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198화 (198/249)

#198

부자(1)

그와 함께 조그맣게 생겨난 공간.

시커멓게 입을 벌린 구멍은 굉장히 작아 보였다.

슈와아아아아-

주변의 공기를 다 빨아들이는 듯한 그 구멍.

"...이거? 설마 이걸 말...하는 건 아니죠?"

왜 개구멍이라 하는지 알 것 같다.

딱 봐도 조금 덩치 큰 개 한 마리 정도 지나갈 정도의 크기가 아닌가.

'이 정도면 나는 못 지나가겠는데...?'

문득 든 생각.

아!

그렇다면.

혼자 가려는 건가 보다.

그렇다면 이해가 갔다.

잠깐.

그러면 또 문제가 하나 있지 않나.

혼자 가면 자신은 어쩌라고?

계약 사항이 있잖은가.

솔직히 관여자라는 건 아직 와닿지 않는다.

세계를 구해야 한다느니 그런 거창한 생각은 자신과는 일절 상관 없는 이야기다.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을 판국에 무슨 그런 돼도 않은 생각이란 말인가.

그건 아니지.

"그럼 전 되돌아 가면 되나...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너 켄타와 계약한 걸 안 할 생각이냐? 심지어 계약금까지 받아놓고?

어이없는 질문에 황당하다는 헬캣의 표정.

"그렇잖아요. 여기 이 크기의 구멍을 어떻게 지나가라는 말이에요?"

-아. 거참. 성격 급한 놈일세. 기다려 봐라.

혀를 끌끌 찬 헬캣이 생겨난 구멍의 가장자리를 자신의 앞발로 움켜쥐었다.

뭘 하려는 심산이지?

체스의 얼굴에 궁금함이 서리는 찰나.

끄응차아아-!!!

힘찬 기합소리와 함께 헬캣이 앞발로 잡은 가장자리를 힘껏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쭈우우우우욱-

응???

늘어난다.

마치 고무가 늘어나듯 점점 넓어져 가는 구멍.

"호오~ 이거 신기하네."

체스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그때.

-안 돕냐??? 어디 연장자가 하는데 구경만 하고 있냐???

체스의 무릎까지도 오지 않을 정도의 앞발로 연신 안간힘을 쓰고 있는 헬캣.

"아... 저도요?"

-...그럼 구경만 할 셈이었냐? 반대편을 잡아야 할 거 아냐? 지금 누구 때문에 이걸 넓히고 있는데.

헬캣의 짜증에 엉겁결에 반대편 가장자리를 잡은 체스.

그렇게 둘이 양쪽에서 힘을 쓰자 조금씩 넓어져 가는 구멍이었다.

****

스륵-

구멍 속에서 쏘옥 빠져 나오는 헬캣.

-후... 역시 이 길은 영...

급할 때만 이용하는 길이었다.

이 곳에 오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 곳에 사는 자에게 자신이 이 구멍을 이용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졌을 터.

그 말인즉슨 이 곳에 오게 되면 반드시 그를 만나야 한다는 것.

...참 영 내키지 않는 일이긴 했다.

-하르무 자식 때문에 내가 이딴 고생을 하고 자빠져 있고. 전생에 참 어지간히 더럽게 살았나 보다. 내 진짜.

연신 혼자 투덜거리는 헬캣.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

끄응-

신음소리의 주인공은 체스.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기어나오다시피 하는 체스였다.

두두둑- 두두둑-

나오자마자 몸을 한껏 편 채 기지개를 펴는 그.

구멍 안쪽은 짧은 거리가 아니었다.

게다가 구멍의 크기.

더 늘리려면 늘릴 수는 있으나 그냥 가자는 말에 그냥 무자비하게 끌려온 체스였다.

마수와 싸울 때보다 더 힘든 것 같은 건 단지 착각이라 치부하며 연신 몸을 풀어댔다.

그나저나.

처음 본 환수계.

"와아...... 이 곳이 환수계구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체스.

그의 시야 가득 들어오는 풍경.

인간계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다.

