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
복수(1)
쿵쿵쿵-
빠르고 거친 발걸음 소리.
그를 막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니 막을 수 없었다고 해야겠지.
잔뜩 화가 난 얼굴.
그 발걸음의 주인공은 하르무였다.
그가 향하는 곳.
커다란 문이 굳게 닫혀 있는 곳.
허나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스윽-
단지 가볍게 휘저어지는 그의 두꺼운 손.
쿠쿠쿵-
큰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허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안쪽으로는 다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듯한 수십 여 개의 새하얀 계단이 차곡차곡 놓여져 있었다.
하지만 여유 따위는 없다.
그는 계속해서 쿵쿵 계단을 올라갔다.
마침내 도달한 곳.
하르무가 성큼성큼 걸어가 도착한 그 곳에는 호아류가 있었다.
뒷짐을 진 채 어느 곳을 응시하며.
"호아류!"
자신을 부르는 소리.
그의 고개가 천천히 뒤로 돌았다.
두 눈에 들어오는 건 씩씩거리며 서있는 하르무.
"왔나?"
무미건조한 목소리.
태평하다고 해야 할 지 너무나 덤덤한 태도이다.
호아류는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옮긴 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반면에 쏘아붙이듯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하르무.
"열쇠! 열쇠가 만들어지면 두 세계가 연결되는 것 아니었나??? 왜 아무 것도 되지 않은 거지? 분명히 네가 그랬지 않나? 열쇠가 만들어지면 완벽하게 두 세계가 합쳐질 거라고! 헌데 이게 뭐야? 열쇠는 사라져 버리고 오히려 통로는 막히고!"
흥분한 듯한 하르무의 잔뜩 성이 난 목소리.
모든 게 끝이 날 줄 알았다.
열쇠가 완성이 되면 두 세계가 연결이 되고 자연스레 모든 걸 갖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열쇠가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건 뭐 아무 것도 제대로 된 게 없지 않은가?
한 마디로 헛짓을 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열을 낼 만도 하지.
하지만 호아류는 여전히 별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전방으로 들어올려지는 그의 손.
그리고 펴지는 손가락.
그것은 어느 한 곳을 짚고 있었다.
??????
'뭐하는 것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늘 그렇듯이.
하르무의 시선에 물음표가 떴다.
자연스레 호아류의 손가락을 따라 이동하는 하르무의 시선.
아이.
그 곳에는 인간으로 보이는 아이 한 명이 있었다.
이 세계가 아닌 듯한 완전히 별도의 공간에 들어가 있는 아이.
그 아이는 어딘가에 완전 정신이 한창 팔려 있는 듯했다.
저 아무 것도 모른다는 표정.
맹한 얼굴에 입을 살짝 벌린 아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신기한 듯 그 아이는 연신 주위로 고개를 돌리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천사가 있다면 아마 저런 모습이겠지.
톡- 톡-
아이가 손가락을 갖다 댄다.
자신의 눈앞에 잔잔히 흐르는 물결과도 같은 빛의 강을 향해.
아이의 손가락질 한 번에 촤라락 펼쳐지는 여러 장면들.
어떤 원리로 보여지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정말 모든 걸 다 보여주고 있었다.
인간들의 모습.
환수들의 모습.
그리고 전쟁, 사랑, 살육 등 지금까지 두 세계에서 있던 모든 것을 말이다.
울다가 웃다가.
그리고 슬퍼하다가 화를 냈다가.
아이는 그렇게 자신의 맑디 맑은 눈동자 안에 하나씩 모든 것을 담아가고 있었다.
****
"...인간???"
하르무가 혼자 중얼거렸다.
하지만 인간의 아이라고 보기에는 그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너무 이질적이다.
그렇다면 환수?
아니야. 환수는 더더욱 아니다.
"뭐냐? 저건? 인간 같지는 않은데...?"
"열쇠다."
???!!!
순간 하르무의 두 눈이 놀란 토끼눈 마냥 급격히 커졌다.
호아류의 말.
놀랄 수 밖에 없다.
호아류의 말에 얼른 그에게로 눈을 돌리는 하르무.
"저게 열쇠라고? 열쇠는 그냥 열쇠가 아니었나? 분명히 조각과 조각으로 봤었는데? 생명체가 열쇠라는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나도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만 저게 열쇠인 것 만은 확실하다. 실은 이 곳이 열쇠와 관련이 있는 곳이니까."
그러고 보니 호아류가 있는 이 곳.
중앙 지역에서 위로 한참을 올라와야 도달하는 곳.
지금껏 주인들조차 그 용도를 알지 못하던 곳이 바로 이 곳이었다.
그렇기에 올 일조차 없던 이 곳.
그런 이 곳이 열쇠와 관련이 있는 곳이었다니...
"하지만 난 처음 듣는 말이다."
하르무의 목소리가 다소 누그러뜨려졌다.
"말 그대로다. 열쇠와 관련된 곳. 그 곳이 이 곳이고 존재의 이유였지."
"일단 그럼 열쇠는 만들어졌다는 말이군. 그럼 저 열쇠를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이지? 너라면 방법을 알 것 아냐?"
답을 구하는 눈빛.
호아류를 바라보는 하르무였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하르무의 예상을 좀 벗어났다.
"잘 모르겠다."
"...야. 네가 모르면 누가 알지?"
"배코라면 알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아니면?"
" 그 자."
"그 자라니...? 그 자...? 엥??? 진심이야?"
호아류가 그 자라고 한다면...
하지만 그 자는.
하르무가 재차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호아류에게 물었지만 그것 만큼은 확실한 듯했다.
"젠장."
두 명의 주인들의 대화에 등장하는 그 자라는 인물.
도대체 누굴 말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이들은 뭔가 아는 듯 보였다.
"...일단 배코에게 물어봐야겠군."
"그렇지. 아무래도 배코가 낫겠지."
갈수록 태산이다.
하나를 해결했더니 또 하나가 생겨났다.
젠장.
하르무의 미간에 더욱 깊은 주름이 패여갔다.
****
한편 인간계.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던 체스.
-왜 그러냐? 아는 자들이냐?
체스가 바라보는 곳을 잠깐 본 후 다시 체스를 본 헬캣이 질문을 던졌다.
이렇게까지 살기로 뒤범벅이 된 녀석이라...
본 적이 없지.
허나 무엇 때문인지 영문을 알 수 없다.
급작스레 변해버린 체스의 태도.
-흠...
체스의 다리를 툭 건드리는 헬캣.
단순한 행동이었다.
허나 체스에게는 충분한 행동.
아...
그제야 숨을 살짝 내뱉는 체스.
"죄송해요. 이거 너무 달아올라 버려서."
-누군데 그러냐?
"저한테 칼 꽂은 놈들이요."
엥??????
오호~
그렇다면 이런 태도가 이해가 가지.
헬캣이 잠시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체스가 빠르게 움직였다.
-야야! 같이 가야지!
****
"와이씨. 죽는 줄 알았네 진짜."
"야. 아마 거기 있었으면 어차피 죽는 건 마찬가지였을 것 같은데?"
"그것도 맞아. 시발.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짓에 목숨까지 내놓을 수는 없지."
"그나저나 약속한 돈은 다 받을 수 있으려나?"
"글쎄. 다 끝났으면 돈을 줄 것이고 아니면 똥망이지."
"아~ 드디어 한 몫 잡고 은퇴하나 싶었는데. 제기랄."
대화를 나누는 자들.
꽤나 단련이 된 마수 사냥꾼들로 보였다.
타악-
그때.
그들의 진로가 막혔다.
불쑥 튀어나온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은 한 남자에 의해.