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196화 (196/249)

#196

변화(1)

"하아... 미치겠네. 이 짓도 때려치워야 하나...?"

한숨 섞인 푸념이 터져 나왔다.

그 말을 필두로 여기저기서 맞장구를 치기 시작하는 여러 무리들.

이내 시장판 마냥 시끌벅적해지는 이 곳.

"요즘 마누라가 밥값 하기 전에는 아예 들어오지도 말라더라 나는."

"...그 정도면 다행이지. 난 주걱으로 맞았다고. 여기 뺨 살짝 부풀어 오른 것 보이지? 휴..."

앓는 소리.

이렇게 앓는 소리를 하는 이들은 모두 마수 사냥꾼들이었다.

그 날.

까닭은 알 수 없다.

단지 무슨 일이 있었나 보다 하던 그 날.

평소와 좀 다른 날의 흐름에 그러거니 짐작만 한 그 날.

그 날을 기점으로 대륙이 바뀌어져 버렸다.

그 날을 끝으로 일거에 사라져 버린 대륙에 존재하던 거의 모든 마수들.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모두의 머릿속에 평화?

그딴 건 없었다.

오히려 폭풍 전의 고요함이랄까.

딱 그런 으스스한 조용함이었다.

게다가 그 날 이후로 여럿 사람들이 순식간에 실직의 위기에 처해 버렸다.

마수 사냥꾼들.

그리고 그들과 연관된 모든 사람들.

남은 마수들은 끽 해야 돈벌이도 제대로 안 되는 것들.

오히려 하는 것에 비해 성과는 쥐뿔도 안 되는 뭐 그런 마수들 뿐이었다.

예전에 비하면 개미 발톱 만큼도 안 될 정도의 양.

하지만 그것도 감지덕지다.

그 정도 등급의 의뢰를 받는 것조차 하늘에 별 따기.

그리고 지금.

가뭄에 콩 나듯 남아있던 의뢰마저 아예 사라져 버렸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여기에 앉아서 주접이나 떨게 된 이들.

"아. 그러고 보니 들었어?"

"뭘?"

"그 뭐시기냐. 성벽 보수하는 일이 있던데 그거라도 갈래?"

"그걸 왜 해? 공사는 다 마정석으로 굴리는 거 아니었어? 감독만 하잖냐?"

험험-

자신의 옆에 있는 남자를 끌어 당기는 남자.

소곤소곤-

"야. 몰라? 이제 재고로 쌓아둔 마정석을 거의 다 썼다는 소문."

"엥??? 뭔 소리야~"

지금까지 잡은 마수의 양이 얼만데.

이것이야말로 헛소리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남자.

"아니야~ 진짜래. 이걸 보고 뭐라고 하는 지 알아? x된 거야. 그냥."

"하... 도대체 뭔 일이 벌어졌길래 갑자기 이런 꼴이 된 거야???"

"그런데 더 이상한 소문도 들리더라고."

"뭔데 뭔데."

귀에 얼굴을 슬쩍 가져가는 남자.

잠시 후.

"뭐라고??????"

놀라서 벌떡 일어나는 남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남자.

황급히 그 남자를 다시 앉히는 옆의 동료.

"야이씨. 얼른 앉아. 누가 들을라."

라고 하는 순간.

이미 늦었다.

어어어???

갑작스레 몸이 들려진 그들.

그리고 그들의 뒷덜미를 움켜쥔 채 가볍게 들어 올리는 남자.

순간 숨이 턱 막혔다.

헙-

"...누군가 했더니 헛소문을 퍼뜨리는 것들이 바로 네놈들이었군."

천천히 돌아가는 둘의 고개.

그리고 그들의 시야에 들어온 남자.

덩치가 거의 소 만한 남자였다.

"아... 페실린..."

랭킹 13위인 랭커 페실린.

튀어나올 듯 부릅뜬 그의 눈.

그 무슨 개소리를 하느냐는 듯한 부리부리한 눈빛이었다.

눈빛 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이미 이들은 열 번도 더 죽었겠지.

