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
부자(5)
"어휴. 무서워. 하르무 네 아이들은 왜 저렇게 모두들 폭력적인지 모르겠네. 그나저나 하르무와 붙은 녀석이라..."
흥미가 동했다.
감히 다섯 명의 주인 중 한 명인 하르무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말이지?
도대체 어떤 깡을 가지고 있기에 그렇게 덤볐는지 키린은 알고 싶었다.
그 이유도 말이다.
"흐음. 인간계라. 켄타 녀석이 찾기 전에 얼른 가야겠네."
스르륵-
키린은 그렇게 자신이 서있던 곳에서 자취를 감추어 갔다.
잠시 후 인간계에 도착한 키린.
청량한 바람이 자신의 볼을 어루만졌다.
"역시 환수계의 무거운 공기와는 아예 다르단 말이지. 그래서 하르무가 더더욱 이 곳을 갖고 싶어하는 지도 모르겠다만은."
하르무의 목표는 언제나 한결 같았다.
인간계와 환수계를 하나로 합치는 것.
아직은 본격적으로 움직이지는 않지만 그것 또한 단지 시간 문제.
허나 굳이 그는 복잡하게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우선은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데에 전념을 다하기로 한 키린.
"어디에 있지? 그 녀석. 잔향이 이 근처인 건 확실한데..."
키린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리고 이내 그의 시야에 들어온 자.
자신이 찾던 그 자는 피투성이가 된 채 숲 밖에 쓰러져 있었다.
휘릭-
가볍게 몸을 날려 그의 곁에 다가간 키린.
상처는 꽤나 위중해 보였다.
특히나 아예 구멍이 뚫려버린 마지막 상처.
그 곳에서부터 멈추지 않은 채 계속 흘러 나오는 붉은 피는 어느 새 그 남자의 대지 주변을 양껏 적시는 중이었다.
흐음-
"...이 정도면 죽었겠는데?"
주위에 떨어진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쿡쿡 찔러보는 키린.
허나 그 자는 미동조차 않았다.
끌끌끌-
"몸뚱아리는 튼튼해 보이더니 영 부실하네."
기껏 흥미가 생겨 켄타에게 들키기 전에 인간계로 넘어 왔더니...
정말 이 정도에 죽은 것이라면 굳이 여기까지 올 필요도 없었잖은가.
바로 그때.
일순 그 자의 몸이 움찔거렸다.
"오오오오! 역시 살아있을 줄 알았어!"
활짝 핀 키린의 표정.
조금 전 말은 취소다.
이렇게 살아있다면 말은 달라지지.
키린이 자신의 손을 달란트에게 갖다댔다.
그러자 푸르스름하게 빛이 나는 키린의 손.
그의 손에서부터 발한 푸른 빛은 달란트가 입은 상처 부위를 점점 얼려가기 시작했다.
일단은 지혈.
치료는 그 이후이다.
잠시 후.
손을 탁탁 터는 키린.
"좋아. 지혈은 대충 끝난 것 같고~"
다음은 상처를 막을 차례군.
그렇게 키린이 다시 손을 쓸려는 때.
인간들의 인기척이 들려왔다.
저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인간들의 발걸음 소리.
이크.
인간들에게 모습을 보이면 안되지.
키린은 달란트를 치료하려던 동작을 멈춘 채 그의 몸을 슬쩍 풀로 덮었다.
그와 동시에 숲 속으로 몸을 빠르게 옮기는 키린.
그는 인간들이 지나가면 다시 치료를 할 생각인 듯 보였다.
그렇게 인간들이 지나가길 기다릴 때.
한 여자가 달란트 그 자를 숨겨놓은 쪽으로 다가왔다.
응???
****
타다다닥-
빠르게 뛰어오는 소리.
여자는 일행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까지 잰 걸음으로 몹시 빠르게 뛰어왔다.
가끔 몸을 배배 꼬아가며.
어딘지 모르게 몹시도 다급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
얼굴은 사색이 된 채 그녀는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중이었다.
"읍읍. 아직 안돼. 참아야 해. 악악."
지금은 말 그대로 응급상황.
한참을 걸어오며 용변조차 제대로 해결을 못한 통에 지금 그녀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터질 듯한 방광을 누른 채 일행들에게 보이지 않을 곳까지 겨우 도달한 그녀.
풀이 무성한 곳이었다.
"다. 다. 됐다!"
황급히 옷을 풀던 그녀.
주저앉으려는 순간 그녀는 자신의 발에 채인 뭔가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녀의 비명이 드높게 울려퍼졌다.
****
그렇게 달란트는 인간에 의해 구조되었다.
그리고 그가 머무르게 된 곳이 바로 엘윈 마을이었다.
처음 그를 본 사람들은 모두 그가 마수 사냥꾼일 것이라 짐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큰 덩치에 나무 하나 정도는 가볍게 뽑아내는 그였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만 봐도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건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자기 자신이 나무꾼이라 말을 했다.
그저 조금 멀리까지 나무를 하러 왔다가 마수를 만나게 되었다나 뭐라나.
수상쩍기 그지없는 말이었으나 그가 아니라고 하니 사람들은 더 이상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가 환수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특유의 넉살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 빠른 속도로 융화된 그는 어느 새 마을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우연찮게 머물게 된 엘윈 마을.
이왕 머물게 된 것 힘이나 좀 회복을 한 후 떠날 생각이었던 달란트였다.
헌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새 그는 자신을 구해준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인간과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환수와 인간의 사랑이라...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되어 버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 여자의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가고 있었고 어느 새 자신의 품 안에는 자신과 꼭 닮은 아이가 안겨 있었다.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지금껏 누리지 못했던 행복이 자신을 찾아온 것이었다.
하지만 한 켠으로 커져가는 환수계에 대한 그리움.
결국 그는 환수계에로의 길을 떠났다.
물론 타지에 가서 돈을 벌어 오겠다는 말과 함께.
그렇게 다녀온 환수계는 말 그대로 개판이었다.
자신이 나올 때만 해도 절대 그렇지 않았는데.
원인을 제공한 자는 자신이 쓰러뜨리지 못했던 하르무.
바로 그 작자 때문이었다.
엘윈 마을로 돌아온 그는 며칠 밤낮을 고민에 또 고민을 했다.
이게 다 자신이 하르무를 쓰러뜨리지 못한 탓이다.
만약 그때 자신이 이겼더라면 하르무가 그런 생각을 아예 품지조차 못했겠지.
너무 강하지만 않았어도 한 번 비벼볼 만했었는데...
달란트.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백하게 깨달았다.
환수계.
그 곳의 하르무를 쓰러뜨려야 한다.
아마 하르무 그 작자만 쓰러뜨린다면 환수계도 인간계도 모두 다시 평화로워질 것이다.
그렇게 그는 인간계를 떠났다.
막대한 빚을 남겨 놓은 채.
그것이 그의 모든 이야기의 전말이었다.
"자~ 내가 왜 그렇게 행동을 했는지 알겠냐? 난 네 엄마를 몹시도 사랑했지. 그녀는 나의 처음이었으니."
모든 이야기를 마친 달란트가 자신을 쏙 빼닮은 얼굴을 한 체스를 바라보았다.
****
체스는 충격에 빠져 있었다.
아직 자신이 받은 정신적 충격이 제대로 회복이 되지 않은 탓이었다.
마수 아니 환수의 자식이라...
지금껏 전혀 알지 못한 출생의 비밀이 이제야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헌데 궁금한 것이 있었다.
이건 기필코 깔끔하게 해결을 해야 한다.
"그럼 빚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