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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의 채무 탈출기-189화 (189/249)

#189

복수(2)

앞뒤 잴 것 없이 뛰어온 체스의 눈앞에 선 자들.

한 무리의 남자들이었다.

체스에게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얼굴들.

너덜너덜한 모습의 그들을 보니 꽤나 격전을 치른 듯한 모습이었다.

하긴 이 근처라면 아까의 전장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

이들 또한 격한 바람에 여기까지 밀려온 것이 틀림없었다.

마치 체스와 헬캣처럼.

여하튼.

그들은 바로 디오스와 그의 일행들.

이제서야 만나게 되었다.

신이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운명의 이끌림 때문인지 이들을 여기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뭐 어떻게 보면 감사해야겠지.

자신에게 처음으로 죽음 아닌 죽음을 선사했던 바로 그들이 아닌가.

이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왠지 그 때의 상처 부위가 욱신거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 체스였다.

그때 자신을 쫓아온 헬캣.

-누구길래 그러냐?

"이들요? 제가 빚이 좀 있죠."

냉랭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체스.

순간 헬캣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 빚이 또 있냐?????? 임마. 젊은 놈이 돈을 그렇게 막 쓰고 빌리고 하면 안돼.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길래 여기저기 빚 밖에 없냐? 에휴... 이 답답한 놈아.

"...저... 그런 빚이 아닌데요."

-응??? 아니냐? 네가 빚이라며.

"후... 제가 갚아줘야 할 게 좀 있죠. 목. 숨. 으. 로."

딱딱하게 툭툭 끊기는 체스의 말에 그제야 이해한 듯한 헬캣의 표정.

-아~ 알겠다. 그런 건 당연히 갚아야지. 꼭 당한 만큼 갚아줘라.

"네. 저기 뒤에서 가만히 보세요 그냥."

-어... 뭐 그래. 그래라.

이번 만큼은 군말 없이 뒤로 약간 물러나는 헬캣.

체스는 그런 그를 보더니 다시 시선을 앞으로 고정했다.

"반갑네. 아주 그냥 몸이 진저리칠 만큼."

****

"누구요?"

체스의 귀에는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

아니 절대 잊을 수 없는 목소리.

바로 겔리온이었다.

"훗. 날 몰라? 그래. 모른단 말이지?"

역시 당한 놈이나 알지 너네는 나한테 그런 짓을 해놓고 감히 잊어버렸단 말이지?

어이없는 그의 대답에 그만 피식 웃어버리는 체스.

허나 단순한 웃음이 아니다.

체스의 입꼬리에 걸린 웃음에는 뭔가 섬뜩한 게 있었다.

"뭐이?"

그 기운에 반응한 탓일까 자신도 모르게 발끈하듯 반응하는 겔리온.

움찔거리는 겔리온의 몸을 디오스가 팔로 막았다.

"잠깐."

"왜 그래? 저 건방진 녀석 따위 금방 없애버리면 그만이지."

아직 겔리온은 아무 것도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다.

하지만 디오스의 파르르 떨리는 눈가.

"...너 모르겠냐?"

"응?"

디오스의 말에 반문하는 겔리온.

"무슨 소리야?"

"... 저 녀석. 그때 엘윈 마을에 있던 그 녀석이잖냐."

"뭐라는 거야? 훅 날려오더니 그새 정줄을 놔버렸냐?"

낄낄낄-

서로가 하는 말.

디오스 이 자식.

미쳐버렸음에 틀림없다.

죽은 녀석이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다는 말이야?

칼을 푹 찔러 넣는 걸 분명히 봤는데.

무슨 소리를 하냐며 개소리 좀 하지 말라는 겔리온과 나머지 일행들이었다.

말을 더듬는 디오스를 비웃어 대며 체스 쪽을 다시 쳐다보는 그들.

그리고.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헉-

자세히 보니 알겠다.

미묘하게 얼굴이 바뀐 건 알겠는데 저 못생김.

저 유니크한 못생김은 아무나 쉬이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지.

"뭐... 뭐야. 어떻게 살...아있지?"

"...귀...신이냐?"

