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부자(4)
꿀꺽-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는 둘.
헬캣과 막시멈은 이 드라마가 어떻게 진행될 지 너무나 궁금했다.
두 눈을 반짝이는 그들.
"뜸 들이지 말고 빨리 이야기해."
-그래. 빨리 빨리.
달란트를 재촉하기에 여념 없는 둘.
'뭐냐. 이것들. 둘이서.'
뭐 이런 것들이 다 있나 싶긴 했지만...
달란트는 이내 둘에 대한 신경을 끄고 체스를 향해 이야기를 털어냈다.
****
달란트.
지금이야 잊혀진 이름이었지만 꽤나 악명이 높던 환수였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이름이 드높던 환수 중 하나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환수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게 된 달란트.
환수 임에도 인간의 모습을 가진 환수.
그는 출신 불명, 종족 불명의 환수였다.
어디에서 왔는지 아니면 어느 지역의 출신인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건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환수계는 오로지 힘으로만 통용되는 곳이었으니.
달란트가 환수계에서 유명해진 이유.
그것은 딱 하나였다.
그는 결코 자신보다 약한 환수와는 싸움을 하지 않았다.
물론 생존을 위한 사냥은 별개였지만 그는 자신보다 강한 환수만 골라 싸움을 걸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살아남은 자는 언제나 달란트였다.
그렇게 되니 당연히 그의 이름이 드높아질 수 밖에 없지.
그렇게 달란트 그는 환수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드높여 갔다.
그러던 어느 날.
환수계 최대의 이벤트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르무 대 달란트.
이제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고 생각한 까닭일까.
달란트가 주인 중 한 명인 하르무에게 도전을 한 것이었다.
심지어 주인들의 직속 환수들마저 건너뛰고 말이다.
그 소식에 하르무가 보인 반응은 딱 하나였다.
그의 부하들에 따르면.
"후훗. 재미있겠군."
그 딱 한 마디를 남긴 채 하르무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여하튼.
환수계는 달란트 단 한 명에 의해 시끌벅적해졌다.
도통 그런 일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다른 주인들까지 둘의 싸움을 보기 위해 장소를 물어볼 정도였으니.
모든 환수들은 의견이 분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단지 무모한 도전에서 끝이 날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환수계가 생겨난 이래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던 한 지역의 주인이 바뀔 것인가.
그렇게 그들은 단지 소수의 입회 아래 서로의 생명 그리고 환수계에서의 위치를 걸고 진심을 다해 싸움을 벌였다.
물론 하르무가 잃을 게 더 많은 건 기정 사실.
그렇기에 달란트가 걸 수 있는 건 생명 하나 밖에 없었다.
둘의 싸움은 꽤나 오랜 시간에 걸쳐 이어졌다.
당시의 달란트는 거의 주인에 근접할 정도의 힘을 가진 환수였으니.
하지만 아쉽게도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그 전투가 끝난 후 승패는 너무나도 자연스레 환수계 전체에 알려졌다.
싸움에 패배한 달란트는 그 싸움이 끝난 후 환수계에서 아예 자취를 감추었다.
반면에 하르무는 여전히 건재한 모습으로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역시 주인은 아무도 이길 수 없는 것인가.
그렇게 달란트는 자연스레 잊혀져 갔다.
그를 따르던 소수의 환수들을 제외한 채.
****
"후... 목이 타군. 너무 이야기를 많이 했더니 목이 칼칼하네."
한창 말을 하던 달란트가 잠시 이야기를 멈춘 채 목 언저리를 쓰다듬었다.
"어이쿠. 잠깐만."
냉큼 주방으로 달려가 물을 가져오는 막시멈.
"자. 얼른 마시고 그 뒤에?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
꿀꺽꿀꺽-
단숨에 물을 마셔버린 달란트가 주위를 한 번 훑어 보았다.
"...그래서요?"
지금 체스는 몹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자신의 아버지라는 작자가 환수였다니...
...그럼 자신은 인간이 아니란 말인가?
도대체 자신은 어떤 존재인 것이지?