"이 자식들아.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건 입 밖으로 낼 게 아니라 네 놈들 그 단단한 머릿속에서나 생각을 해라. 알겠냐?"

건물을 쩌렁쩌렁 울리는 페실린의 목소리에 가뜩이나 움츠러든 그들의 몸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어... 미... 미안해..."

"으휴. 헛소문 여기저기 퍼뜨리지 말아라. 알겠냐?"

"아..."

"어... 그래..."

젠장맞을 거.

잔뜩 주눅이 든 그들의 대답을 들으며 페실린이 둘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협회장 님은 건재하시다. 알겠나? 괜히 헛소리 퍼뜨리는 것들은 내가 혼쭐을 낼 테니 그런 소리가 들리면 재빨리 나에게 말해라. 알겠냐???"

하지만 이미 쥐 죽은 듯 조용해진 좌중에게서는 아무런 대답이 흘러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저 눈치를 보느라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는데 정신이 없는 그들.

사람들을 한 번 스윽 훑어보는 페실린.

허나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는 않았다.

대신 거친 발걸음으로 문을 박차고는 그대로 나가 버리는 페실린.

쾅-!!!

"...왜 저러냐?"

"모르지 뭐. 협회장을 잘 따라서 그런가보지 뭐."

이내 페실린은 그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지고 남은 이들은 그들이 하던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

페실린이 향한 곳은 랭커들 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

그 중에서도 이 곳은 랭킹 10위 이내의 랭커들 만이 들어갈 수 있는 마수 사냥꾼 협회의 제일 깊숙한 곳이었다.

쾅-!!!

갑자기 문을 박차고 들어온 페로드.

10개의 의자가 놓여진 방 안은 군데군데 비어있는 의자가 보였다.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듯 자못 심각해 보이는 이들의 표정.

그들이 나누던 이야기는 중간에 난입한 페실린에 의해 끊겨 버렸다.

"도대체 협회장은 죽은 거요? 산 거요?"

다짜고짜 말을 내뱉는 페실린.

"네가 언제부터 여기에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랭킹이 되었지?"

안쪽에 앉아있는 뱀눈을 한 남자 한 명.

실눈을 뜬 채 싸늘한 목소리를 내는 남자였다.

랭킹 6위의 테안.

쾌검으로 유명한 그.

하지만 단지 빠르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그것은 테안에 대한 욕.

그에게서 번쩍이는 빛을 본 순간 모든 것은 이미 종결된 상태.

그 정도로 빠른 검을 자랑하는 그였다.

"시발. 지금 협회장도 없는 마당에 뭔 놈에 랭킹 타령이야? 꼬우면 한 판 여기서 뜨던가. 어차피 눈치 볼 것도 없고."

명백한 도발.

테안은 규칙을 깬 페실린에 대해 주제를 알라는 식으로 얘기를 한 것.

그리고 거기에 확 열이 받은 페실린이 테안을 긁어댄 것이었다.

"그런 자신감은 나도 좀 배우고 싶네. 그런데 자신 있냐? 내 검에 눈은 없는데."

"난 두 눈 똑바로 달고 있거든? 그래. 이 기회에 그 빠르다는 검 한 번 보자. 아주 분질러 버릴 테니."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군. 그래. 이 기회에 차이를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하아...

랭커들이 모이면 너무나도 비일비재한 일.

허나 여기에서 싸우게 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브로드가 나섰다.

"자자. 그만들 하게.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다. 부협회장의 권한으로 "

그런 브로드의 말에 칼에 손을 가져갔던 테안이 다시 의자에 앉으며 빈정거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운 좋네. 하지만 나가서는 또 어떻게 될 지 모른다."

"흥. 한 방 먹일 수 있었는데... 개쪽 깔 뻔한 거 운 좋은 줄 알아라."

그때.

스윽-

브로드가 손을 슬쩍 들어 빈 자리를 가리켰다.

그러자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거기로 가서 앉는 페실린.

"자자. 그래서 왜 온 것이지? 페실린."

브로드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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