삿대질을 하는 사람하며 심지어 너무 놀란 나머지 엉덩방아를 찧는 사람.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

극명한 놀람 그리고 경악.

하긴 죽은 줄로만 알았던 자가 살아나면 당연히 놀랄 만도 하지.

"...어... 어떻게 살...아 있지?"

더듬더듬거리는 겔리온이었다.

****

디오스와 일행들.

디아고스트를 잡은 이후 그들은 연신 행운의 연속이었다.

점점 높은 등급의 마수를 사냥함에 따라 마수 사냥꾼으로서 이름도 제법 알려지게 된 그들.

그리고 지금은 나름 어깨에 힘 좀 주는 한 그룹으로서 꽤나 유명해진 그들이었다.

물론 모두가 랭커까지는 올라가지 못했지만 디오스는 랭커의 문턱에까지 다다렀다고 할 정도로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명성 덕분이랄까.

오픈도어에 합류하게 되어 아까의 전투에 참여한 그들이었다.

물론 열쇠가 만들어 지는 바람에 이제는 돌아갈 일만 남았지만.

헌데 그 앞을 막은 게 바로 그 체스였을 줄이야.

"그 못생긴 얼굴을 다시 보게 될 줄이야. 그런데 말이지. 그때 내가 분명히 확실히 찔렀는데 도대체 어떻게 살아있는 것이지?"

주변 동료들조차도 처음 보는 듯한 서리가 내린 디오스의 얼굴.

그만큼 놀랐다는 말일 터.

하긴 이런 상황에 놀라지 않는 게 더 신기할 노릇 아니겠는가.

눈앞에 저 치는 분명히 자신이 죽인 자.

그런 그가 떡 하니 두 다리를 딛고 앞에 서있으니.

"글쎄. 뭐라 말을 해야 할까? 그저 운이 좀 좋았다고 해두지."

"운이라... 운이란 말이지? 죽었다가 살아나는 그런 운도 있단 말이지? 그래."

"어떻게 보면 내가 감사해야겠지. 덕분에 완전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으니. 게다가 오늘 여기에서 그 복수도 할 수 있게 된 것. 어떻게 보면 이것도 나름 운이 아닐까 싶긴 하네."

진득한 살기.

여기 이 곳에서 자신들을 죽이겠다는 강한 의지가 체스의 말에서부터 느껴졌다.

"살아난 건 알겠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까?"

체스의 말이 자못 재미있는 듯 디오스가 피식 비웃었다.

"글쎄. 그거야 네가 걱정할 게 아니지. 놀라지나 말았으면 하는데."

"그래? 예전의 우리와 같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지."

"그거. 어째 대사가 좀 바뀐 것 같지 않나? 그건 오히려 내가 해야 할 말 같은데?"

스르릉-

체스가 자신의 대검을 스윽 꺼내 들었다.

"마침 4명이 다 모여 있으니 그냥 바로 끝내면 되겠지? 나머지는 별다른 원한은 없다만."

자신감이 넘치는 체스의 목소리.

디오스의 저 눈.

자신이 이렇게 살아난 게 요행이라 생각하는 듯한 얼굴이다.

허나.

그때 겨우 하루하루 먹고 살기에 급급했던 자신과 동급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일 건데...

심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보자...'

모여 있는 자들은 10여 명.

4명을 제외하고는 다 처음 보는 자들이다.

하지만 굳이 자신의 복수에 저들까지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은데...

체스가 어떻게 처리할 지 갈등하는 찰나.

그의 어깨로 폴짝 뛰어 오른 헬캣이 슬쩍 말을 걸어왔다.

-저 녀석들. 문을 연 그 녀석들이다.

"네? 그걸 어떻게 아나요?"

말을 하는 대신 한 녀석을 가리키는 헬캣.

-저거 보이지? 저 표식이 바로 거기 소속이라는 증거지.

아.

"그럼 살리라는 말인가요?"

-아니. 뭐 굳이 살릴 필요는 없지. 굳이 살리면 한 녀석 정도? 정보만 얻으면 되니까.

듣던 중 반가운 소리.

그렇다면 뭐 인정사정 볼 것 없지.

복수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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