사라락-

그의 볼을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

"흐으응~ 시원하네."

건너올 때의 고생은 어느 새 잊어버렸는지 체스는 불어오는 바람을 볼에 가득 밀어넣었다.

게다가 풀이며 돌이며.

손을 뻗어 질감을 느껴보는 체스.

이런 건 인간계와 다를 바 없다.

연신 감탄하고 있는 그를 보며 말을 건네는 헬켓.

-가자. 얼른 가야 한다.

그럴 새가 어딨냐며 체스를 잡아 끄는 그였다.

"아. 그렇죠."

헐레벌떡 그의 옆에 걸음을 나란히 하는 체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거에요?"

-저기.

헬캣이 앞발을 들어 어디를 가리켰다.

그의 앞발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체스의 시선이 이동을 한다.

시선이 닿은 곳에 있는 것.

언덕 위의 하얀 집.

평화로운 초원의 모습에 정점을 찍는 듯한 모습의 집이었다.

...다소 뜬금없기는 하지만.

"저기에 뭐가 있길래 그래요? 누구 살아요? 설마 사람이 사는 거에요?"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걸음을 조금 빨리 옮기기 시작하는 헬캣.

"뭐야~ 같이 가요~"

황급히 그를 따라가는 체스였다.

****

겨우 한숨을 돌리는 막시멈.

남아 있는 자는 한 명 밖에 없었다.

"넌 안 가냐? 너도 할 일이 있지 않냐? 내가 보기에는 네 녀석이 제일 바쁠 것 같은데?"

"어휴. 봤잖아요. 그 자라이 녀석. 날 잡아 먹을 듯이 보던 거. 지금 나가면 분명히 절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요."

"야이. 그래도 이 미친 놈아. 나가야지. 그 녀석이 계속 기다리면 평생 여기에서 살 생각이냐?"

"이 꼬장꼬장한 영감 진짜. 이럴 때일수록 몸을 사려야죠. 죽은 줄 알았던 제가 살아있어봐요. 하르무가 여기까지 올 지도 모른다구요~"

덩치에 안 맞게 몸을 비비적거리며 애교까지 떠는 이 녀석.

차마 눈을 뜨고는 못 볼 장면이다.

정말이지...

"아, 맞다. 그런데 혹시 이상한 녀석 한 명 없었어요? 제가 원래 살던 곳까지 다녀왔다고 하셨죠?"

"참. 잊어버릴 뻔했다. 내가 이놈아. 거기에서 보자는 약속 때문에 갔다가 팔자에도 없는 환수 녀석들까지 정리를 했지 않냐. 하여간 네 녀석을 알게 된 지가 한참 전이긴 한데 알게 된 그 자체가 내 일생 일대의 오점인 듯하다. 아무리 봐도."

이들이 서로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거의 백여 년 전 쯤인 듯하다.

불현듯 자신의 집으로 뛰어 들어왔던 이 녀석.

온 몸이 피가 칠갑이 된 채 자신의 집을 더럽힌 녀석이었다.

당시에는 이렇게 강한 녀석도 아니었고 그저 별 볼일 없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2번째 봤을 때에는 꽤나 성장이 된 모습이기도 했고 출혈도 덜했다.

그리고 3번째 만남, 4번째 만남.

무슨 짓을 하며 지내왔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몰라도 만남의 횟수가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는 저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계속 이어진 이 녀석과의 인연.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지. 긋. 지. 긋. 하다.

"에이~ 속으로는 좋으면서 거참. 매번 꼰대 같으면서도 이럴 때에는 또 귀엽단 말이지? 으이구우~"

능글 맞은 목소리.

아예 자신을 지 손바닥 위에 올려서 굴리려 한다 아주 그냥.

"이 놈 이게 이제 아예 헤까닥 돌아버렸구만? 넉살이 좋아진 거냐 아니면 나이 먹으면서 정신줄을 놓아버린 거냐? 참나."

어이없다는 듯한 막시멈의 말.

바로 그때.

또다른 불청객이 찾아왔다.

-여~ 나 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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