정체성.
그 근본적인 것에 대해 의문이 생겨버린 체스였다.
"그래. 그 뒤는 말이지."
달란트가 잠시 멈추었던 이야기를 다시 이어갔다.
****
환수계에서 달란트가 자취를 감춘 이유.
그것은 오로지 하르무 때문이었다.
생명을 걸고 싸우기는 했었다.
물론 많은 피해를 입기도 했고 반 이상의 힘을 잃기는 했지만 용케 살아남았다.
그렇게 안심을 하는 찰나.
하르무의 환수들이 자신을 덮쳐 오기 시작했다.
상처를 입은 몸.
온 몸에 피를 덕지덕지 바른 채 죽을 동 살 동 도망치기 시작한 달란트.
하르무는 자신을 살려둘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하긴 주인으로서 자신에게 도전한 자를 살려두거나 그럴 수가 없었겠지.
하르무 자신이 이기기는 했지만 언제 또 힘을 회복하고 덤빌 지 모르니까 말이다.
소위 그런 일말의 가능성조차 없애기 위한 것이 바로 하르무의 생각인 듯했다.
달란트는 도망을 쳤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심지어 지역까지 건너면서까지...
하지만 추격은 끝이 없었다.
하르무는 아예 자신의 모든 것을 말살해 버릴 생각인 듯했다.
어느 새 쫓기다 보니 환수계에서 달란트가 도망칠 곳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헉헉... 개 같은 녀석. 어디까지 쫓아올 생각이야...?"
정면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달란트.
달란트의 온 몸.
이미 피칠갑을 한 상태였다.
하르무와 싸움을 한 이래 쉬지도 못한 채 계속 쫓기던 몸이었다.
치료는커녕 살아남기에도 모자란 시간...
그런 그의 앞에 떡 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곳.
눈 앞에 보이는 곳은 인간계로 향하는 통로.
달란트에게 있어 미지의 세계인 곳이었다.
"........."
한참 동안 그 곳을 쳐다보던 달란트.
그런 그의 귀에 지척까지 다가온 하르무의 부하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넘어갈 수 밖에 없는가? 안 그러면 죽음 뿐인가."
그와 친분이 있던 환수들의 말에 따르면 인간계는 정말 천국이라고 하긴 했으나...
그때.
"저기에 있다!"
한 녀석이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순간 자신의 귀에 너무나도 또렷하게 들려오는 소리.
무언가 허공을 찢으며 몹시도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무엇.
헙-!!!
큰 숨을 들이쉰 달란트.
순간 빛살 같은 속도로 날아온 그것은 달란트의 어깨 부분을 그대로 뚫어 버렸다.
쿠와아아악-
정확하게 관통된 어깨.
달란트는 순간 불로 지져지는 고통을 느끼며 그대로 통로 안으로 굴러 떨어졌다.
앗!
그 모습을 본 하르무의 부하들이 달려왔으나 이미 달란트는 통로 속으로 자취를 감춘 뒤였다.
"젠장..."
자라이의 중얼거림.
그 목을 취해 오라고 명령했었거늘.
그 때.
자라이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부하.
"자라이 님. 어떡하시겠습니까? 이대로 인간계로 넘어가시겠습니까?"
"...으득. 인간계에까지 넘어가라는 이야기는 없으셨다."
"죽었을 겁니다. 자라이 님의 공격에 몸이 뚫리는 걸 이미 봤으니까요."
"아니다. 그래도 목을 취해 오라는 지시였으니 우리도 넘어간다."
그 찰나.
또다른 주인의 기운이 느껴졌다.
사사건건 자신의 주인인 하르무의 일을 방해하는 키린의 출현이었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키린이라면 분명히 살리려하겠지.
그렇다면 충돌이 일어날 것은 또 자명할 터.
평소라면 인간계에까지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키린을 무시하면서 발생하는 위험 또한 쉬이 여길 수 없었다.
"...돌아간다."
자라이의 명령과 함께 그들은 그대로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그들이 사라진 곳.
키린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