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
막시멈(3)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자는 자라이.
그리고 그의 부하들이었다.
"하르무 님이 너를 만나기를 원한다. 얼른 나와 함께 가자. 짐을 챙겨라."
들어오자마자 다짜고짜 막시멈을 향해 말을 뱉는 그.
이미 꽤나 늦은 터라 급한 기색이 역력한 그였다.
"에잉. 날파리 같은 놈이 왔네."
막시멈의 말에 순간 자라이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감히.
자신에게 날파리...?
이 자가 지금 자신이 누군지 알고 저딴 소리를 하는 것인가?
퐈아아악-
순간 자라이의 몸에서 흉흉한 기세가 피어 올랐다.
꾸득- 꾸득-
늘어뜨린 그의 팔 부근에서 혈관이 꿈틀거린다.
온통 막시멈에게 시선이 쏠린 그.
'성히 데려오라는 이야기는 없었으니.'
웅웅-
덜그럭- 덜그럭-
자라이의 기운에 집 안의 온 물건들이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허나 전혀 반응이 없는 집 안의 존재들.
이렇게 무시를 당하는 게 얼마 만인지.
자라이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리고 그가 억지로 무력을 행하려는 찰나.
누군가가 슬쩍 소리소문 없이 끼어들었다.
****
다짜고짜 난입한 자는 배코.
그는 먼지라도 눈에 보이는 듯 손을 휙휙 내젓는 중이었다.
여전히 자라이에게서 등을 돌린 채.
"에이~ 왜 그래요?"
자라이의 기세를 일순 잠재우는 앳된 목소리.
사아아아-
집 안을 휘감던 바람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뭐냐?
누군가의 힘에 의해 되레 먹혀버린 자신의 기세.
자라이가 그 주인공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에 맞춰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막시멈의 맞은편에 앉은 아이.
순간 자라이의 동공이 심하게 확장되기 시작했다.
분명히...
분명히...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자신도 듣는 귀가 있고 보는 눈이 있다.
'저 눈...'
자라이가 황급히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렸다.
그리고 이를 으드득 깨문 채 입을 여는 그.
"...당신이 왜..."
모른다손 치더라도 절대 모르는 척을 해서는 안 되는 존재.
'왜 이 자가 여기에 있단 말인가...?'
자라이의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이미 그의 부하들은 넋을 빼앗겨 버린 지 오래.
배코와 눈이 마주친 시점부터 이미 그에게 말려버린 자라이의 일행들이었다.
허나 그러거나 말거나 그저 싱글벙글 웃고 있는 배코.
"여기는 불가침 지역이라구요. 하르무가 그건 가르쳐 주지 않던가요?"
으득...
"왜 당신이 이 곳에..."
"뭐~ 하르무의 일을 방해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괜히 하르무가 화를 낼 지도 모르는 노릇이고. 일단 여기에서의 용무는 다 끝이 났으니까 전 그만 가야겠어요."
드르륵-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는 배코.
"가냐?"
"가야죠. 저 이렇게 보여도 나름 주인이라구요.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휴... 왜 주인이 되어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진짜."
"복에 겨운 소리하고 있네. 네가 설마 아무런 생각 없이 그 자리를 했겠냐?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뭐 그건 넣어두지."
"그럼요~ 막시멈 님은 기록하는 자이시니까요. 아하하하하."
한바탕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린 배코가 몸을 빙글 돌렸다.
"아참."
자라이의 어깨를 툭툭 치는 배코.
"괜히 힘 빼지 말고 얼른 돌아가요~ 그러다 볼기짝이라도 두들겨 맞으면 어쩔려고 그래요? 아하하하하."
그 말을 끝으로 배코는 막시멈의 집을 떠났다.
이제 남은 자는 셋.
자라이의 부하들은 제외하고 말이다.
****
"거기 계속 서있을 거냐? 하르무가 와도 난 내가 가고 싶은 길만 갈 건데 배코 말마따나 괜히 힘 빼지 말고 돌아가."
"나는 널 데려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강한 어조로 다시 이야기하는 자라이.
"에휴... 내가 필요하면 알아서 찾아갈 테니 걱정 말아라 좀. 하르무에게는 그렇게 전해."
"하르무 님이 왜 널 찾는지 도대체 모르겠군."
"그래서 네가 그 위로 못 올라가는 거야. 아이야."
"뭣!"
순간 발끈하는 자라이.
자신 그리고 자신의 주인을 모욕하는 이 자.
도대체 무얼 믿고 저렇게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아무리 기록하는 자라고 한들...
바로 그때.
"이봐 이봐. 얼른 돌아가. 가라잖냐. 영감도 좀 쉬어야지."
불쑥 끼어든 자의 퉁명한 목소리.
"...넌 또 뭐냐?"
그제야 나머지 한 명에게 시선이 갔다.
배코에게 너무 정신이 팔린 나머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나? 나 멋진 분이지."
"헛소리. 아니 잠깐. 너 설마...?"
문득 어딘가에 생각이 미친 자라이.
...어떻게 살아있는 것이지?
하르무 님의 말에 따르면 저 쪽은 모두 정리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너. 무슨 수를 쓴 것이지?"
"너처럼 밑구녕을 닦는 녀석은 몰라도 된다. 헹."
둘의 마주친 시선에서 불꽃이 튄다.
"왜 어디 한 번 해보게?"
이죽거리며 자라이를 도발하는 그.
"이 놈이 기고만장한 게 아직 혼이 덜 났나 보군."
"혼이야 날 만큼 났지. 하지만 너에게 혼이 나지는 않을 것 같다."
후우...
순간.
막시멈의 주먹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쾅- 쾅-
두 녀석의 머리를 냅다 쳐버린 막시멈.
악- 악-
동시에 머리를 감싼 둘.
다 큰 것들이 왜 여기에서 이 지랄이야.
심기가 점점 불편해지는 막시멈이었다.
"야야. 이것들아. 싸우려면 다른 데 가서 싸워라. 여기서 집기 부수지 말고 좀. 여기는 싸움 금지 지역이라고. 이 막돼먹은 녀석들아. 왜 남의 집에 다 몰려와서 난리들이냐 난리는."
"영감. 난 아직 볼 일이 안 끝났어."
"맞다. 네 놈. 네 녀석과는 아직 볼 일이 남았지. 넌 남고."
자신의 말이 끝난 듯 손을 휘휘 내젓는 막시멈이었다.
그 말에 둘의 얼굴에 전혀 상반된 표정이 떠올랐다.
"그렇지? 으흐. 들었지??? 넌 가 임마. 으흐흐."
"뭐라...?"
하지만 여기에서 싸울 수는 없는 노릇.
환수계에서 유일하게 분쟁이 금지된 이 곳에서 싸웠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란 말인가.
"오늘 이 치욕은 하르무 님께 알리겠다."
"마음대로 해라. 내가 하르무 무서워서 여기에서 살고 있는 줄 아냐?"
자라이는 더 이상 이 곳에 머무르지 않았다.
대신 문을 열고 나가 부하들과 함께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가버린 그.
그 무리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막시멈은 의자를 끌어 당겼다.
"넌 좀 앉아봐라. 나와 정산할 게 있지? 진득하게 이야기를 좀 해보자."
톡- 톡-
테이블을 가리키며 그를 앉히는 막시멈이었다.
****
그 사이 인간계.
인간계에는 그들 나름대로 큰일이 벌어졌다.
좋다면 좋은 일.
나쁘다면 나쁜 일.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지금 이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