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190화 (190/249)

#190

복수(3)

부우웅-

말을 함과 동시에 아무도 모르게 결계를 두르기 시작하는 헬캣.

그러자 허공에 그들을 중심으로 반원 모양의 투명한 결계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결계도 치는 건가요? 금방 끝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혹시나. 그리고 나머지는 네가 처리해라. 저 녀석들. 네가 그냥 씹어 먹을 거야. 내가 나설 정도도 아니고.

앞발을 휘휘 내젓는 헬캣,

...귀찮다는 말이군.

뭐 그래도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다.

설령 헬캣이 나선다고 해도 말이다.

그럼 먼저 해야 할 일은 보자...

우선은 복수부터.

"자. 혼날 시간이다."

"우리를 너무 무시하는군."

"다 무시할 만 하니까 무시하는 거야. 그리고 어차피 다 죽을 건데 뭐~"

체스의 비웃음.

무시라.

무시도 오만도 그 실력이 받쳐줘야 가능한 것.

아마 얼마 후가 되면 그제야 자신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를 건드린 것인지 알게 되겠지.

그 사이 디오스가 다시 입을 슬쩍 떼려는 순간.

갑자기 어디선가 정체 모를 바람이 일었다.

정확히는 자신의 맞은편에서부터.

슈릉-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지는 체스의 모습.

그리고 잠시 후 그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바로 자신의 일행 중 란도.

그의 앞이었다.

헉-!!!!!!

깜짝 놀란 란도.

갑자기 불쑥 얼굴 하나가 튀어 나오니 놀랄 수 밖에.

"ㅁ..."

찰나의 섬광.

뭔가 번득이는 것 같은 느낌.

탁-

그 사이 체스는 어느 새 자신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그들.

"역시 이제는 입장이 바뀌어 버렸네."

자신의 손에 쥔 대검을 빙글빙글 돌리는 체스.

자세히 보니 체스의 대검에는 핏방울이 점점이 맺혀 있었다.

"뭐하는 지...ㅅ...?"

란도가 뭐라 입을 떼는 순간.

스윽-

그의 목에 새빨간 실선 하나가 그어졌다.

어? 어...?

갑자기 느껴지는 이질적인 느낌에 목에 손을 가져가는 란도.

순간 주르륵 새어 나오는 피.

그리고 스르릉 미끄럼을 타듯 미끄러지는 그의 머리.

단 한 번의 칼질이었다.

촤악-

투명한 허공에 빠알간 물감이 튄다.

그와 동시에 천천히 무너지는 란도의 몸.

털썩-

데구르르-

몸에서 떨어진 머리는 힘없이 땅에 떨어지는가 싶더니 두어 바퀴 땅을 굴렀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

이 모든 게 두어 모금의 숨을 들이키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에???"

그 광경에 그저 황당하다는 듯 눈만 껌뻑이는 나머지 인원들.

설마... 죽음?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잠시 멍 때리던 이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들의 머리가 이해를 하기 시작했다.

"란...도...?"

란도의 처참한 모습.

그제야 입이 열린 듯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는 동료 중 한 명.

허나 죽은 이는 말이 없다.

그리고 이들의 대장 격인 디오스.

지금 그는 몹시도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무엇보다 어이없는 것은...

저 놈.

디오스가 체스 쪽을 쳐다보았다.

'이 무슨...?'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듯이 란도는 늘 약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기준.

그도 어디에 가면 어깨에 힘 좀 줄 수 있는 인물이라는 말이다.

그런 그가 이렇게 쉽게 죽을 줄은...

게다가 노린다면 자신을 먼저 죽여야 할 것 아닌가?

원한은 자신에게 제일 클 터인데.

"네가 한 짓이냐...?"

디오스의 입에서 차가운 말이 흘러 나왔다.

"글쎄~ 누가 그랬을까? 그 사이에 이해력이 좀 딸리나 봐? 둔해졌나? 아니면 인정을 못 하는 걸려나~"

어깨를 으쓱거리는 체스.

"...무슨 짓을 한 게냐? 왜 란도를 먼저 죽인 것이지?"

"뭐긴 뭐야. 네가 한 짓을 고스란히 돌려주는 거지. 뭘 새삼스럽게. 그리고 어차피 여기에서 너네가 살아나갈 확률은 0이야. 넌 어차피 맨 나중이 될 거니까 먼저 하나씩 처리한 것 뿐이야."

으득-

이를 깨무는 디오스.

자신의 눈에도 겨우 보였다.

겔리온은 봤으려나?

슬쩍 둘의 눈이 마주쳤다.

허나 겔리온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보지 못했다는 말이다.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저렇게 실력이 나아진 것이지...?'

"거 그만 눈알을 굴리고 빨리 끝내자."

체스가 대검을 꼬나든 채 자세를 잡았다.

****

다시 체스가 움직였다.

까아아아아아앙-!!!!!!

이번에는 겔리온.

대검과 대검이 부딪혔다.

"이...이 놈이...!!!"

직접 체스와 부딪힌 겔리온.

허나 한 번의 부딪힘으로 알았다.

이젠 상대가 되지 않는다.

단 한 번의 부딪힘으로 칼을 놓쳐버릴 정도로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겔리온이었다.

"쳐! 쳐라!"

말과 함께 디오스가 한 발 늦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간 픽픽 쓰러져 버리는 나머지 인원들.

"뭐,,,냐...?"

그리고 그의 눈에 들어오는 한 마리의 애완용 고양이.

그 새하얗게 생긴 고양이는 자신을 바라보며 앞발을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뭐야. 저거 고양이...가 아냐?'

그때 겔리온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말에 주위를 둘러보니 살아남은 건 자신과 겔리온 뿐이다.

허나 겔리온도 곧이라도 당할 듯한 매우 위험한 상태.

이익...

입술을 질끈 깨문 디오스가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

뒤바뀌어 버린 입장.

이제는 자유자재로 겔리온을 압박해 들어가는 체스였다.

챙-

챙-

검로 따위는 없다.

그저 빠른 속도로 검을 좌우로 휘둘러 갈 뿐인 체스.

하지만 겔리온은 그걸 막기에도 힘에 부쳐 보였다.

이미 다른 방식으로 공격을 안 해본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녀석은 도대체 무슨 수를 쓰는지 자신이 공격을 채 해나가기도 전에 이미 공격이 닿는 곳에서 물러나 있었다.

어느 새 말려 버린 전투.

이대로라면...

체스의 대검을 막아가는 그의 팔이 점점 처지기 시작했다.

허나 전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의 검.

아니 오히려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검을 처음 들었을 때.

시작하는 맨 처음의 동작은 단순했다.

막고 찌르고 베고.

단 세 가지이다.

하지만 이 기본 동작을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지금 체스가 하는 것처럼 말이다.

손에 물집이 터져도 반복하고 또 수업이 반복했던 행동이거늘.

격이 다르다.

까아앙-!!!

검을 막아내는 겔리온의 이마에는 어느 새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그 때.

다시 한 번 둘의 대검이 격렬하게 격돌하고.

더는 그 충격을 버티지 못한 겔리온의 대검이 그대로 반으로 쪼개져 나갔다.

헉-

겔리온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이... 이런... 젠장. 끝인가. 이렇게 죽을 거. 니기미!!!!!!'

그 사이.

체스의 대검이 허공을 가르며 번쩍 빛을 발했다.

몹시도 빠른 속도로 치고 내려오는 그의 대검.

슈아아아아아-

바람을 가르는 소리.

겔리온의 두 눈이 부릅떠지며 다가오는 공포에 온 몸이 굳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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