩍 치켜 들었다.
****
"형님이 조금만 늦었으면 골로 갈 뻔 했네요 진짜."
"엄살은. 그러게 단련도 좀 하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냐?"
핀잔 아닌 핀잔을 주는 자.
심슨이었다.
"아유. 말도 마요. 저 여자 완전 강하다구요."
"뭐 저 우람한 덩치만 봐도 한눈에 강한 건 알겠구만. 원래 여자들이 무서워 자식아."
"하긴 그래서 형님이 아직 장가도 못 가신..."
말 끝을 흐리는 페실린.
"이게 어디 아픈 과거를."
확 손을 드는 심슨.
그의 한쪽 눈꼬리가 심하게 올라갔다.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게 있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의 치부 같은 것들 있지 않은가.
심슨에게 있어서 그 치부는 바로 결혼이었다.
모. 태. 솔. 로.
언젠가는 좋은 인연을 만나겠지만...
글쎄...
여하튼.
이크.
저 성질을 건드려서 득 될 건 없지.
그 손에 한껏 움츠러든 페실린의 어깨.
재빠르게 심슨의 눈치를 살핀 페실린이 말을 돌렸다.
"그런데 형님은 원래 다른 쪽으로 가는 것 아니었어요?"
"뭐 어쩌다 보니 바뀌었다. 그나저나 반항이 꽤나 거칠었던 모양이네? 사상자도 꽤 있고 말이야."
"수도 많고 강하기도 하더라구요. 이런 세력이 언제부터 있었는가 싶던데요?"
"그러게 말이다. 그런 일이 없었으면 우리도 아예 몰랐겠지. 이렇게까지 가면을 쓰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냐?"
이들이 지금껏 캉고르단의 존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이유.
그것은 그들이 바로 철저하게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업은 뒷거래.
하지만 표면적으로 캉고르단이 하는 일은 바로 상회.
물건을 사고 팔고 배송을 하는 그런 집단이었다.
그렇기에 그렇게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겠지.
왕국의 감시도 피하고 말이다.
표면적으로는 어디까지나 건실한 사업가인 그들이니까.
그런 그들이 잘못 건드린 일이 바로 오픈도어의 일이었다.
그러니 지금 이렇게 전면전이 벌어지고 만 것이고.
심슨의 눈이 이니아에게로 향했다.
다소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에게로.
****
"우리가 도대체 무슨 짓을 했다고 다짜고짜 침입을 하는 것이지? 이건 정식으로 왕국에 보고해도 되겠지? 선량한 국민들을 이렇게 마수 사냥꾼 협회에서 학살하다니."
이니아가 심슨을 보며 한 말이었다.
더 이상의 희생은 필요치 않다.
저들의 지원군이 온 이상 승산은 더욱 떨어지기 마련.
그렇기에 그녀는 될 수 있는 한 빠르게 이 상황을 종결시키고 싶었다.
"워워~ 선량한 시민이라. 그건 아니지. 우리도 이미 다 알고 온 거니까 발뺌할 생각은 하지 않아도 돼."
"다 알고 왔다니."
"너희들. 오픈도어 녀석들과 손을 잡은 것 아니었나? 아니지. 자세한 건 이야기하기 어렵고 더 이상 희생은 불필요하지 않겠나? 이왕 이렇게 된 것 협조를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너희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를 이렇게 핍박하는 거지?"
"아니지. 핍박이라니. 단어 선택을 좀 잘해줬으면 하는데."
말을 하며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낸 심슨.
그의 손에는 무언가 서류가 들려 있었다.
"자. 왕국에서 내려온 문서다. 여기 봐라. 왕국의 직인이 찍혀 있지?"
그 말에 눈을 게슴츠레 뜬 채 서류를 쳐다보는 이니아.
하지만 거리가 꽤나 떨어진 탓에 조그만 글자는 아예 읽혀지지도 않았다.
"거 거리가 너무 멀어서 글자가..."
"엥?"
"내 나이도 좀 생각을..."
아.
잠시 장내가 숙연해졌다.
험험-
"여하튼. 그럼 읽어주지."
헛기침을 한 심슨이 손에 든 문서를 읽어가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캉고르단의 그 동안의 죄목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다.
납치, 유괴, 살인 기타 등등 중대형죄라고 할 만한 것들은 몽땅 기록되어 있는 것들.
"시프. 우리가 저 일을 다 한 것 맞니?"
듣던 와중에 뭔가 이상함을 느낀 이니아가 소곤소곤 물었다.
그 말에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시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 저것보다 더 많은 것 아닌가요? 너무 적은 것 같은데..."
"그렇지? 저것들 우리의 업적도 모르면서 지금 저딴 허위 문서를 가지고 왔네. 쯧쯧쯧."
마치 눈으로 욕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이니아.
감히 자신들을 깎아내리는 듯한 문서가 심히 마음에 들지 않은 까닭이었다.
여하튼.
이제 마지막 문장만 남았다.
마수 사냥꾼 협회가 왕국의 일을 대신한다나 뭐라나.
그걸로 심슨의 낭독은 끝을 맺었다.
"그러니 가자."
"꼭 가야 하나? 싸워야 하나?"
"뭐 끝장을 볼 거면 보고. 아마 협조를 잘 한다면 너네의 죄가 사라질 지도 또 모르는 것 아니겠어? 그리고 그 오픈도어. 거기는 아예 박살이 났을걸? 지금쯤은."
흠...
불필요한 싸움은 피하는 게 좋긴 하나...
"잠시만 시간을 달라."
"뭐 편하실 대로. 기다리는 건 얼마든지 기다려 주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 심슨.
그는 결론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심산인 듯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이니아도 자신의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